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화
48화. 과소평가(1)
아벨이 직접 안내해주겠다고 하니 사나도 조금 놀란 얼굴로 아벨을 바라보았다.
물론 놀란 건 놀란 거고, 알겠다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마고스는 황자의 고집이 대단하다는 걸 알기에 그냥 그렇게 하기로 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네. 교수님.”
마고스가 먼저 떠나고 사나에게 말을 건다.
“저 눈앞에 보이는 3층 건물이 바로 우리 1학년들이 수업하는 건물입니다. 그 옆으로 2학년, 3학년, 4학년, 5학년 건물들이고 말입니다.”
“네.”
“그럼 다른 곳들도 한번 돌아볼까요?”
아벨은 이 츤데레 공주님께서 얼마나 말이 없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서 아주 잘 알게 되었었다.
“혼자 갑작스럽게 전학 오게 되어 걱정되진 않으십니까? 생활이 전과 많이 달라질 텐데 말입니다.”
“네. 뭐.”
“앞으로 모두가 공주 저하께 말을 놓게 될 것입니다. 루드스에서는 황실 자제를 제외하고는 같은 학년이라면 그 누구하고도 존대를 해선 안 되니까 말입니다.”
“뭐. 네.”
“조금 기분 상하는 일이 있을 수도 있으나, 카시드도 잘 버티고 있으니. 훗― 아니 꼭 그렇지도 않은 거 같지만.”
“아 네.”
“저 역시 다른 아이들과 형평성 때문이라도 말을 놓게 될 테니. 이해하시길.”
멈칫―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지금부터 놓으세요. 여긴 루드스니까.”
그 강인한 눈빛에 결코 물러섬이 없을 듯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그래. 알겠다.”
그 대답에 고개를 홱 돌리는 사나였는데, 목덜미가 붉어진 걸 볼 수 있었다.
피식―
뒤따라가며 말한다.
“여기를 지나면 저기 원형 돔 건물의 강당과 교수님들과 교직원들이 있는 건물, 동아리 건물, 그리고 마지막으로 센텐티아 도서관을 볼 수 있다. 그 너머로 보이는 건물들은 기숙사 건물들이고.”
“네.”
“동아리는 루드스의 학생이라면 반드시 한 곳을 정해 들어가야 한다.”
어디 들어가고 싶은 곳이 있는지 물으려다가 다음에 하기로 한다.
‘뭐 그건 차차 정하면 되겠지.’
소설에서는 아벨에게 마음이 들킬까 봐 일부러 아벨과 같은 동아리에 들어가지 않았었다.
“네 전학 수속을 밟아야 하니, 우선 교직원에게 가보자.”
그래서 맨 처음으로 교수와 교직원이 있는 건물에 들어갔다. 들어가 눈에 보이는 아무에게나 다가간다.
아벨을 본 교직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췄다.
“아벨 저하 오셨습니까.”
“그래. 볼일이 있어 왔다.”
“말씀하시지요. 도와드리겠습니다.”
“이분은 미스라임의 사나 공주 저하시다. 오늘부로 루드스에 전학을 오셨다.”
“네?”
깜짝 놀랐다.
아직 어떠한 말도 못 들은 것이었다.
“전학 수속을 네가 도와주었으면 한다.”
어색하게 웃는다.
“하하…… 그게 참…… 그런데 총장님과도 이야기가 된 것입니까?”
“마고스 교수님께서 국왕 전하의 뜻을 전하시기로 했다.”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사나의 신원이 확실했기에 전학 수속에 딱히 어려움은 없었다.
간단한 서류 작성과 교직원에게 교칙을 설명 받았다.
그리고 이제 기숙사만 배정받으면 됐는데.
“지금 빈방이 있긴 한데 가구들이 없습니다. 청소도 할 겸 조금 시간을 주셨으면 합니다.”
“얼마나?”
“2시간이면 충분합니다.”
“그래. 알겠다. 2시간 뒤에 여자 기숙사 건물로 가겠다.”
“네. 저하.”
사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나가자. 교내를 좀 더 안내해 줄 테니.”
“네.”
교직원 건물을 나와 사나에게 묻는다.
“가 보고 싶은 곳이 있느냐?”
“가 보고 싶은 곳은 없고 좀 쉬고 싶네요.”
“가까운 곳에 동아리 건물이 있으니 그곳에 가서 쉬자꾸나.”
“아니요. 거긴 싫어요.”
“왜?”
“누가 볼 수도 있잖아요.”
새초롬하게 말하던 사나였다.
