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화
65화. 절대방패 파니츠(3)
본격적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준비를 좀 해야 했다.
“잠시만 기다려라.”
그리고는 곧장 망토를 벗고 갑옷을 벗기 시작한다.
“……?”
“무, 무슨?!”
“뭐에요?! 갑자기 왜 벗어요!”
당연히 갑옷 안에 입은 가죽옷은 벗지 않았다.
그러자.
“에이…… 벗을 거면 다 벗든가…….”
왜 벗냐고 뭐라 할 땐 언제고 러네이는 가죽옷을 벗지 않는 것에 대단히 아쉬워한다.
“그런데 갑옷은 왜?”
묻자마자 대답하듯 아벨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세상 빛을 전부 빨아들일 듯한 묵빛의 굉장히 화려하고 아름다운 중갑옷을 꺼낸다.
“그것은?!”
“아니! 저하!”
“……?”
사나만 알아보지 못했지 쥬디스와 러네이는 즉각 알아보고는 이번에도 대단히 놀라워했었다.
아벨은 그러거나 말거나 그 갑옷을 몸에 장착시키기 시작한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그리고 마지막으로 용골검을 소환시켰는데.
착!
“……이럴 수가……?!”
거듭해서 놀라는 러네이의 모습에 실소를 흘리면서 말한다.
“그래. 용골검과 용혈갑이다.”
“……비트칸의 무구들……?”
“아는구나. 블랙 에이션트 드래곤 비트칸이 만든 무구라는 걸.”
모를 리가.
비트칸은 드래곤들에게도 전설적인 드래곤이었는데.
“……그런데 어떻게 저하께서…… 아! 아서의 무구라서?!”
쥬디스가 대신 대답한다.
“그래. 제국의 4대 황제 폐하의 무구였으니 당연히 저하께서 이어 쓰시는 게 맞는 거지.”
아벨도 덧붙인다.
“용혈갑은 용사의 무구인 백룡갑옷을 얻을 때까지만 쓸 생각이지만, 용골검은 아니다. 용골검은 훗날 유게네스를 얻게 되더라도 계속 함께 쓸 생각이다.”
러네이도 수긍하는 얼굴이다.
그 누구보다 용골검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긴 용골검은 유게네스와는 다른 뚜렷한 장점이 있으니…… 와…… 근데 진짜 저하는 도대체 언제까지 저를 놀라게 하시려는 건지…….”
그러면서 두근대는 자신의 가슴을 쥐어 잡는다.
“……저 그런데 한 번만 잡아 봐도 될까요……? 아주 잠깐만이라도……?”
드래곤임에도 유독 검을 좋아했던 러네이였다.
기대가 가득한 반짝이는 그 눈빛에 순순히 건네준다.
“그래. 봐봐라.”
선물을 받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한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건네받고선 꽤나 오랜 시간 용골검을 마치 눈에 각인시키겠다는 듯이 아주 자세히 바라본다.
그때 러네이의 새파란 눈동자에 아주 잠깐이지만 탐욕이 일렁인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것이 아님을 깨닫고는 아벨에게 미련 없이 건넸다.
건네주면서 러네이는 아까의 기대에 찬 눈빛과는 아주 다른, 속을 알 수 없는 복잡한 눈빛을 보인다.
‘용골검이 드래곤을 죽이는 검이라 그렇겠지.’
돌려받으며 말한다.
“그럼 출발하기에 앞서 이곳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교수님껜 이미 말씀드렸었지만 이곳에선 물리 공격이 거의 통하지 않는 슬라임과 아이스 골렘, 레이스, 그리고 마지막엔 최종 보스 격인 라이칸스로프 다섯 마리를 만나게 될 것이다.”
아벨에 말에 이번 역시 대단히 흥미롭다는 듯이 러네이가 묻는다.
“라이칸스로프? 꽤나 재밌는 것도 나오네요? 용사의 무구가 있어서 그런가?”
확실히 대단히 희귀한 마물이었다.
“그래. 대단히 희귀하기도 하고 까다로운 마물이지. 나와 교수님만 있었다면 조금 귀찮았겠으나 너와 사나가 있어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겠구나.”
물론 아벨은 일단은 그것들과 혼자 싸워 볼 생각이었다.
