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41화. 너희들은 죄가 없어(1)
“야 술! 술 좀 더 줘봐!”
지산은 난동을 피우는 카시드의 술잔을 뺏으려고 했다.
“카시드. 조금만, 조금만 천천히 마시는 게 어떤가?”
그러자 카시드는 거칠게 반항하며 지산의 손을 쳐 자신의 술잔을 지킨다.
“나 괜찮다니까?! 아직 괜찮다고!”
사나는 그런 카시드를 더없이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한다.
“전혀 변하지 않으셨군요.”
그 말을 듣자마자.
“뭐?! 뭐가?! 뭐가 변하지 않아?! 뭐가 변하지 않았느냐고?!”
사나를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리며 쏘아댔다.
“…….”
사나는 대답 대신 계속해서 카시드를 한심하게만 바라봤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별반 다를 바 없었는데, 그 개 같은 꼬장에 체념한 얼굴들이었다. 몇몇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 반응들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다시 한번 사나를 물어뜯기 위해 지껄인다.
“그리고 사나! 넌 도대체 여기 왜 온 거야?! 아까 그 쪽지는 뭐고?! 너도 저하를 짝사랑하는 건가?! 그런 거 하는 건가?!”
순간 정곡을 찔려서 그런지 사나는 말을 더듬었다.
“무, 무슨 얘기에요?!”
“아니 이 야밤에 네가 무슨 용무가 있어 남자 혼자 있는 방에 찾아오냐 이 말이다! 안 그래?!”
그때 아벨은 후―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신이 나서야 할 때임을 깨달았다.
“공주 저하가 나 같은 거에 관심이 있겠는가? 카시드. 그러니 난 네가 공주 저하께 무례를 범한 것에 대해 사과했으면 좋겠군.”
홱―
카시드는 표적을 바꿔 아벨을 먹잇감을 찾은 맹수와 같은 눈으로 노려본다.
이번엔 아벨을 물어뜯기 위해 뭐라고 하려던 찰나.
그때 사나가 입을 연다.
“좋아요. 말해드리지요. 제가 저하를 찾아온 이유를.”
그 말에 카시드도 물어뜯기 위해 벌린 입을 얌전히 다문다.
한번 들어나 보자 라는 듯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도 숨죽여 사나의 매혹적인 붉은 입술을 바라봤다.
“저하가 정찰병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임무를 맡게 된 게 이상해서였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꿍꿍이가 있어 저하께 정찰병을 요구한 것 같았거든요. 그걸 알려드리려고 했어요. 저하께서 모르시는 거 같아서 말이에요.”
쾅―!
빠지직―!
테이블이 박살이 났고 접시들과 잔들이 바닥에 떨어져 날카로운 비명을 만들며 깨져나간다.
와장창창―!
“넌 내가 저하를 해하려고 그랬다는 것이냐!”
“그건 모르죠. 그냥 이상해 보였다는 것뿐.”
덥석―
그때 아벨이 사나의 새하얀 손을 잡고선.
벌떡―
일어나면서 사나도 함께 일으킨다.
“둘 다 흥분한 거 같군. 내가 공주 저하를 데려다주고 올 테니, 너희들은 카시드의 흥분을 가라앉혀 줬으면 좋겠다.”
다들 놀란 얼굴로 멍하니 고개만 끄덕인다.
“가시죠.”
사나도 자신의 손이 아벨의 거친 손에 잡혔다는 것에 놀라 고개만 끄덕인다.
“거기 멈춰! 다시 말 해봐! 뭐라고?! 내가 저하를 해하려고 한다고?! 이게―!”
덜컥―
카시드의 외침을 무시한 채 곧장 방을 나가 바로 옆방인 사나의 방으로 이동한다.
‘……돌발 상황이라…….’
사나가 방으로 찾아올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 하고 있었다.
‘……물론 쪽지로 전하려고 한 듯했지만…….’
황실무고를 다녀왔을 때부터, 철가면을 벗었을 때부터 이러한 사소한 변화가 있을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긴 했었다.
하지만 막상 겪어보니 황당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덜컥―
문을 열고 들어가자 팟― 하고 자동으로 불이 켜졌다.
아벨의 복잡한 마음처럼 사나의 마음도 굉장히 어수선했었는데, 사나는 무엇보다 두근대는 자신의 심장 소리가 들릴까 봐 조마조마해 하고 있었다.
들릴락 말락 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전 괜찮으니 이제 돌아가세요…….”
아벨은 그러거나 말거나 복잡한 얼굴로 자기가 할 말을 한다.
“잠깐 앉았다 가겠습니다. 저 역시 드릴 말씀이 있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소파에 가 앉는다.
사나는 아벨의 말에 의아해하면서도 다소곳하게 다가와 앉았다.
“……무슨 말씀이 있으시죠……?”
“솔직히 말해 저들이 왜 저에게 정찰병을 시키려는지 알고 있습니다.”
“네……?”
