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화
49화. 과소평가(2)
“윌리엄 저하. 아벨 저하께서 지금 또 원예부원들하고 밖에서 술을 드시고 계십니다.”
“……?”
그 말에 집행부실에 있던 모두가 반응했다. 모두가 고개를 돌려 보고를 한 검사부원을 바라본다.
윌리엄은 보고하는 검사부원에게 다급히 묻는다.
“케이 영애는?! 케이 영애도 함께 있어?!”
그 물음에 다른 집행부원들은 ‘뭘 또 당연한 걸 묻고 있나?’ 하는 표정을 짓는다.
보고하는 검사부원도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네. 케이 영애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윌리엄은 세르지와 이스마일에게 절절한 눈빛으로 간청한다.
“형님! 이스마일! 지금 당장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지금 당장 말이에요?!”
세르지는 그런 윌리엄을 더없이 한심하게 바라봤다.
“가서 뭐하게? 케이 그 애하고 떨어트려 놓으려고?”
정곡을 찔린 얼굴이다.
“그, 그건!”
“아서라. 교내에서 또 무슨 개 쪽을 당하려고.”
레이첼마저 세르지의 말에 동의하는 표정이다. 그 둘의 반응에 윌리엄은 금방 울상이 됐다.
그때 윌리엄의 구원자가 나타났으니.
환히 웃으며 윌리엄에게 말한다.
“윌리엄 저하. 제가 한 번 가 볼까요?”
“필리즈!”
필리즈는 레이첼과 같은 6성 중반 검사였다. 그리고 그녀 역시 아덴 왕실의 검술인 사자신검을 익히고 있어 결코 만만히 볼 여자가 아니었고 말이다.
“타네르 어때? 같이 가 보지 않을래?”
타네르도 흥미가 있는지 두 눈을 반짝였다.
“좋아요. 근데 우리가 가서 뭐하게요? 우리도 딱히 할 게 없을 거 같은데?”
“그냥 가서 어떻게 생겨 먹으셨길래, 이런 지대한 관심을 받으시는지 좀 보고 오려고 말이야. 적을 알아야 내가 이길 텐데. 이건 내가 알고 있는 적과는 너무 달라서 말이지.”
그렇게 말했음에도 세르지와 레이첼, 이스마일은 ‘굳이?’ 라며 탐탁지 않은 표정이다.
또한 윌리엄도 자신의 생각과는 조금 많이 다른 거 같아 더 탐탁지 않아 하는 표정이었고.
“흐음―”
그런 그들에게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괜찮다고 안심시킨다.
“걱정 마세요. 가서 그냥 대화 몇 마디하고 올 테니까요. 그리고 윌리엄 저하께서 아직 축제 때 있을 지도 대련 얘기도 안 한 것 같으니. 그것까지 하고 올게요.”
* * *
5월 중순이라 그런지 생기 있는 여름의 기운이 물씬 다가온 게 느껴졌다.
파릇파릇한 잔디 위에 돗자리를 펴고 준비해온 음식들과 술을 꺼내놓았다.
리나가 모두에게 말한다.
“이제 곧 축제란 말이죠. 우리 루드스는 어차피 전교생이 동아리에 들어가 있기에, 그래서 동아리에서 축제를 준비하고 있단 말이에요?”
케이가 물었다.
“언니. 원예부는 그럼 어떤 거 했어요?”
자기가 포장해서 말하기 전에 훅 들어온 케이 때문에 조금 당황해했다.
“으응? 우리는 뭐…… 그냥…….”
“그냥?”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그냥 주점 했어. 우리끼리 저 구석에서 포장마차 식으로 만들어서…… 그냥 우리끼리 먹고 놀았지 뭐.”
“아하 그래요?”
“응. 근데 이번엔 다를 거야.”
“어떻게요?”
리나는 두 눈을 매우 반짝였는데, 그 반짝이는 두 눈이 매우 매우 불길하게 다가왔다.
