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화
51화. 첫 번째 만남(1)
검사부 지도 대련장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었음에도 계속해서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어?! 검사부 부장이다!”
“학생회장도 함께야!”
“이제 시작하는 건가?!”
검사부 부장인 클라우스와 학생회장 쥴리아가 다가가자 그 구름 인파가 검사부 부원들에 의해 홍해 갈라지듯 좌우로 쫘악 갈라졌다.
“비켜라!”
“어서 물러나! 어서!”
클라우스는 대련장 한편에 서서 친구들과 시시덕거리고 있는 잭슨을 바라보며 격한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선 원예부원들에게 둘러싸여 걱정 어린 말들을 듣고 있는 덤덤한 표정의 아벨을 바라보며 깊은 동정을 느꼈었고.
클라우스는 제국인이 아니었기에 더욱 아벨이 불쌍해 보였는지도 모른다.
‘정말 7성일까?’
클라우스 역시 대단한 재능을 지닌 검사였기에 아벨의 성취가 그 누구보다 궁금했었다.
‘16살에 7성이라. 말도 안 돼.’
21살인 본인은 이제야 8성 중반 단계였었다.
그것도 100년에 한 번 나올까 한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었는데.
‘두고 보면 알겠지.’
잭슨 저자도 8성 중반인 듯했다.
그때였다.
“부장님. 부르셨습니까?”
죠슈아와 크리스찬이 온 것이었다.
크리스찬은 죠슈아와 같은 3학년으로 훗날 클라우스와 함께 7인의 성검사에 들어갈 자였다.
“그래. 너희들은 내 곁에 있다가 불미스런 일이 생길 거 같으면 나와 함께 공격을 막아라.”
“네. 알겠습니다.”
대답을 듣고는 대련을 시작시킨다.
“칸. 진행해.”
“네.”
칸이라 불린 자가 대련장 위에 올라가 소리친다.
“갑작스레 지도 대련이 잡히게 됐는데! 부디 불미스러운 일이 없으셨으면 합니다! 만약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게 된다면 저희 검사부원들이 직접 제재토록 할 터이니! 그 점 유의해 주시고 지도 대련을 하시는 분들은 지금 대련장 위로 올라와 주시면 되겠습니다!”
두 사람 다 대련용 갑옷 정도만 입고 올라왔다.
그리고 한 검사부원이 무인검 두 자루를 들고 와서, 칸이 그 검들을 받아 두 사람에게 나눠줬다.
“그럼. 좋은 지도 대련이 되셨으면 합니다.”
칸의 덕담에 잭슨이 비웃으며 조롱한다.
“과연 일검이나 받아낼 수 있을지. 딱 보니 코 밑에 수염 한 번 안 나신 거 같은데.”
아벨도 그 조롱을 조롱으로 받아친다.
“너처럼 코 밑에 추잡하게 날 거라면 안 나는 게 낫지 않나?”
그러자 잭슨은 그 말에 발끈해 당장에라도 달려들려 했다.
“뭐? 이게 좋게 얘기하니까!”
칸이 다급히 두 사람을 말린다.
“그만! 그만들 하십쇼!”
그러면서도 그냥 빨리 시작하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아무튼! 아까 말씀드린 대로 너무 과열된다면 우리가 직접 막으러 올라올 테니! 그렇게들 아시고 그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
시작을 알리는 외침과 함께 관객들의 우레와 같은 환호 소리가 사방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곳곳에서 응원의 소리들도 터져 나왔는데, 주로 여자들은 아벨을 응원했다.
“아벨 저하 힘내세요!”
“우리 루드스의 남신 화이팅!”
“건방진 잭슨은 죽어라!”
“어딜 감히 우리 아벨 저하께!”
“우우우우―! 잭슨! 우우우우우우―!”
그에 대항하듯 남자들은 잭슨을 응원한다.
“잭슨! 계집애 같은 저하신데 너무 세게 하지 마! 살살 하라고!”
“살살은 무슨! 잭슨 무조건 이겨라! 무조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래! 살살은 무슨! 전력을 다해 짓밟으라고!”
“맞습니다! 선배님! 남자들을 대표해서 꼭 이기셔야 합니다! 꼭 말입니다!”
“필승! 잭슨 선배님! 필승!”
“선배님! 진짜 사나이의 검술을 보여 주십쇼!”
그 외에 중립의 입장인 관객들도 많았었는데, 다들 굉장히 흥분해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아벨 저하의 싸움을 보는 건가!”
“들었어?! 흑풍흡검?! 전설의 검술 말야! 전쟁의 신 아서 폐하의 검술! 그 사장된 검술을 아벨 저하께서 쓰신다면서?!”
“그래! 내가 말했잖아! 아벨 저하께서 그 검술을 쓰신다고! 진짜 이건 꼭 봐야 해! 진짜 지린다고!”
