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화
105화. 복귀(1)
“화신체들은 서로 함께 다니는 걸 극도로 혐오해. 그러니까 하나 정도만 이길 수 있으면 돼.”
“하아― 하아― 하아― 네. 알겠습니다. 하아― 하아―”
“아직 넌 한참은 부족해. 마족 서열 29위부터가 12성이니까. 다시 말해 그 위로는 네가 못 이긴다는 소리지. 아무리 내가 가르쳐준 우주 최강의 검술이 있어도 말이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몸이 만신창이인 상태이지만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그리고 눈치껏 원하는 대답도 해야 했고.
“하아― 하아― 그럼 에디린 님께서 항상 제 곁에. 하아― 딱 붙어 있어야겠습니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히죽―
다행히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렇지? 내가 네 옆에 있어야겠지?”
“하아― 네. 하아― 하아― 에디린 님밖에 없습니다. 하아― 하아―”
대단히 만족스런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은 그 욕망이 충족된 듯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배고픈데?”
털썩―
여기까지란 말에 곧바로 새하얀 눈밭에 털썩 주저앉는 아벨이다.
그리고는 최고급 포션을 입에 들이붓는다.
벌컥― 벌컥― 벌컥―
조금 까탈스러워 대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3년간 함께 하다 보니 확실히 굉장히 가까워져 있었다. 정도 많이 들었고 말이다. 그녀야말로 이 빌어먹을 세계에서 진정한 스승이라고 느껴질 정도였으니.
“아벨. 그런데 언제 나가려고? 당장 다음 주 아냐?”
포션을 마시며 기력을 되찾은 아벨이 대답한다.
“지금 바로 나가시죠.”
“지금?”
이제 때가 됐기도 했고 더는 이 지랄맞은 수련을 그만하고 싶었다.
“네. 괜찮습니다. 어서 빨리 씻고 오겠습니다.”
“그래. 그럼 물 데워놔.”
멈칫―
“……같이 하실 겁니까……?”
“야. 너만 땀 흘렸어? 나도 땀 흘렸거든?”
전혀 땀을 흘린 것 같지 않았다.
아벨은 자주 같이 하면서도 도저히 적응이 안 됐었다.
“너 설마 아직도 나를 인간 여자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괜찮다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그리고 야! 볼 거 다 봤으면서 얘는!”
어떻게 그러겠는가?
생긴 게 완전 인간 여자인데.
그것도 엄청나게 아름다운.
솔직히 여자의 나체에 내성이 전혀 없었던 아벨으로선 좋은 경험과 공부가 된다 생각하면 물론 좋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심장 터질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낯부끄럽기도 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냥 뭔가 너무 이상했다.
후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목욕물을 데우러 간다.
미적거리는 아벨의 등에다가 대고 에디린이 묻는다.
“왜? 수련 더 하고 싶어?”
그래서 쏜살같이 뛰어가던 아벨이다.
* * *
평소처럼 함께 씻고 제국으로 떠날 준비를 하던 아벨에게 묻는다.
“황궁으로 바로 가게?”
정복을 입으며 말한다.
“네. 황궁으로 바로 돌아갈 겁니다. 이제 제 편이 될 자들이 많으니 말입니다.”
“그래. 뭐 괜찮겠지. 좋아. 알겠어.”
그녀가 허공에 아무렇지 않게 원을 그리자 둥근 포탈이 생성됐다. 그 둥근 포탈이 이동 워프와 대단히 비슷하여 놀라던 아벨이다.
그때 에이션트 드래곤이 신과 비긴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에이션트 드래곤은 단거리의 순간이동이 아닌 장거리 이동, 즉 공간이동空間移動이 가능하다는 것도.
아벨은 비행마법으로 근처 대도시로 이동해 이동 워프를 이동할 거라 생각했기에, 그 경이로운 광경에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뭐해? 안 가?”
아벨이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만 보고 있자 하는 말이었다.
“아…… 아닙니다. 갑니다. 어서 가시죠.”
그러면서 다급히 먼저 들어간다.
먼저 들어가는 아벨을 바라보며 쯧쯧 혀를 찬다.
“쯧쯧― 아직도 이 몸의 능력을 의심하다니.”
그러면서 자기가 만든 포탈에 따라 들어간다.
수아아아―
밖으로 나오자 좀 어둑하면서도 내린 눈 때문에 반짝이는 숲 속에 있었다. 빽빽이 솟아오른 거대한 나무들 아래라 햇볕이 들어오지 않아서 어둑한 것이었지 아직 한낮이었다.
