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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 소설 속 먼치킨-94화 (94/178)

제94화

94화. 쟁탈전(3)

지산의 절박한 눈을 바라보며 말한다.

“알겠다. 내가 도와주겠다. 대신 너도 날 위해 해야 할 게 하나 있다.”

혹시나 아벨이 번복할까 얼른 그건 걱정 말라는 듯이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말씀하시지요. 뭐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나와 맹세의 마법을 해야 하겠다.”

“……?!”

맹세의 마법을 말하자 조금 당황한듯했다.

잘못 맹세의 마법을 했다간 평생 족쇄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맹세의 마법 말입니까?”

“그래.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만 않기로 말이다. 네가 나의 적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 안 하지만, 그래도 미래는 모르는 법. 내가 최강의 무투사를 키워냈는데 그가 내 적이 되어선 안 되지 않는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좋습니다. 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맹세의 마법에 필요한 물품들을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낸다.

그리고는 곧장 손가락으로 검기를 만들어 검지를 벤 후 마법 양피지에 맹세의 글을 쓰기 시작한다.

지산도 검지를 물어뜯은 후 아벨의 양피지를 보고 따라 썼다.

두 양피지에 서로의 피로 쓰인 같은 맹세의 글이 적히자 예의 그 기분 나쁜 빛이 흘러나와 두 사람을 감싼다.

수아아아악―

모든 걸 끝마치자 아벨이 말한다.

“나는 네가 이 에브니아 대륙에서 최강의 무투사가 될 것이라 확신하다.”

아니라며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아닙니다. 저는 아직 한 참 멀었습니다.”

“후후― 겸손은. 아무튼 우선 내가 널 돕기에 앞서 너의 계획을 듣고 싶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비장한 얼굴로 입을 여는데.

“저의 계획은 솔직히 말해 별거 없습니다. 그저 모든 면에서 제 모범이 되는 저하의 옆에서 함께 피땀 흘려 수련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저하와의 대련을 충분히 하여 검사와의 경험도 늘리고 말입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별거 없어 보인다.

“…….”

그 너무나도 정직하고 단순한 계획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래서 저녁부터 먹기로 결정한다.

“……일단 저녁부터 먹고 앞으로의 계획을 함께 다시 세워 보자꾸나.”

지산은 아벨이 돕겠다고 해서 그런지 한결 편한 얼굴이다.

“네. 그렇게 하시지요. 안 그래도 배고팠는데 말입니다.”

* * *

다 함께 저녁을 먹고 지산만 따로 방으로 불렀다. 그리고는 황실 무고에서 외워온 반사르가家의 무투술을 적어주었다.

“아니! 저하께서 어찌 이걸?!”

지산은 역시 전설의 무투사 티라신을 알고 있었다.

“내가 기억력이 좋아서 말이지. 알고 있는 무투서는 근데 이거 하나밖에 없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래. 이 반사르가 무투술이 분명 너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아― 그리고 반사르가 무투술에는 각법에 관한 것도 있으니. 너의 친형에게도 도움이 되겠구나.”

지산의 가문인 푸뉴스가에도 각법에 관한 무투술이 있었었다.

하지만 반사르가의 각법도 굉장히 강한 무투술이었으니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내 생각엔 너의 푸뉴스가 무투술과 내가 준 반사르가 무투술을 완벽하게 익히는 게 우선인 거 같구나. 나와의 대련은 그 후에 하는 게 좋겠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무투술 같은 경우 나보다 네가 더 잘 알 테니, 반사르가 무투술은 네가 스스로 노력해서 익혀야 한다. 아니라면 이걸 가문으로 가져가 가문 사람들과 함께 익히든가.”

깜짝 놀라며 묻는다.

“그래도 되는 겁니까?!”

“그래. 이건 이제 너의 것이다. 네 맘대로 해도 된다.”

“그렇다면 가문의 어른들과 함께 완벽하게 익혀서 돌아오겠습니다!”

그러는 게 훨씬 좋았다.

괜한 시간 뺏길 필요도 없었고.

뿐만 아니라 아무래도 옆에서 같이 수련하는 건 대단히 성가신 일이었으니.

“내 생각도 그게 좋겠구나.”

그러면서 지산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지산이 넙죽 절을 하며 소리친다.

