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4화
104화. 이게 도대체 뭐야(2)
순간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나와 로디아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 뭐?”
“에이∼ 우리가 다 아는데. 그치? 케이.”
“맞아 맞아! 다 안다구!”
“뭐, 뭘 알아?!”
흐흐흐― 하고 아저씨 같은 웃음을 흘리면서.
“맨날 우리만 이런 얘기하고, 로디아는 한 번도 이런 이야기 안 했잖아? 좀 해줘 봐. 응?”
“맞아. 지산한테 고백받았지? 어서 해줘 봐.”
깜짝 놀라 발작하듯 소리친다.
“고오백?!”
“그래! 고백! 지산이 널 좋아하잖아!”
로디아는 “헤에에―!” 하며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손과 고개를 세차게 젓는다.
격한 부정에도 다른 두 여자는 결코 믿지도 않았고 이 주제를 포기할 생각도 없는 듯했다.
“난 지산이 본가로 떠나기 전에 분명 고백을 하고 갔을 거라 생각하는데!”
“맞아! 광장 무도회 마족 사건 직후 네가 다쳤을지도 모른다며 너를 당장에라도 찾아가 봐야겠다고 막 호들갑을 떨고 그랬었는데!”
로디아는 그때 자신을 찾아온 지산을 떠올렸다.
순간 얼굴이 못 볼 걸 본 것처럼 하얗게 사색이 되었다.
“찾아오긴 찾아왔었지만…….”
“꺄아아악! 역시!”
“진짜 갔었어?!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
하지만 정말 아무 일도 없었기에, 오두방정을 떠는 두 여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차분하게 잘 설명해야겠다고 다짐하는 로디아였다.
휴우―
일단 길게 한숨부터 쉰다.
우선 자신부터 이 당황스런 감정에서 빠져나와야 했기에.
“……일단 난 지산에게 전혀 관심 없다는 것부터 말해줄게.”
“아― 왜?!”
“그래! 도대체 왜 없어?!”
자기 일 아니라고 막말하는 두 여자이다.
조금 짜증이 났지만 꾹 참고 말을 이었다.
“지산은 내 스타일이 아니거든.”
“아…….”
“왜……? 지산 괜찮은데…….”
이번에도 자기 일 아니라고 맘껏 아쉬워한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그래. 맞아. 지산이 한 번 찾아오기는 했었어. 그런데 그냥 자기가 이제부턴 제대로 된 수련을 해야 할 거 같아서 당분간 못 볼 거 같다고만 말했어. 그게 다야. 그래서 지금 좀 많이 당황스러워.”
로디아의 딱 자르는 듯한 냉정한 말에 두 여자는 로디아의 마음도 모르면서 눈치 없는 말들을 했다.
“둘이 잘 어울렸는데…….”
“맞아…… 둘이 정말 잘 어울렸지…….”
그 어처구니없는 말들에 한 대 쥐어박을까도 생각했지만.
“그만해.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지산은 내 스타일 아냐. 더는 이야기하지 마.”
그러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늘은 이만 얘기하자. 머리 아프네.”
다른 두 여자는 좀처럼 아쉬움을 거두지 못한 채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 * *
눈을 떴을 때 몸에 어떠한 통증도 없어 놀랄 수밖에 없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그전 상황을 떠올렸다.
무언가가 용골검을 때렸고 그대로 혼절한 것 같았다.
‘……뭐였지……? 그리고 여긴 도대체…….’
사냥꾼이나 쓸 법한 통나무집이었고 그럼에도 깨끗한 침대에 누워있었다.
아무리 봐도 루드스는 아닌 거 같다.
“일어났니?”
홱―!
소리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에디린이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채 뭔가 음흉한,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에디린 님께서 절 구해주신 겁니까?”
아벨의 어벙한 얼굴에 빙긋― 미소 짓는다.
“그래. 그러니 평생 나에게 충성하도록.”
충성하라는 말은 가볍게 무시한다.
“그런데 여긴 어디……?”
“내 별장이야. 레어는 아니고. 그냥 나만 아는 공간.”
“아…….”
“그런데 설마 화신체를 보냈을 줄이야. 생각도 못 하고 있었네.”
“……?!”
화신체라는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의의 신의 화신체는 없다고 생각했었으니까 말이다.
“정의의 신 화신체 말입니까……?”
“그렇겠지? 다른 신이 제국의 일에 관여할 일은 없을 테니까?”
에디린의 말에 아벨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소설에선 왜……?’
소설에서 나오지 않은 이유에는 분명 작가의 거지 같은 이상한 계획이 있었을 거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그렇군요…… 그런데 화신체가 도대체 어떻게 알고……?”
아벨의 물음에 무언가 짜증 나는 게 떠올랐는지 얼굴을 사납게 구긴다.
“내가 비트칸과 함께 널 만나러 간 걸 그 빌어먹을 블루 드래곤 새끼가 일러바쳤나 봐. 로드에게 말야. 로드는 신의 대표적인 꼬봉이었으니. 화신체들이 모를 수가 있나.”
