제106화
106화. 복귀(2)
벌떡―!
“다프네 님!”
“아벨 저하!”
전보다 훨씬 편해 보이는 다프네를 보며 아벨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곳에서 깊은 인연을 맺은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너무 반가웠다.
다프네도 아벨과 같은 마음이었는지, 정말 기쁜 얼굴로 아벨에게 뛰어왔다.
아벨에게 달려온 다프네의 두 손을 마주 잡으며 묻는다.
“정말 오랜만이군요. 다프네 님. 잘 지내셨습니까?”
“저는 잘 지냈죠. 황궁만큼 안전한 곳도 없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세르지 저하께서 그동안 정말 잘 챙겨주셨답니다.”
세르지가 쑥스러워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했다.
“흠흠―! 제가 뭘 했다고, 성녀님도 참.”
“아니에요. 정말 전 요즘처럼 황궁에서 편하게 지내본 적도 없답니다.”
아벨은 진심으로 세르지에게 감사를 표한다.
“감사합니다. 형님. 정말 다프네 님이 걱정됐었는데, 역시 형님밖에 없습니다.”
그런 아벨을 두 눈에서 꿀 떨어지듯 다정스레 바라본다.
“이게 다 너와 내가 힘을 합쳐 하베츠 그 새끼를 제거한 덕분 아니겠느냐. 일단 앉아라. 앉아서 식사하면서 대화하자꾸나.”
세르지의 말에 아벨과 다프네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식사를 시작하는데, 세르지가 묻는다.
“그래. 나와 다프네 님께 할 말이 무엇이더냐?”
좀 더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대화를 나눠도 됐었지만, 아벨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우선 그날 절 누가 데려갔는지부터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아― 그래. 안 그래도 그것도 매우 궁금하던 차였다.”
세르지와 다프네를 쓱 둘러보더니.
“절 데려간 이는 다름 아닌 카인 폐하의 스승이었던 골드 드래곤 에디린 님이었습니다.”
“……?!”
둘 다 정말 깜짝 놀랐다는 듯이 두 눈을 찢어지라 크게 뜬다.
“뭐?! 그 전설의 드래곤?!”
“네. 사실 그때 그분께서는 제 기숙사에서 머무르시며 저에게 신뇌전마검新雷電魔劍을 가르쳐 주시고 계셨습니다.”
“신뇌전마검?!”
“카인 폐하 사후 뇌전마검을 더욱 발전시켰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것도, 신뇌전마검을 완벽하게 습득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벨의 설명에도 좀처럼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다.
“하하…… 뇌전마검도 대단한데 더 발전된 뇌전마검이라…….”
“덕분에 이제는 그 어떤 것이 와도 전처럼 그냥 당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정말 다행이구나…… 그런데 그럼 그때 널 공격한 존재는 무엇인지 아느냐?”
“바로 신의 현신입니다.”
“신의 현신?!”
“에디린 님에게 듣기론 이 세상엔 신의 현신으로 활동하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정의의 신의 현신이라고 오해받은 것과는 달리 진짜 현신 말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정의의 신의 현신?!”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도…… 아마도 정의의 신의 현신이 맞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르지를 한층 더 진지하게 바라보며 말한다.
“형님. 전 에이션트 드래곤과 3년간 함께 살며 이 세상의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것들에 대해 정말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무겁고 진지한 얼굴에 세르지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꿀꺽―
긴장하여 굵은 침을 넘기는데, 그 소리가 식당을 울린다.
아벨이 말을 잇는다.
“다프네 님께서는 잘 아시겠지만 이 세상은 신들이 자신들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그 영원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즐기기 위해 만든 공간입니다.”
“……?!”
“그런 이유로 정의의 신의 현신이 저를 공격하고 하베츠를 살린 것입니다. 정의의 신은 하베츠가 살아있어야 이 에브니아 세상에 좀 더 재밌는 상황이 벌어질 거라 생각했기에 말입니다.”
너무 충격적인 말에 세르지는 경악하며 소리쳤다.
“뭐라고?! 그게 정말이야?!”
놀라는 세르지와는 달리 아벨은 여전히 덤덤하다.
