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9화
99화. 뜻밖의 손님(2)
다사다난했던 정의의 날 기간이 완전히 끝이 났었다. 아벨과 친구들은 가문으로 돌아간 지산을 빼고는 모두 루드스로 복귀했었다.
아벨은 다행히 복귀 전에 미스라임의 도움으로 우승 상품으로 받은 레드 드래곤 하트를 완벽하게 복용할 수 있었는데, 두 번째 드래곤 하트 복용이라 그런지 이번엔 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복용을 마칠 수 있었다.
레드 드래곤 하트를 먹었기에 ‘지옥불꽃’은 확실히 전보다 몇 배는 강해져 있었다.
‘지옥불꽃도 전투 시에 활용할 수 있겠어.’
엄청난 마나 양이 소비된다는 게 걸림돌이긴 했으나 마지막에 결정타를 날릴 때 굉장히 도움이 될 듯했다. 한 번 붙으면 절대로 꺼지지 않는 불꽃이니 말이다. 본격적인 마검사로서의 첫걸음이 될 마법이라 하겠다.
‘그나저나 애들이 많이 없군.’
이번 마족 테러 때에 나보냐 광장에 루드스의 학생들도 많이 있었기에 그때 다친 애들이 굉장히 많았다고 했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잠시 휴교를 하자는 얘기도 나왔었지만 총장인 피에르트 요한센의 강행으로 정상 수업이 진행되었다.
‘그래야만 나를 공격할 타이밍이 생기겠지.’
그도 이제는 아이작 백작에게 나에 대해 어느 정도 들었을 것이었다.
‘드래곤들이 없어야 한다 했겠다.’
적들은 드래곤들이 없다는 확신이 들 때, 그때 공격을 할 것이라고 했었다. 그들은 비트칸이 아벨의 주위를 맴돌며 경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건 걱정 없어. 어차피 비트칸이 날 지키기 위해 머무르진 않을 테니까 말야. 그리고 머무른다 하더라도 고작 인간의 아티팩트 따위에 걸리지도 않을 것이고. ……그런데 그것보다 러네이를 떼 내려고 한다라.’
러네이의 가문인 코널리 남작가를 공격해, 러네이가 어쩔 수 없이 아벨과 떨어지도록 할 계획이라 했었다.
물론 러네이가 있으면 당연히 좋긴 하겠지만 그들의 방심을 위해서라도 원대로 해주는 게 좋을 듯했다.
‘러네이에게 걱정 말고 가문으로 돌아가라고 해야겠군.’
그때는 아벨도 전력을 다할 생각이었으니.
이번엔 처음부터 순간이동을 써서, 그렇게 해서라도 반드시 죽일 것이다.
그런 살기 가득한 생각을 하며 살짝 미간을 찌푸리니.
“무슨 생각 하세요?”
케이가 아벨의 변화를 알아채고는 물었다.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아니다. 아무것도.”
러네이가 재차 묻는다.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딱 뭔가 고민이 있구만. 말해봐요. 이 누나가 들어줄게요.”
그 집요한 눈빛을 보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분명 이해할만한 답이 나오지 않으면 계속 귀찮게 물을 것 같았다.
“별거 아니다. 그냥 적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나 때문에 다친 아이들에 대해서도 생각했고.”
“아하∼ 난 또 뭐라고. 뭘 그렇게 걱정해요. 앞으로는 제가 저하 옆에 딱 붙어서 저하를 보호해 드릴 건데. 영원히.”
그 말에 아벨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더욱 굳어져만 간다.
그때 로디아도 옆에서 말을 꺼냈는데, 로디아는 적들에 대해선 러네이가 말했으니 자신은 다친 아이들에 대한 생각을 덜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리고 애들이 다친 게 저하 때문인가요. 사악한 마족 때문이지.”
