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화
73화. 엄청난 러네이(2)
그제야 수잔 황비는 아들이 러네이를 만나는 것에 대해 이해도 되며 안심도 된다는 표정을 보였다.
그런 그녀에게 아벨은 다시 한 번 다정한 미소를 짓는다.
“그럼 가시죠. 어마마마.”
그렇게 수잔 황비를 안심시킨 후 함께 연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수잔 황비에게 말한다.
“여기서 지켜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아벨이 말한 곳은 연무실 가장 구석 모퉁이였다.
“그래. 알겠어.”
수잔 황비의 대답을 듣고는 그녀를 위해 마력장벽을 쳐 준다.
위잉―
이후 러네이가 서 있던 중앙으로 갔다.
다가가 우선적으로 무엇보다 러네이가 지켜야 할 한 가지 규칙을 말한다.
“혹여나 어마마마께 검기가 간다면 그 순간 대련은 끝날 것이다. 그리고 그 검기를 보낸 자가 패하는 거로 하겠다.”
수잔 황비에게 친 마력장벽은 한 번의 검기는 막을 정도였었다.
“좋아요. 내가 보낼 리는 없으니까.”
그녀의 자신만만한 표정에 신뢰가 갔다.
확실히 드래곤이라 그러한 것에는 믿을 만했다.
“그럼 시작하지.”
착!
오른손에서 용골검을 소환했다.
스릉―
그리고는 곧장 검을 발검한다.
그러자 묵빛 검신 주위로 연무실 안 조명빛이 빨리는 듯한 기묘한 현상이 일어났다.
러네이도 아벨의 용골검을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며 미리 준비한 검을 발검했다.
스릉―
그녀의 검도 드래곤의 뼈로 만들어진 검으로 용골검만큼은 아니었지만 이 세상 검들 중에서는 최상위에 위치한 검이었다.
화이트 드래곤의 뼈로 만들어서 그런지 검이 새하얗고 투명했었다.
우우웅―
둘 다 5성 검기를 검에 주입했다.
러네이의 은은하고 유려한 검기와 아벨의 뇌기가 깃든 파괴적인 검기가 서로 완벽한 대조를 이룬다.
‘재밌겠군.’
확실히 러네이와의 대련은 가슴을 뛰게 했었다.
아무리 러네이가 드래곤이라 하더라도 뛰어난 검사임에는 틀림없었으니까.
두 사람 다 이내 자세를 잡았었는데.
탓―
아벨이 먼저 땅을 박차고 쇄도해 들어간다.
그리고는 우선은 평범하게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휘익―
그 평범한 휘두르기에 러네이도 평범하게 검을 휘둘러 쳐낸다.
콰콰쾅―!
쳐낸 후 아벨에게 시간을 주지 않고 곧장 검을 내리쳤다.
아벨은 그 내리치는 검을, 빙 돌며 회전력으로 올려친다.
콰콰콰쾅―!
묵직한 검의 세기가 손에서 팔로, 팔에서 온몸으로 전달된다.
찌릿찌릿―!
단 두 합으로 러네이의 대단함을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순간 전율이 발진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쫘악 퍼져나간다.
콰쾅―! 콰쾅―! 콰콰콰쾅―!
이후 한동안은 계속해서 단순한 휘두르기로 검격을 교환한다.
콰콰콰콰콰―!
검격이 부딪힐 때의 그 충격파에 서로가 멀어질 만도 했지만 결코 멀어짐 없이 계속해서 서로의 검에 끌려가듯 맞부딪힌다.
그렇게 서로에게 이끌리어 30분 정도를 단순 탐색전으로 소비했다.
‘이제 슬슬 몸이 풀렸을 테니.’
탓―!
아벨은 러네이와의 거리를 만들어 흑풍흡검을 쓰기 위해 검세를 취한다.
구오오오오오―
파지지지지직―!
용골검으로 주변의 기운들이 급속도로 빨려 들어감을 느끼며.