“형님. 정의의 신을 너무 믿어선 안 됩니다. 그는 그 누구보다 인간을 하찮게 여기는 존재이니까 말입니다. 이제 형님이 황제가 되신다면 어떻게 해서든 형님을 이용해 자신의 그 허무함을 채우려고 할 것입니다.”
“이럴 수가…….”
세르지는 아벨의 말을 의심하기보다는 전적으로 믿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벨은 자신과 맹세의 마법으로 묶여 있었기에 결코 해를 가할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충격적일 수 있는 소식이 한 가지 더 남았습니다.”
더 남았다는 말에 불안해한다.
“……뭔데……?”
“다프네 님. 최근 주신 아그네스에게서 신탁이 없었습니까?”
다프네도 덩달아 불안해하며 묻는다.
“……신탁이요? 없었어요. 왜 그러시죠?”
아벨은 불안에 떠는 두 사람을 더없이 진중하게 바라본다.
“조만간 그 역겨운 신들이 자신들의 재미를 위해 인간들을 짓밟는 때가 올 것입니다.”
“……?!”
“마족 침공이 있을 것입니다. 셀 수 없는 마물들을 이끌고 대륙 전체를 유린하겠지요.”
“……말도 안 돼…….”
“이미 세계의 끝의 마족들과 마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벌떡―!
“뭐라고?!”
놀라 벌떡 일어난 세르지와는 달리 다프네는 대단히 얼굴을 찡그렸지만 차분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제가 신탁을 받았다고 하고 대륙에 전달하면 어떨까요? 최대한 빨리 대비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사실 그것 때문에 일부러 시간에 맞춰 온 것이었다.
아무리 퍼트려도 어쩔 수 없게 만들기 위해.
“제 생각도 같습니다. 다프네 님께서 오늘 신탁을 받은 것처럼 해서 바로 전 대륙에 공표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 * *
다프네가 신탁을 받는 연기를 하기 위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아벨은 정말 오랜만에 수잔 황비와 여유를 즐기며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잘 지낸 것 같아 다행이구나.”
수잔 황비는 아주 잘 자란, 갈수록 자신을 닮아가는 아들을 바라보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정말 이제는 마음 놓을 수 있다고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그 얼굴을 보자 차마 곧 마족 침공이 있을 거라 지금 당장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 어느 정도 예상은 할 수 있게 해야 했고 그 일이 벌어져도 안심할 수 있게 해야 했다.
“맞습니다. 어마마마께서도 들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절 데려간 자가 드래곤이라고.”
그 말에 수잔 황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드래곤이 제 스승님이 되셨는데, 그분의 거처에서, 그러니까 오히려 루드스 때보다 더 안전한 곳에서 이제는 제 몸 하나 지킬 수 있을 정도로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진정 주신 아그네스의 도우심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니? 그래. 널 보니 확실히 더 좋아진 것 같구나.”
그토록 그리워했었고 걱정했었던 아들이었다.
성장한 아들을 다정스레 바라봤다.
아벨도 그런 수잔 황비를 한없이 다정스레 바라본다.
세르지와 다프네 때와는 달리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보다는 천천히 얘기하기로 한다. 아벨도 진정으로 그녀를 그리워했었고 걱정하고 있었기에.
“……어마마마께서는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나는 세르지 황태자로 인해 정말 편하게 지냈단다. 황태자가 말이지. 나와 다프네 님에게―”
수잔 황비의 말을 들어보니 세르지의 도움으로 수잔 황비도 전보다 훨씬 더 황궁 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었다고 했었다.
여전히 캐서린 2 황비의 질투가 있었지만 세르지의 도움으로 잘 이겨낼 수 있었다면서.
예전에 세르지에게 황제가 죽는다면 어마마마께서는 본가로 돌아가고자 하신다고 말을 했었는데, 그래서 세르지는 그때까지만 2 황비의 질투를 막으면 된다 생각하는 것 같았다.
머지않아 황제는 곧 그 자리에서 내려올 것이니 말이다.
바로 죽음으로.
아무튼 그리고 무엇보다 세르지는 자신의 어머니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보다 아벨과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벨의 도움이 있으면 자신이 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로 남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벨. 그러면 이젠 황궁에 있을 거니?”
