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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 소설 속 먼치킨-93화 (93/178)

제93화

93화. 쟁탈전(2)

불가항력적이었다.

나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저하……? 괜찮으십니까……?”

주륵―

자신도 모르는 새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작가가 지금 이 상황을 조종하는 것만 같다.

손으로 재빨리 눈물을 닦았다.

“아…… 죄송합니다. 못난 모습을 보이는군요.”

정말 이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었다.

몸이 알아서 반응하고 있었다.

주르륵―

그런데 그때 아벨이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고 아르시아도 따라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니? 너는 또 왜 그러느냐?”

두 사람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자 크게 당황하는 율리안과 미카엘 백작이었다.

왜 갑자기 두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건지 그들로썬 전혀 알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물론 좋은 일인 것 같아 다행이긴 했지만.

아벨은 자신의 손으로 아르시아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많이 힘드셨겠군요…….”

“……?”

깜짝 놀라 토끼눈을 뜨는 아르시아를 바라본다.

“다름 아니라…… 왠지 제 어릴 적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서…….”

“아…….”

미카엘 백작이 그러지 않았던가?

너와 저하의 어릴 적 모습이 똑 닮았다고.

그리고 그분께선 이제 극복하셨기에 소개해 주고 싶은 거라고.

“어릴 적에 어떠셨는데요……?”

“……제 어릴 적은…….”

아르시아는 간절하다 못해 애절한 눈빛으로 아벨을 바라봤다.

정말 우리가 같은 사람이길, 운명의 실이 이어져 있길 바라는 그러한 눈빛.

그 애절한 눈빛을 보자 마음속 무언가 스위치가 켜진 것만 같았다.

꼭 그런 것만 같다.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작가 네놈이 개입하는 건가……?’

이번만큼 작가가 개입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적도 없었다.

‘……혼란스러워…….’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어 혼란스러웠다.

지금의 이 혼란스러운 상황이 마치 반드시 있어야 할 소설의 스토리라서 꼭 그렇게만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그때 아벨과 주원의 불우했던 기억들이 섞여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섞인 기억들이 역시나 불가항력적으로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매일매일을 불안에 떨며, 신을 저주했고, 왜 나만 이런 거냐고 불평불만을 했었습니다…… 우습게도 그땐 전혀 빛이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저 항상 어둠 속에 갇혀만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확실히 소설에서도 아벨은 아르시아를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의 불우한 삶에 관해 이야기했었다.

마치 제발 좀 공감해달라는 것처럼.

제발 좀 이런 나약한 자신을 이해해달라는 것처럼.

“……무언가 먹을 때도…… 물을 마실 때도…… 항상 독을 신경 썼어야 했습니다…… 제가 처음 익힌 마법이 바로 독을 탐지하는 마법이었습니다…… 훗…… 그럼에도 매번 저도 모르게 독에 중독이 돼버리더군요…… 주변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나긴 했었지만…….”

아르시아도 들었던 이야기였다.

자신과는 달리 아벨은 항상 죽음 속에서 살아갔었다고.

“……매순간 암살자들을 위협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에는 내가 죽어야만 이 세상이 편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모든 게 나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내가 태어났기에 이렇게 사람들이 화가 난 거구나…… 그래서 내가 없어야지만 모두가 행복해지겠구나 하면서…….”

주르륵―

참았던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래도…… 내 탄생을 축복이라 여긴 두 사람이 있었으니…….”

두 어머니가 떠올랐다.

두 분 다 아들 위해 자신의 삶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둘 다 자신의 삶보다 아들을 위해서만 살았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아들만큼은 손가락질 안 받게 하기 위해,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그녀는 아픈 몸을 이끌고 오전에는 공장에, 오후에는 남의 집 가정부로 일했었다.

수잔 황비는 아벨을 지키기 위해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황제뿐만 아니라 황후와 황비들에게 시간 날 때마다 찾아가 살려달라고 빌고 또 빌었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아들을 지키려고 했었다.

“……아르시아 영애도 미카엘 백작이 있어 이겨낸 거 아니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결국 펑펑 울고 마는 아르시아였다.

그런 아르시아를 아벨은 살며시 감싸주었다.

* * *

아르시아는 3시간 정도 펑펑 울었던 것 같았다.

