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화
75화. 거짓말이지?(2)
쥬디스의 날카로운 말에 대단히 귀찮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린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역시 미래는 모르는 거기에 벌써부터 그럴 필요가 있나 싶군요.”
“확실한 재발 방지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황태자 저하께서 압력을 넣는대도 말입니다.”
“혹 생각해두신 거라도 있습니까?”
“교직원들을 이용해야지요. 비상시에 그렇게 하기로 되어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물끄러미 쥬디스를 바라보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
“정말이십니까?”
“확실하지요?”
총장은 교수들의 의심에 헛웃음을 흘린다.
“하하― 뭐 어려울 거라고. 알겠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시지요.”
교수들도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게, 그들이 느끼기에 황실의 충실한 개인 총장이 생각보다 너무 쉽게 자신들의 말을 들어 주었던 것이었다.
반면 총장은 그 정도 요구는 정말 어렵지 않게 들어줄 수 있었다. 이유는 사실 황실에서도 진즉에 그 ‘공격을 멈추지 말자’라는 기존의 생각을 바꿨었기 때문이었다.
그 생각을 바꾸는 데에는 세르지의 주장이 주효했었는데, 세르지는 조금이라도 아벨을 돕기 위해 아벨과 딱히 상의하지는 않았었지만, 아벨을 방심하게 만들자는 명분으로 일단 정의 무투회까지는 지켜만 보는 게 좋겠다고 주장을 한 것이었다.
하베츠가 보기에도 함께 다니던 러네이가 너무 강해 실효가 없어 보였을 뿐만 아니라, 때마침 대귀족들의 불만도 폭발하던 상황이었기에 세르지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아무튼 어차피 생각이 바뀌었었기에 교직원 배치는 굳이 원한다면 못 들어줄 것도 없었다. 그냥 귀찮아서 할 생각을 안 했을 뿐이지.
그런 이유를 몰랐던 교수들은 총장의 그 수상한 모습에 뭔가 찝찝함을 느낀다.
“아무튼 원하는 그대로 해드릴 테니, 이젠 정말 그만 돌아가 보시지요. 다들 바쁘실 텐데.”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그래서 쥬디스가 대표로 말한다.
“좋습니다. 그럼 총장님의 명예를 한번 믿어보겠습니다.”
찝찝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어찌 됐건 원하던 결과를 얻어가던 교수들이었다.
* * *
정의 무투회에 아벨이 참가하겠다고 확답한 이후로 원예부에 대한 공격은 일단 합의한 대로 멈추긴 했었다.
물론 아벨이 아니면 러네이라도 함께 다녔었기에 공격이 있어도 소용이 없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정의 무투회가 3일 앞으로 다가왔다.
아벨은 며칠 안 남은 정의 무투회에 최상의 상태를 맞추기 위해 더욱 수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마고스의 월광참검에 대한 수련은 잠시 미뤄둔 채 뇌전마검과 흑풍흡검만을 집중해서 수련하고 있었다.
‘필요하다면 뇌전마검도 써야 해.’
이번 무투회에서 필요하다면, 아이들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당연히 뇌전마검도 쓸 생각이었다.
아꼈다가 정말 똥 된다고, 괜히 계속 아낀다고 팔이나 다리를 잃을 순 없었다.
‘흑풍흡검도 뇌전마검도 이제 3식을 쓸 수 있으니.’
둘 다 5성에 올랐기에 3식을 쓸 수 있었다.
두 검술의 3식을 쓴다면 7성 후반의 강함으로도 9성 초반 정도는 가뿐히 이길 듯했다.
아니. 솔직히 전에 파니츠의 던전에서 라이칸스로프들에게 썼던 것처럼 흑풍흡검의 선풍과 뇌전마검의 벽력만 섞어 써도 충분할 것 같았다.
어떻게 보자면 3식의 수련은 필연적으로 만날 러네이와의 대전을 위한 준비라 하겠다.
‘그럼 본격적으로 수련해 볼까.’
현재 각각의 3식을 언제든지 쓸 수 있게 준비 중이었다.
오늘은 흑풍흡검의 3식을 집중적으로 수련하기로 한다.
검세를 잡고 오러 하트를 자극해 마나로드로 온몸의 마나를 활성화한다.
수아아아아아―
파지지지지직―!
연무실 공기가 용골검으로 빨려들어 간다.
흑풍흡검黑風吸劍
제3식
초열풍焦熱風
그 빨려 들어간 공기가 뇌기를 동반한 엄청난 열을 가진, 쇠도 녹일 검은 바람이 되어 검에서 쏘아 나갔다.
그 쏘아져 나간 검풍劍風이 연무실 벽까지 날아갔는데, 연무실 벽에 새겨진 마법진이 발동하여 그 초열焦熱의 검풍을 막아낸다.
콰콰콰콰콰―!
하지만 완전히 막아낸 것은 아니었다. 움푹 파여 벽이 녹아 흘렀다. 그 벽은 앞으로 한 번만 더 초열풍을 맞는다면 무너질 게 분명해 보인다.
‘엄청나군.’
쓸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흑풍흡검과 뇌전마검은 다른 검술에 비해 차원이 다르다 할 수 있었다.
