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2화
82화. 드러나는 강함(1)
정말 깜짝 놀라 허리를 굽힌 아벨을 붙잡는 두 사람이었다.
“저, 저하! 어찌!”
“저하! 왜 저딴 놈에게!”
두 사람의 만류에도 꿋꿋하게 허리를 굽힌 채 할 말을 한다.
“러네이의 막돼먹은 행동은 그저 나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철부지 같은 행동이었으니, 자네가 부디 너그럽게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앤디는 아벨의 굽힌 허리를 붙잡고는 간곡하게 사정한다.
“알겠습니다! 알겠으니 어서 몸을 좀 세우시지요!”
그래서 몸을 세웠는데.
러네이는 너무 당황해서 어쩔 바를 몰라 했다.
앤디 역시 아벨의 허리를 세우긴 했었지만 마찬가지로 어쩔 바를 몰라 했었고.
두 사람은 진심으로 아벨이 이렇게 행동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던 것이었다.
아벨은 당황하는 두 사람을 바라본다.
“앤디. 사실 이 아이는 7성이 아니다. 드래곤 하트를 다수 복용했을 뿐만 아니라 12성 은거기인을 만난 덕에 우리보다 훨씬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네가 지금 이 아이에게 졌다고 하여 결코 흠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이번 무투회의 우승자는 다름 아닌 이 아이가 될 것이니 말이다.”
“아…….”
“나는 루드스 2학년의 대표인 너를 아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정의로운 기사의 표본으로 말이다. 만약 오늘 일 때문에 너를 조롱하는 자가 있다면 내가 내 이름을 걸고 결코 가만 안 둘 것이니. 너 역시 오늘 일을 이겨내고 계기 삼아, 더욱 검술에만 정진했으면 하는구나. 너는 분명 미래의 12성 최절정의 검사가 될 것이니 말이다.”
위로하는 아벨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는데.
주륵―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만다.
사실 그는 자기가 보호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던 여자한테 복날에 개 맞듯 처맞아 정신적으로 상상도 못 할 충격을 받았었던 것이었다.
솔직히 다시 재기 못 할 뻔도 했었다.
하지만 아벨의 위로를 듣자 복잡하고도 아팠었던, 무너졌었던 마음이 점점 치유되는 걸 느낀다.
“감사합니다…… 저하……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하다면 보란 듯이 오늘의 일을 이겨내거라. 너와 나는 앞으로 이 에브니아 대륙에서 주신 아그네스와 모든 신을 위해, 우리 인간들을 위해 힘써야 할 인간들의 대표가 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너도 알지 않나? 너의 축복받은 그 재능을.”
“아닙니다…… 어찌 저따위가…….”
그의 과한 겸손에 농담을 한다.
“훗― 그런 말 어디 가서 하면 욕먹는다. 앤디.”
아벨의 농담에 이제 여유를 찾은 그도 살짝 미소를 짓는다.
“네…… 저하…….”
그 미소를 본 아벨은 ‘다행히 하나 해결했구나.’ 하면서, 러네이를 향해 엄격한 얼굴로 말한다.
“러네이. 너도 어서 사과해라. 그게 나를 위한 일이라는 걸 잊지 말고.”
휴우― 땅이 꺼지라 한숨을 쉬더니.
“아까는 미안. 네가 나를 무시한다 생각해버려서. 나도 모르게 힘을 더 써버렸네.”
“러네이.”
아벨이 분노를 담아 지긋이 노려보자.
“그래. 그래. 다 내 잘못이야. 그리고 너의 명예를 내가 망가트려 버렸어. 나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말야. 그러면 저하께서 날 더 좋아하실 줄 알고. 미안해. 정말로. 그리고 난 참고로 25살이야. 너보다 몇 년 더 수련할 기회가 있었으니, 너도 25살 되면 나처럼 될 수 있을 거야.”
그래도 노력한 것 같아서 이만 넘어가기로 한다.
앤디도 그 말에 어느 정도 위로를 받은 것 같기도 했었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아벨은 앤디를 마치 가까운 친우親友 바라보듯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더 깊은 이야기는 루드스에서 하자. 앤디.”
앤디도 아벨을, 벌써부터 그의 충복忠僕이 된 듯한 충절忠節이 절절 흐르는 눈빛으로 바라봤었고.
“네. 저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럼 어서 치료를 마저 하거라. 우린 가자 러네이.”