혼자 그 다섯 마리의 라이칸스로프들을 상대해보고, 정 안 되면 그때 도움을 받아도 늦지 않았던 것이었다.
‘흑풍흡검과 뇌전마검, 그리고 순간이동이 있으니 나 혼자로도 가능해.’
그런 아벨의 속마음을 모르는 러네이는 아벨에게 윙크를 하며 말한다.
“그러니까 고마워 하라구요.”
“지금도 고마워하고 있다만.”
“역시 우리 저하 말을 참 착하게 잘해.”
그러면서 살갑게 다가오려는데, 그때 사나가 그 움직임을 끊는다.
아벨과 러네이의 그 좁은 틈을 기어코 비집고 들어와, 마치 아기 새처럼 아벨을 올려다보며 묻는다.
“그런데 저하께서는 공격 마법도 가능한 건가요?”
진심으로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침착하게 대답한다.
“……어느 정도는.”
러네이도 이번만큼은 정말 의외였는지 그저 헛웃음을 흘리며 뒤로 빠진다.
사나는 러네이에게 아벨과의 대화를 넘겨주지 않기 위해 재차 질문한다.
“어떤 마법이요?”
“이따 보면 알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조금 창피하기도 하군.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많이 부족해서 말이지. 그러니 사나. 이따 비웃지 말아라.”
“뭐. 네. 그래요.”
그 새초롬한 모습이 대단히 귀엽다고 생각한다.
훗―
그리고 사나가 아까와 같은 울분에 찬 모습은 아니어서 차라리 이게 다행이라고도 생각했고.
하지만 또다시 예상치 못 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사양이었다.
그래서 다급히 동료들에게 말을 한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출발하자. 나와 러네이가 앞장서고 사나가 중앙, 교수님께서는 후방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에 모두 결연한 눈빛으로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 * *
아벨도 길을 제대로 알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던전 가장 깊숙한 곳에 절대방패 파니츠가 보관되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던전 초반부라 그런지 슬라임들만 나왔었다. 그 슬라임들이 사방에서 뜬금없이 나타나 몸을 늘려 공격했다.
수욱―
물론 아무리 뜬금없을 때 공격한다 하더라도 일행의 반응이 훨씬 빨랐었다.
공격을 받자마자 러네이가 물빛 오러를 두른 검으로 처참하게 박살을 낸다.
콰직―!
슬라임 같은 경우 딱히 마법이 필요 없었다. 오러를 두른 검으로도 쉽게 없앨 수 있던 것이었다.
그래서 아벨과 러네이의 검으로 어렵지 않게 던전 초반부를 헤쳐나가고 있었다.
휘익― 휘익― 휘익―
콰직―! 콰직―! 콰직―!
아벨과 러네이의 검의 범위를 피해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땐 쥬디스의 마력광선에 몸이 터져나갔다.
피슝―
펑―!
러네이가 터져나가는 슬라임을 바라보며 지루해 죽겠다는 듯이 묻는다.
“여기 던전은 며칠짜리에요?”
벌써 던전에서 이틀을 보냈다.
“최소 1주일은 걸릴 거다.”
소설에선 아벨 혼자서 2주 걸렸으니까 말이다.
“1주일이면 뭐 금방이네요.”
“줄일 수 있다면 더 줄이는 게 좋다. 그래야 여유를 갖고 돌아갈 수 있거든.”
“뭐 급한 일 있어요?”
“나와 사나가 루드스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교수님도 루드스에서 강의를 하시고 말이다. 그러니 방학 끝나기 전에는 돌아가야겠지.”
“오! 루드스!”
“왜? 관심이 있느냐?”
휘익―!
콰직―!
날아오던 슬라임을 대충 휘둘러 죽이며 말한다.
“네! 저도 들어가고 싶어요!”
휘익―
콰직―!
아벨도 날아오던 슬라임을 대충 휘둘러 죽이며 대답한다.
“좋다. 학비는 내가 내주지.”
“오오― 역시!”
아벨 입장에서 루드스에서도 러네이와 가까이 지내면 좋았었다.
앞으로 하베츠가 어떻게 아벨을 공격할지 몰랐기에 말이다.
“흥!”
물론 사나에게는 그 결정이 대단히 만족스럽지 못한 것 같았지만.
