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화
46화. 얼마나 더 놀라야 해?(1)
깊은 어둠 속.
번쩍!
한 줄기 섬광과 함께 어둠도 반으로 갈라져 흩어지고 있다.
서걱―!
쿠오오오오오―!
뿐만 아니라 트윈 오우거의 두 머리통 중 하나도 어둠과 함께 잘려나갔었고.
바둥바둥―
쿠오오오오오―!
그때 어느 한 남자가 울부짖는 트윈 오우거를 굉장히 만족스럽게 바라보는 자에게 다가가 지극히 공손하게 예를 갖춘다.
“황태자 저하.”
자신에게 예를 갖춘 남자에게 조금은 희열에 찬 목소리로, 검을 들어 가리키며 묻는다.
“저 모습이 꽤나 아름답지 않으냐? 완벽하게 상황이 정리된 저 모습이 말이다.”
황태자 하베츠가 검으로 가리킨 곳에는 두 팔과 두 다리 모두 다 잘려나가고, 심지어 두 머리 중 하나만 남은 트윈 오우거의 몸뚱이가 있었다.
그 트윈 오우거는 총 8마리 중 마지막 하나 남은 트윈 오우거였는데, 잘린 팔다리와 목에서 피가 콸콸 흘러나와 누가 봐도 얼마 안 가 죽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비토리오. 난 참으로 저 완벽한 모습을 사랑한단 말이지.”
비토리오라 불린 사내는 자신의 주인인 황태자가 자신보다 현재는 비록 조금 약하다고 할지라도,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정상에 선 인간으로서의 분위기라든지 위압감은 훨씬 더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생 황제가 될 상이다.
“자네가 이렇게 날 찾아온 거 보니, 이번에도 실패한 모양이군.”
“송구하옵니다.”
하베츠는 들썩들썩하는 트윈 오우거의 하나 남은 머리를 발로 짓밟아 터트렸다.
콰직―!
그리고 이내 들썩거리던 몸뚱이가 멈췄었는데, 그 몸뚱이에 앉으며 묻는다.
“그래. 어떻게 실패했지?”
“공격이 있을 거라고 눈치채고는, 미리 사나 공주 저하께 도와달라고 부탁한 모양입니다.”
“오호라.”
“그리고 사냥개들을 살리기 위해 준비한 에티들에게 직접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그 말에 하베츠의 두 눈빛이 형형하게 빛이 났다.
“직접 뛰어들어? 사냥개들을 살려주려고?”
“네. 사냥개들을 살려주려고 일부러 직접 뛰어들었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이후에 쿠리엘이 두 사냥개를 계획대로 처리하려고 했었는데, 끝까지 두 사냥개를 살리기 위해 쿠리엘의 오른팔을 잘랐을 뿐만 아니라 맹세의 마법으로 쿠리엘을 범인으로 몰아 코스차 교수가 직접 쿠리엘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쿠리엘은 죽었나?”
“아닙니다. 살려서 황궁으로 끌고 갔다고 했습니다.”
“그래. 쿠리엘은 쓸모가 있는 놈이야. 그건 그렇고 그 두 사냥개는 원래 아벨과 아는 사이였나?”
“아닙니다. 그냥 불쌍해서 살려준 거 같습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는데도?”
“네. 그렇습니다.”
대단히 흥미롭다는 듯이 턱을 매만진다.
“신기한 놈이로군. 그리고 재수 없기도 하고 말이야.”
안 그래도 아벨이 그 전설의 흑풍흡검을 쓴다 하여 호기심을 갖던 동시에, 용골검을 가져갔다고 하여 매우 괘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감히 용골검을 가져가다니.’
용골검은 하베츠도 탐냈었던 것이었다.
뇌전마검이나 흑풍흡검 같은 경운 자신이 마검사도 아닐뿐더러 월광참검이라는 희대의 검술을 익히고 있었기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용골검은 아니었었다.
정의의 신 타티스가 직접 막지 않았다면 지금 자신의 손에 있었을 것이다.
그것 때문이라도 동생을 직접 손 봐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무럭무럭 피어오른다.
“아벨 저하께서 정말 많이 변하셨습니다.”
“그래?”
“네.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될 만큼.”
“어떤 면이?”
“전에는 그저 굉장히 유약하게만 보였었는데, 이제는 공격을 받으면 바로 보복할 뿐만 아니라 그 어떤 공격을 받아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꽤나 강한 마음도 갖게 된 것 같았습니다.”
피식―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섬뜩한 미소를 짓는데.
“우리 덕에 성장한 건가? 하하하―”
웃고는 있었지만 황태자의 기분이 그리 썩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전보다 더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야만 했다.
“……그리고 사실 그것 말고도 꼭 보고 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망설이는 부하를 굉장히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뭔데?”
“아벨 저하께서 루드스에 입학한 후부터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마고스 교수님께서 아벨 저하를 대단히 옹호하고 계십니다.”
