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화
89화. 결승전(2)
수아아아아아―
흡수된 마력으로 한껏 충전된 이글거리는 용골검을 마치 장난꾸러기를 심판하듯 러네이를 향해 내리친다.
뇌전마검雷電魔劍
제2식
연속벽력連續霹靂
피식―
러네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물 흐르듯이 자신의 비기 중 가장 빨리 쓸 수 있는 용섬을 쓴다.
“······?!”
문제는 러네이의 태도였는데, 연속벽력을 내가 맞아줄 테니 너도 어디 한 번 용섬을 맞아봐라 라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이었다.
육참골단肉斬骨斷
내 살을 베어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
“이 미친!”
육성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아벨은 급히 연속벽력의 경로를 틀어 러네이가 아닌 자신의 앞으로 수정한다.
콰콰콰콰―!
급히 수정한 덕분에 엄청나게 약해진 연속벽력은 단 한 발의 용섬에 의해 사라져 버린다.
사라지는 두 사람의 비기를 바라보며 러네이가 말한다.
“세 개.”
그 말에 아벨은 얼굴을 일그러트린다.
투구 때문에 그 일그러진 얼굴을 보진 못하겠으나, 러네이는 안 봐도 뻔하다는 듯이 조소하며 말을 잇는다.
“벌써부터 끝나면 안 되지 않을까요? 안 그런가요?”
“······그래. 내가 너무 과한 욕심을 부렸군.”
“그럼요. 내가 누구 부인인데. 쉽게 지진 않죠.”
그 어처구니없는 말에 검을 휘둘러 대신 대답한다.
휘익―
“어머!”
약한 척하며 검을 휘둘러 막는다.
콰쾅―!
그리고는 그 힘을 이용해 한 바퀴 휙 돌며 사선으로 긋는다.
휘익―
아벨은 그 검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여 흘리려 한다.
끼이이이익―!
그런 후 몸통박치기를 하려 하는데.
콰콰쾅―!
확실히 러네이가 아벨보다 빨라서 그런지 몸통박치기를 앞차기로 막아 세우며 그 반동을 이용해 뒤로 뛰어올라 거리를 벌린다.
‘역시 빨라.’
그리고 역시 강했다.
지금의 러네이는.
* * *
비트칸은 아벨과 러네이의 수준 높은 시합을 보며 아주 흥미롭다는 듯이 말한다.
《생각보다 재밌는 시합을 하는군. 러네이안이 봐줘서 지루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다행히도 봐줄 생각이 없나 봅니다.》
《그래. 다행히도 말이지. 그런데 과연 겨우 비기 10번으로 승기를 잡을 수 있다는 건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솔직히 저도 무슨 계책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나도 감이 안 잡혀. 저 녀석을 오늘 처음 봤다 보니.》
《하지만 분명 무슨 생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매우 똑똑하긴 한 것 같으니 말입니다.》
《맞아. 무슨 생각이 있는 게 확실해.》
《뛰어나긴 정말 뛰어난 것 같습니다.》
《그래. 직접 만나보니 확실히 알겠어. 대단히 뛰어난 놈이야.》
그 고귀한 검은 머리 소년은 두 눈을 대단히 반짝이며 두 사람의 싸움을 바라본다.
《정말 이렇게 재밌을 거라곤 기대도 안 했었는데 말야.》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두 드래곤들의 대화처럼 다른 이들도 비슷한 생각을 가졌었다.
특히 최종 진출자들이었던, 러네이에게 패배했었던 루드스의 검사부 인원들은 자신들을 이기고 올라갔음에도 두 검사의 싸움에 순수하게 감탄하며, 응원도 하며 즐기고 있었다.
러네이와 제일 처음으로 경기를 했었던 앤디 피츠는 당연하겠지만 아벨을 응원했었는데, 아벨이 러네이를 상대로 생각보다 훨씬 분전하자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동시에 정말 대단하구나 하고 끊임없이 감탄하고 있었다.
