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72화. 엄청난 러네이(1)
말도 안 되는 추문이 엄청난 속도로 퍼지는 데에는 러네이가 아벨의 정실이 될 거라고 헛소리를 하고 다니는 것과 적들이 이때다 하고 아벨을 공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결과라 하겠다.
‘소문엔 애도 있다던데. 허 참. 내가 예전에 갇혀 지냈던 건 다 잊은 모양이지?’
세르지가 말하길 황실에선 아벨을 어떻게든 깎아내리려, 그리고 무엇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미스라임과의 연결을 막기 위해 별의별 말들을 퍼트리고 있다고 했었다.
‘뭐 어쩔 수 없겠지. 그들의 최우선적인 목표가 바로 나를 이 세상 최고의 쓰레기로 만드는 거니까.’
그때 황실에서의 비열한 말들보다 더 아벨의 정신을 훨씬 번쩍 들게 할 만한 말을 케이가 꺼냈다.
“그런데 언니는 저하의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주변에 있던 연인들이 케이의 말에 아벨과 뒤따르는 여자들을 주목한다.
“그게 말이지. 다 좋긴 한데 역시 지칠 줄 모르는 어마어마하게 강한 체력이랄까?”
“네?”
“체력이요?”
“웬 체력?”
“……?!”
아벨도 묻고 싶었다.
왜 체력인지.
‘이 드래곤이 도대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음― 너희들은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 저하가 얼마나 체력이 왕성하시고 좋으신지? 그래. 너희들도 조금만 더 나이 먹으면 이 언니처럼 잘 알 수 있을 거란다. 왜 체력이 여자에게 좋은 건지.”
문제는 그녀들도 그 의미에 대해 조금 이해해버린 것이었다.
“헐…….”
“아니. 언제 그랬던 거죠?”
“도대체 무슨 일이.”
오해가 너무 깊어질 듯했다.
멈칫―!
“러네이.”
아벨의 부름에 콧소리를 내며 대답한다.
“네∼ 저하∼”
그 반응에 골치 아프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린다.
“도대체 왜 내 체력에 반한 거지? 그리고 언제 내 체력을 네가 봤던 거지?”
“에이∼ 저하 우리가 그래도 두 달을 같이 살았는데.”
그 말에 세 여자는 대경실색하면서.
“와 진짜요?!”
“언제요?! 아니 그것보다!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어요?!”
“저하가 이러실 줄은…….”
아벨도 기겁을 해 펄쩍 뛴다.
“아니! 우리 둘만 지냈었느냐?! 너와 나 말고도 두 명이 더 있지 않았더냐?! 그리고 넌 여자와 잤지 나랑 잔 게 아니었잖아!”
아벨의 절박한 호소를 듣고는 사나는 이제야 러네이가 방학 때의 일로 헛소리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휴―”
그래서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반면 러네이는 오히려 아벨이 이상한 상상을 하고 이상한 오해를 하고 있다는 듯이 말한다.
“네? 당연히 저와 안 잤죠. 대체 무슨 상상을 하시는 거예요?”
“네가 마치 나랑 잔 것마냥! 그래서 내가 체력이 좋은 것마냥 말하지 않았더냐!”
“저는 그냥 두 달 동안 저하께서 한 치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을 보고 체력이 강하다고 한 건데요? 허허― 이거이거 저하 생각이 너무 불순하신데요?”
그 음흉하고도 당당한, 마치 자긴 아무 잘못 없다는 듯한 태연한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
그때 그냥 이젠 나도 포기다 라고 생각해버린 아벨이었다.
* * *
아덴의 두 공주도 소문의 러네이를 보기 위해 원예부에 왔다가 러네이에게 대판 깨져 선배임에도 언니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렇게 원예부는 러네이가 엄청난 속도로 장악해 가고 있었다.
“야야. 너무 서운해 마. 그래도 내가 좀 더 오래 살았잖아?”