흑풍흡검黑風吸劍
제1식
선풍旋風
“오호!”
‘이제야 본격적으로 하는 거야?’ 하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러네이도 자신의 검에 기운을 집약시킨다.
그리고는 아벨의 선풍을 향해 종으로 검을 휘두르는데.
백룡마검白龍魔劍
제1식
용섬龍殲
단순한 휘두르기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그 압축된, 투명한 검기가 아벨의 선풍을 찢어발기려 한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
선풍 자체가 다발의 검기로 이루어졌기에 단번에 부서지지는 않았지만 용섬이 워낙 강력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12성 최절정에 오른 검사인 러네이였기에, 러네이의 용섬이 아벨의 선풍을 비교적 가볍게 베어 없앴다.
그리고 용섬이 선풍보다 훨씬 더 대기 시간이 짧았으니.
바로 이어서 다시 한 번 더 횡으로 검을 휘두르며 용섬을 쓴다.
휘리릭―
그 투명한 검격이 날아오는 타이밍에 아벨은 침착하게 올려쳐 막으며 용골검의 특수 기능인 마력 흡수를 한다.
수아아아아―
“마력 흡수까지!”
대단히 기뻐하며 아벨을 향해 쇄도한다.
쇄도하면서 친절하게도 아벨에게 친히 조언을 한다.
“뇌전마검도 써야 할 걸요?!”
그러면서 이번엔 종으로 검을 내리치며 용섬을 쓴다.
‘확실히 빨라.’
확실히 러네이가 아벨보다 한 박자 빨랐다.
“그리고 순간이동도!”
‘그토록 원한다면!’
수악―!
가슴으로 마력을 이동시켜 순간이동을 해 러네이의 뒤로 이동한다.
“……?!”
그 모습을 본 수잔 황비의 눈이 놀라 화등잔만 해졌다.
하지만 한 번 더 놀랄 일이 있었으니.
묵빛 용골검에서 황금빛 뇌기가 터져 새하얗게 물들어간다.
뇌전마검雷電魔劍
제1식
벽력霹靂
파지지지직―!
눈이 번쩍하는 순간에 러네이의 등으로 벼락이 떨어져 내렸고 러네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공중에서 마치 공기를 밟고 튕기듯 돌아서며 용섬을 써 막는다.
콰콰콰콰쾅―!
두 사람 다 충격파에 뒤로 튕겨 나간다.
아벨은 튕겨 나가면서 순간이동을 써 러네이의 측면을 노린다.
휘익―!
하지만 러네이는 이번에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공기를 박차고 위로 뛰어 피한다.
그래서 또다시 순간이동을 써 러네이의 뒤를 잡아 공격한다.
휘익―!
물론 러네이는 재차 공기를 밟아 그 검격을 여유롭게 피한다.
‘허공답보.’
그 기술은 최정상 무인들만이 쓴다는 허공답보虛空踏步였다.
‘확실히 작가가 무협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
허공답보를 쓴다면 자신은 비행마법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디 한 번 볼까?’
아벨은 9성 성취인 지금으로선 12성 성취인 러네이에게 반응속도 면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더 이상 순간이동을 쓰지 않고 비행마법으로 러네이를 쫓아갔다.
휘익― 휘익― 휘익―
확실히 허공답보보다는 비행마법이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이기 좋았다.
다발의 검격을 날리며 공중에서 러네이를 몰아붙였다.
‘역시! 대단해!’
아벨의 순수한 감탄처럼 물론 러네이는 공중에서의 싸움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아벨의 검격을 무리 없이 잘 막아냈다.
덕분에 공중에서 엄청난 공방을 이어갈 수 있었다.
쾅―! 쾅―! 쾅―! 쾅―! 쾅―! 쾅―! 쾅―!
그렇게 무려 공중에서만 2시간을 보냈다.
‘이러다간 끝이 없겠어.’