실로 오랜만에 보는 로디아였다. 그녀는 정의의 날 기간 내내 신전에서 일을 했을 뿐만 아니라 특별 교육 때문에 바빠서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 특별 교육에는 아벨이 진짜 정의의 신의 현신인지 알아볼 수 있는 교육도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저하께서는 정의의 신인 타티스의 현신이라고까지 불리시고 있는데, 누가 감히 저하 탓을 하겠어요? 저하께서 그 마족을 없애 주셨으니 감사해 하면 모를까.”
본의 아니게 저들이 해야 할 역할을 아벨이 하게 된 것뿐이었지만, 로디아는 진심으로 아벨이 마족을 물리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로디아를 이제는 감시자라 생각해야 해.’
로디아는 아마도 자신은 아벨을 위해 위에 보고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바로 감시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정의의 신의 현신이 맞는지만 알아보라고 했을 테니. 자신이 하는 보고가 감시라고는 생각 못 할 거야. 그나저나 로디아는 나를 정의의 신의 현신이라 믿는 것 같군.’
확실히 로디아가 아벨을 바라보는 눈빛이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뭔가 대단히 조심스럽고 떠받들어야 하는 대상을 보는 듯했다.
전에도 은연중에 그런 느낌이 있었지만 이제는 좀 더 확연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나저나 아직도 타티스에게서 신탁이 없는 건가? 타티스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 것이지?’
소설에서도 화신체 없이 아벨을 공격했던 유일한 신이었다. 물론 화신체만 없었을 뿐이었지 그 어떤 신보다도 악독하게 하베츠를 이용하여 아벨을 공격했었다.
‘하베츠가 죽는다면, 네놈이 어떻게 날 공격할지 두고 보겠다.’
하베츠가 죽는다면, 그땐 진짜 화신체를 선택할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에 다시 얼굴이 무서워지자 이번엔 사나가 걱정 말라는 투로 말한다.
“너무 걱정 말아요. 제가 옆에 있잖아요? 그리고 정 너무 위험하면 제가 아바마마께 도움을 요청하면 되고 말이에요.”
케이도 이에 질세라 말한다.
“저도요. 저도 옆에서 저하를 꼭 도와드릴 거예요. 만약 정말 위험하면 저도 아버님께 도움을 요청할 거구요.”
그 말을 듣고는 러네이가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들으셨죠? 진짜 우리 저하는 복 받으셨다니까. 어디서 이렇게 든든한 여자들을 만날 수 있겠어. 안 그래요?”
드륵―
딱 좋은 타이밍에 마고스가 들어왔었다.
교탁에 서더니.
“확실히 수가 많이 줄었군.”
그러면서 눈으로 그 수를 대충 세어본다.
다 세어보고는.
“그래도 우리는 정상적으로 수업을 시작한다. 모두 무구를 챙겨 밖으로 나와라. 어서.”
* * *
수업이 정상적으로 진행 된 만큼 아벨의 수련도 정상적으로 진행이 됐다.
엄청나게 그리웠던 혼자만의 수련이었기에 전보다 훨씬 더 집중하여 주어진 시간 내에 모든 힘을 다 쏟아부으려고 노력했다.
예전에 매번 했던 것처럼 검을 전방위로 1,000번씩 휘두르며 준비운동을 한다.
휙― 휙― 휙― 휙―
‘올바른 힘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휘두르면 소리마저 사라진다고 했었지.’
검을 빠르게, 정확하게 휘두를수록 공기 가르는 소리는 사라진다고 했었다.
마치 검을 휘두른 적 없다는 듯이.
마치 흐르는 공기에 동화되어 하나가 되었다는 듯이.
아벨은 그것을 의식하며 검을 휘두르는데, 그래서 그런지 어느 순간부터는 휙― 거리는 바람 가르는 소리마저 사라져 들리지 않는다.
뚝― 뚝―
이제는 떨어지는 땀방울 소리 말고는 그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대단하군.”
기다리던 목소리였다.
검을 멈추고 뒤돌아본다.
“오셨습…….”
정말 깜짝 놀랐었다.
비트칸 말고 또 다른 사람이 있었던 것이었다.