“에브니아 모든 신에게 맹세합니다! 저하께서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그게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언제든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언제든!”

아벨의 통 큰 결정에 크게 감동한 듯했다.

그를 일으켜 세워주며 말한다.

“그래. 나 역시 앞으로 너에게 많은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그러니 네 말대로 무투술을 완벽하게 익혀 준비해 두어라.”

“네! 저하! 저만 믿어 주시지요!”

“그럼 어서 돌아가 가문의 어르신들과 함께 익히고 다시 오거라. 그 후에 우리가 본격적으로 대련을 할 것이니.”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습니다!”

그렇게 지산은 아벨을 찾아온 지 몇 시간 안 지나 다시 돌아갔다.

‘지산까지는 완벽하군. 이제 로디아만 남았어.’

로디아가 아무리 앞으로 대신관이 되어 정의의 신의 눈이 될 운명이라지만, 지산처럼 해를 끼치지 않을 조건 정도의 제약만 걸어둔다면 분명 단 한 번이라도 힘이 될 순간이 있을 것이었다.

‘로디아까지 내 힘이 되어준다면, 카시드를 처리하기가 한층 수월하겠어.’

처음 아벨이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적들로 하베츠와 카시드를 떠올렸었다.

둘만 죽인다면 세상 적들의 반은 없앤 셈이라 할 수 있었다.

‘충분히 가능해. 작가가 아벨에게 고난을 주기 위해 일부러 불가능하게 한 것이지 솔직히 매우 쉬운 일이었어.’

아벨은 세상 사람들을 대표해 자신들을 공격하는 마족과 싸운 인물이었다.

왕들과 최고 대신관들만이 아벨을 적으로 생각했지, 그 아래 귀족들이나 백성들은 자신들을 보호하는 아벨을 의지하고 굉장히 따랐었다. 그러니 아벨을 공격할 군대를 조직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면 됐었다.

‘또 다른 변수가 생길 수도 있지만. 그거야 이 사기캐 먼치킨한테는 별것도 아니지.’

이번에 반 정도의 힘으로 가볍게 정의 무투회에서 우승했었다.

그리고 그 반 정도의 힘 때문에 제국을 넘어온 대륙에서 정의의 신 타티스의 화신이라 불리고 있지 않았던가.

훗날 완성형인 아벨이 되었을 때는 신도 두렵지 않을 것이었다.

‘과연 정의의 신이 이 광경들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자신들의 계획을 망칠 변수라며 짜증을 부리고 있을 수도 있었고, 아니면 오히려 재밌다고 흥미로워 할 수도 있었다.

물론 타티스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 상관없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용사의 무구들을 모아 너희 하위 신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줄 테니.’

그들의 역겨운 계획을 모두 망치는 때가, 그때가 바로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때가 될 것이다.

똑똑―

“저하. 사나 공주 저하 오셨습니다.”

올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사나는 오늘은 돌아가지 않고 여기서 자고 가겠다고 했었다. 그래서 잠들기 전 한 번은 찾아올 거라 생각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오라고 해라.”

드륵―

문이 열리고 사나가 들어왔다.

사나는 아벨의 건너편에 앉으며,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로 묻는다.

“도대체 어떡하실 생각이시죠?”

“무엇을 말이더냐?”

“그 아이 말이에요.”

“아르시아 영애를 말하는 건가?”

“네. 맞아요.”

“뭘 어떡하긴. 부탁대로 루드스로 복귀하기 전까지 검술을 가르쳐주는 거지.”

그 말에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하―! 그래요?! 좋아요! 그럼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분명 저하께서는 예전 제게 그 누구와도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하셨죠?! 그렇죠?!”

“그래. 그렇게 말했었지.”

“그런데 왜 계속 여지를 주냐구요! 다른 여자들한테!”

순간 감정이 복받쳤는지 눈시울이 붉어져 갔다.

그리고 많이 속상해 보였다.

“……그래. 그 아이에 관해선 내가 오해를 사게 했구나. 하지만 난 내가 한 말들을 지킬 것이고 그리고 그것에 대해 모든 이들에게 계속해서 분명하게 얘기할 것이다. 그러니 너무 걱정 말아라.”

“흥―! 항상 그런 식이지!”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지금의 상황이.”