서로 5성의 마력만 쓰다 보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러네이는 자신의 백룡마검의 비기를 아벨과 같은 수준으로만 쓰고 있어 일부러 봐주고 있다고 해도 무방했었다.
수악―
순간이동으로 거리를 벌리면서 말한다.
“이쯤 하자. 어마마마께서 오래 기다리셨으니.”
러네이는 아벨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좋아요. 그럼 제가 이긴 거죠?”
지금 이 한 번의 대련으로 인해 천고의 검재 성취가 엄청나게 올라있었다.
“비긴 거지. 하지만 내가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라면 그 부탁은 들어주겠다. 말해봐라.”
그러니 뭐든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별건 아니고 한 주에 최소 한 번은 나와 대련해줘요. 그리고 한 주에 최소 한 번은 나와 원예부에 같이 가고요. 잠깐이라도 괜찮으니.”
* * *
아벨은 러네이의 부탁을 기분 좋게 들어주기로 했다.
‘대련은 내가 부탁하고 싶을 정도였으니.’
혼자서 수련할 때보다 특히 실전 경험을 쌓을 때 천고의 검재가 크게 반응했기에 검술 성취를 올리기가 특히 좋았었다.
벌써 원래 계획이었던 ‘정의 무투회’ 전까지 뇌전마검 5성, 흑풍흡검 5성은 달성한 후였다.
‘미스라임에서 특히 많이 올랐어.’
에티들과의 전투 때라든지, 파니츠가 있었던 던전에서라든지.
‘확실히 실전 경험이 훨씬 도움이 돼.’
그렇다 보니 러네이가 말한 대련은 일부러 자신의 성장을 돕기 위해 제안한 것처럼도 느껴졌다.
‘그럼 원예부가 진짜 부탁이겠군.’
원예부에 한 주에 한 번 오라는 게 진짜 부탁인 듯했다.
‘나를 위해 대련해주겠다는데, 그 정도야.’
고개 돌려 다른 여자애들과 신나게 떠들고 있는 러네이를 바라봤다. 어느새 원예부의 왕언니가 되어 모든 여자애를 통솔하고 있었다.
“역시! 전 언니를 믿고 있었다니까요!”
“우리 언니 정말 대단하시네!”
“와― 진짜 설마설마했었는데!”
“진짜 대단하다. 대단해.”
“도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그 비법 저도 좀 알려주세요!”
모든 원예부원에게 둘러싸여 매우 우쭐해 하던 러네이였다.
“심지어 이 몸은 수잔 황비 마마의 인정도 받아냈다는 거 아니겠니.”
“오오오오―!”
“개쩔어!”
“지인짜로요!”
아이들의 격한 반응에 대단히 만족스런 웃음을 흘린다.
“후후후― 그러니 앞으로 저하에 관한 일이라면 언제든지 이 언니에게 물어보렴.”
그러면서 아벨에게 찡긋 윙크를 했다.
그 끔찍한 윙크를 보자 아까의 고마움은 순식간에 사라져 없어졌다.
“하아―”
아벨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여기 더 있다간 또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몰랐기에 그만 기숙사로 돌아가기로 한다.
“장난은 그쯤하고. 오늘 딱히 할 게 없는 거 같은데, 그럼 난 이만 가보겠다.”
아벨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여기저기서 아벨을 붙잡으려는 손들이 솟아오른다.
“어딜!”
“맞아요! 어딜 가는 거예요!”
“우리 이제 나가서 단풍 구경할 거라구요! 할 거 있다구요!”
단풍은 아직 피지도 않았었다.
급히 만들어낸 계획 같았다.
“어디서 거짓말을.”
아벨이 단호하게 야심 찬 계획을 거짓말로 단정 짓자 매우 당황해했다.
“거, 거짓말 아니거든요! 아무튼 가지 말아요!”
“그럼 뭘 할 생각인데?”
“나가보면 알아요! 얘들아 챙겨!”
“넵!”
대답과 동시에 신속하게 밖으로 놀러 나가기 위해 준비를 하던 원예부원들이었다.