아벨도 본의 아니게 눈물을 흘렸었지만, 덕분에 가슴 속 울분이 씻겨나간 것만 같은 기분도 들어서 현재는 개운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겨내셨어요?”

그녀의 신비로운 초록 눈동자를 바라본다.

이제는 좀 편한 마음으로 가볍게 말을 꺼낸다.

“처음엔 이겨낼 수 없을 거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이 살기 가득한 황궁에서 내 편이라곤 어마마마와 성녀 다프네 님 단 두 명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어마마마라도 지키기 위해, 그저 바보처럼 그들이 하라는 대로 다 하고 다녔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독을 먹고 사경을 헤맬 때 내가 죽는다고 정말 어마마마께서 안전하실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내가 죽어도 결코 어마마마께서는 안전하시지 않으시겠구나, 내가 살아서, 강해져서 지켜드리는 게 답이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율리안과 미카엘 백작이 감탄하며 말한다.

“아…… 그래서……?”

“네. 그래서 이후 마음부터 바꿔 먹기로 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태도와 언행이 달라졌고, 전과는 다른 상황들이 발생하게 됐었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을 믿으려고 노력했었습니다. 사실 저도 제 능력이 뛰어나다는 걸 진즉에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능력을 활용할 방법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던 것뿐이지.”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어마마마의 도움으로 황실 무고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고 또한 그들이 절 죽이기 위해 보낸 루드스에서 전 그 보이지 않았던 기회를 드디어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제 암울했던 삶을 반격하기 시작한 순간이.”

아르시아는 가만히 아벨의 말을 듣고만 있다.

“앞으로의 삶도 쉽지만 않겠으나, 이젠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리진 않을 것입니다. 제가 이끌면 이끌었지. 아르시아 영애.”

“네.”

“아르시아 영애의 그 그늘 속에 어떤 슬픔과 고통이 숨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반드시 이겨내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 그리도 도움을 원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시지요. 최선을 다해 도와드릴 테니.”

그때 갑자기 미카엘 백작이 끼어들었다.

“저하!”

그는 이번 만남을 통해 아벨에게 완전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딸아이를 절대 하베츠에게 줄 수 없었다.

하베츠가 황제가 된다면 현재 그의 약혼녀인 조카 아이뿐만 아니라 분명 아르시아까지 원할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아벨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벨에게 확신이 든 이상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그러지 말고 저하. 딸아이에게 혹시 검술을 가르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

뜬금없는 말에 율리안과 아르시아가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검술을 말씀이십니까?”

귀하게 키우느라 아르시아에게 검술을 가르치지 않았던 미카엘 백작이었다.

“네. 제가 가르치기에는 스승으로서 엄격하지 못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다른 이에게 맡기기엔 그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기도 하고 말입니다. 뇌전마검과 같은 전설의 검술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기본적인, 호신할 수만 있을 검술만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루드스로 돌아가기 전 단 며칠만이라도 말입니다.”

* * *

미카엘 백작은 자신의 목적을 다 이루고 갔었는데, 그의 원대로 아벨이 루드스에 복귀하기 전까지 아르시아에게 검술을 가르쳐주기로 한 것이었다.

물론 그것 때문에 미카엘 백작은 하베츠에게 불려가 호되게 질책을 받아야 했었지만 말이다.

왜 자신이 아니라 아벨에게 보냈었냐고.

미카엘 백작의 답은 하나였다.

“딸이 원했습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베츠에겐 보내지 않으려 했던 미카엘 백작이었다.

그가 훗날 정말 황제가 되더라도 말이다.

이것 때문에 소설에서는 하베츠가 다닐레비우스 가문을 멸문시켰었다.

아르시아를 아벨에게서 빼앗기 위해서.

그런 이유로 하베츠를 먼저 죽이려는 것도 있었다.

그 개새끼는 진정 에브니아 세계관의 진정한 절대악絕對惡인 녀석이었으니까.

아무튼 이번 일 덕분에 여러모로 아벨은 곤경에 처할 상황에 놓여 있었다.

지금도 아벨이 임시로 머무르고 있는 저택에서는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무도회에서 입을 드레스 때문에 아벨을 찾아온 사나는 아벨의 옆에서 자세를 교정 받고 있는 아르시아를 매우 언짢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아니! 여자에 관심 없다면서?! 근데 왜 자꾸 한 명씩 느는 거야?!’