러네이와 함께 제국에서 유희를 즐기고 있었던 그 블루 드래곤을 말하는 거 같았다.
‘대기실에 비트칸과 함께 온 드래곤이군…….’
“그래서 레어에 가지도 못하고 말이야. 불편하게.”
“……그런데 여긴 정말 어딥니까?”
“여기? 여긴 카인이 태어난 곳이지.”
“……?”
그제야 주변을 제대로 둘러보았는데, 이 평범한 통나무집이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
“용사 카인이 태어난 곳이라…….”
“그래. 난 당시 카인의 엄마였던 지엘과 친구였었어.”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에디린 님께서 카인의 엄마 역할도 하셨다고…….”
“응. 지엘은 선천적으로 몸이 좀 약했었어. 그래서 카인과 쌍둥이 동생 에이블을 낳자마자 죽고 말았지. 안타깝게도.”
“아 동생…….”
“너도 알지? 카인 때문에 죽었다는 그 동생.”
“……그런데 왜 카인 때문에 죽었습니까?”
“카인이 에이블을 굉장히 질투했었거든. 에이블의 재능이 카인의 재능보다 훨씬 뛰어나서 말이야.”
조금 의외였다.
“용사보다 더 말씀이십니까?”
“솔직히 나는 카인이 용사라고 밝혀졌을 때 놀랐었어. 카인이 아닌 에이블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거든.”
“아―”
“아무튼 그 질투심 때문에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것이었지.”
“어떤?”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두 사람은 수련을 위해 사냥을 나갔었는데, 재수 없게 트윈 오우거 무리를 만난 거야. 당시 두 사람은 결코 트윈 오우거 무리를 이길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거든. 그때 에이블은 위험에 빠진 카인을 돕기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했었어. 하지만 카인은…….”
그때 기억이 떠올라 힘든 듯했다.
얼굴에 평소에는 절대 볼 수 없었던 슬픔이 가득했었다.
하긴 그녀에게 에이블도 카인처럼 자식이나 다름없었을 테니.
“힘드시면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고개를 젓는다.
“아니야. 힘들 것도 없어. 다 지나간 이야기일 뿐. 아무튼 그때 에이블이 카인을 위해 죽어갈 때 카인이 외면해 버린 거야. 물론 당시 에이블을 구한다는 게 매우 어려운 상황이긴 했었겠지만, 문제는 시도조차 안 한 것이지. 에이블만 죽으면 자신이 최고가 될 거라는 생각에 말야.”
또 그놈의 질투.
그 질투란 게 뭐길래 이렇게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생각하는 건지.
“……그렇군요.”
“그래. 그런 일이 있었어.”
대단히 씁쓸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못난 짓을 한 카인 때문이 아니라 죽은 에이블 때문에.
그러자 전부터 궁금했던 게 문득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벨은 지금 아니면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궁금증들을 결코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불현듯 가졌다.
그래서 떠오른 김에, 지금 상황에는 조금 뜬금없을 수도 있지만 다른 것들도 물어보기로 한다.
“그런데 정말 카인과 연인 사이였던 것입니까?”
“뭐?”
“카인과 연인 사이였다는 말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 아름다운 얼굴을 심각하게 찌푸리고는.
“그딴 개소리를 누가 지껄여?”
“꽤나 유명한 가설입니다. 대륙 모든 도서관에 그 이야기에 관한 책들이 있을 겁니다.”
정말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다.
“헐― 미친.”
“아니었군요.”
“절대 아니지! 난 그 녀석한테 엄마나 다름없었다고! 아니 인간들은 도대체 무슨 상상을 하는 거야?!”
아벨은 그럼에도 추격을 멈출 생각이 없다.
“드래곤이라서 괜찮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런데 왜 정기적으로 함께 외출한 것이었습니까? 그것 때문에 다들 오해한 것 같은데.”
“아오! 그건 그 녀석하고의 대련 때문이었지! 황궁에서 그 녀석을 개 패듯이 두드려 팰 순 없잖아!”
“아―!”
아벨도 에디린에게 개 맞듯이 두드려 맞으며 배운 것이었다.
순간 선배 카인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아무튼 아니야! 절대! 나에겐 그 녀석은 그냥 코흘리개 아기일 뿐이었어!”
자신에게, 인간 남자에게 갖는 관심으로 미루어보아 조금 의심은 되긴 하지만 뭐 본인이 그렇다는데.
“음― 그렇군요.”
“뭐야?! 그 표정?! 안 믿는 거 같은데?!”
“아닙니다. 믿습니다.”
“하아― 너 때문에 기분 완전 잡쳤어! 야! 나와! 대련이나 좀 하게!”
움찔―!
“어서! 오랜만에 일어났으니 몸이 찌뿌듯할 거 아냐!”
극구 사양했다.