* * *
결국 그녀들에게 이끌리어 함께 밖으로 나가고 말았다.
그래서 잔디밭에 누워 9월의 선선한 날씨를 느끼며 저물어 가는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소설과는 다른 너무나 평화로운 날들이라, 이렇게 너무 평온할 때면 괜스레 더 불안이 찾아왔었다. 그래서 수련에 더욱 목을 맸던 것도 있었다.
원작이 하도 지랄 맞았었기에 정말 애써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계속해서 불안한 생각이 났었다. 지금도 이 순간만큼은 여유를 즐기고 싶었으나 또 걱정스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분명 다음 달에 있을 정의 무투회 때 나를 출전시키려 할 텐데.’
세르지의 말에 따르면 확실해 보였다.
그런데 세르지 본인도 어떻게 아벨을 정의 무투회에 출전시키려는지 모르겠다면서, 그것에 관해서는 황태자파에서 단독으로 준비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러네이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야.’
앞으로 그들이 무슨 시비를 걸어와도 러네이가 옆에 있다면, 아벨이 굳이 나서지 않더라도 다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그래. 이게 제대로 된 먼치킨 소설이지.’
진짜 그 빌어먹을 작가의 소설대로였다면 아벨과 케이에게 지금과 같은 평온한 시간은 절대 없었을 것이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괴롭힘에 아벨뿐만 아니라 케이 또한 매 순간 고통스러워하며 살아가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해맑게 웃으며 즐겁게 친구들과 대화하는 케이를 바라본다.
‘네가 계속 웃을 수만 있다면.’
정말이지 그 모습이 너무나도 반짝여 아벨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낀다.
‘그거면 됐다.’
아벨이 괴롭히던 놈들을 초장에 확실하게 조져놓은 덕분에 더는 그 누구도 아벨과 케이를 괴롭힐 생각 못 했다.
여전히 뒤에서는 욕을 하고 다니고 있었지만 그런 거야 뭐 신경도 안 썼다.
아무튼 이렇게 너무 평온할 때면 괜스레 불안감이 엄습했다.
애써 그 불안감을 지우려 노력하며 어스름한 저녁 하늘을 바라본다.
‘아직 오지도 않은 일에 미리 걱정할 필요 없지. 그냥 지금을 즐기자.’
그래. 오지도 않은 일 미리 걱정할 필요 없을 듯했다.
혹여나 그 일이 진짜 일어난다면 그때 걱정해도 늦지 않았었다.
지금은 흐르는 가을바람을 그저 즐기기로 한다.
재잘거리는 여자애들의 들뜬 목소리들을 뒤로하고 아벨은 잔디밭에 누운 채로 눈을 감는다.
‘…….’
그렇게 한 5분쯤 지났을까?
“아벨!”
정말 오늘만큼은 아무 일 없길 바랐었는데…….
‘……제길……!’
그래서 혹여나 그냥 넘어갈 수도 있으니 그냥 모르는 척 가만히 있는다.
“아벨! 이 카사노바!”
그 절박한 외침에 러네이가 묻는다.
“누구야? 저 뚱땡이는?”
러네이의 순진한 물음에 케이가 혹시나 더 불손한 말을 할까 봐 급히 막는다.
“언니! 안 돼요!”
“응? 뭐가?”
케이의 설명이 부족했기에, 로디아가 차분하게 그 뚱땡이가 누군지 알려준다.
“윌리엄 황자 저하세요. 저하의 형님이시죠.”
“앗! 진짜?! 이런!”
“걱정 마세요. 못 들었을 거예요.”
로디아의 말처럼 윌리엄은 러네이가 한 말을 듣지 못했었다.
그저 씩씩거리며 자신의 부름을 무시하고 누워있는 아벨의 바로 앞까지 와서는 아벨의 발을 후려 차려고 했는데.
퍽―!
“악―!”
오히려 아벨의 강철 같은 몸 때문에 뒤로 쓰러져서는 자신의 발을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