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화
62화. 우연한 만남(3)
쥬디스가 안내하는 ‘눈꽃 여관’은 셀토스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건물 외관부터가 깔끔했기에 내부도 기대할 수 있었다.
여관 가까이 다가가 멈추자 똘똘하게 생긴 어린 소년이 두 사람에게 꾸벅 허리 숙여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눈꽃 여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래. 수고하는구나.”
말에서 내려 인사하던 소년에게 고삐를 맡긴다.
그리고 팁으로 1골드를 준다.
“앗! 에에엑!”
1골드에 턱이 빠질 것만 같은 소년 종업원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맛있는 거 사 먹으렴.”
그리고는 곧장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확실히 쥬디스의 말대로 건물 내부도 적당히 넓고 깨끗했다.
“눈꽃 여관에 어서 오세요!”
안에선 밖의 소년처럼 똘똘하면서도 발랄한 소녀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
“큰 방 하나 부탁할게.”
그러면서 팁으로 또 1골드를 주었다.
역시 반응 또한 똑같았다.
“헤에에엑― 이렇게나 많이!”
그래서 아벨도 똑같이 말한다.
“맛있는 거 사 먹으렴.”
“감사해요오! 그럼! 그럼 저를 따라오셔요!”
팁으로 1골드나 받았기에 소녀는 여관에서 가장 크고 좋은 방으로 안내했다. 충분히 이곳에서 지낼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얼마나 지내실 거예요?!”
“하루. 아 그리고 아침 식사를 준비해 주렴. 여기서 가장 잘하는 거로.”
“네에엡! 그런데 밑에서 드실 건가요?!”
“그래. 밑에서 먹을게.”
“네엡! 그럼 10분 뒤에 내려오셔요!”
그리고는 해맑게 웃으며 꾸벅 인사하고 내려간다.
아벨과 쥬디스는 딱히 정리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바로 내려갔다. 쥬디스는 답답하다며 후드를 벗었지만 아벨은 후드를 굳이 벗지 않는다.
내려가서 자리를 잡고 러네이를 기다리고 있는데.
“사나 공주 저하?!”
소녀의 놀란 외침이 한가로웠던 눈꽃 여관에 요란스럽게 울려 퍼졌다.
“……?”
바로 뒤따라 출발한 러네이보다 사나가 먼저 도착한 것이었다.
그것도 언제라도 바로 떠날 수 있게 완벽한 여행자 복장으로.
그리고 마령대원이자 옵타티오 교수인 빌하츠가 사나와 함께하고 있었는데.
“아니! 아벨 저하께선 이곳엔 어쩐 일로?!”
뻔뻔하게도 전혀 모르는 척 물어왔다.
속이 뻔히 보이는 그의 말에 아벨과 쥬디스는 헛웃음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허허허―!”
피식― 웃으며 말한다.
“일단 여기 앉아라.”
두 사람에게 자리를 내줬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순순히 와서 앉았다.
‘역시 달라지는군…….’
사나는 소설과 달리 이젠 좀 과감하게 나가는 듯했다.
물론 케이에 비해선 여전히 부끄럼이 많았었지만.
“사나, 네가 이곳엔 어쩐 일로?”
그런데 사나가 아닌 종업원 소녀가 소리쳤다.
“헤에에엑―!”
공주에게 존칭 없이 이름만 불러서일 것이었다.
이내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닫고는 그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입을 막고선 고개를 푹 숙인다.
“죄, 죄송합니다!”
소녀에게 다정히 웃으며 말한다.
“아니다. 괜찮다. 그것보다 여기 주인을 좀 불러다오.”
“네, 넵! 잠시만요! 아버지이이이!”
그렇게 소녀가 떠나고 나서야 사나가 그 작고 예쁜 입을 연다.
“여기는 미스라임이에요. 제국이 아니라. 저희도 이곳 싱벨리어 대설원에 숨겨진 던전이 있다는 정보를 얻어 이동하는 거라구요.”
“그래?”
“네.”
“그럼 싱벨리어 대설원 어느 방향으로 갈 생각인데?”
차갑게 흘겨보며 묻는다.
“그건 왜 묻죠?”
“같은 방향이면 같이 갈까 해서 말이지.”
그 말에 빌하츠가 옳다구나 하고 소리쳤다.
“오! 그거 좋은 생각이십니다!”
사나는 그런 빌하츠의 격한 반응에 민망한지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때 때마침 주인인 듯한 턱수염이 덥수룩하고 후덕해 보이는 자가 헐레벌떡 나타났다. 나타나자마자 넙죽 부복하며 말한다.
