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화
84화. 드러나는 강함(3)
아벨도 그 장면을 대기실에서 보면서 일부러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해 벌인 쇼라고 생각했다.
러네이의 생각도 마찬가지였고.
“저 새끼 일부러 그런 거 같은데요? 저하 보라고?”
아벨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한다.
“그런 거 같군.”
“아오!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게! 꼭 약한 것들이 저렇게 깝을 쳐요!”
강함은 상대적인 거라 러네이에게 지금의 로만은 벌레만도 못 한 존재일 것이다.
‘로만. 내가 힘을 쓰게 하는군.’
로만이 어떤 자인지 활자로만 봤기에 정확히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었는데, 실제 두 눈으로 보니 이젠 제대로 알 수 있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네 말이 맞다. 별것도 아닌 게 꼭 깝을 치는군.”
“그쵸?! 저하! 그냥 이참에 저하도 9성 힘 써요! 혹여나 이후 그것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그땐 제가 저하 옆에 딱 붙어서 철통같이 저하를 보호해드리면 되잖아요!”
그러면서 제발 좀 그렇게 하라고 간절하게 바라본다.
러네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 발칙한 의도를 잘 알기에 무시하며 말한다.
“훗― 생각해 보지. 아무튼 우선 다녀오겠다.”
그리고는 이스마일의 시합을 위해 바로 대기실을 나간다.
나가자마자 아벨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안내인이 아벨을 시합이 펼쳐질 무투회장으로 안내한다.
“따라오시지요.”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간다.
따라가면서 적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래. 네놈들 뜻대로 당장은 따라주지.’
그들이 루드스에서 윌리엄을 통해 전해온 내용은 이랬었다.
만약 1회전에서 탈락하면 루드스에서처럼 네놈의 지인들은 앞으로 결코 쉽게 살 순 없을 거라고.
그러니 죽기 살기로 싸워 보라면서.
‘두고 보자.’
훗날 내 발아래 날 협박한 네놈들이 있을 때, 그때 또 뭐라고 지껄일 것인지 반드시 똑똑히 지켜보겠다.
“저하. 지금 나가시면 됩니다.”
그때 안내인과 외부로 나가는 통로에 도착했었고, 그는 곧장 나가야 한다고 알렸다. 그래서 곧장 외부로 걸어나간다.
밖으로 나가자 강렬한 태양 빛이 두 눈으로 강하게 내리쬐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리고 고막을 찢을 것만 같은, 골을 울리는 것만 같은 관중들의 함성과 응원 소리는 심장 박동을 더욱 빠르게 한다.
와와와와와와와―!
“아벨 황자 저하시다!”
“위대한 황금 독수리의 후예!”
“제국이여 영원하라!”
“제국이야말로 에브니아의 최강이지!”
생각보다 호의적인 응원도 많았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었지만.
“제국의 수치! 저게 뭐야?! 아까 그 여자랑 똑같은 무구잖아?!”
“세상에나! 커플 무구라는 건가?!”
“정의 무투회가 장난인가?!”
“이 바람둥이! 제국의 영광에 먹칠하지 말고 자기 발로 나가!”
“검술에 집중해! 여자에 집중하지 말고!”
“색욕에 빠진 자!”
“바람의 황자!”
“이 카사노바보다 더 심한 놈아!”
등등.
상반된 반응에 비트칸은 대단히 흥미로워하며 제튼에게 묻는다.
《역시 전에 말 한 그 재능 때문에 질투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 재능이 너무나 특별하기 때문에, 그리고 외모 역시 드래곤과 비길 듯이 아름답기에 여자들도 많이 따르고 있어 질투하는 듯합니다.》
《그래?》
《네. 그런데 웃긴 점이 본인은 정작 여자에 별 관심이 없답니다.》
《러네이안은?》
《제가 듣기로는 러네이안도 일방적으로 쫓아다니는 거라 했습니다.》
그 말에 경악하며 진짜냐는 듯이 제튼을 바라봤다.
이내 제튼의 얼굴에서 거짓을 찾지 못하고는 혀를 찼다.
《쯧쯧― 드래곤 망신 다 시키는구만.》
제튼도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한다.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튼 정말 대단하긴 대단한가 보군.》
그러면서 말하길.
《그리고 확실히 용혈갑과 용골검이 어울리는 몸이야.》
아벨의 육체만큼은 멀리서 겉만 봐도 완벽해 보인 것이었다.
《저게 16살의 몸이라.》
《제가 봐도 인간들 중에선 완벽해 보입니다.》
비트칸은 일단은 자신의 역작인 용골검과 용혈갑이 꽤나 어울려 보여 만족하는 눈치였다.
《재밌겠어. 흑풍흡검마저 진짜 쓴다면 말야.》
《저도 정말 궁금합니다. 저 역시 소문의 아벨 황자가 싸우는 걸 처음 봐서 말입니다.》
《과연 그럼 어떻게 승리할지 지켜봐야겠어.》
용혈갑과 용골검, 그리고 흑풍흡검까지 쓸 수 있다면 이번 시합은 무조건 이긴다고 봐야 했다.