잠시 자신의 부하를 물끄러미 바라만 봤다.
그 눈빛에 오금이 저려오던 비토리오였다.
“뭐라고? 다시 말해 봐.”
비토리오는 그 모습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는데, 하베츠의 주위로 대단히 위험하고 흉흉한 기운이 몰아쳤던 것이었다.
흡사 잘 벼린 칼날 같은 기운이었는데, 그 날카로운 기운에 온몸이 산산이 조각날 것만 같았다.
“……마고스 교수님께서 마치 아벨 저하를 6년 전 그때처럼 제자로 탐을 내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계십니다.”
빠드드득―!
어금니를 피가 새어 나올 정도로 세게 깨물었다.
“……스승님께서……?”
꿀꺽―
“……네. 그렇습니다. 이번 사냥개들도 아벨 저하의 뜻대로, 마치 아벨 저하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처럼 마고스 교수님께서 적극 나서서 구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두 분께서 붙어 다니시는 경우가 대단히 많이 포착되고 있고 말입니다.”
하베츠는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검에 시리도록 섬뜩한 은빛 오러를 싣는다.
“아직 시간이 많이 있다만…… 거슬리긴 대단히 거슬리는군.”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몸을 돌린다.
“곧 축제겠군. 가면 하나 구해놓아라. 오랜만에 동생 얼굴 한 번 보게.”
* * *
‘부담스럽군.’
출발 전에 갑자기 만찬회 때 입을 옷이라면서 왕실의 예복을 주었었다.
그러면서 아벨에게 미리 얘기하지 않았다며 어린 시녀를 아주 쥐 잡듯이 잡아대는데,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벨은 그 옷을 받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새하얀 옷에 금실로 드래곤들이 화려하게 수 놓여있다. 아벨은 이 화려한 예복을 대단히 부담스러워 했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아벨이 이 예복의 주인인 것만 같았다. 마치 처음부터 아벨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미스라임의 시녀들이 예복을 입고 걸어가는 아벨을 힐끗힐끗 바라보며 남몰래 얼굴을 붉히고 있다.
그만큼 아벨에게 잘 어울렸고 아름다워 보였다.
‘애 많이 쓰는군.’
그들이 자신을 사나의 짝으로 만들려고 갖은 애를 쓸 거라는 걸 짐작하고 있긴 했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소설에도 없는 내용이고.’
지금과 같은 상황은 소설에선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이젠 소설의 내용이 언제든지 조금은 바뀔 수 있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뭐 마족 침공 같은 일만 안 바뀐다면.’
하지만 마족 침공과 같은 일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었다.
‘이 정도 일들이야 얼마든지 바뀌어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느새 만찬회장에 도착해 있었다.
“아벨 저하를 뵙습니다!”
사용인들이 아벨을 향해 깍듯이 예를 갖췄고, 집사장은 곧바로 만찬회장 문을 열며 만찬회장 안에 있던 귀인들에게 고했다.
“아벨 저하께서 입장하십니다!”
집사장이 아벨의 도착을 알리자, 순간 만찬회장의 모든 이목이 아벨이 입장할 회장의 문으로 쏠렸다.
“들어가시지요.”
이후 집사장의 지극히 정중한 예를 받으며, 아벨은 예의 그 무심한, 약간은 오만한 듯한 얼굴로 만찬회장 안으로 입장한다.
마고스는 아벨이 뒤늦게 옷을 갈아입게 되어 먼저 출발했기에,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마고스의 옆자리가 비어있었는데, 그곳으로 가면 될 듯했다.
사용인 역시 그 빈자리로 안내했다.
‘미스라임 왕실 바로 옆자리군.’
문제는 그 빈자리가 미스라임 왕실의 바로 옆자리라는 것이었다. 미스라임 왕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사나가 옆자리에 앉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나 옆자리겠지.’
자리로 이동하며 주변을 둘러본다. 그리고 그곳엔 제바스티안도 앉아 있었다. 그를 바라보니 찔리는 게 있는지 아벨의 눈을 끝까지 외면한다.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놀란 얼굴의 마고스에게 재미있다는 듯이 말한다.
“벌써부터 놀라시면 안 되는데 말입니다.”
마고스는 아벨이 입장할 때부터 크게 놀란 듯 보였다.
“그 옷은……?”
“미스라임 왕실의 예복입니다. 저를 사나 공주 저하와 적극 엮을 생각이겠죠. 이따 누군가는 계속 그 이야기만 할지도 모릅니다.”
충분히 이해 간다는 듯한 표정이다.
“아…… 그럼 어쩌실 겁니까?”
“어쩌긴요. 다시 한번 제대로 말해 줘야겠죠. 결혼할 생각 없다고.”
그때였다.
“국왕 전하 입장하십니다.”
만찬회장 안에 있는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얀 국왕을 비롯해 왕실의 모든 인원이 만찬회장 안으로 들어왔다. 미스라임 왕실 특유의 유전자로 왕비를 제외한 모두가 은발이었었다.