자기도 혹여나 방해될까 봐 배우지 않는 것인데, 저 꼬맹이는 보란 듯이 아벨의 옆에서 세세하게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아벨은 뭐가 그렇게 좋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성심성의껏 가르치고 있었고.

거슬리고 야속하고 못마땅하다.

“흥!”

자신도 검술을 배우고 싶다고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후…….”

‘이놈의 성격이 참…….’

이 부끄럼 많은 성격이 원망스러울 뿐.

많이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완전히는 고쳐지지 않는다.

‘휴…… 이럴 때 언니라도 좀 있었으면 좋겠는데, 도대체 어딜 간 건지…….’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던 그때, 그래도 사나가 기뻐할 소식이 하나 날아왔다.

“저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아르시아의 자세를 잡아 주던 손을 멈추고는.

“손님?”

“네. 저하의 친구분이신 지산 경이 오셨습니다.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산이 왔다는 말에 그의 형이 로만에 의해 팔이 잘린 걸 기억해 냈다.

“알겠다. 지금 갈 테니. 먼저 가 알려라.”

“네. 저하.”

아르시아를 바라보며 말한다.

“제가 알려준 대로 100번씩 휘두르고 계시지요. 곧 돌아올 테니.”

아벨의 말에 해맑게 웃으며 대답한다.

“네! 스승님!”

아르시아는 그때 눈물을 보이고는 더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행히 거짓이 아닌 진심으로 웃고 있는 것 같았고.

‘문제는 저 어린 여자아이의 미소에 심장이 동한단 말이지.’

주원 자신의 심장이 설레는 건지 아벨의 심장이 설레는 건지, 저 미소를 볼 때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케이 때와는, 사나 때와는 그 느낌이 또 달랐다.

‘미쳐버리겠군.’

아벨은 그런 가벼운 자신을 자책하며 저택으로 들어갔다.

저택으로 들어간 아벨은 씻지 않고 곧장 응접실로 갔다.

드륵―

아벨도 아르시아 때문에 몹시 심란했었지만, 일부러 환히 웃으며 손님을 반긴다.

“지산. 잘 왔다.”

하지만 지산은 아벨의 웃는 얼굴에도 좀처럼 얼굴을 펴지 못했다.

대단히 굳은 얼굴로 말했다.

“저하. 우선 우승 축하드립니다.”

“그래. 고맙구나. 저녁은 먹었느냐?”

이따 저녁을 함께 먹으며 찾아온 이유를 들으려고 했었다.

“그것보다 먼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더없이 진중한 얼굴의 그를 보고는, 아벨도 이제는 진중한 얼굴로 바꾸었다.

“알겠다. 일단 앉자.”

쿵―!

앉으라고 했는데 아벨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

시녀들도 그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아벨은 시녀들을 바라보며 말한다.

“모두 나가주겠나? 둘만 있고 싶구나.”

“네. 저하.”

그 말에 모두 밖으로 나간다.

드륵―

모두 나가자 아벨은 우선 지산을 일으켜 세워주려고 했다.

“일어나라.”

하지만 지산은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무릎을 꿇은 채 말한다.

“제 부탁을 들어주신다면 일어나겠습니다.”

“부탁?”

“네. 저하께 부탁이 있습니다.”

“그래. 말해봐라. 넌 나의 친구이니.”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결연한 눈으로 아벨을 쳐다보며.

“저를 수련시켜 주십시오. 로만 드로즈도프. 그 개새끼를 꼭 제 손으로 복수하고 싶습니다.”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르는 법.”

그러나 결코 물러설 생각이 없는 듯했다.

“저하. 저하도 보셨잖습니까? 아무 죄 없는 제 형을 일부러 불구로 만드는 것을.”

“12 대귀족 중 가장 강한 가문의 차기 가주가 바로 로만이다. 네가 복수했을 때 그 여파가 굉장할 것이다.”

솔직히 복수가 불가능할지도 몰랐다.

소설에서도 지산과 로만은 거의 동급이었으니까 말이다.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가문의 모든 이들이 저와 같은 마음입니다. 모두가 가문 간의 전쟁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마음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또 다른 피해자가 더 생기기 전에 제가 끝내야 합니다. 저하. 제발 꼭 좀 도와주십시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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