“공주 저하를 뵙사옵니다!”
사나가 그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는다.
그런데 사나 대신 아벨이 주인에게 말한다.
“이미 있는 손님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적어도 내일까진 러네이라는 은발의 여자를 제외하고는 손님을 받지 말아라.”
“아! 네, 넵!”
“받아라.”
휙―
그리고 100골드를 줬다.
“아, 아니! 이렇게나 많이!”
쥬디스가 틱틱거리며 말한다.
“그러니 각별히 신경 쓰라고. 그리고 저하께서 말씀하신 은발의 여자를 돌려보내는 실수는 절대 하지 말고. 그럼 정말 큰일 날 거니까. 알겠어?”
고개가 땅에 처박힐 정도로 숙이며 소리친다.
“네, 네넵! 걱정 마시지요! 그럼 2분 식사도 더 준비할까요?!”
사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어쩌겠느냐? 먹겠느냐?”
그 물음에 새초롬하게 대답한다.
“뭐. 네.”
사나의 대답을 들은 후 귀여워서 피식 웃으며 주인에게 말했다.
“그래. 두 사람 더 준비하도록.”
“알겠습니다! 금방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쏜살같이 떠나는 주인이었다.
주인이 떠나고 아벨은 사나에게 다시 한 번 더 묻는다.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
“알아서 뭐하게요?”
“말하지 않았느냐. 같이 가면 좋겠다고.”
“저하는 어디로 가시는데요?”
“우린 북쪽으로 간다.”
그 말이 나오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빌하츠가 방정맞게 소리친다.
“어?! 우리도 북쪽으로 갑니다만!”
빌하츠의 말에 쥬디스가 껄껄― 비웃는다.
그리고 사나는 그 방정맞은 빌하츠가 원망스럽다는 듯이 흘겨봤고.
그 시선에 빌하츠는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멋쩍게 말한다.
“하하…… 그게 그냥 같이 가면 좋을 거 같아서…….”
아벨은 이제 협상을 할 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네?”
빌하츠는 무시하고 사나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말한다.
“사나 너만 가능하다. 우리와 같이 가는 건. 내가 가는 던전은 정원이 정해져 있거든.”
“몇 명인데요?”
“4명.”
아벨의 말에 빌하츠는 그럼 왜 나는 제외되냐는 듯이, 정말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아벨에게 호소한다.
“그렇다면 저도 같이 갈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저도 꽤나 도움이 될 텐데요?!”
그때였다.
“그건 안 돼요. 거긴 제 자리거든요.”
은발의 엄청난 미인이 나타난 것이었다.
바로 러네이였다.
그녀의 등장에 사나와 빌하츠는 놀라면서도 당황스러운 얼굴이었다.
아무리 떠올려 봐도 미스라임 왕실에 저런 미인은 없었던 것이었다.
아벨이 정리를 위해 입을 연다.
“내 손님이다.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파티원이고 말이다. 빌하츠. 미안하지만 그녀가 너보다 강하기에 나는 그녀를 데려가겠다.”
* * *
결국 아벨과 사나, 러네이, 쥬디스만 가기로 했다. 빌하츠와의 협상이 잘 타협을 이루어 아벨의 계획대로 사나만 가게 된 것이었다.
그러면서 빌하츠에게 혹시나 마령대가 우리의 뒤를 쫓는다면 결코 용서치 않겠다고 말을 해두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까지는 따라오는 자들은 느끼지 못했었다.
그들은 순록 썰매를 타고 혹한의 눈 폭풍 속을 이동하고 있었다. 던전까지 3주 걸릴 거리였는데, 현재 2주가 지나고 있었다.
휘이이잉―! 휘이이이이잉―!
미스라임에서 대도시 밖은 눈 지옥이라 해도 다름없었다. 주먹만 한 눈발과 살을 에는 칼날 바람이 온몸을 베고 지나간다.
하지만 그러한 추위를 제외하고는 꽤나 순조롭게 나아가고 있었다. 아직 어떠한 자객이나 대형 마물을 만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물론 아벨은 그 순조로움에 대단히 불만스러워했었는데.
하지만 다행히도 역시나.
‘드디어.’
드디어 자객들이 습격을 시도한 것이었다.
쥬디스가 동행했다는 걸 알고는 확실하게 없애기 위해 꽤나 많은 자객을 보낸 거 같았다. 사방에서 아벨 일행을 향해 수많은 검격들이 날아왔다.
쎄에에에엑―!
휘이이이이잉―!
눈 폭풍에 숨어 날아온 검격이라 막기 쉽지 않았었다.
“꽤나 하는군요.”