그 말을 끝으로 돌아가던 아벨과 러네이였다.
* * *
아벨과 러네이가 앤디에게 사과를 한 후 돌아가던 그때가 바로 크리스찬과 카시드의 시합이 한창이던 때였다.
소설에서처럼 이번에도 카시드는 크리스찬에게 질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크리스찬은 아버지가 구해준 드래곤의 검술인 천성검법千星劍法을 쓰고 있었는데, 이것만 봐도 아버지 아이작 요한센이 가문의 이단자에 가까운 아들을 내쳤다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 귀한 검술은 결코 어디서든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늘의 별들을 떨어트려 공격하는 검술은 명백히 카시드의 죽은 자들의 검술을 짓누르고 있었다.
콰쾅―! 콰쾅―! 콰쾅―!
사실 지금의 결과는 검술의 수준 차이라기보다는, 어릴 때 수련 1, 2년 차이에서 나오는 실력 때문이라고 하겠다. 그 시절에는 겨우 1, 2년이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냈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카시드가 훗날 검왕으로 아벨을 제외한 모든 검사의 위에 서 있었지만, 크리스찬 역시 7인의 성검사들 중에 리더를 맡을 만큼 카시드와 그 재능 면에서 크게 차이가 안 났었기에 지금으로선 그 결과가 바뀔 것 같지 않았다.
카시드의 사자신검이 크리스찬을 삼키기 위해 아가리를 벌려 들지만 크리스찬은 그 아가리에 하늘의 별과 같은 오러를 먹여 닥치게 만든다.
콰콰콰쾅―!
“크으윽! 제기랄!”
쉬익―! 쉬익―! 쉬익―!
크리스찬의 공격을 가까스로 막아내며 넘어간 승기勝氣를 빼앗아 오기 위해, 카시드는 필사적으로 검격을 날려보지만 크리스찬은 어느 정도 여유를 보이며 피하거나 막아낸다.
콰쾅―! 콰쾅―! 쾅쾅―!
그런데 겉으로 보이는 것과 속의 생각은 또 달랐었다.
‘아벨 저하도 그렇고 이 건방진 왕자도 그렇고. 안 되겠어. 수련 시간을 더욱 늘려야겠어.’
사실 크리스찬은 크리스찬대로 놀라고 있었다.
아덴의 철부지 없어 보이던 건방진 왕자님이 나이에 비해 너무 강했던 것이었다.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이 생각보다 강력해도 너무 강력했다.
‘그런데 저하께선 괜찮으실는지…….’
그가 봐도 결과가 정해진 싸움 같았다. 아무리 아벨이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이제 겨우 16살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30살 9성 검사와 맞붙게 만들다니.
우승자들이 출전하는 것도 역겨운데 대진표를 보고는 이 대회 자체를 무효라고 주장하고 싶었다.
‘이 역겨운 새끼들.’
그때 중앙 대기실에서의 아벨의 체념 섞인 말과 무덤덤한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도 1회전이 이스마일 선배라 다행이군. 선배도 8성이니. 저하께서 선배에게 패하면 되겠어.’
확실히 그는 오해하고 있었다.
아벨이 카시드와 같은 7성 초반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카시드가 지쳤군. 그럼 이제 슬슬 끝내볼까?’
쾅―!
크리스찬은 지친 카시드의 검을 막는 동시에 흘린다.
끼이이이익―!
그 소름 끼치는 굉음과 함께, 발을 들어 올려 카시드의 무릎을 찍어 눌렀다.
빡―!
“컥!”
이후 자세가 무너진 카시드를 향해 검을 휘두른다.
쎄에에엑―!
“제기랄!”
카시드는 그 검을 흐트러진 자세에서도 간신이 막아낸다.
콰콰쾅―!
하지만 크리스찬의 힘을 못 이겨, 엎드려지는 듯한 자세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런 카시드의 복부를 발로 뻥 찬다.
퍼억―!
“크악!”
날아가는 카시드를 쇄도하며 다시 검을 내리쳤는데, 카시드는 바닥을 뒹굴며 뇌려타곤懶驢打滾과 같은 자세로 꼴사납게 검을 피한다.
그러면서도 크리스찬의 발목을 향해 검을 필사적으로 휘두른다.
휘익―
그 어설픈 검을 위로 뛰어 피한다.