“……아르시아……?”
꼭 아르시아의 성인 때의 모습 같았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그 생각을 내뱉고 말았다.
그 멍청한 모습에 비트칸은 실소를 금치 못한다.
“훗― 왜 비슷하게 생긴 여자가 있다더냐?”
“비슷한 여아女兒가 있습니다만…….”
“그래? 어떻게 생각하느냐? 에디린.”
에디린?
용사 카인의 스승이자, 어머니이자, 연인이라던 그 골드 드래곤?
“……?!”
다시 한 번 작가의 나태함을 알 수 있었다.
‘역시였어…….’
전에 도서관에서 에디린에 관한 책을 보며 예상했듯이, 작가가 에디린을 복붙해서 아르시아를 만들었다는 게 분명해 보였다.
용사의 짝으로 말이다.
아르시아와 똑 닮은 에디린이 그 아름다운 입술을 살며시 열었는데, 목소리마저 비슷하게 들린다.
“설마요. 저 아이가 착각하는 거겠지요.”
“후후― 하긴 네 완벽한 미모를 따라갈 인간은 없을 테니.”
조금 얼떨떨해하며 확인 차 묻는다.
“에디린 님이시라면 설마……?”
“그래. 네가 생각하는 그 설마가 맞다. 바로 네 선조이자 용사 카인의 스승이었던 그 골드 드래곤.”
아벨이 역시라는, 이제 알겠다는 표정을 짓자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내가 다름 아닌 에디린을 데리고 온 이유는 네가 뇌전마검도 쓰기 때문이다. 사실 이 친구는 예전에 자신이 만든 뇌전마검은 카인 외에 그 누구도 쓸 수 없을 거라고 장담했었거든.”
“당신도 그랬었잖아요. 흑풍흡검은 아서 그 아이만 쓸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마력흡수 또한.”
“그랬었지. 하지만 이 아이는 해내더구나. 뇌전마검도 마찬가지고.”
정색하는 얼굴로 비트칸의 말을 반박한다.
“뇌전마검은 아닐 걸요? 쓰더라도 제대로 못 쓸 걸요?”
그 모습을 본 비트칸은 체념했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벨. 이 친구가 사실 자기애도 심하고 허풍도 좀 심한 성격이라…… 후…… 네가 이해해라.”
비트칸의 말에 발끈한다.
“내가 자기애도 심하고 허풍도 심하다고요?”
“넌 네 뇌전마검이 최강이라 생각하겠지만, 흑풍흡검이야말로 최강의 검술. 그런데 이 아이는 그 최강의 검술을 그 누구의 가르침 없이 해냈다는 말이지. 완벽하게 말야.”
어이가 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뀐다.
“허―! 당신이야말로 자뻑이 장난이 아닌데요?”
이번엔 비트칸이 발끈한다.
“뭐라? 자뻑?”
아벨은 갑자기 나타나, 갑자기 지들끼리 싸우는 두 드래곤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아르시아와 똑 닮은, 소설에서도 나타나지 않은 전설적인 드래곤이 또 나타나 조금 긴장했었는데, 덕분에 그 긴장이 풀린 것이었다.
“두 분 다 그만들 하시지요. 제가 봤을 땐 두 검술 다 쓸 때에 따라 모두 최강의 검술이니. 그래서 제가 두 검술 모두를 무리해서 한꺼번에 익힌 것이고 말입니다.”
아벨의 점잖은 말에 비트칸은 민망했는지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한다.
“아무튼! 에디린! 이 아이가 쓰는 뇌전마검을 직접 보고 판단하거라!”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거든요?”
그러면서 마력을 끌어올리던 에디린이었다.
구오오오―!
“네가 쓸 수 있는 최고의 뇌전마검을 써 보렴. 물론 제대로는 무리겠지만.”
에디린의 오른손에서 마치 검과 같은, 엄청나게 순도 높은 뇌기가 휩싸인 오러가 뿜어 나왔다.
파지지지지직―!