‘괜히 에브니아 역사상 최고의 재능이라고 불리던 게 아니었구나! 뇌전마검과 흑풍흡검도 놀랍지만, 그것보다 저 러네이와 막상막하로 싸우며 저렇게 진지하게 만들 수 있다니!’
확실히 지금 러네이는 다른 진출자들을 상대할 때와는 그 느낌이 확연히 달랐었다.
그녀도 검을 휘두를 때 그 하나, 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집중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 느낌을 앤디만 받았던 게 아니었었다. 러네이의 두 번째 상대였던 크리스찬도 똑같이 받고 있었다.
‘확실히 저 대단한 러네이도 저하에게 부담을 느끼고 있어.’
나이 많은 여자 후배를 대단히 인정하고 있던 크리스찬이었다.
‘저하도 정말 대단해. 한 차원 위라던 로만과 리차드를 가볍게 물리치시더니 이번엔 저 최강의 러네이와도 대등하게 겨루고 계시잖아?’
번쩍!
콰콰콰콰콰콰―!
그때 뇌전마검과 백룡마검이 맞부딪혔는데, 그 퍼져나가는 충격파에 의한 공기의 일그러짐을 대기실에서도 볼 수 있었다. 두 검술의 대단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나 역시 드래곤의 검술을 아버님께 받은 이상 검술을 핑계 댈 수 없어.’
천성검법千星劍法이 두 사람의 검술에 결코 꿀리지 않는다고 믿었던 것이었다.
‘루드스로 돌아가면 수련 양을 배로 늘려야겠어.’
앞으로 저들을 이기려면 지금보다 더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함을 깨달았다.
‘저하도 수련에 미쳤다는 소문이 있으시던데. 수업 외에는 수련만 하신다고.’
반면 자신은 공적이든, 사적이든, 다른 여러 가지 일들 때문에 수련에 전념하지 못했었다.
‘······내가 최근 좀 나태했군.’
그 역시 엄청난 수련광이었지만 다시 한 번 자신을 채찍질하기로 한다.
그리고 또한 러네이의 세 번째 상대였던 클라우스는 입을 떡하니 벌리고는 두 사람의 시합을 지켜보고 있었다.
솔직히 러네이야 드래곤 하트를 다수 먹고 12성 은거기인에게 엄청난 검술을 배웠다 하여 어느 정도 납득을 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동정하던 아벨 황자가 이렇게까지 셀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한 것이었다.
로만은 로만의 방심을 이용하여, 리차드는 그의 허영심을 이용하여 아벨이 본연의 실력보다 어려운 상대들을 이긴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러네이와의 싸움을 보니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절실히 깨달을 수 있어 부끄러워 죽을 것만 같다.
‘하하······ 이거 참 비참하군······.’
정말 자신이 부끄럽고 비참하게 느껴졌다.
낯이 뜨거워 쥐구멍에라도 숨어들고 싶을 만큼.
‘······하지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버지를 죽인 그 마족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선, 이내 그러한 감정마저 사치라고 느껴졌다.
‘······그래······ 그런 게 내게 중요한 건 아니지······.’
이번에 자신의 오만함을 깨달았으니, 그것을 원동력으로 삼아 자신 또한 더욱 수련하여 강해지면 되는 것이었다.
‘넘어서야 해······ 그래야 복수할 수 있을 테니······.’
다시 한 번 자신의 삶의 목적을 떠올리는 클라우스였다.
이어 아벨과 붙었었던 진출자 쪽을 살펴보자면 이스마일은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두 사람의 팽팽한 시합을 지켜보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드래곤 아티팩트를 넘어 확실히 아벨이 강하긴 강했던 것이었다.
아티팩트로 인해 마력을 써도, 써도 줄지 않는 건 엄청난 이점이긴 했으나, 그것만으로는 9성인 로만과 8성 후반 리차드, 그리고 저 인간 같지 않은 여자를 상대로 결코 이렇게 분전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
‘제기랄······ 뭔가 농락당한 기분이군······.’
아벨은 자신에게만 뇌전마검을 쓰지 않았었다.
다른 상대에게는 모두 뇌전마검으로 승리했었는데 말이다.