필리즈는 대단히 분했지만 러네이의 강함은 진짜였다.
“네…… 언니…….”
반면 타네르는 필리즈와는 달리 분함 따위 개나 줘버리라는 듯이, 오히려 러네이를 무슨 우상 바라보듯 반짝이는 두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언니. 나중에 제 검술 좀 봐줘요. 나 너무 약한 거 같아.”
그 부탁에 러네이는 아덴의 공주를 마치 막냇동생 대하듯 대했다.
귀엽다는 듯이 머리를 쓰담 쓰담 하며 말한다.
“그래그래. 내가 널 진정한 여검사로 만들어 줄게. 나만 믿어.”
감히 남작가 영애 따위가 아덴의 공주에게 하대를 하고 가볍게 대해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었지만 필리즈는 자신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정말 순수하게 기뻐한다.
“오! 진짜죠?! 좋아요!”
이게 다 아덴이 강자존强者存, 약자멸弱者滅, 약육강식弱肉强食,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법칙이 적용되는 왕국이라서 가능한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아벨 저하는 동아리 활동 안 해?”
케이가 옆에서 답답하다는 듯이 말한다.
“진짜 잘 안 온다니까요. 한 달에 한두 번? 언니가 뭐라고 좀 해줘요.”
로디아도 거든다.
“맞아요. 맨날 기숙사에서 수련만 한다니까요? 진짜 무슨 수련 귀신이 붙은 것도 아니고.”
사나도 동의한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해요.”
모두의 의견을 들은 러네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한다.
“그래?”
동시에 대답한다.
“네에!”
그 대답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씨익― 커다랗게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는다.
“좋아. 나만 믿어. 내가 앞으로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무조건 오게 만들 테니까.”
원예부 왕언니로 등극하면서 자신감이 한껏 붙은 러네이였다.
* * *
그 주 주말에 예정대로 수잔 황비가 아벨을 찾아왔었다. 러네이에 대해 아벨에게 직접 듣기 위해서였다.
오자마자 대뜸 아벨에게 묻는다.
“러네이 영애와는 무슨 관계니?”
수잔 황비는 아들이 워낙 잘 생겨서 여러 여자들과 엮일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단기간에 너무 많은 여자들과 엮이는 거 같아 걱정을 하고 있었다.
“제가 어마마마께 괜한 걱정을 드린 것 같아 죄송스럽군요.”
“휴…… 우리 아들이 워낙 잘났어야지.”
수잔 황비는 아들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이 대단했었다.
아벨도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느끼고 있었다.
걱정하는 수잔 황비를 따뜻하게 바라보며 그 걱정을 안심시켜준다.
“사실 러네이가 막무가내로 구는 것뿐, 전 아직 그 누구와도 혼인을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사나와도 아직 결정 못 한 것이니?”
아들이 안전하길 바라는 수잔 황비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었기에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며 말한다.
“……네. 사나와도 지금은 그저 친구 사이일 뿐. 하지만 하게 된다면 반드시 어마마마의 뜻대로 할 것이니. 그러니 그 전까진 적들이 뿌리는 헛소리에 너무 현혹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때였다.
띵동띵동―
“누가 왔구나.”
“잠시 보고 오겠습니다.”
“그래.”
분명 기숙사 앞을 지키는 근위기사들에게 그 누구도 접근 못 하게 하라고 명을 해놨었다.
‘그런데 접근을 하다니.’
도대체 누가 왔는지 궁금했다.
“하하…….”
감시구를 보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런…….”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잠시 무시할까 고민했다.
띵동띵동띵동―
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덜컥―
문을 열며 초인종을 누른 주인공에게 묻는다.
“러네이. 무슨 일이지?”
“황비 마마께 인사드리러 왔어요.”
“미안하지만 어마마마께선 지금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아 하셔서 말이야. 그럼 다음 기회에 보도록 하지.”
그러면서 문을 닫으려 하자, 갑자기 소리 지르기 시작한다.