그 오러의 검을 들고 아벨을 향해 걸어온다.
마치 ‘너는 절대로 제대로 된 뇌전마검을 못 써.’ 라고 말하듯, 별거 없을 거라는, 기대가 크게 없다는 듯한 무미건조한 표정을 하고서.
아벨은 그전에 할 일이 있다는 듯이 비트칸을 바라본다.
“그 전에 비트칸 님께서 이곳에 마력장벽을 좀 둘러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감시 받고 있는 것도 있지만 전력을 다해 뇌전마검을 쓴다면 이곳이 무너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감시자들의 눈과 귀는 우리가 이미 가려놨었지만, 그래. 이곳이 무너지면 안 되니. 알았다.”
위잉―
순식간에 연무실이 그의 불투명한 마력장벽에 의해 감싸졌다.
그것을 본 후 아벨은 자신의 모든 힘을 끌어모은다.
10성 전력 모든 힘을 말이다.
구오오오오―!
그 끌어올린 마력을 용골검에 집중시킨다.
우웅―!
파지지지직―!
에디린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나 순도 높은 뇌기가 깃든 오러가 용골검에 둘리며 검은 검신이 새하얗게 물들어간다.
‘이번에 확실하게 관심을 끌자.’
이번에 확실히 눈도장을 찍을 생각이었다.
이 두 드래곤은 소설에서 아벨을 공격하던 드래곤들이 아니었으니, 앞으로 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참에 호감을 사, 훗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꼭 받는 게 좋았다.
“……?!”
10성이 넘는 마력이 아벨의 몸에서 분출되자 정말 깜짝 놀란 얼굴의 두 사람이었다.
7성이라 생각했었던 비트칸도 조금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이다.
“허허― 그땐 일부러 지금과 같은 힘을 쓰지 않은 것이더냐?”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인정한다.
“당시엔 제 적들이 너무 많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힘을 숨겨야 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12성이 되기 전까진 계속해서 숨길 것이니, 부디 오늘 일은 눈감아 주시지요.”
호쾌하게 웃으며 약속한다.
“하하―! 좋다! 알겠다! 에디린! 너도 알겠지?!”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요. 그런 거라면 지켜줘야죠.”
에디린은 다행히 전의 무미건조한 얼굴과는 다르게 이제는 정말 흥미롭다는 얼굴로 아벨의 새하얘진 용골검을 바라본다.
“그럼. 가겠습니다. 합!”
아벨은 에디린을 향해 뛰어오르며 뇌전마검을 쓰기 위해 뇌기가 깃든 용골검을 들어 올린다.
뇌전마검雷電魔劍
제3식
화전花電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비기를 썼다.
이것만으로도 자신이 얼마나 제대로 된 뇌전마검을 쓸 수 있는지 알게 될 것이었으니.
번쩍―!
뇌기가 깃든 용골검을 있는 힘껏 내리치니, 두 눈을 찡그리게 할 섬광과 함께 연무실에서 생성된 벼락들이 에디린을 향해 내리친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
그리고 내리친 자리에서 전류의 꽃들이 피어났고.
에디린은 그 전류의 꽃들 가운데서 정말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아벨을 노려본다.
“……어떻게……?”
그녀의 당황한 얼굴을 확인한 비트칸은 세상 떠나가라 웃기 시작한다.
“푸하하하하하―! 것 봐라! 내가 장담하지 않았더냐?! 저 녀석은 진짜라고! 하하하핫―!”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자신의 손에서 뻗어 나온 오러의 검을 횡으로 휘두른다.
파지지지지지직―!
그러자 아벨이 만들어낸 그 전류들이 에디린의 오러로 휘말려 들어갔다.
“……아이야. 계속해서 해보렴.”
순식간에 연무실 안에 있는 모든 전류가 사라졌다.
‘저럴 수가!’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용골검과 비슷한 능력이었다.
‘역시 골드 드래곤이라는 건가?!’
전격계 최강의 생물답게 과히 뇌신雷神처럼 보이는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