“도서관은?”
“거기도 싫어요.”
그래. 도서관도 누가 볼 수도 있으니.
“그럼 저기 강당에도 앉을 의자가 있으니 거기 가서 쉬자꾸나.”
“거기도 싫어요.”
“거긴 왜?”
“거기도 교직원들이 올 수 있잖아요.”
“…….”
잠시 이 츤데레 공주님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대체 어딜 가고 싶은 거냐?”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전 여기 처음 와봤는데.”
사실 그녀가 원하는 곳을 알 것도 같았다.
아무도 안 볼 곳이라면 한 곳밖에 없었으니.
“그럼 내 방으로 가자. 거긴 아무도 못 볼 테니…….”
“뭐. 네.”
헛웃음이 나왔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의 방에 오고 싶은 듯한데.
‘수업 중이라 정말 다행이군.’
진짜 지금 수업 중이라 정말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누가 볼까 해 걸음을 빨리한다. 빠른 걸음으로 기숙사에 도착했다. 현관문에 설치된 신원 인식 마도구에 손을 얹는다.
삐빅―
덜컥―
문을 열고 들어간다.
들어가자마자 물었다.
“딸기 우유 마시겠는가?”
“아 뭐 네.”
피식― 웃으며.
“소파에서 앉아서 쉬고 있어라.”
“네.”
소파에 앉아서 쉬라고 했는데 앉기는커녕 이곳저곳 문을 열고 마구 둘러본다.
“…….”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냉장 상자에서 시원한 딸기 우유를 꺼내 컵에 따랐다. 자신의 방에 들어가 구경 중인 사나에게 다가가 시원한 딸기 우유를 건넨다.
“딱히 볼 게 없을 텐데.”
“뭐 네.”
아벨은 쳐다도 안 보고 딸기 우유만 받고는 그냥 대충 대답하는 사나였다.
지금으로선 아벨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그래. 천천히 구경하다가 와라.”
“네.”
그래서 아벨 혼자 소파에 가 앉는다.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특이한 캐릭터군.’
그렇게 10분이나 더 둘러본 후에야 아벨 옆에 와 앉는다.
옆에 다소곳이 앉는 그녀에게 묻는다.
“그래. 루드스에 대해 더 궁금한 게 있는가? 아까 교직원에게 들은 거 말고 말이다.”
“뭐. 별로.”
“……”
이래서 아벨이 사나가 자신을 좋아하는 걸 몰랐던 것이었다.
‘……확실히 모를만해…….’
“그것보다 너도 참 난감하겠군.”
“뭐가요?”
“국왕 전하께서 하신 말씀 말이야. 약혼을 하자고 하신 말씀. 이거 참 당사자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고. 괜히 너에게 미안하군.”
그 말에 사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그걸 말이라고 하냐?’ 라는 듯이 아벨을 째려봤다.
“역시 너도 화가 났었군.”
“허―!”
“그래. 이해한다.”
“허허―!”
“그러니 걱정 말아라. 난 그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을 것이니.”
“허허허―!”
“물론 네가 날 먼저 거부하겠지만. 훗― 하긴 너같이 아름다운 여자가 나 같은 걸 선택할 리 없지. 암―”
덥석―!
그러자 사나는 아벨의 팔을 잡고는 꽈악 손아귀에 힘을 준다.
그리고 이제는 그냥 귀엽게 째려보는 게 아니라 엄청나게 무서운 얼굴로 아벨을 노려본다.
“…….”
솔직히 왜 그러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이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케이와 사나에게 이것에 대해 계속 말을 해 세뇌를 시킬 생각이었다.
‘누구와도 결혼 안 할 거라고.’
한참을 아벨을 노려만 보다 그 작고 예쁜 입술을 연다.
“……걱정 마요…….”
다행히 금방 수긍하는 듯했다.
‘다행이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역시 너도 나와 같은 생―”
“나 역시 누구와도 결혼 안 할 거니까.”
“어?”
그 커다란 눈동자가 붉어지며 눈물이 차올라 당장에라도 흘릴 것만 같았다.
울먹이면서 굉장히 분해하며 말한다.
“약속 꼭 지켜야 해요. 반드시. 반드시 두고 볼 테니.”
* * *
아벨과 친구들은 사나와 함께 동아리 건물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아벨은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사나를 대단히 복잡 미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무리 소설에서 아벨의 첩으로라도 들어가려 했을 정도로 좋아했다 하더라도 벌써부터 그렇게 선전포고를 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한 것이었다.