러네이는 사나의 그 귀여운 콧방귀를 가볍게 무시하고 묻는다.
“그런데 거기 막 나이 제한 있는 거 아니죠?”
“왜? 너는 매우 어려 보인다만?”
“제가 생각보다 나이가 많거든요. 동안이어서 그렇지.”
“그래?”
“네. 저 스물다섯이에요.”
그 말에 사나가 놀랐다.
“허얼―”
아벨은 피식 웃으며 말한다.
“확실히 동안이긴 하군. 스물다섯이면 괜찮다. 나이 상관없이 서른 전에 졸업만 하면 되니까.”
“그럼 딱 맞네요! 그런데 제가 가면 저하와 같은 반인 건가요?”
그녀에겐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았다.
“아마도 그렇게 되겠지. 아. 저번에 너와 싸운 그 녀석도 같은 반이다. 그리고 그때 함께 있었던 여자아이도 같은 반이고.”
“헤에― 그 재수 없는 새끼도요? 이거이거 그럼 시작 전에 한번 제대로 손을 좀 봐줘야겠는데요?”
휘익―!
콰쾅―!
그렇게 말하며 날아오는 슬라임을 살벌하게 박살 냈다.
“봐줘라. 나름 귀여운 구석이 있는 녀석이니.”
“저하 그렇게 자꾸 봐줬다간 버릇 잘못 든다구요. 진짜로요. 그리고 버릇 잘못 들면 자기가 진짜 잘난 줄 알고 시도 때도 없이 깝칠 수도 있구요. 아오 별것도 아닌 것이.”
“훗― 그건 이미 늦은 것 같다만.”
“아오! 내가 루드스에 좀만 일찍 갔어도 군기를 제대로 잡는 건데!”
구오오오오오―
그때였다.
전방에 수십의 아이스 골렘이 나타난 것이었다.
아이스 골렘은 이 던전에서 물리적 공격이 그나마 통하던 마물이었다. 다시 말해 이 던전에서는 타격감이 가장 좋은 마물이었던 것이었다.
이제야 뭔가 제대로 전투 같은 전투를 치를 수 있게 됐었다.
‘드디어!’
그리고 드디어 본격적인 던전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었고 말이다.
아벨은 아이스 골렘을 보자마자 더는 참지 못하고 튀어나가며 말한다.
“아무튼 난 몸 좀 풀어야겠다.”
러네이는 참지 못하고 튀어나가는 아벨을 바라보며, 아벨의 실력도 다시 한 번 좀 볼 겸 이번엔 양보하기로 한다.
‘나도 좀이 쑤셔 죽을 것 같지만. 이번 한 번은 양보할게요. 저하. 그러니 이번엔 좀 제대로 보여주시길.’
아무리 생각해도 저번 자객 습격 때 아벨이 본 신력을 보이지 않은 것 같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용골검과 용혈갑을 보니 자신의 그 생각이 확실한 거 같았고.
‘제대로 힘 좀 써 볼까?’
사실 아벨도 안 그래도 이제부터는 본 실력을 드러내려고 하고 있었다.
이제 모두가 맹세의 마법으로 묶인 한 팀이니 굳이 본연의 힘을 숨길 필요가 없던 것이었다.
파지지지직―!
우우우우웅―!
9성 마력이 터져 나오며 뇌기가 뒤섞인 오러가 던전을 환히 밝힌다.
“오오!”
“역시!”
“……?!”
세 사람 다 아벨의 오러에 감탄하던 그때.
그때 아벨의 일검이 맨 앞에 멀뚱히 서 있던 아이스 골렘을 내려친다.
콰콰콰콰쾅―!
아이스 골렘이 뭘 하기도 전에 뇌기가 터져나가며 박살을 낸다.
구우우우우―
부우웅―!
친구가 부서지자, 뒤에 있던 아이스 골렘이 친구의 박살 난 몸 사이로 엄청난 마력을 품은 주먹을 아벨을 향해 휘둘렀다.
‘수련이나 할까?’
아벨은 그 마력을 품은 주먹을 부수기보다는 용골검의 특수 기능인 마력 흡수를 수련할 겸, 먼저는 그 마력을 용골검으로 흡수했다.
수아아악―!
“마력 흡수!”
그리고서 마력이 흡수돼 순식간에 빈약해진 골렘의 주먹을 용골검으로 내리쳐 부순다.