‘작가가 괜히 소설에 등장시키지 않은 게 아니었어.’
너무 벨붕이라 황실무고에 짱박아 둔 게 분명하다.
‘심지어 드래곤들의 검술보다 더 뛰어나니.’
드래곤들의 검술들은 몇천 년간 다듬어온 것들이 대부분이었기에 확실히 뛰어나긴 했었다.
러네이의 백룡마검 같은 경우도 검격이 투명하니 상대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었다.
‘러네이가 괜히 자신감 넘치는 게 아냐.’
확실히 러네이도 7성 전력만 써도 검술의 차로 9성 검사를 가뿐히 이길 것이다.
그러다 문득 자신도 과연 3식을 쓴다 해서 이번 무투회에서 러네이를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으로선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과도 같이 보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런 나약한 생각을 고쳐먹고는.
‘훗― 걱정은. 아벨이 어떤 재능인데.’
그렇다.
같은 7성의 수준으로만 싸우면 확실히 승산이 있었다.
그리고 혹여나 이번에 지더라도 소설에서처럼 얼마 안 가 러네이 보다 몇 배는 세질 것이었고 말이다.
바로 작가가 준 아벨의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재능과 능력으로.
확실히 미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엄청난 힘과 용기를 주었다.
‘아무튼 지금은 그런 생각 말고 수련이나 하자.’
그래서 그러한 생각은 치워두고, 일단 러네이가 오기 전까진 원래 계획대로 계속해서 흑풍흡검의 3식을 써가며 몸에 최대한 익히기로 한다.
그래서 한참을 3식 초열풍만을 써댔다.
쾅쾅―! 쾅쾅―! 쾅쾅―! 쾅쾅―! 쾅쾅―! 쾅쾅―!
솨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연무실의 벽 전체가 초열풍에 맞아 도저히 버티지 못할 때쯤에, 그때야 아벨은 수련을 멈춘다.
후우― 후우― 후우― 후우―
거친 숨을 몰아쉬며 초열풍에 뜨거워진 열기를 느낀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낸다. 그러면서 엉망진창이 된 연무실 벽에 다가가 마법으로 수리하기 시작한다.
구구구구구구―
수리하면서 생각한다.
‘러네이가 올 때가 됐군. 그나저나 정말 큰 도움이 돼.’
러네이가 이번 정의 무투회에서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는 경쟁자이기도 했었지만, 그건 별개로 정말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녀와의 치열한 대련은 단기간에 아벨을 엄청나게 성장시키던 것이었다.
‘정말 운이 따르는군. 마치 작가가 사이다스러운 스토리를 원해서 돕는 것마냥.’
한국에서 『에브니아 전기』는 완전 개고구마 소설로 개망작 취급받지 않았던가?
그러니 작가도 자신의 패착을 절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아벨에게 운도 따르게 한 건지도 모른다.
‘러네이를 일찍 만나게 한 건 작가가 아벨을 돕고자 한 게 분명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때마침 러네이가 기숙사를 찾아왔다.
띵동띵동―
땀을 닦고 윗옷을 입었다. 그리고 나가서 감시구를 보았었는데.
“…….”
잠시 열어줘야 하나 고민했었다.
띵동띵동―
안 열어 주면 계속 누를 거 같아 결국 열어 준다.
덜컥―
“저하!”
러네이가 케이, 사나, 로디아도 데려온 것이었다.
“……?”
왜 같이 왔는지 몰라서 러네이를 바라보자.
“애들이 너무 불안해해서 말이에요. 우리 대련을 조금이라도 보여주면 불안을 해소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그러면서 러네이는 아벨을 향해 찡긋 윙크를 한다.
그 잉크를 애써 외면하면서.
“……아무튼 들어오렴.”
“네에!”
대답 후 혹시나 아벨이 결정을 번복할까 후다닥 들어온다.
“……?!”
들어왔는데 후끈후끈한 기숙사 안 온도에 깜짝 놀란다.
“왜 이렇게 더워요?”
“마법 수련 중이셨나요?”
“이번에 마법도 쓰시려구요?”
아침 마당의 참새들이 지저귀는 것 같은 아이들에게 아벨 대신 러네이가 대답한다.
“아니 아니. 저하의 새로운 비기가 바로 뜨거운 바람이거든. 엄청 뜨겁다구.”
“아! 진짜요?!”
“역시 저하는 다르네요.”
“그것도 검술인가요?”
“그게 말이지. 어떤 검술이냐면―”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아벨의 초열풍에 대해 재잘재잘 말들 했다. 그리고 더웠는지 연신 손으로 부채질하거나 윗옷을 잡고 펄럭펄럭 흔든다.
그래서 아벨은 냉장 상자로 걸어가며 묻는다.
“……시원한 딸기 우유 마시겠느냐?”
묻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하는데.
“네에. 너무 더워요.”
“네에. 주세요.”
“네에. 빨리 좀 주세요.”
어서 안 내오고 뭐 하냐는 듯한 세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대답 대신 냉장 상자에서 시원한 딸기 우유를 꺼내 따라 준다.
건네면서 러네이에게 말한다.