그때 아벨과 이스마일이 무투회장 중앙에 섰다.
이스마일도 그렇게 멍청한 놈은 아니었으니, 자신이 아벨의 힘을 빼기 위한 도구로 이용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역시 제국의 새끼들은 그 누구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 분노를 아벨에게 집중하고 있다.
“감히 아덴의 왕자를 이딴 식으로 취급하다니.”
이스마일이 아벨에게 자신이 제국에게 당한 수모에 대한 분노를 모두 집중하던 반면 그때 아벨은 솔직히 그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아벨은 그냥 다음에 만날 로만을 위해서라도 몸을 풀 좋은 기회라고, 그리고 가능하면 로만이 최대한 방심하게 하기 위해 이스마일에 맞춰 적당히 약한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스마일의 분노에 적당히 대답한다.
“닥치고 덤비기나 해라. 어차피 이 무투회는 단 한 명의 승자만을 가려내는 곳이니.”
별생각 없는 아벨과는 달리 이스마일은 아벨의 그 말에 더욱 분노가 불타올라 이성의 끈이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어린 것이 건방지게!”
우웅―!
곧바로 검에 오러를 둘렀고 아벨도 따라 검에 오러를 두른다.
우웅―!
파지지지직―!
확실히 이스마일에 비해 아벨의 오러는 눈에 띄었고 특별했다.
비트칸도 그 오러를 보고는 깜짝 놀라 제튼에게 묻는다.
《아니. 흑풍흡검을 쓴다면서? 저 뇌기는 뭔가?》
《제가 알아본바 흑풍흡검에 뇌기를 섞으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흑풍흡검에 뇌기를 섞는다고?》
《네. 새로운 검술을 창안하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허허― 과연 그게 가능할 것인지.》
흑풍흡검은 자신과 당대 최강의 검사 아서가 용골검을 두고 아주 오랜 시간을 두고 고안한 검술이지 않았던가?
비트칸은 용골검에 최적화시킨 이미 완성형인 검술을 더욱 발전시키겠다고 하는 저 16살 인간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물론 제튼도 마찬가지였다.
《저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가능할 리가 없지. 이미 완성형인 검술에 무언가를, 그것도 또 다른 특성을 추가시킨다니. 말도 안 돼.》
다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벨도 ‘천고의 검재’라는 능력을 창조자에게 받지 않았더라면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일단 지켜보자. 어떻게 쓰나 봐야겠다.》
그때 때마침 이스마일은 모든 준비가 끝나 아벨을 향해 튀어나가고 있었다.
그도 아벨처럼 이후 로만을 만날 걸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를 위해서라도 길게 끌 거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곧바로 사자신검의 비기를 쓴다.
사자신검死者神劍
제3식
진혼곡鎭魂曲
카시드가 썼었던 3식을 곧바로 썼다.
역시 8성이라 그런지 훨씬 더 완숙해 보였고 그 괴기한 노랫소리도 한층 더 괴기하게 울려 퍼진다.
진혼곡의 진행을 멈추기 위해 아벨도 흑풍흡검을 펼친다.
흑풍흡검黑風吸劍
제2식
몰아치는 선풍旋風
파지지지직―!
다발의 뇌기를 머금은 회오리바람이 진혼곡의 노랫소리를 가로막았다.
“……?!”
비트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데, 확실히 아서의 몰아치는 선풍과 닮았으면서도 뇌기가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대단하군…….”
순간 육성으로 감탄사를 내뱉는다.
“맞습니다…… 저도 실제로 본 건 처음인데 정말 아서와 같군요…….”
확실히 두 드래곤도 아벨의 흑풍흡검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당시 12성 검사였던 아서만큼은 아니겠으나 그렇다고 크게 손색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훗날 아서만큼이나 성장한다면 저 뇌기 때문이라도 더 강력할 듯했다.
콰콰콰콰콰콰―!
진혼곡이 몰아치는 선풍에 빠져나가지 못했다. 사방을 둘러 이스마일의 길목을 차단하고 있던 것이었다.
7성 마력이지만 그 전설의 검술은 강력해도 너무 강력했다.
“……대단해…….”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관중들도.
드래곤들도.
이스마일도.
“제기랄!”
다발의 회오리바람에 진혼곡이 끝마쳐지자, 아벨은 이번엔 조금 약하게 보이기 위해 일부러 가볍게 검을 내리친다.
휘익―
쾅―!
이스마일은 그 가볍게 내리친 검을 받아넘기며 반격을 가했다.
쎄에엑―!
아벨은 계속해서 약한 척을 하기 위해 그 반격을 어렵게 막아낸다.
휙―
콰콰쾅―!