“이거 기저귀 사야 하는 거 아냐?!”
“으이그! 이 바보야! 그런 건 미리 차고 왔어야지!”
루드스의 학생들뿐만 아니라 놀러 온 다른 아카데미 학생들도 아벨의 무용에 대해 마치 신화 듣듯이 들어왔던 것이었다.
이번에도 뭔가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를 써줄 거라는 기대감에 다들 들떠 있었다.
우우웅―
우우웅―
둘 다 곧장 오러를 둘렀다.
잭슨은 나이가 많아 보여 그렇다 쳐도 저 어려 보이는 황자가 어렵지 않게 오러를 두르자 모두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제법이군.”
아벨은 이제부터 저 녀석의 도발에 반응하지 않기로, 시합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7성의 마력만 써서 이겨야 한다라. 이거 또한 큰 시험이군.’
큰 시험이지만 분명 매우 재밌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잭슨. 기대하겠다.’
그때 다른 누군가도 나무 그늘 밑에 서서 그 시험을 매우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인피면구人皮面具를 쓰고 오랜만에 찾은 아카데미였다.
심복이 적당한 놈을 잘 구슬려 올린 모양이었다.
‘그래. 너무 차이 나도 재미없지.’
수련을 멈추고 올 정도였는데, 너무 싱겁게 끝나도 화가 많이 날 것이었다.
‘아벨. 네가 어떻게 노망난 노인네의 맘을 빼앗았는지는 모르겠다만 부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비릿한 미소가 입가에 걸린다.
오러의 농도를 보니 적당히 기대해도 될 듯했다.
그때 때마침 두 사람의 검격이 맞부딪히고 있었다.
콰콰콰콰쾅―!
두 검의 충격파와 함께 굉음이 퍼져나간다.
지지지지직―!
아벨은 잭슨의 검을 7성 중반의 오러로 받아쳤다. 그래서 그런지 뒤로 검과 함께 밀렸다.
‘조금 밀리긴 하는군.’
잭슨이 아벨이 자신과 크게 차이가 없다는 걸 이미 들어 알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전력을 다한 결과였다.
콰쾅―! 콰콰콰쾅―!
두 사람 다 처음엔 서로 단순한 휘두르기로 탐색전을 펼쳤다.
쎄에엑―!
콰콰쾅―!
‘역시 검술 명가라는 건가?’
아벨의 감탄대로 잭슨은 역시 검술 명가의 자제답게 굉장히 깔끔한 휘두르기와 막기를 선보였다.
끼이이익―!
그리고 이번엔 아벨의 검을 흘림과 동시에 검을 올려쳐 아벨을 공격한다.
쎄에엑―!
아벨도 그 올려치기를 반 발짝 움직여 아슬하게 피함과 동시에 몸통 박치기를 해 밀어낸다.
콰쾅―!
잭슨은 밀려나면서도 아벨이 더는 접근 못 하도록 검을 횡으로 휘둘러 아벨의 이차 공격을 막아내고.
와와와와와와와―!
관객들은 나이에 비해 그 수준 높고 속도감 있는 움직임들에 환호를 하지 않을 수 없던 것이었다.
자기들도 모르게 감탄을 쏟아낸다.
“와 개쩔어! 진짜 소문대로잖아?!”
“맞아! 난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그니까! 저게 어딜 봐서 갇혀있던 사람의 모습이야?!”
“이거이거 황태자 저하나 다른 황자 저하들께서 긴장 좀 타셔야겠는걸?!”
누가 봐도 아벨은 확실히 뛰어나 보였다.
휘익―
파지지직―!
검을 가볍게 휘둘렀음에도 그 검격에 뇌기가 섞이니 결코 가볍게 볼 수 없었다.
잭슨도 자신이 마력의 세기만 앞서지 검술에 관해서는 아벨에게 한 수 아래라는 것을 검을 마주하면 할수록 깨달을 수 있었다.
‘제길!’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두 사람의 검이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아벨의 노련한 운영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하베츠는 그 광경을 보며 굉장히 언짢아졌다.
‘하하…… 이거 참 재밌는 녀석이었군…….’
아벨이 재능이 있는 걸 알았으나 이 정도까지라고는 생각 못 한 것이었다. 이번에 9성 검사가 아닌 일부러 8성 검사 잭슨을 붙인 이유는 그 미묘한 검술의 차를 보고 싶어서였다.
성녀 다프네를 통해 엄청난 마나를 자신보다 많이 받아들였다고 듣긴 들었었다.
‘……정말 피가 끓게 만들잖아…….’
요즘 좀 지루하다 했었는데 적당한 자극이라고 느껴지긴 했었다.
‘……내가 그동안 너무 허술했군…….’
하베츠가 아벨을 갈가리 찢어 죽일 듯한 살기 짙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아벨은 의외의 상황에 당황하고 있었다.