숙―
“끝이다.”
그리고는 공중에서 검을 들어 바닥에 누워있는 카시드를 향해 천성검법의 비기를 쓴다.
천성검법千星劍法
제1식
유성流星
새하얀 별의 흔적이 긴 꼬리를 내리며 카시드에게 떨어져 내린다.
“제가라알!”
검을 휘둘러 그 빛나는 유성을 막아내려고 하지만 역시 바닥에 널브러진 상태에서는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콰콰콰콰쾅―!
하지만 결국엔 그 유성을 쳐냈었는데, 유성을 쳐내며 반발력을 이용해 그 자리에서 벗어난다.
벗어나면서도 재빨리 일어나 검세를 취한다.
역시 카시드도 엄청난 재능이긴 재능이었다.
허억―! 허억―! 허억―!
왼팔에 금이 간 것 같았으나 아직 부러지진 않았었다.
‘제길! 제길! 제길!’
자신이 최고라고 믿고 살아왔었다.
최고의 환경에서 최고의 검술을 익히며 최고의 영약을 먹어가면서 최고의 재능을 꽃피웠었다.
아덴에서도 자신과 비교 가능한 어린 강자들이 있었지만 결코 자신의 그 빛나는 재능을 가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루드스는 달랐었다.
‘루드스에 오길 잘했군!’
루드스에 오니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1학년 때는 노는 거라 해서 좀 놀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대단한 새끼들이 정말 많아!’
여기 정의 무투회의 최종 본선 진출자 대부분이 루드스에 재학 중이거나, 루드스 졸업생 출신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결국 내 아래가 될 것이다!’
자신보다 어림에도 자신과 실력이 비슷한 아벨이라든가, 눈앞의 검사부 선배이자 이번에 우승자들이 참가하지 않았다면 분명 우승했을 거라는 말을 듣고 있던 크리스찬이든가.
모두.
모두 결국에는 자신의 아래가 될 것이다.
오늘 이렇게 무기력하게 패배한다 하더라도.
‘아니지! 이대로 끝낼 수는 없지!’
구오오오오오오―
웬만해선 이것까지 쓰고 싶지 않았지만 절대 이대로 끝낼 순 없었다.
‘……?!’
무투회장의 모두가 카시드의 기질이 확실히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이번만큼은 크리스찬에게도 통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뭔가가 있군.’
크리스찬도 그 모습을 보고 더욱 진중하게 검을 들어 올려 자세를 잡는다.
탓―!
카시드가 대지를 박자고 나가며 크리스찬을 향해 검을 머리 옆으로 뉘어 찌를 듯이 들어 올렸는데.
사자신검死者神劍
제3식
진혼곡鎭魂曲
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노랫소리처럼 스산한 굉음이 무투회장에 울려 퍼지는데, 흐릿해지는 카시드를 볼 수 있었다.
크리스찬도 이번 같은 경우는 결코 만만히 볼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결국에 이기는 건 자신이 되겠지만 말이다.
‘3식인 것 같은데, 그렇다고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흐릿한 잔영을 남기며 다가오는 카시드의 마력 흐름을 느끼려고 노력한다.
기감氣感이 좋은 크리스찬은 아직 완전하지 않은 카시드의 제3식의 공격의 허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 아직 완성 단계는 아닌가 보는군.’
끊어지는 듯한 그 느낌을 느낀 크리스찬은 그 찰나의 순간에 자신을 위한 노랫소리를 잘라낸다.
콰콰쾅―!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절망적인 노랫소리가 이대로 끝났던 것은 아니었다.
노랫소리라는 건 억지로 이어 붙여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노랫소리가 될 수 있기에.
스걱―!
‘제길!’
완전히 끊어내지 못한 카시드의 검격이 복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갑옷이 그 위력으로 종이 잘리듯 잘려나갔다.
조금이라도 그 노랫소리를 끊어내지 못했더라면 이번에 패자는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한 생각이 들자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커커컥―!”
반면 카시드는 중간에 마력의 흐름이 끊어졌기에 그 엄청난 부작용을 지금에서야 받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끊어질 것만 같은 정신은 간신히 붙잡고 있다.
‘끝이다.’
시합은 시합이었으니, 그런 것에 인정을 둘 크리스찬이 아니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비틀거리는 카시드를 향해 크리스찬은 천성검법 제1식 유성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