콰콰콰쾅―!
“……?!”
사나와 쥬디스, 두 사람은 용골검이 마력을 흡수하는 장면에 대단히 놀라워했었다.
하지만 러네이는 아니었다.
그저 덤덤히 바라볼 뿐이다.
‘당연하겠지만 변하지 않았네.’
사실 러네이는 예전 유희 때 아서를 보았던 것이었다. 심지어 아서와 직접 붙어보기도 했었고 말이다.
그래서 러네이는 용골검의 무서움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확실히 아벨이 유게네스뿐만 아니라 용골검도 보유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라 하겠다.
* * *
“뭐? 모두 다 죽은 거 같다고?”
“네. 황태자 저하. 그리고 아벨 황자를 놓친 거 같습니다.”
진심으로 황당해하며 되묻는다.
“그게 말이 돼? 9성 검사 다섯에 8성 검사 스물다섯이었는데?”
하베츠는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놀랐었다.
아무리 9 서클 대마법사가 그들 가운데 있었다고 하더라도, 고작 4명이 9성과 8성 검사가 섞인 30명을 이기리란 불가능한 것이었다.
심지어 그 파티엔 어린 여자가 둘씩이나 있었고 말이다.
“쥬디스 말고 누가 또 함께했다고 했었지?”
“러네이 코널리라고 코널리 남작가의 막내딸과 미스라임의 사나 공주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사나 공주야 별거 없을 거고. ……혹시 마령대가 뒤따른 건가?”
“마령대의 움직임은 저희가 포착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때 하베츠의 머릿속으로 무언가 번쩍이며 떠올랐다
“러네이 코널리, 그년에 대해 조사해 봐. 분명 그년에게 뭔가가 있을 거다.”
“네. 황태자 저하.”
부복하고 나가는 부하를 바라보며 하베츠는 솟구치는 화를 억누르기 위해 애써 씨익― 미소를 짓는다.
“하! 정말 운 좋은 새끼잖아?!”
정말 이렇게까지 운이 좋은 새끼는 처음 봤었다.
러네이라는 여자는 유게네스를 보러 갔다가 정말 우연히 만났다고 했었다.
그리고 아벨이 그 반반한 얼굴로 꼬셨는지 어쨌는지, 러네이 그년이 별 이유 없이 그냥 아벨을 따라다니는 거 같다고 했었고.
‘카시드를 봐주는 거 같다고 했다라.’
정말 만에 하나 변수가 이 러네이라는 년이라면.
8, 9성급으로 이루어진 살수 30명을 죽이려면 최소 10성이라는 이야기였다.
20대 초반으로 보인다고 했었다.
‘그 어린 년이 10성이라고? 드래곤인가?’
인간 같지 않은 외모를 갖고 있다고도 했었다.
종합해보니 충분히 의심해 볼 만했다.
‘드래곤이 한 편이 된다라.’
굉장히 귀찮은 일이 될 거 같았다.
‘절대 드래곤이 아니길 빌어야겠군. 드래곤 같은 건 함부로 건들 수 없으니.’
자신이 황제가 되기 전에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걸림돌이 될 만한 것들을 만들어선 안 됐다.
‘빌어먹을 그럼 그냥 황제부터 죽여야 하나?’
형제들은 솔직히 자신이 황제가 되는 것에 별문제도 안됐다.
아벨 같은 경우에도 그저 자신보다 나은 것 같은 인상에 미치도록 꼴 보기 싫었던 것일 뿐.
“그래…… 황궁에서도 못 죽였었는데…… 지금이라고 쉬울 리 없겠지…….”
세상에 쉬운 게 없다는 걸 일찍이 깨달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완벽을 기하려고 했던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완벽하게 끝낼 상황이라고 생각한 것들이, 하나씩 어그러지고 있었다.
“……마족으로도 못 죽이고…… 마물 천 마리로도 안 되고…… 살수 30명으로도 안 된다라…… 휴……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아벨…… 그럼 이제 어떻게 해줄까…… 이 갈아 마셔도 좋을 내 사랑스런 동생아…… 응……?”
오랜만에 피를 거꾸로 쏟게 하는 고마운 동생 덕분에 살아있다는 느낌을 진하게 받던 하베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