그 모습을 본 이스마일은 사자신검과 흑풍흡검의 수준 차를 인정하고, 검술보다는 효과를 보이는 단순한 휘두르기로 전략을 즉각 수정한다.
쾅―! 쾅―! 쾅―! 쾅―! 쾅―! 쾅―!
이후 엄청난 속도로 서로가 검을 주고받는다.
‘이 정도로 유지하자.’
지루한 공방이 꽤나 길어졌는데, 아무리 아벨이 약하게 보이기 위해 조금 연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렇다고 큰 차이를 주지도 않았기에 결정타가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아벨은 7성 중후반의 강함을 유지하며 8성 초반의 이스마일을 상대했다.
끼이이익―!
이스마일이 아벨의 검을 흘리며 손목을 노리고 올려치지만 아벨은 그 노림수를 깨닫고는 이스마일의 검이 자신의 검에서 떨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아벨은 마치 자석에 붙은 것처럼 이스마일의 검에 검을 붙여 쫓았다.
그리고는 이스마일의 무릎을 향해 하단 차기를 했다.
퍽―!
이스마일은 어렵지 않게 다리를 들어 막아낸다.
아벨은 막아내는 이스마일의 다리를 발로 밀며 거리를 벌린다.
‘확실히 몸이 좀 풀리는군.’
거리를 벌리자마자, 땅을 박차 이스마일을 향해 쇄도하는데.
흑풍흡검黑風吸劍
제2식
몰아치는 선풍旋風
다시 몰아치는 선풍으로 이스마일의 경로를 차단하고.
파지지지직―!
아까와는 달리 검에 8성에 가까운 마력을 가득 담은 오러로 내리친다.
콰콰쾅―!
“크윽!”
초반엔 이스마일의 마력이 우위에 있어 보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그네스의 목걸이 핑계를 대면 돼.’
계속해서 자동으로 마력을 채워주던 성녀의 성물 아그네스의 목걸이가 아벨에게 있었으니, 훗날 논란은 이것으로 해결하면 될 듯했다.
그래서 마치 마력이 무한대인 것처럼 처음 그 마력을 유지하며 내리쳐 찍어 누른다.
갈수록 아벨의 분명한 오러와 흐려지는 이스마일의 오러의 차이를 볼 수 있었다.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콰쾅―!
휘릭―
결국 이스마일은 아벨의 끊임없이 내리치는 검을 막지 못하고 검을 놓치고 만다.
휙―!
그리고는 어느새 아벨의 검이 자신의 목에 닿아있는 걸 느낀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어떻게 너는 마력이 줄지 않냐고 묻는듯했다.
“제국의 황자와 아덴의 왕자 차이지. 네놈보다 난 드래곤 아티팩트들이 많거든.”
그 말을 듣자 벙찐 듯 멍하니 아벨을 바라보다, 이내 허탈한 듯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한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그 서글픈 웃음소리가 한참을 그렇게 울려 퍼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뚝 그치더니.
“그럼 그렇지. 어쩐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터벅터벅 밖으로 나갔다.
관중들은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쉽게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확실히 상황이 좀 이상했다.
진 쪽이 어떠한 타격을 입은 것 같지도 않았었고 이스마일의 허탈해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아벨에게 구린 뭔가가 있는 것도 같았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드래곤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나눈다.
《저 아이의 말도 맞는 거 같은데.》
《맞습니다. 확실히 그에게서 드래곤 아티팩트가 느껴집니다. 또한 다른 성질의 무언가도 느껴지고 말입니다. 사실 그 다른 성질의 것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그네스의 목걸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아마도 신의 성물이겠지. 현재 대단히 성스러운 기운이 저 아이를 보호하고 있으니.》
에이션트 드래곤이라 웜급 드래곤과는 확실히 달랐다.
정확히 아벨을 보호하던 정체를 깨달은 것이었다.
아벨도 이제는 무투회장을 벗어나고 보이지 않았는데, 소란스런 군중들의 소리만이 남아있었다.
“뭐지? 저하의 마력은 무한대인가?”
“그니까. 아덴의 왕자는 점점 오러가 흐려지는 게 보였었는데 저하는 계속해서 그 오러의 밝기가 분명했잖아?”
“그런데 또 처음엔 아덴의 왕자가 좀 더 세 보였단 말이지?”
“야야 당연히 아티팩트 때문이겠지. 제국의 황자가 그래도 아덴의 왕자보단 좋은 거 쓸 거 아냐?”
그 냉소적인 말에 모두가 이제 이해가 된다는 듯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수긍한다.
“아― 맞네. 진짜 그렇겠다. 맞아. 아티팩트 때문이겠어.”
“그렇네. 아티팩트 때문이겠네. 이제 이해가 되네.”
“그래. 맞아. 이제 이해가 된다.”
“아무튼 얍삽이 쓴 거지. 쯧쯧―”
결국 그런 식으로 아벨의 승리를 폄하하고 더럽히는 일부 관중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