“쿠리엘. 그 녀석이 아마도 형님들의 명을 받고 절 유인해 죽이려고 한 것이겠죠.”
“역시!”
“하지만 카시드는 모르고 있을 겁니다. 그 녀석은 그저 저보다 더 눈에 띄고 싶어서 그런 거니.”
확실히 정찰병은 그렇게 눈에 띄는 역할이 아니었다.
그러자 사나가 허―! 하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뀐다.
“맞아요. 그 사람은 항상 자기가 최고여야 한다고 믿었었죠.”
“그런 것 같더군요. 후후―”
“그런데 다 알고 계셨으면서 정찰병을 왜 자원한 거예요?”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제 수련을 위해 그렇게까지 노력한다는데, 응당 어울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안 그래도 마물들과 진탕 싸워보고 싶었으니 말입니다.”
아벨의 여유에 어이없다는 얼굴이다.
“제가 정 위험해 보인다면 그때 저를 도와주시지요. 그럼 별문젠 없을 겁니다.”
* * *
결전의 날이 밝았다.
백팀은 서에서 청팀은 동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점령해야 할 고지는 북쪽으로 정확히 같은 거리에 위치해 있었고.
아벨의 임무는 쿠리엘이 지정해준 곳으로 이동한 후 마물들의 경로를 파악하여 알리는 것이었다.
예상대로 아벨과 함께할 정찰병으로 A반 마티아스 베르켈과 B반 반장인 조너선 슈바르즈가 뽑혔었다. 옵타티오 학생들은 모두가 마법사라 계속 뛰어야 하는 정찰병에는 어울리지 않았었다.
‘두 사람 다 아벨을 배신했었지.’
협곡 위에서 이동하던 마물들을 함께 지켜보던 중에 조너선과 마티아스가 아벨을 협곡 아래로 밀었었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라 아벨도 그땐 어쩌지 못했었다.
“B반 반장인 조너선 슈바르즈라 하옵니다. 저하.”
“A반인 마티아스 베르켈입니다. 이렇게 대화하는 건 처음이군요.”
무심한 얼굴로 예를 갖추는 두 사람을 바라본다.
“그래. 둘 다 반갑다.”
배신자라는 명함과는 달리 두 사람을 굉장히 깔끔하고 신뢰감 있게 생겼었는데, 두 사람은 아벨의 앞에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몸으로 보아 굉장히 불안하고 두려운 듯했다.
아벨을 배신해야 한다는 그 가혹한 운명 때문일 것이다.
그 모습이 굉장히 안쓰러웠다.
“그럼 이동하겠다. 잘 따라오도록.”
“넵.”
“네. 알겠습니다.”
백팀의 시작점인 서쪽 지점에서 북동쪽으로 하루 정도 뛰어가면 협곡이 나왔었는데, 협곡의 끝이 세 갈래로 갈라져 정찰이 필수적인 곳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교수들이 언제 어느 시점에 마물들을 풀어 놓을지도 몰랐기에 최대한 빨리 이동해 확인하는 게 중요하기도 했었다.
휘이잉―! 휘이이잉―!
타다다다다―
아벨은 살을 에는 눈보라 속에서 뒤의 두 사람의 속도에 맞춰 뛰고 있었다.
10시간쯤 뛰었을까?
두 사람이 더는 뛸 수 없을 정도로 지쳤기에 잠시 쉬기로 했다.
헉―! 헉―! 헉―! 헉―! 헉―!
둘 다 3성 후반대 검사였기에, 이 정도만 해도 오래 버틴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좀 쉬다 가자.”
“넵! 헉―! 헉―!”
두 사람은 숨차 죽을 것만 같던 자신들과는 달리 아무렇지 않은 아벨을 괴물 바라보듯 바라봤다. 경외감을 느끼면서 한참을 숨을 고른다.
아벨은 그런 두 사람에게 최상급 포션을 건넨다.
“받아라.”
휙― 휙―
“앗―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하. 이런 것까지 안 주셔도 됐는데…….”
“먹을 것들은 가져 왔나.”
“네. 육포 가져왔습니다. 좀 드립니까?”
“됐다. 나도 육포 챙겨왔다. 그리고 여기서 2시간 정도 쉬다 출발할 것이니, 우선 텐트부터 쳐라.”
“넵!”
두 사람은 세 사람이 쉴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이잉―!
세 사람이 아무리 마나를 몸에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영하 60도에 뼈까지 얼려버릴 듯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지금의 환경에서 그저 앉아 쉬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아벨은 멀찍이 떨어져서 열심히 텐트를 치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내가 너희 둘을 구해주지.’
조너선과 마티아스, 두 학생이 아벨을 배신하고 밀어버린 건 그들의 가문과 연관이 있었다.
두 학생은 다른 대부분의 루드스의 학생들과는 달리 중소 귀족 가문의 자제들로써, 다른 대귀족의 자제들과는 달리 그 명이 아무리 명백하게 불합리하고 본인들이 원치 않은 것이라 하더라도 도저히 황실의 명을 거역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것뿐이었더라면 다행이라 할 정도로, 이들은 만약 실패할 시 본인들 둘 뿐만 아니라 가문 자체가 멸문당할 위험을 안고 있었다.