“에스토시아 근처 숲이야. 에스토시아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니, 날아가면 금방 도착할 거야.”
그러면서 비행마법으로 몸을 띄운다.
아벨도 에디린을 따라 몸을 띄웠다.
슈욱―
하늘로 날아오르자 차갑지만 시원한 겨울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정말 기분 좋군.’
비행마법을 펼칠 때마다 느끼는 건데 정말 기분 좋았다.
하늘에서 기분 좋은 시원한 겨울바람을 타며 아래 펼쳐진 잔잔한 은빛 눈밭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것들에 이어진 제국의 수도 에스토시아의 웅장한 성벽과 높게 솟아오른 황궁의 하늘을 찌를 것만 같은 첨탑들도 함께.
‘……돌아왔구나…….’
루드스는 반대편에 있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리운 얼굴들은 생생하게 떠올랐으니.
‘……케이…… 사나…… 잘 지내고 있겠지…….’
그녀들이 정상적으로 루드스를 다니고 있었다면, 현재 졸업 학년인 5학년을 앞두고 겨울방학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3년이 지났으니…… 이제 졸업 학년인 5학년을 앞두고 있겠구나…….’
새삼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그렇게 됐군…….’
아벨도 이제는 19살이었고 며칠만 더 있으면 20살이었다. 전에 보이던 앳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젠 성숙한 아름다움까지 보여 남녀노소 막론하고 그 누구도 한 번 보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처음 본 사람은 있을 수 있으나 한 번 본 사람은 없다고 하겠다.
그때 점점 가까워지는 황궁의 첨탑이 눈에 들어왔는데, 자신과 똑 닮은 수잔 황비가 떠오른다.
‘……어마마마…….’
얼마나 걱정했을까?
자신이 갑자기 사라져 얼마나 가슴 아파했을지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다.
어서 빨리 만나 뵙고 그동안 아파했을 가슴을 부족하겠지만 가능한 최대한으로 치료해주고 싶었다.
* * *
벌떡―!
“네?! 다시 말해보세요?! 뭐라고요?!”
집사도 얼떨떨해하며 요구대로 다시 한 번 말을 한다.
“아벨 저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지금 황제 폐하를 뵙기 위해 알현실로 이동하고 계십니다!”
휙―!
“황비 마마!”
덜컥―!
대답 대신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리고 이어서 체통 따위 잊고 황제의 알현실로 전력으로 뛰어간다.
타다다다다―!
“……?”
“황비 마마……?”
뛰어가는 수잔 황비를 의아하게 바라보던 사용인들이었지만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수잔 황비가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다른 사용인들이 소리쳐 현 황궁에서 벌어진 그 깜짝 놀랄 일을 알린 것이었다.
“아벨 황자 저하께서 돌아오셨어!”
“아벨 저하께서?!”
“정말?! 진짜로?!”
“그래! 지금 황제 폐하의 알현실로 가고 계신대! 근위기사 존스 경이 말해줬어!”
사용인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함을 알지만, 그걸 알고 있는 머리와는 달리 눈은 수잔 황비가 달려가는 그 방향으로 돌아간다.
수잔 황비는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황제의 알현실까지 뛰어갔다.
알현실의 거대한 문 앞에 가서야 멈춰 거친 숨을 몰아쉰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하아―
알현실을 지키던 집사장이 수잔 황비에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괜찮으십니까? 황비 마마?”
“네! 괜찮아요! 아벨은 안에 있나요?!”
“네. 안에서 폐하를 뵙고 계십니다.”
그 대답에 다급히 소리쳐 명령한다.
“제가 왔음을 고해주세요! 어서!”
“네. 황비 마마.”
허리 숙여 예를 갖추고는 문을 노크하고 수잔 황비가 왔음을 고한다.
“폐하. 수잔 황비 마마 오셨습니다.”
잠시 고요가 감돌다가.
“들어오라 해라.”
안에서 허락이 떨어졌다.
드륵―
문을 열어주며.
“들어가 보시지요.”
“……?!”
열린 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서 있는, 꿈에서도 그리워했던 아들이 자신을 바라보며 환히 미소 짓고 있자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뛰어가 안긴다.
타다다다다-!
와락―!
아벨은 자신에게 안긴, 떨리는 어머니의 등을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쓰다듬는다.
“돌아왔습니다…… 어마마마…….”
“왜…… 왜 연락 한 번 없었니…….”
꽈악―!