‘내가 너의 사랑을 너무 과소평가한 걸까?’
저렇게까지 하는 걸 보니 마음이 짠하면서도 안타까웠었다.
아벨의 안타까운 눈빛을 읽은 케이가 묻는다.
“저하 무슨 일 있으셔요?”
케이의 말에 정신을 차린 아벨이 말한다.
“아니다. 일은 무슨.”
“음― 아닌 거 같은데.”
왠지 꼬치꼬치 캐물을 것 같아 얼른 화제를 돌린다.
“정말이다. 아무튼 그것보다 사나 너는 들어갈 동아리를 정했느냐?”
“뭐. 네.”
역시나 무표정으로 단답형으로 대답한다.
케이는 아벨이 일부러 말을 피한다는 걸 알고는, 궁금했지만 아벨의 의도대로 사나에게 묻는다.
“어디? 어디 들어가게?”
사나는 아벨 때와는 달리 케이에게는 상냥하게 대답한다.
“내가 취미가 꽃꽂이거든. 그래서 원예부에 들어갈까 하고.”
“오! 진짜?! 나랑 저하랑 로디아도 원예부야!”
“진짜?!”
“응! 그럼 너도 원예부 들어오면 되겠다!”
사나는 아벨에게만 틱틱댔지 다른 아이들에겐 매우 상냥하게 대했다. 물론 여자들에 한해서였지만.
남자들에겐 아벨에게처럼 매우 도도하고 차갑게 대했었다.
카시드가 웃긴다는 듯이 말한다.
“꽃꽂이는 무슨. 너도 아벨 저하 때문에 들어가는 거 아니더냐.”
사나는 가볍게 카시드를 무시하고 케이에게 묻는다.
“케이. 넌 꽃꽂이 잘해?”
머쓱하게 웃으며.
“솔직히 말해 아니. 그리고 우리 원예부는 꽃꽂이보다는…… 그냥 친목 모임이랄까? 그치? 로디아?”
로디아는 사나가 꽃꽂이 때문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맞아. 꽃꽂이는 안 해. 그냥 자유로운 휴식처 같은 곳이야. 동아리 부장인 리나 언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그냥 네가 쉬고 싶을 때 와서 쉬다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돼.”
케이도 동의한다.
“로디아의 말이 맞아. 음― 일단 가 보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을 거야.”
“그래. 고마워.”
“뭘.”
세 사람이 그래도 친하게 지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에서는 전혀 가까이 지내지 않았었기에 걱정을 좀 했던 것이었다.
‘설마 오늘도 술을 먹으려나.’
리나의 성향상 새로운 인원이 왔으니 분명 환영회를 해야 한다면서 마시자고 할 가능성이 컸었다.
‘그럼 밖에서 마시자고 해야겠어.’
그렇게 된다면 윌리엄이 또 시비를 걸 수도 있었으니.
그것참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던 아벨이었다.
* * *
역시나 예상은 틀리지 않았었다.
“당연히 환영회 해야지!”
그래서 아벨이 의견을 제시한다.
“그럼 밖에서 하는 건 어떤가? 저번에 제대로 못 즐겼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벨의 의견에 다들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네에?”
“으음― 그건 좀.”
“맞아 맞아. 그건 좀 그래.”
“저하 또 싸우시려구요?”
“맞아요. 분명 싸움 날 거예요.”
사나는 이들이 도대체 왜 이러나 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그들의 반응에 아벨은 유쾌하게 웃는다.
“하하하― 설마 형님께서 또 그러시겠느냐. 그때 그렇게 당하셨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모두 아벨을 의심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닌 거 같은데. 일부러 시비 붙고 싶어서 그런 거 같은데.”
“이젠 윌리엄 저하가 아니라면 저하가 먼저 시비 거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에이― 설마 저하가 그렇게까지 하겠어?”
“모르지. 모르지.”
그때 리나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다.
“자자 조용조용. 그래도 저하가 처음으로 의견을 내주셨는데, 이번만큼은 우리가 따라주자고. 그리고 자주 오시지도 않는데, 뭐 이 정도 소원 정도는 뭐.”
리나가 그렇게 말했음에도 다들 좀처럼 떨떠름한 표정을 풀지 못했다.
하지만 아직 리나의 말이 끝난 것이 아니었으니.
“하지만 저하. 혹시나 이번에도 문제를 또 일으킨다면 다음번엔 무조건 저하네 기숙사에서 먹을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아셨죠? 그럼 준비해 볼까?”
그 말을 듣자 다들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해맑게 웃으며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