“우리 원예부에 이렇게 아리따운 세 여신과 남신께서 강림하셨으니.”
“안 된다.”
아벨이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딱 잘라 말했다.
“뭐, 뭐가요?!”
“뭐가 달라질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주점 하려고 한 거 아니더냐? 그러니 안 된다.”
“왜요?!”
“애기들 데리고 무슨 주점을. 그냥 찻집으로 하자.”
“네에?!”
다들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들었냐는 표정이다.
“허허…… 저하께서 저번부터 허허…….”
“저하 우리 동갑인데요?”
“저하 저는 제가 누나인데요?”
“제가 잘못 들은 건 아니죠? 그쵸? 여러분?”
애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아벨은 소신을 지키기로 한다.
“아무튼 안 된다. 찻집으로 하자. 원예부니까 주점보다는 찻집이 어울리는군. 맞아. 찻집이 좋겠어.”
그러면서 위스키를 마신다.
그 모습을 다들 진심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봤다.
“맞아. 원예부가 무슨 주점이야. 찻집이 낫네 확실히.”
홱―!
아벨을 제외한 모두가 홱― 하고 고개를 돌려 불청객을 바라본다.
“어?”
레이첼만큼이나 도도하고 예쁘게 생긴 여자 둘이 서 있었는데, 살짝 차이가 있지만 누가 봐도 자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사람은 닮아 보였다.
“안녕? 너희들 내가 누군지 알지?”
아벨은 즉시 두 여자에게 천혜안을 시전한다.
『이름 - 필리즈 우니베르스
정보 - 검술 강국 아덴의 제2 공주. 제국 아카데미 루드스 3학년. 6성 검사.』
『이름 - 타네르 우니베르스
정보 - 검술 강국 아덴의 제3 공주. 제국 아카데미 루드스 2학년. 5성 검사.』
‘아덴의 공주들?’
두 사람 다 여자치고 큰 골격에 상당히 강해 보이는 게 확실히 카시드의 누나처럼 보였었다.
‘윌리엄은 안 왔나?’
주위를 둘러보니 두 사람만 온 것 같았다.
‘흐음― 이러면 나가린데…….’
매우 아쉬워하는 아벨의 생각대로 아덴의 두 공주만 왔었는데, 필리즈가 윌리엄에게 같이 가면 될 것도 안 된다고 함께 가는 걸 한사코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대신 필리즈는 윌리엄에게 반드시 케이와 아벨을 떨어트려 놓겠다고 약속을 해야 했지만 말이다.
물론 필리즈는 그 약속을 전혀 지킬 생각이 없었다.
“여기 몇 명은 3학년 건물에서 본 것도 같은데?”
필리즈의 말대로 원예부 선배들은 3학년이어서 같은 학년인 필리즈를 즉각 알아보고 있었다.
“필리즈……?”
임팔라 같은 선배들이라 암사자와 같은 아덴의 두 공주를 보자마자 기가 죽어 허리가 쭈그러들었다.
“그래. 근데 우리도 껴도 될까?”
대답을 듣기도 전에 옆에 껴서 앉는다.
“너희들이 왜……?”
원예부 선배들은 필리즈와 타네르의 등장에 대단히 긴장한 듯했다.
그래서 아벨이 나서기로 했다.
“원예부원도 아니면서 어딜 끼려고 하나?”
주원은 소설에서도 이러한 일이 있었는지 떠올려 보고 있었다.
‘없어.’
아무리 떠올려 봐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 필리즈가 생긋 웃으며 묻는다.
“원예부원이면 끼워준다는 말인가요?”
피식― 비웃으며 대답한다.
“생각해 보지.”
“그럼 저 원예부에 들어갈래요. 어때? 타네르?”
예상과는 달리 망설임 없는 결정에 아벨은 얼굴을 잔뜩 구겼다.
“타네르가 아니라 우리에게 물어봐야지. 물론 너희들을 안 받아 주겠지만.”