울먹이면서 아벨을 세게 한 번 끌어안더니, 그리고는 곧장 수잔 황비는 안고 있던 아벨을 놓아주었다. 그녀도 황제의 아벨을 향한 그 미친듯한 질투를 잘 알던 것이었다.
몸을 살짝 밀어낸 채 아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앳된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었다.
“많이 컸구나…….”
“네…… 덕분에 많이 컸습니다…… 어마마마….”
수잔 황비는 크게 변함은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조금 생긴 주름을 보자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다.
“흠흠―!”
그때 파우스 황제가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깬다.
“아무튼! 알겠으니 썩 나가거라! 나는 매우 바쁜 몸이니! 그리고 당신은 남아 계시오!”
아벨은 수잔 황비를 잠시 바라봤는데, 수잔 황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이따 저녁을 함께 하자꾸나. 일단은 나가서 쉬고 있으렴.”
그 말에 군말 없이 예를 갖추고 밖으로 나간다.
* * *
아벨이 황궁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은 황궁 전체에 빛살과도 같이 퍼져나갔다.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던 세르지도 그 소식을 듣자마자 출발해, 알현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벨이 알현실에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세르지는 아벨의 손을 잡으며 반갑게 맞이한다.
“아벨!”
“형님.”
반갑게 두 손을 마주 흔들며 소리친다.
“난 네가 돌아올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어디! 어디 아픈 곳은 없더냐?!”
자신을 반갑게 맞이하는 그 모습에 싱긋― 아름다운 미소를 보인다.
“네 형님. 덕분에 푹 쉬다가 왔습니다.”
“하하하―! 그래?! 그래! 네 말대로 정말 좋아 보여서 다행이구나!”
“네. 형님. 형님도 잘 지내셨습니까?”
“암! 이보다 좋을 수는 없지! 점심 먹었느냐?!”
“아닙니다. 아직입니다.”
“같이 먹겠느냐?!”
“좋습니다. 저도 형님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래?! 좋구나! 그럼 당장 출발하자꾸나!”
하지만 아벨은 당장 움직이려는 그를 멈춰 세운다.
“다프네 님도 함께해도 되겠습니까? 두 분께 함께 드릴 말씀이라 말입니다.”
“성녀 다프네?”
“네. 다프네 님이 꼭 함께 계셔야 합니다.”
일말의 고민도 없이 자신의 집사에게 명한다.
“다프네 님을 별관 식당으로 모셔 오거라.”
“네. 저하.”
집사를 보내고 두 사람도 별관 식당으로 걸어간다.
걸어가면서 아벨에게 묻는다.
“그런데 도대체 그 날 어떻게 된 것이냐? 널 데려간 그 여자는 또 누구고?”
“식당에서 다프네 님이 계실 때, 그때 모든 걸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뭐 그럼 알겠다.”
세르지는 그런 아벨에게 전혀 불만을 보이지 않았다. 이따 말해주긴 한다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긴다.
현재 아벨은 에디린과 함께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래도 황제는 10회의 일원이었고 신들의 수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곧 마족 침공이 있을 것인데 괜한 경계심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일어나야 할 일.’
그 일이 일어나야 대륙의 모든 사람의 도움과 지지로 마멸단魔滅團을 창설할 수 있을 것이니.
‘그래…… 어차피 일어나야 할 일이야…….’
마멸단을 창설하기 위해 이 에브니아 대륙의 인간들, 즉 소설 세계의 인간들을 반드시 희생시켜야 하는 것이었다.
아벨도 이제는 이 에브니아 인간들이 단순한 소설 속의 캐릭터들이 아니라 진짜 사람처럼 느껴졌기에 마족 침공을 반드시 일으킬 생각을 가지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애써 냉정을 유지하려고 하며 세르지와 함께 식당에 도착한다.
식당엔 이미 모든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먹기만 하면 됐다. 그래서 아벨은 자리에 앉자마자 말한다.
“형님. 우선 모두를 물리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형님과 다프네 님 두 분께만 드릴 말씀이니 말입니다.”
그 말에 어떠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곧장 사용인들에게 명한다.
“물러가 있거라. 필요하면 부를 테니.”
“네. 저하.”
모든 사용인이 식당에서 빠져나갔다.
그때 타이밍 좋게 바로 다프네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다프네는 다이나 황후가 제국을 운영할 때보다 훨씬 자유로워져 있었는데, 다프네가 아벨과 굉장히 가깝다는 걸 세르지도 잘 알고 있기에 반영한 결과라 하겠다.
다프네의 밝은 미소를 보니 그 편안함을 바로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