“황비 마마! 인사드리러 왔어요! 꼭 한 번 뵙고―”
쾅―!
그냥 문을 닫아 버렸다.
그리고 들어가려 하는데.
띵동띵동띵동띵동―
“하아…….”
수잔 황비가 계속해서 한숨을 내쉬는 아벨에게 말한다.
“아벨. 그냥 들여보내렴. 나도 어떤 아인지 직접 보고 싶구나.”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안 그러면 진짜 계속해서 초인종을 눌러 댈 테니.
‘진짜 맹세의 마법만 아니었으면!’
이럴 땐 맹세의 마법이 원망스러웠다.
덜컥―
“……들어와라.”
“네에!”
해맑게 웃으며 후다닥 튀어와서는 수잔 황비 앞에서 나름 우아하게 예를 갖추며 말한다.
“코널리 남작가 영애 러네이라고 하옵니다. 수잔 황비 마마.”
수잔 황비는 러네이의 외모를 보고 깜짝 놀랐었다. 케이나 사나만큼이나 아름다운 영애가 또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한 것이었다.
얼떨떨해하면서 말한다.
“……그래. 일단 앉아라.”
“넵! 감사합니다!”
아벨은 시원한 딸기 우유 한 잔을 따라 러네이에게 건넸다.
러네이는 받으면서 인상을 찌푸린다.
“딸기 우유?”
“그거밖에 없다.”
“커피 없어요?”
“없다.”
“아 네.”
“그냥 마셔라.”
“눼에∼ 눼에∼”
티격태격하는 둘을 바라보며 그래도 친하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둘은 어떻게 만나게 된 거니?”
받은 딸기 우유를 그대로 원샷을 때리며 말한다.
“크으아― 그게! 그게 저하께서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실 때, 그때 저하가 제게 간절히 도움을 요청하시면서 우리의 인연이 시작된 거죠. 그리고 그때 당연히 전 저하의 아주아주 큰 도움이 되어드렸구요.”
사실이긴 했으나 뻔뻔하게도 잘도 말했다.
“무슨 도움?”
“저하께서 적들이 많잖아요? 근데 제가 좀 세거든요. 그래서 보디가드를 좀 해 드렸죠.”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묻는다.
“아벨 또 공격당했었니?”
“그렇게 심한 공격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러네이 말대로 러네이 덕분에 어렵지 않게 막을 수 있었습니다. 걱정 마시지요.”
심한 공격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도움을 받았다는 말을 듣자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러네이의 손을 잡는다.
“그래? 정말 고맙구나. 네 말대로 네가 큰 도움이 되어줬구나.”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수잔 황비의 모습에 조금 감격해 하며 우쭐해 하며 말한다.
“저하가 절 어찌나 신뢰하시는지, 저를 평생 데리고 살려고 맹세의 마법까지 했다니까요? 서로 떨어지지 못하게?”
“……?!”
맹세의 마법이 어떤 마법인지 잘 알기에 수잔 황비도 이번엔 조금 당황해한다.
“……그게 무슨 얘기니……?”
이젠 늦은 거 같아 그냥 솔직하게 말하기로 한다.
“그게…… 휴― 맞습니다.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로 맹세의 마법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계속해서 같은 편으로 남길 바라서 말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서로에게 붙어 있기로도 했었죠.”
“붙어 있기로 한 게 아니라 상대방을 밀어낼 수 없는 조건이었지.”
“그게 그거죠.”
지금 듣는 말에 정말 놀란 수잔 황비였다.
아들이 뭐가 부족해서 이 어린 영애를 이토록 원했단 말인가.
“……솔직히 믿을 수가 없구나…….”
“이해해요. 하지만 제가 꽤나 강하거든요. 루드스 내에서 저보다 강한 사람 없을 걸요? 교수들 다 포함해서? 그러니 저하께서 현명하신 거죠.”
“……?!”