어이없어하며 따져 묻는다.
“왜요? 왜 우리는 안 받아줘요?”
“내가 알기론 루드스에서 복수로 들 수 있는 동아리는 집행부밖에 없거든. 근데 너는 검사부이지 않은가?”
“저희 오늘부로 검사부 나왔는데요? 안 그래? 타네르?”
처음 듣는 얘기라 당황해하는 타네르였다.
“어, 어?”
동생이 당황하든 말든 아벨에게 계속 따져 말한다.
“우리 검사부 나왔다고요. 아벨 저하. 저하와 동아리 활동 같이 하려구요.”
그러면서 음흉하게 미소 짓는다.
그 모습을 보고는 적대감보다는 그저 기가 막힐 뿐이었다.
헛웃음이 절로 새어 나온다.
“허― 그래? 부장. 그렇다는데 어떤가? 막내 부원으로 받아도 되지 않겠나?”
아벨의 말에 리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되묻는다.
“막내 부원요?!”
아벨은 리나에게 대답하기보다는 필리즈와 타네르에게 이어 말한다.
“미리 말하지만 우리는 들어온 순서로 서열을 정한다. 나이와 학년 상관없이. 그러니 만약 너희들이 들어온다면 여기서 서열 최하위라는 것이지.”
서열 최하위라는 말에 싸늘해진 얼굴로 묻는다.
“바꿀 수 있는 건가요?”
“아니. 절대로.”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는데, 타닥타닥 스파크를 일으킨다.
한참을 서로를 노려보다 필리즈가 입을 연다.
“……막내는 뭘 하는 거죠?”
“청소해야지.”
“헐.”
원예부원 모두가 어이없다는 듯이 아벨을 바라봤다.
그렇게나 싫을까 하는 얼굴로.
“그리고 선배님들이 술을 많이 좋아하시니, 매일 술 채워 넣고. 안주 준비해놓고.”
“저, 저기…… 저하…….”
같은 학년인 리나는 필리즈의 악명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제 그만 장난쳐야 함을 깨닫는다.
“그래도 들어오고 싶은가?”
필리즈는 분노로 부들부들 떨었다.
이제는 오기로 버티는 것 같았다.
“……좋아요. 들어갈게요.”
“언니!”
“대신 저랑 대련 한 번 해줘요.”
“…….”
아벨은 얼굴에 굉장히 싫다라는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꾹꾹 참아내며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하던 필리즈였다.
리나는 양쪽의 양보 없는 자존심 대결에 굉장히 눈치를 보며 말을 한다.
“필리즈…… 그렇게까지 할 거 없어…… 저하께서 장난치신 거야…… 저하! 어서 말 좀 해줘요! 장난치신 거라구요! 우리 원예부에 막내가 어딨어요!”
가볍게 무시하고 필리즈를 바라본다.
“도대체가 이해가 안 가는군.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지?”
“저하와 꼭 한 번 대련해 보고 싶었다 할까요?”
소설에서는 축제 때 필리즈의 오빠였던 이스마일과 대련했었다. 그때 아벨은 엄청나게 심각한 부상을 입으면서 간신히 이스마일에게서 무승부를 얻어냈었다.
하지만 필리즈는 아니었다.
그녀와는 사실 딱히 연도 없었었다.
“안 들어와도 해주겠다. 그럼 됐나?”
“아니요. 그래도 들어갈래요.”
“난 자주 안 나오는데도 말인가?”
“뭐 저도 자주 안 나올 거예요. 아마도.”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는 필리즈를 가만히 노려본다.
“좋다. 하지만 오늘은 안 되겠군. 부원들하고 오늘만큼은 싸우지 않겠다고 약속을 해서 말이지.”
“좋아요. 그럼 축제 때 검사부에서 지도 대련을 하는데, 거기 대련장에서 해요.”
“검사부에서 나왔다고 하지 않았나?”