‘이거 참 이러면 나가린데.’
아벨은 적당히 한다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상대가 허둥대자 오히려 당황하고 있는 쪽이었다.
‘확실히 미스라임에서의 전투가 엄청나게 도움이 됐어.’
아무리 약한 마물 따위라고 하더라도 약 천 마리나 됐었다. 그리고 일부러 맞아주다가 몇 번은 정말 죽을 뻔하기도 했었고 말이다. 그렇다 보니 그 잠깐 사이에 엄청나게 검술이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검술이 늘어서인지, 아니면 상대가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인지 조금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정말 지도 대련이군.’
확실히 상대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기분이었다.
‘……분명 누군가가 내 실력을 보기 위해 일부러 보냈었군. 하베츠인가?’
그때 잠시 주변을 살폈었는데, 나무 그늘 밑에 서 있는 남자와 눈이 딱 하고 마주쳤다.
“……?”
그래서 그에게 천혜안을 쓰려고 했는데.
“감히! 한눈을 팔아?!”
쎄에엑―!
당장에라도 목을 자를 듯한 휘두르기를 검을 올려쳐 막아낸다.
콰쾅―!
서로 밀려나면서도 상대를 향해 검격을 날렸었는데, 정확히 상대와 똑같은 휘두르기로 검격을 막아냈다.
그렇게 상당히 오랫동안 단순하고도 지루한 공방이 또다시 이어진다.
잭슨은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오러의 빛도 연약해지고 숨도 가빠 옴을 느낀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제기랄!’
아무리 자기가 상대의 성취를 보기 위해 왔다 하더라도 이건 굴욕이었다.
아벨은 예의 평온한 상태 그대로였던 것이었다.
누가 8성 검사고 누가 7성 검사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사실 아벨도 상대에 맞춰 오러의 색을 옅게 만들었었는데, 하지만 숨까지 가쁘게 할 생각은 없었다.
아벨은 이쯤 하면 됐다는 생각이었다.
검을 바닥에 던지면서 말한다.
휙―
쨍깡―
“좋은 대련이었다. 너에게 감사를 전하지.”
잭슨도 전과는 다르게 정중히 허리를 굽히며 예를 갖춘다.
“제 무례를 용서해 주시지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래. 용서하겠다.”
둘의 대화가 끝나자 칸이 올라와 대련이 끝났음을 밝힌다.
“아벨 저하와 잭슨 선배님의 지도 대련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이후에는 저희 검사부에서 지도 대련을 할 예정이니 원하시는 분은 접수처로 오시길 바라겠습니다!”
* * *
잭슨과 그 친구들은 홀연히 떠나서 루드스 내에서 더는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하베츠였을까?’
그 나무 그늘에 서 있었던 남자가 계속해서 거슬렸다.
‘확실히 지금 시점에서 만난 적은 없었어.’
소설에서 1학년 축제 때 하베츠를 만난 적은 없었다.
‘뭐 상관은 없다만.’
뭐 물론 지켜보러 왔다고 하더라도 상관없긴 했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이만 하려나.’
임팔라 같은 원예부원들은 오돌오돌 떨면서도 아벨이 별문제 없이 훈훈하게 마무리 짓자, 갑자기 긴장감이 확 풀려서 그런지 어디 움직일 여력조차 없는 듯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리나가 의견을 제시한다.
“……오늘은 그냥 다들 기숙사에서 쉬고 내일부터 제대로 노는 거 어때……?”
리나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남은 두 선배 셀마, 멜라니가 동의한다.
“……좋아…….”
“……나도 좋아…….”
하지만 케이, 로디아, 사나는 아닌 듯했다.
적극적인 케이는.
“저하! 저하도 들어가서 쉬실 거예요?! 설마 아니시죠?! 그쵸?!”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었으니 충분히 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아벨은 들어가서 다시 수련하고 싶었다.
그리고 아벨과 비슷한 생각인 리나가 정말 너넨 대단하다는 얼굴로 케이를 바라보며 작별을 고한다.
“……저희는 도저히…… 아무튼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다들 재밌게 노세요…….”
다른 두 선배도 이어서 작별을 고한다.
“……내일 봐요…….”
“……먼저 이만…….”
그렇게 세 사람이 떠나고 아벨과 세 소녀만 남았는데.
“…….”
케이가 재차 아벨을 압박해가며 묻는다.
“배 안 고프세요?! 밥은 먹어야죠! 우리 돌아다니면서 맛있는 거 사 먹어요!”
식당가면 맛있는 거 많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축제의 묘미는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 파는 군것질거리들이었으니.
적극적인 케이와는 달리 로디아는 먹이 주는 어미 새를 기다리는 아기 새처럼 아벨을 오매불망 바라보고만 서 있었고, 사나는 싫은 척하면서도 힐끗힐끗 아벨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