‘제기랄······ 제기랄······.’
뭔가 너무 창피해서 죽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또한 두 번째 상대인 로만도 깨어난 상태였는데, 신관들을 모두 물리고 아벨과 러네이의 시합을 보고 있었다.
사실 로만은 지금도 아벨이 자신을 상대로 꾀를 부려 요행으로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그는 아벨의 꾀에 넘어간 것에 대해서만 엄청난 반성을 하고 있었다.
그 어떤 상대에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검사의 기본 소양을 어느 순간 잊고 살아왔다면서.
‘내가 그동안 너무 들떠있었어.’
순식간에 강해지는 자신의 나날들을 바라보며 우쭐해 했던 건 사실이었다.
‘검술은 엇비슷해.’
살면서 가문의 검술인 멸절검법滅絶劍法이 다른 검술에 비해 부족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고.
‘영약과 무구, 아티팩트에 관한 것들도 다음부턴 잊지 말아야겠군. 그리고 무엇보다 그 영악한 계책도 말이야.’
이번 정의 무투회에서 그러한 것들도 결국엔 실력으로 집결된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아벨 저하처럼 영악한 계책 따위 생각해낼 수는 없으니, 그러니 나 역시 이제는 진지하게 실력에 도움이 될 아티팩트들을 모아야겠어.’
검술 실력이야 9성인 자신이 당연히 월등하니 아티팩트만 더 보충한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아벨뿐만 아니라 저 괴물 같은 여자에게도 이길 수 있다고 믿는 로만이었다.
확실히 이러한 면만 보더라도 로만은 다른 이들과는 그 기본적인 생각이 굉장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아벨은 그를 오해하고 있었는데, 로만은 그야말로 강한 것에만 정의를 두는 사람이었다.
아벨이 어찌 됐든, 조금 더러운 수를 쓰긴 썼지만, 아무튼 자신을 이기고 올라갔기에 아벨이 강하다고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벨에게 딱히 악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오히려 아벨에게 호감을 느끼며 자기와 함께 할 자격이 있다고 인정하게 되었지.
제국 사람보다는 아덴 사람에 가깝게 느껴지던 로만이었다.
반면 마지막으로 아벨과 붙었었던, 강자를 숭상하던 아덴 출신이면서도 그 누구보다 아덴 출신 같지 않았던 리차드는 마태오 국왕의 명에 의해 왼팔이 잘렸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케르 대공은 왼팔이 잘려 울부짖는 리차드에게 친히 조언을 해준다.
“오른팔을 남겨주신 것에 국왕 전하께 감사함을 느껴라. 그리고 리차드. 네놈을 네 부모도 창피해하고 있다는 걸 아느냐? 그러니 이참에 네 왼팔과 함께 네 색욕도 버려버리거라. 그렇지 않으면 다음엔 네 목이 날아갈 것이니.”
“아아아아아아악―! 절대! 절대! 당신을 용서치 않겠어! 으아아아아아악―!”
용서치 않겠다고 절규를 내뱉는 리차드를 이제야 마음에 든다는 듯이 바라본다.
“좋다. 내 언제든지 기다려주지.”
그러면서 뒤돌아 리차드의 대기실을 나간다.
이케르 대공이 나가자 리차드를 잡고 있던 사검대원들도 떨어진 리차드의 왼팔을 들고 따라 나갔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리차드만이 그 자리에 남아 짐승처럼 울부짖고 있다.
* * *
이케르 대공은 마태오 국왕에게 임무 완수를 알린다.
“잘라왔습니다.”
뚝뚝― 피가 떨어지는 마치 지금도 살아있는 것만 같은 단단한 근육이 붙은 팔을 국왕에게 들어다 보였다.
반면 국왕은 자신이 잘라오라고 명했음에도 쳐다도 보지 않는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속해서 아래에서 펼쳐지는 아벨과 러네이의 시합을 관전한다.
그는 그 시합을 보면서 이내 리차드 따위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이번 대회에서 떨어진 자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아들 카시드를 떠올린다.