“…….”
아벨이 계속해서 트집을 잡자 필리즈도 더는 못 참겠는지 두 눈을 꾹 감고 온몸을 심각하게 부들부들 떨면서.
한숨을 깊게 들이쉬더니.
“하아― 좀! 그냥 좀 하면 안 돼요?! 무슨 남자가 뭐 이렇게 쪼잔해?! 아무튼! 짜증 나니까 저랑 타네르랑 여기서 술 좀 먹다 갈게요! 안 그러면 윌리엄 저하가 올 거예요! 분명히 말했어요! 우리가 가면 윌리엄 저하가 올 거라고!”
그렇게 해서 축제 때 검사부에서 대련이 성사되었고 뿐만 아니라 합석도 성사되었다.
* * *
루드스의 축젯날이 밝았다.
루드스의 축제는 건국기념일인 5월 27일이 있는 주에 함께 열리게 됐었다. 그리고 그 주에 3일은 외부인들을 위해서, 3일은 온전히 루드스 학생들을 위해서 펼쳐졌었고 말이다.
카시드는 두 누나가 원예부에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누님들이 도대체 왜?!”
그건 윌리엄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케이 영애와 갈라놓으라니까! 왜 자기가 거기 붙은 거야?!”
반면 세르지와 이스마일은 덤덤하게 필리즈를 이해한다는 얼굴이었다.
“적과의 동침이라…… 필리즈가 큰 결심을 했군.”
“아벨 그 새끼는 그렇게 미친 짓을 안 하면 힘들긴 할 거야. 근데 이스마일. 그럼 너랑 하는 건 어떻게 된 거야?”
“아마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리 말은 해놨고?”
“그건 아닌 듯한데.”
윌리엄이 나섰다.
“걱정 마세요! 제가 반드시 성사시켜 보일 테니까!”
다들 믿음이 안 간다는 얼굴이다.
“야 넌 또 케이 그 애만 나오면 정신을 못 차릴 거잖아.”
“아니라구요! 이번엔 다르다구요!”
반면 이스마일은 세르지와는 달리 윌리엄의 어깨를 툭툭 치며 신뢰를 보냈다.
“훗― 그래. 윌리엄 부탁하겠다.”
“그래! 나만 믿으라고! 이스마일!”
“이거 참 당장에라도 찾아가고 싶구만.”
세르지가 걱정하는 투로 말한다.
“참으라고 이스마일. 너까지 정학 받으면 어떡하려고.”
“하긴 이딴 것에 정학 받아선 안 되겠죠. 걱정 마십쇼. 말만 그런 거니까.”
그때 레이첼이 살짝 짜증이 난 얼굴로 묻는다.
“설마 필리즈나 타네르, 그년들이 아벨을 좋아하게 되는 건 아니겠죠? 아벨 그놈이 반반하게 생긴 것도 있지만 제법 강하잖아요?”
레이첼도 인정하기 싫지만 검사로서 아벨이 강한 것을 인정하고 있던 것이었다.
“훗―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번에 팔 하나 잘려나갈 텐데. 앞으로도 예전과 같은 강함을 보일 수 있을까?”
꿀꺽―
그 위협적인 말에 윌리엄은 굵은 침을 삼켰다.
반면 세르지와 레이첼은 냉소적인 얼굴로 피식 웃으며 ‘네가 과연?’하는 얼굴로 이스마일을 바라보았고.
이스마일은 그 냉소적이고 오만한 얼굴 때문에, 언젠가는 아무리 황실의 자제들이라고 하더라도 제대로 큰 벌을 받을 거라 확신했다.
무시 받았다 생각한 이스마일은 살벌한 얼굴을 한 채 말한다.
“그나저나 잊지나 마시지요. 제가 아벨의 팔을 자른다면 저를 훗날 왕이 될 수 있게 도와주시기로 한 그 약속을. 하베츠 저하에게도 똑똑히 전해주시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