“……러네이. 바로 시작하자. 시간이 없으니.”
아벨의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딸기 우유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너희들도 잘 봐. 저하가 얼마나 강하신지.”
“네에! 알겠어요!”
자리에 일어선다.
“그럼 가자. 저하께서 급하신 듯하니.”
러네이의 말대로 아벨은 이미 연무실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아벨을 쫓아 모두가 쪼르르 연무실로 들어간다.
들어가서는 아이들은 혹여나 자신들이 방해될까 봐 구석에 조용히 서 있는다. 러네이만 아벨이 있는 중앙으로 간다.
연무실 안은 훨씬 더 후끈거렸다.
“열심히 하고 계셨군요.”
아벨은 대련을 위해 포션 하나를 마시면서 말한다.
“그렇지. 꽤나 열심히 하고 있었지. 너와의 대련을 위해.”
“오호― 절 그렇게나 원하셨나요?”
그녀의 헛소리에 피식 입꼬리를 올린다.
“그래. 아마도 이번 대회 우승자는 너와 나 둘 중 하나일 거 같거든. 그러니 기회가 있을 때 너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파악해 놔야지.”
자신이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지만, 아벨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도 피식 입꼬리를 올린다.
그리고는 팔을 걷으며 말한다.
“봐주지 않을 거예요.”
그 말에 아벨도 진중하게 자세를 잡는다.
“그래. 절대, 절대 봐주지 않기를.”
우우우웅―
곧바로 두 사람은 검에 검기를 주입했는데, 아주 분명한 검기가 두 사람의 검에 집약되는 걸 볼 수 있었다.
* * *
“정말이야?”
고귀한 외모의 검은 머리 소년은 눈앞의 푸른 머리의 미청년이 한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럼에도 푸른 머리 미청년은 덤덤하게 자신의 말을 한다.
“네. 분명 그렇게 들었습니다.”
사실 소년도 그가 대단히 믿을 만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믿기지 않는 건 믿기지 않는 것이었다.
“그럴 수가…… 흑풍흡검은 그 녀석에 최적화시켜 만든 검술이라 결코 다른 인간이 쓸 수 없을 텐데…….”
“현재 아벨이라는 인간 아이와 함께 다니는 드래곤이 말하길 아서의 재능과 능력을 훨씬 상회한다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자기가 이때껏 봐온 그 어떤 인간들보다 최고의 재능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도 하면서 말입니다.”
“뭐? 그게 말이 돼?”
몇 천 년을 사는 드래곤이라면 그 어떤 인간보다 주신 아그네스께 사랑받는 용사도 보았을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그 어떤 인간들보다 뛰어나다고 하다니.
“저도 아직 그 아이를 직접 보지는 못해서 확답은 해드리기 어렵겠지만 분명 그렇게 말했습니다.”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묻는다.
“그 드래곤이 누군데?”
“비트칸 님도 잘 아시는 드래곤입니다. 화이트 드래곤 러네이안입니다. 인간을 비상식적으로 좋아하던 그 특이 드래곤 말입니다.”
기억이 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 꼬맹이가 인간을 많이 좋아하긴 했었지. 그러니 더 못 믿겠군.”
그 말이 사실이기도 해서 미청년은 침묵을 지킨다.
“제튼. 너라면 지금 이 말을 믿을 수 있겠나? 그 검술은 내가 아서를 도와 함께 만든 거라고. 용골검과 아서 그 녀석에 맞춰서.”
좀처럼 믿지 못하는 소년에게 미청년이 제안한다.
“아니면 이번에 정의 무투회에 그 인간 아이가 참석한다는데, 저와 함께 보러 가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래? 이번에 출전해?”
“네. 이번에 확실히 출전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인간 세상은 그 아이를 중심으로 재밌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분명 비트칸 님의 지루함도 해소해줄 겁니다.”
“무슨 재밌는 일인데?”
“다름 아니라 황실의 모든 자손이 그 아이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라는 것입니다. 그 아이의 그 특출난 재능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데 전에는 그 아이가 배경을 갖지 못해 무자비하게 당하고만 살았었다면, 이제는 그 아이에게 힘이 돼주겠다는 막강한 배경이 나타나 또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지려 하고 있습니다.”
드래곤들도 신들처럼 인간들의 권력 싸움이나 치정 관계를 대단히 좋아했었다.
확실히 그 고귀한 소년도 흥미를 보인다.
심지어 아벨이 용혈갑과 용골검의 현 주인이며 불가능하다고 장담했던 흑풍흡검을 쓴다고 했을 때보다도 더.
“호오― 그래서?”
“그래서 이번 무투회가 정말 재밌을 겁니다. 아벨 그 아이를 죽이기 위해 적들이 단단히 준비하고 나타날 테니 말입니다. 추악한 음모와 암투와 더럽고 비열한 짓거리들이 그 무투회장 뒤편에서 대단히 활발하게 펼쳐질 것입니다.”
벌떡―!
일말의 고민도 없이 자리에 일어서며 말한다.
“이거 참 오랜만의 외출이군.”
그러면서 그 어느 때보다 두 눈을 반짝이던 소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