국왕 얀 카르하를 필두로 왕비, 왕세자, 두 왕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나까지 해서 아벨의 옆자리로 왔었는데, 예상대로 사나는 아벨의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사나는 일부러 자신의 몸매가 잘 드러나는 타이트하면서도 가슴골이 파인 순백의 눈꽃과도 같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물론 뇌쇄적이긴 했지만, 아벨은 그것보다는 그녀의 수줍어하는 얼굴이 대단히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역시 3대 꽃이라는 걸까……?’
아벨이 사나를 조금 멍하니 바라보자 대단히 흐뭇해하며 국왕이 모두에게 명한다.
“다들 앉으시오.”
자리에 앉자마자 국왕이 아벨에게 말을 건다.
“어려운 자리에 거절치 않고 참석해주어서 정말 감사하오. 아벨 황자.”
“아닙니다. 오히려 이 귀한 자리에 저를 초대해주셔서 영광일 따름입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정말 미안하다는 듯이 말한다.
“그렇게 말해주어 고맙긴 한데, 무엇보다 이번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이 자리를 빌려 사과하고 싶었소. 부디 너그럽게 용서하시오.”
“그게 미스라임 탓이겠습니까? 제국의 학생이 적국의 첩자에 속아 절 공격한 것인데 말입니다. 어떻게 보자면 미스라임 또한 피해자일 겁니다.”
“후후― 정말 고맙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구려.”
“진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그 말에 대단히 만족스런 미소를 짓는다.
“아무튼 정말 잘 오셨소. 그럼 다들 배고플 텐데 식사부터 시작합시다.”
“네. 전하.”
국왕의 명에 아벨을 비롯해 만찬회장의 모든 이들이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참 잘 어울린단 말이야.’
다들 식사에 집중했지만 얀 국왕과 마리 왕비, 두 사람은 그 식사에 도저히 집중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그저 아벨과 사나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얀 국왕은 점잖고 우아하게 식사를 하는 아벨을 바라보며 몹시 애가 타는 걸 느꼈다.
‘반드시 설득해야 하는데.’
얀 국왕은 제바스티안의 보고를 듣고는, 제바스티안의 생각처럼 자신의 딸의 배필로서 아벨 만한 자가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승산이 있다고 했어.’
거절을 당하긴 했지만 분명 수잔 황비의 안전을 약속했을 때 흔들렸다고 했었다.
‘그래. 분명 승산이 있어.’
아벨을 설득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조금은 음흉한 생각도 같이 들었다.
‘아벨 황자만 있으면 그 지긋지긋한 아덴을 우리의 발아래 둘 수 있어.’
미스라임에 아벨만 있으면 숙명의 라이벌이라 불리던 검술 강국 아덴을 확실하게 미스라임의 발아래로 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잘만 하면 아덴을 넘어 제국까지 넘볼 수도 있을 것 같았고 말이다.
‘황실에서 그토록 황자를 견제하던데 우리가 데려간다고 하면 오히려 좋아할지도 몰라.’
사나가 무려 6년이나 짝사랑해온 걸 아비로서도 잘 알고 있었다.
솔직히 예전엔 아벨이 사방에서 공격만 받고 반격은 전혀 하지 않길래 마음에 안 들긴 했었다.
‘하지만 많이 달라졌지.’
첩자들의 말에 의하면 이제는 절대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이제 얀 국왕으로서도 아벨을 꺼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사나를 위해서라도 데려와야지. 암. 우리 사랑하는 딸을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상사병에 걸린 딸을 위해서라도 아벨을 반드시 미스라임에 데려올 필요가 있었다.
‘그나저나 사나의 판단이 옳았군. 역시 우리 딸이 최고야.’
결론적으로 딸의 남자 보는 눈이 정확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 나이에 그토록 대단할 수 있는 건지.’
정말 믿기지 않는 재능과 성취였다.
‘그래. 그래서 황후나, 다른 황비들이 그토록 공격하는 거였군.’
제바스티안의 보고에 따르면 7성 마력을 쓰고 있었지만, 7성을 넘어 보였을 뿐만 아니라 전설의 검술을 쓸 정도로 엄청난 재능을 지니고 있다고 했었다.
이제야 그들이 왜 배경도 없는 아벨을 그토록 집요하게, 세 세력이 힘을 합쳐 공격했는지 이해가 됐었다.
정말 생각하면 할수록 대단해 보였고 정말이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흑풍흡검은 마법을 쓰지 못한다면 못 쓰는 검술이야.’
진짜 마법마저 잘 쓴다면 정말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니야. 아니야. 마법 좀 못 쓰면 어때.’
마법이야 이후에 언제든지 자신이 알려줄 수 있었다.
‘그래. 그딴 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라고.’
이제는 얀 국왕도 사나의 마음처럼 아벨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