하지만 쥬디스는 무려 9 서클 대마법사였으니.
위잉―
마력의 움직임을 파악하고는 곧장 마력장벽을 일행 전체에게 두른다.
콰콰콰콰콰콰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사방의 눈이 충격파에 의해 튀어 오른다.
“……?!”
에에우우우우우―!
그 굉음과 충격파에 순록들은 깜짝 놀라 울부짖으며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래서 바로 사나가 대처한다.
“착하지. 그만. 그만해. 자자. 그래. 착하다.”
에우우우우우…….
사나에 의해 이내 잠잠해진다.
능숙하게 순록의 흥분을 가라앉히는 걸 보니, 사나 역시도 미스라임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벨은 고갤 돌려 검격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본다.
“자객들이군.”
아벨의 말에 쥬디스는 옆에 뒀었던 스태프를 쥐었다.
“심심했는데 잘 됐습니다.”
러네이도 거든다.
“호오∼ 한 30마리 정도 되는 거 같네요. 이거 참 기대되는데요?”
검격의 세기를 보니 9성 네다섯에 대부분이 8성인 듯했다.
자객들의 수를 깨달은 세 사람은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가 번져나간다.
그동안 순록 위에서 이동만 해 좀이 대단히 쑤셔댔던 것이었다. 다들 말만 안 했을 뿐이었지 어서 좀 자객들이 나오길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헐…….”
사나는 무시무시한 적들에게 공격을 받았음에도 오히려 즐기는 듯한 이들을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바라봤다.
정말 이해가 안 됐지만 이들은 진심으로 지금의 순간을 즐기는 듯했다.
스릉―
그때 아벨이 발검을 하며 말한다.
“단 한 명도 살려둬선 안 된다. 우리에 대한 괜한 정보나 위치가 흘러나가지 않도록.”
“좋아요.”
“좋습니다. 맡겨만 주시지요.”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한번 자객들의 검격들이 쥬디스가 친 마력장벽을 두들겼다.
콰콰콰콰콰콰콰―!
적들의 2차 공격이 시작되자 아벨도 공격 개시를 알린다.
“그럼 계획한 대로 하자.”
쥬디스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대답한다.
“좋습니다. 바로 시작하시죠.”
러네이는 팔을 위로 쭉 피며 스트레칭을 하고.
“몸 좀 풀어 볼까나?”
반면 사나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걱정스런 눈으로 아벨을 바라볼 뿐이다.
“…….”
탓―!
아벨이 가장 먼저 썰매에서 튀어 올랐다. 그러자 곧장 러네이가 아벨을 쫓는다.
러네이의 역할은 아벨이 적들의 공격을 막아내면, 그 틈을 타 적들을 공격해 죽이는 것이었다. 러네이가 아벨보다 훨씬 강했기에 생각할 수 있었던 전술이었다.
파지지지지직―!
우우우우우웅―!
아벨은 러네이가 있기에 7성 마력만 쓰기로 했는데, 용골검에서 뇌기 어린 7성 오러가 터져 나온다.
자객들 중 하나가 아벨의 뇌기 어린 오러를 보고 소리친다.
“아벨 황자가 여기 있다!”
그 말에 모든 시선이 아벨에게 쏠렸다.
그리고는 동시다발적으로 아벨을 향해 사나운 아우라가 집중되기 시작했다.
“일을 쉽게 만들어 주는군.”
“……?”
휘익―
아벨의 첫 공격은 검을 횡으로 휘둘러 다수의 자객들을 두루 공격하는 것이었다.
물론 아벨도 그 공격이 통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러네이에게 다음 공격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려는 것일 뿐.
자객들도 아벨의 생각대로 그 검격을 ‘이 정도쯤이야.’ 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막거나 뒤로 피했다.
‘훗― 죽음을 자초하는군.’
그때 방심하는 그것들에게 무자비한, 반투명한 물빛 10성 검격이 덮친다.
반투명한 검격이라 그들은 순간 무언가가 자신들을 지나갔다는 걸 느낀 후, 그리고 1초 뒤 자신의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걸 깨닫는다.
휘리릭―
서걱―!
촤아아악―!
“으아아악!”
“뭐, 뭐야! 갑자기!”
단 일검에 세 명의 자객이 죽어 나갔다.
반으로 잘려 쓰러지는 동료들을 본 자객들 사이에서 당황스러움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간다.
그 일검을 보고 아벨은 확신한다.
‘역시 러네이를 이용해야 해.’
아벨이 7성 마력을 유지하는 이상 이들을 일격에 죽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었다. 그러니 적들을 러네이를 통해 죽여야만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