‘카시드. 이번 대회를 계기로 너는 깨달아야 한다. 너만이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는 것을.’
아들이 아덴에서 가장 빛나는 재능이었다 보니 최근 조금 자만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역시 아들들과 딸들의 루드스에서의 생활에 대해 모든 것들을 보고받고 있었으니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저 아벨 황자는 수업을 제외하고는 모든 시간을 수련에만 투자한다고 했었다.
반면 카시드는 술과 여자에 빠져 수련을 게을리하고 있다고 했었고.
자신이 직접 깨달아야 했기에 지금까지 딱히 뭐라고 하지 않았었다.
‘이번 정의 무투회에 출전해서 정말 다행이야.’
다행히 이번에 제대로 깨달았을 것이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그리고 노력하지 않으면 얼마나 쉽게 도태되는지.
‘넌 아벨 황자만큼이나 거대한 재능을 갖고 있다. 네가 노력만 하면 돼.’
노력만 한다면 분명 저기에 있는 자는 아벨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이었을 것이다.
물론 마태오 국왕의 생각을 황실의 사람들이나 미스라임 왕실의 사람들이 들었다면 결코 인정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에게 아무리 카시드가 노력한다 하더라도 저 자리는 아벨의 자리였을 거라고 말할 것이다.
번쩍!
콰콰콰쾅―!
저 내리치는 번개줄기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카시드 따위가 아벨보다 위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제국이 건국된 이래로 카인 이외에 그 누구도 익힐 수 없었던 검술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겨우 일국의 조금 재능 있다는 왕자 따위가 감히 제국 역사상 최고의 재능에게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니.
부들부들―
하베츠는 자신도 모르게 아벨이 제국 역사상 최고의 재능이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리자,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을 미친 듯이 증오하고 있었다.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확고하게 만들 일이 무투회장에서 벌어졌는데.
“······!”
벌떡―!
그 누구보다 하베츠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 이후 우후죽순으로 모두가 일어섰고.
뇌전마검雷電魔劍
제3식
화전花電
파지지지지지직―!
콰콰콰콰콰콰콰―!
아벨이 마치 뇌신雷神처럼 번개들을 내리쳐 바닥에 전류로 꽃을 피워낸 것이었다.
러네이는 생각도 못 한 공격에 즉각 반응해야 했는데, 최대한 내리치는 번개들을 쳐내며 몸을 지켜야 함을 깨닫는다.
하지만 아벨과의 약속대로 7성 검사 수준으로 연기를 해야 했기에, 그 하나하나의 번개들과 그로 인해 피어나는 꽃들을 다 쳐낼 수는 없어 몇 개를 맞고 말았다.
쾅―! 쾅―! 쾅―!
파지지지지직―!
물론 러네이에겐 전혀 타격이 없었지만.
아벨 역시 러네이가 타격을 입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그것을 막아내기 위해 검을 휘두르는 액션을, 오직 그것만을 원했을 뿐.
‘너도 인간처럼 보여야 할 것이니.’
러네이가 괜히 아벨의 요구를 따른 것이 아니었다. 그녀도 많은 유희를 통해 깨달았던 것이었다. 너무 티 나면 유희의 재미가 아주 반감된다는 것을.
쎄에에에엑―!
러네이가 연기하기 위해 정신없어할 때, 그때만큼은 9성 전력의 스피드로 검을 내리치는 척하며 러네이의 어깨를 붙잡는다.
“······?!”
번개들을 쳐내느라, 아벨이 순간 속도를 급작스럽게 올렸기에 어깨를 내주고 말았다.
아벨은 어깨를 잡자마자 처음부터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다는 것처럼 모든 힘을 오른 다리에 집중시켜 러네이의 왼 다리를 걷어차 넘어트린다.
쾅―!
콰당―!
그리고는 어느새 그녀의 목에 용골검이 닿아있다.
“러네이. 내가 이긴 것 같다만?”
잠시 아벨을 멀뚱히 올려다보다 벌떡 일어나더니.
“······?!”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아벨에게 안기던 러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