이젠 조금씩 지금 상황에 대해 말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별일 없으면 황궁에서 지낼까 합니다. 하지만 어마마마.”
“……?”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습니다.”
수잔 황비는 아벨의 그 말에 대단히 불안해한다.
“……무슨 상황……?”
“다프네 님께서도 사실 아까 제게 말씀하셨지만 현재 세계의 끝 동향이 이상합니다.”
“세계의 끝?”
“네. 세계의 끝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하지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걱정하지 말라는 아벨의 말에도 그녀의 얼굴은 순식간에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해졌었다.
전에도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지만 크게 다쳤었기에, 심지어 3년 동안 연락도 없이 사라졌었기에 말이다.
불안에 떠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손을 잡으며 잔잔한 미소를 짓는다.
“다행히도 드래곤이신 제 스승님께서 제 곁에 항상 머무르실 거라 말입니다. 그분께서는 저를 끔찍이도 아끼신답니다. 그러니 제가 전처럼 무언가에게 당할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그건 어마마마께 확실히 말씀드릴 수, 그리고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이니……?”
“네. 정말입니다. 그러니 걱정 마시지요.”
이제야 조금 불안이 사라졌다는 편안한 얼굴로.
“……그래. 알겠어. 우리 아들을 믿을게.”
사실 아벨은 이러한 안심시킬 말 말고도 수잔 황비의 불안과 걱정을 최대한 없애기 위해 한 가지 더 준비를 해뒀었다.
“그리고 어마마마께 부탁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부탁?”
“네. 곧 저를 만나러 사나와 케이가 올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제가 황궁으로 돌아온 소식을 알릴 것이니 말입니다. 그때 어마마마께서 그 아이들과 함께 지내주셨으면 합니다. 정말 무슨 일이 있어 제가 황궁을 떠나게 된다면 말입니다.”
수잔 황비가 사나와 케이와 함께 있게 된다면, 아벨도 세 사람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양쪽 다 서로를 위로하며 그 어려운 순간을 잘 버틸 수 있을 것이고 말이다.
* * *
다프네가 신탁을 받았다며 공표한 그 말은 사람들에게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하루 만에 제국 전역에 이제 곧 마족 침공이 있을 거라는 소문이 팽배해졌다.
모두 이 평화의 시대에 설마 하면서도 성녀가 한 말이라 감히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 그녀는 결코 허언을 할 사람이 아니었기에 말이다.
그래서 바로 또 다음 하루 만에 제국 전역뿐만 아니라 대륙 전역으로 그 말이 효력을 끼치고 있었다.
“네?! 아벨 저하가 돌아오셨다구요?!”
사나는 자신에게 알려주는 얀 국왕에게 소리쳐 되묻는다.
“이틀 전에 홀연히 나타났다고 하더구나. 그리고 수잔 황비 때문에 너를 먼저 찾지 못한 점 미안하다면서.”
“몸은 좀 어떻대요?! 괜찮으시대요?!”
걱정하는 딸의 팔을 다정스레 쓰다듬으며 말한다.
“걱정 말거라. 오히려 푹 쉬어 몸 상태가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고 하니 말이다.”
“저! 당장! 당장 황궁으로 갈래요!”
딸이 그토록 아벨을 그리워하고 걱정하고 있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얀 국왕은 별말 없이 허락한다.
“그래. 어서 준비해서 가 보거라.”
세르지 덕분에 순조롭게 아벨과 사나의 혼담은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제국의 모든 이들은 사나를 아벨의 약혼자로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정의의 신의 현신이라며 제국인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아벨이 사라졌던 그때 사나의 가슴 찢어지는 듯한 애처로운 모습을 많은 제국인들이 보았기에 그녀는 제국인들에게 엄청난 사랑도 받고 있었다.
‘때가 되었군.’
10인회에서 결정된 때가 이제 곧이었다.
‘다행히 사위가 때맞춰서 왔군. 다른 그 어떤 곳보다 황궁이 안전할 거야.’
마족 침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대륙의 거의 전체가 공격받을 것이기에 안전한 곳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니 아주 좋은 타이밍에 아주 잘 돌아왔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