그녀는 결코 적당히라는 걸 몰랐으니까 말이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정말입니다.”
“닥쳐! 어서 나오라고!”
그 엄격한 얼굴을 잠시 바라만 본다.
후우…….
결코 에디린의 마음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만 아벨은 결국 체념하고 만다.
며칠 같이 살며 깨달은 건 이 아름다운 드래곤은 한 번 정한 일은 절대 물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화풀이를 하고 싶은 거 같아 보여 아벨은 일단 좀 맞아줘야겠다고 생각한다.
* * *
적당히 수련하기 딱 좋은 봄이 찾아왔고.
시원한 계곡에서 수련하기 딱 좋은 여름도 찾아왔으며.
또 적당히 수련하기 딱 좋은 가을과.
또 시원한 눈밭에서 수련하기 딱 좋은 겨울이.
그 사계절이 눈 깜빡할 사이에 벌써 3번이나 돌고 있었다.
즉 카인이 태어난 곳에서 에디린과 함께 3년이나 지냈단 소리였다.
찰나와 같았던 3년 동안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벌어졌으니, 가장 큰 일은 세르지가 황태자에 정식 책봉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이어서 아이작 백작의 지휘 아래에 제국 내 아덴 박멸도 순조롭게 이루어졌었고.
확실히 순조롭게 차기 황제로 세르지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하베츠의 그림자와 아덴의 영향력이 이렇게 빨리 제국 내에서 사라질지 몰랐던 대귀족들은 앞다투어 세르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물론 세르지가 자신의 입지를 탄탄하게 다져놓을 동안 아벨도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었다.
무시무시한 에디린 밑에서 아벨이 된 이후로 가장 처절하고 혹독한 수련을 하고 있었다.
에디린이 가르쳐준 신뇌전마검新雷電魔劍은 벌써 10성에 이르렀고 흑풍흡검黑風吸劍은 12성 최절정에 이르렀다. 카인의 마나 연공법은 에디린이 동족들의 심장을 마구 주어 또한 12성에 도달해 있었고 말이다.
러네이도 뛰어난 검사이긴 했으나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에디린은 훨씬 더 뛰어난 검사였었다.
그런 그녀에게서 순간이동을 하면서 싸우는 드래곤 방식의 싸우는 법에 대해 배웠다. 오히려 그때 일이 호재가 되어, 가장 안전한 곳에서 최고의(?) 스승 밑에서 그토록 원했었던 검술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아무튼 덕분에 검술 역시 11성 중반에 이르렀으니, 좋은 스승과 천고의 검재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낸 덕분이라 하겠다.
이제 어느 정도는 1차 마족 침공에 준비를 마쳤다 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1차 마족 침공이 있을 그 날에 맞춰 계속해서 극한으로 자신을 몰아가며 손과 발에 피땀 나도록 수련을 하고 있었지만.
하아― 하아― 하아― 하아―
지금도 에디린과 함께 그 날을 대비하고 있었다.
“오― 이젠 한 방에 죽진 않겠네.”
에디린은 자신의 검을 막아낸 아벨을 순수하게 칭찬했다.
아벨은 거친 숨을 허공에 하얗게 내뿜으며 에디린의 칭찬에 즉각 화답한다.
안 그러면 더 센 공격이 올 것이라는 걸 잘 알던 것이기에.
“하아― 하아― 에디린 님 덕분입니다. 하아― 하아―”
“그렇지? 나 덕분이지?”
쎄에에에엑―!
기분이 좋은지 아까보다 조금 약하게 공격한다.
당연히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죽을 정도의 힘이었었다.
“딱 화신체의 힘 정도야. 이 정도는 막아낼 수 있어야 해.”
화신체들은 접신하면 드래곤 10마리 급의 힘을 냈었다. 에이션트 드래곤만큼은 아니지만 엄청난 강함이라 하겠다.
콰콰콰콰콰콰콰콰쾅―!
아벨은 용골검으로 그 힘을 가능한 한 최대한 흡수하며 남은 힘은 절대방패 파니츠로 흘려보낸다.
보통의 11성 중반의 검사라면 결코 막을 수 없을 것이었다.
용골검과 파니츠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크으윽―!”
“그럼 다시 한 번 더.”
그러면서 다시 검을 휘두른다.
아벨은 온몸에 쌓인 충격으로 후들거리고 있었지만 확실히 이젠 화신체들의 만남을 생각해 둬야 했기에 극한 상황에서도 수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닥치고 그냥 에디린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콰콰콰콰쾅―!
콰콰콰콰쾅―!
콰콰콰콰콰콰쾅―!
콰콰콰콰콰콰콰쾅―!
그 엄청난 공격들을 아벨은 계속해서 아주 간신히 막아낸다.
몸의 과부하 때문에 반격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지만 어차피 화신체가 접신할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짧았으니.
그 시간만 참아낸다면 분명 승기는 아벨에게로 넘어올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