“뭐가 어쩔 수 없어요! 저하가 애초에 상황을 그렇게 만들지 않으면 되잖아요!”

사나의 말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아벨도 정말 답답했다. 아르시아만큼은 이런 관계를 만들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몸과 마음이 말을 안 듣는 걸 어떡하란 말인가. 마치 작가가 조종하는 것만 같은데.

“……그럼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나와 확실하게 약혼해요! 결혼은 나중에 하더라도!”

“사나.”

“어차피 결혼을 한다면 나와 하겠다고 했잖아요! 한 말은 지키겠다면서요!”

도저히 피할 수 없을 것 같아 케이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한다.

“만약. 만약 내가 용사의 사명 도중에 죽으면 어떡할 것이냐? 그땐 남은 너는 어떡할 거냐 말이다. 나는 네 남은 삶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그 행복을 너에게서 빼앗고 싶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사나도 마치 짠 것마냥 케이와 똑같은 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나는 저하와의 단 한 순간의 행복만 있으면 된다구요! 그 단 한 순간의 행복만 있다면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구요! 알겠어요?!”

주르륵―

너무 분했는지 기어코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을 보자 숨이 턱하고 막혀온다.

‘……모든 여자가 다 그런 걸까…….’

이전 세계에 살았을 때 여자에 대해 전혀 몰랐었다.

그래서 지금 그녀들이 소설의 설정상 이렇게 아벨을 자기 목숨보다 사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모든 여자가 그런 것인지 헷갈렸다.

그리고 언젠가 떠날 자신이 정말 그녀를 사랑해도 되는가 하는 것도.

‘……내가 그래도 정말 괜찮은 걸까…….’

아벨이 아니면 그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겠다던 그녀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세상에 아벨이 없게 되더라도, 그렇게 되더라도 그녀는 정말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긴 했었다.

그러니.

“……정녕 괜찮겠느냐……?”

“……?”

사나는 아벨이 정말 받아들일 것 같자 조금 당황한 듯했다.

“괜찮겠냐고 물었다. 훗날 내가 사라질 수 있는데도 정말 괜찮겠냐고 말이다.”

덥썩―!

아벨의 손을 잡았다.

혹시라도 한 말을 번복하고 자리를 떠나 버릴까 봐.

절대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당연하죠! 제가 저하를 어떻게든 지키겠지만! 아무튼! 전 괜찮아요! 정말로!”

아벨은 두 눈을 찔끔 감는다.

“좋다. 약혼을 하자. 대신.”

“……?!”

구오오오오―

우선 아우라를 펼쳐 소리를 차단한다.

“약혼은 하베츠를 죽인 다음에 하자. 조만간 하베츠를 죽일 생각이니.”

“네?! 하베츠를 죽인다구요?!”

“그래. 하베츠는 분명 루드스에서 날 죽이려 할 것이다. 그때 난 하베츠를 죽일 것이고.”

“괜찮겠어요……?”

대단히 두려워하는 눈빛이다.

“걱정 말거라. 세워둔 계획이 있으니.”

그러면서 이제는 아벨이 사나의 그 하얗고 부드러운 손을 매만지며 안타깝다는 듯이 바라본다.

“사나. 너도 알다시피 내가 결혼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내가 내 부인과 훗날 함께하지 못할까 봐 그러는 것도 있지만, 날 원하는 여자들이 너무 많은 것도 있다. 만약 너와의 약혼을 다른 아이들, 케이나 러네이가 알게 된다면 그 아이들도 약혼을 하자고 할 수 있다.”

이미 예상하고 있다는 얼굴이다.

“네. 괜찮아요. 언니와 케이는 이미 가족이라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하.”

“……?”

“아르시아라는 아이는 정말 어떡하실 건가요? 아니 우리 셋 말고도 부인들을 더 얻을 생각인 건가요?”

그 눈빛이 우리 셋으로도 성에 안 차냐는 듯했다.

“……사나…….”

“네.”

“내가 너와 약혼은 하겠지만…… 솔직히 그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겠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 말에 ‘또 그러네.’ 하는 듯이 미간을 찌푸린다.

“모르겠구나……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하여 일어나 창문으로 걸어간다.

검은 어둠을 바라보는데, 아르시아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아르시아만큼은 내가 어쩌지 못하니…….’

사나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정말 자신이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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