아벨은 너무 솔직하게 다 털어놓는 러네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는 러네이의 말을 좀처럼 믿지 못하는 수잔 황비에게 그 말이 사실임을 확인시켜준다.
“러네이의 말이 맞습니다. 아마도 러네이가 루드스에서 가장 강할 겁니다.”
“……마고스 교수보다 더……?”
러네이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한다.
“아마도 그럴 걸요?”
“아마도 맞을 겁니다.”
“……맙소사…… 도대체 어떻게……?”
“제 스승님이 엄청난 강자셨거든요. 그리고 스승님 덕분에 드래곤 하트도 몇 개 먹었었고 말이에요. 이 은발도 그것 때문에 그래요.”
그래도 못 믿는 눈치이자.
“그럼 저랑 저하가 대련하는 거 한 번 보실래요? 안 그래도 저 오늘 저하께 대련 신청하려고 했거든요.”
“대련?”
“네. 이기면 부탁 들어주는 거로.”
“어려운 부탁인가?”
“서로에게 어려운 부탁은 제외하고.”
솔직히 한번 붙어보고 싶기도 했었다.
호승심이 끓어올랐다.
“검술로만?”
“네. 그리고 당연히 둘 다 5성 마력으로 맞춰서 해야죠. 안 그러면 이곳이 통째로 사라져 버릴 텐데. 안 그래요?”
5성이면 오러 쓰기 직전 단계였으니.
“좋다. 그런데 네가 많이 불리할 텐데.”
허―! 하고 헛웃음을 지으며.
“제 검술을 너무 무시하시네요. 나름 괜찮은 검술이거든요?”
확실히 백룡마검은 결코 약한 검술이 아니었다.
그리고 러네이는 3500년 살았던 웜급의 드래곤이 아니었던가.
그 오랜 기간 수련한 검술이 결코 약할 리 없었다.
그때 러네이가 수잔 황비를 바라보면서 조금은 진지하게 말한다.
“하나 깜빡한 게 있는데, 저 한 사람이 미스라임보다 훨씬 더 도움이 될 거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무엇보다 전 혼자서 저하를 독차지할 생각이 없다는 것도요. 저하께서 첩을 마구 늘리셔도 상관없다는 말이에요.”
어찌 보면 과감하면서도 대단히 도발적인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계속해서 놀라는 수잔 황비였다.
“황비 마마께서 이참에 저를 전적으로 신뢰해 주셨으면 해서 드리는 말이에요. 아무튼, 그럼 한번 몸 좀 풀어 볼까요?”
그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연무실로 들어가던 러네이였다.
아벨도 일어나며 수잔 황비에게 손을 내민다.
수잔 황비는 자신의 복잡한 마음도 모르고 그저 대련이라는 말에 두 눈을 반짝이는 아들을 바라보고는 한숨을 내쉰다.
“후우― 아벨. 큰일이 나는 건 아니겠지?”
“괜찮을 겁니다. 둘 다 서로의 성취를 알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적당히 위험한 순간에 끊을 겁니다.”
“그런데 아까 한 말이 모두 사실이니?”
솔직히 좀처럼 믿을 수 없던 것이었다.
마고스가 제국제일검이자 대륙제일검이었으니 말이다.
수잔 황비의 믿기 힘들면서도 사실이었으면 하는 그 간절한 모습에 잔잔한 미소를 보이며 말한다.
“네. 모두 다 사실입니다. 그리고 러네이는 진심으로 드래곤만큼이나 강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절대 적으로 만들어선 안 됐거든요.”
“아…….”
“그리고 좀 골치 아픈 여자긴 한데 그래도 천성은 착해서 아무 이유 없이 남에게 해를 끼칠 여자는 아니랍니다.”
“그래…… 네가 알아서 잘 판단했겠지…….”
“네. 그러니 편안하게 구경하시죠. 이참에 아들이 얼마만큼 성장했는지도 보시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