‘소설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둘 다 이용만 당하고 처형당했지. 그리고 가문마저 모함받아 멸문당했었고 말이야. 심지어 아벨이 이들을 살리기 위해 자기 실수로 떨어졌었다고 변호했음에도.’
착한 아벨은 둘의 상황을 정확히 인지한 후, 둘을 구하기 위해 자기가 실수로 발을 헛디뎠다고 고백했었다.
하지만 하베츠는 결코 그러한 감동적인 장면을 두고만 볼 자가 아니었으니.
자신이 시켰다는 증거를 완벽하게 없애기 위해, 실패한 둘에게 화풀이를 하기 위해서 둘에게 황실 살인죄를 물어 처형함과 동시에 가문도 연관이 있다며 멸문시킨다.
‘둘의 지장指章이 찍힌 계약서가 있었지. 쿠리엘이 들고 있을 거야.’
이번 아벨은 조너선과 마티아스 이 둘을 결코 죽게 내버려두지 않기로 했다.
아벨이 실수가 아니라 독단으로 수련을 위해 뛰어내렸다고 하면 아무도 뭐라고 하지 못할 것이다.
‘사나도 도와줄 것이고 말이야.’
전날 밤 사나에게도 이미 이 일에 관해 이야기해두었었다.
“두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저는 스스로 가 뛰어내려야 합니다. 물론 적들은 제가 스스로 뛰어내릴 리 없다 말할 거지만 말입니다. 그때 전 공주 저하께서 뒤따라와 도와주실 줄 알고 있었기에 그런 무모한 행동을 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또.
“그리고 혹시 몰라서 하는 말인데, 제가 공주 저하를 믿고 스스로 뛰어내렸다고 함에도, 그럼에도 황실에서 두 사람이 그랬다고 몰아갈 수 있습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그때 제 이 말을 사람들에게 증언해 주시지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예전 세계에서부터 없는 사람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득을 착취하는 윗대가리들에 대해 신물이 났었던 주원이었다.
‘마고스에게도 루드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이 둘을 희생양으로 결코 만들어선 안 된다고 해야 해.’
그러면 마고스도 어떻게든 루드스를 위해 두 사람이 희생되는 걸 막으려 할 것이다.
‘그리고 잘하면 쿠리엘을 죽일 수 있겠어.’
쿠리엘이 만약 소설에서처럼 지장 찍힌 계약서로 장난치려 한다면 아벨도 다 생각이 있었다.
‘맹세의 마법은 참 편리하단 말이야.’
맹세의 마법으로 쿠리엘이 자신이 놓은 덫에 빠지게 할 생각이었다. 아벨은 쿠리엘이 먼저 나서만 준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다 되었습니다. 저하. 들어가시지요.”
“그래.”
둘과 함께 텐트에 들어간다. 텐트에 들어가자마자 온도를 높일 난로 아티팩트를 꺼낸다. 얼마 안 가 훈훈한 기운이 텐트에 감돌았다.
편히 앉아 쉬고 있는 두 사람에게 묻는다.
“두 사람은 가족 관계가 어떻게 되나?”
조너선이 먼저 대답한다.
“저는 아버지, 어머니와 동생 둘 있습니다.”
이어 마티아스도.
“저는 아버지, 어머니와 동생 셋이 있습니다.”
“그렇군. 그런데 루드스의 등록금을 내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꽤나 비쌀 텐데 말이야.”
두 사람 다 고개를 떨구며 매우 침울해했다.
“솔직히 매우 어려웠습니다. 저희 같은 중소 귀족에게는 대단히 큰 금액이다 보니…….”
“맞습니다. 하지만 루드스 출신이 아니면 출셋길이 막혀버리기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벨은 대답 대신 아공간 주머니에서 보석 몇 개를 꺼낸다. 아벨은 황제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수잔 황비 덕분에 돈은 거의 무한대로 쓸 수 있었다.
“받아라.”
팅― 티팅―
“어, 엇!”
“앗! 저하! 이것은!”
“이걸로 졸업까지 문제없을 거다.”
딱 봐도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보석들이었다.
대귀족들이 억만금을 내서라도 갖고 싶어 할 그런 것들 말이다.
“저하…….”
보석을 받은 두 사람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눈물을 글썽였다.
“……이 귀한 걸 어찌 저희 같은 것들에게…….”
그러면서 눈빛이 대단히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너희들의 고통을 다 알고 있다. 이번 너희들의 가혹한 임무도 포함해서 말이지.”
아벨의 말에 멍청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네?”
“그게 무, 무슨 말씀이신지…….”
그런 그들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말한다.
“너희들로선 형님들의 명을 거역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
그들은 아벨이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쿵―! 쿵―!
곧장 납작 엎드려 땅에 머리를 처박던 두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