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화
40화. 츤데레 공주님(2)
카시드가 먼저 자신이 데려온 자를 소개한다.
“쿠리엘이다. 5 서클 마법사지. 이 녀석 만큼 뛰어난 머리도 없을 거다.”
사나도 루드스에 질 수 없다는 듯이 소개했다.
“라이너에요. 마찬가지로 5 서클 천재 마법사예요.”
라이너 커츠.
훗날 쿠리엘과 마찬가지로 10 서클 정점에 오를 대마법사였다. 쿠리엘의 숙명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쿠리엘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아벨이 보이자 다시금 움찔하며 움츠러들었다.
음침한 외모에 저런 행동까지 하니 더욱 초라해 보인다.
“……쿠리엘이라고 한다. 잘 부탁한다.”
반면 라이너는 대단한 미남자였는데,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소개한다.
“라이너 커츠라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나는 그런 쿠리엘의 초라한 행색에 못 미덥다는 듯이 바라봤지만, 그럼에도 카시드는 대단히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한다.
“좋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짜 보자고.”
본격적으로 네 사람이 지도를 보며 전방과 측면, 후방, 정찰 임무를 할 학생들을 추리기 시작한다.
“우선 우리의 생각을 말해주지. 쿠리엘. 준비해뒀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해온 것들을 말한다.
“전방부터 말하자면―”
쿠리엘은 전방에서 싸워줄, 측면을 공격할, 후방을 지켜줄 루드스 학생들을 말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마물들을 정찰할 정찰병을 말하는데.
“정찰병은 마물들의 미끼가 되는 만큼, 그 임무가 막중한 만큼 강한 사람이 해야 한다 생각한다.”
쿠리엘의 말을 모두가 수긍하는 듯했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아벨 저하께서 하셨으면 한다.”
카시드가 일리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에는 아벨이 정찰 임무를 맡으면 마물과의 전투 시에 자신이 더욱 빛날 수 있다는 계산도 있었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저하만큼 이 중요한 임무에 적합한 사람은 없을 거다.”
하지만 옵타티오 측은 반대했다.
특히 사나가.
“안 돼요. 정찰병은 그냥 빠르기만 하면 돼요. 저하께서는 함께 마물들과 싸워주시는 게 우리로서는 훨씬 이득이 될 거예요.”
라이너도 사나의 말에 동의한다.
“저하께서 7성 검사시라고 들었습니다. 전설의 흑풍흡검을 사용한다고도요. 우리들 중 가장 강하신 분이, 아무리 정찰 임무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그런 곳에 낭비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선두에서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게 훨씬 이득입니다.”
카시드가 기분 나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린다.
“누가 우리 중에 저하가 가장 강하다고 그랬지?”
“……?”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지자 도리어 짜증을 부리며 말한다.
“아무튼, 그리고 그건 정찰의 임무를 끝내고 전투에 참여하면 된다.”
당연히 사나는 재차 안 된다고 반박한다.
“그땐 너무 늦어버린다구요. 그리고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을 빼려고 하다니. 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
“다시 한번 묻는데 가장 영향력 있다고 누가 그랬지? 그리고 너보단 우리 루드스 대표가 더 잘 알지 않겠나?”
“그럼 누군데요?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혹시 본인이라고 할 건 아니겠죠?”
정찰병 선정에 의견 차이가 있는 듯했다.
그것에 대해 목소리들이 점차 높아지고 있었다.
‘그래. 소설에서도 사나는 굳이 아벨에게 정찰병을 시키려던 저놈들을 의심했었지. 그때도 반대했었어.’
열렬히 반대하고 있는 사나를 고마움을 담아 바라본다.
케이가 카시드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며 말한다.
“카시드 쟤는 저하께 열등감 느끼나 봐요.”
아벨도 아무리 사춘기라고 하더라도 가끔은 그 정도가 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정찰병을 원하는 아벨에겐 도움이 되고 있었다.
“라이벌 의식이라고 하지.”
로디아도 툴툴거린다.
“한 번 제대로 말 해줘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감히 아덴의 왕자 따위가.”
지산은 조금은 서운하다는 듯이 말한다.
“로디아. 그래도 우리 친구인데. 우리가 너그럽게 용서해 주자고.”
아벨도 고개를 끄덕인다.
“지산의 말이 맞다. 친구 사이인데 저 정도는 용서해 주자.”
문득 예전 아벨이 이런 마인드로 매번 용서하다 결국 배신당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온몸에 소름이 붉은 발진처럼 쫙― 하고 돋았다.
‘……그래. 로디아의 말도 맞긴 하군. 너무 나대면 한번 따끔히 말할 필요가 있겠어.’
분명 머지않은 미래에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런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네놈이 적정선을 잘 지키길 바라겠다.’
하베츠 다음은 카시드였다.
그것엔 절대 변함이 없었다.
“내가 나서야겠군.”
“네?”
아벨이 정찰병 선정에 대해 싸우고 있는 대표들에게 갔다.
“정찰병이 안 정해지나 보군.”
“앗! 저, 저하!”
쿠리엘은 아벨이 다가오자 적잖이 당황해했다.
“오셨습니까?”
카시드는 ‘왜 네가 나타나?’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사나는 아벨을 보자마자 얼굴이 바로 붉어져 외면했었고.
라이너는 아벨이 나타나자 자신들의 목소리가 너무 컸다는 걸 깨닫고는 송구스럽다는 얼굴이다.
“저희가 저하께서 신경 쓰이게 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무심히 그들이 보고 있던 명단과 지도를 바라봤다.
“아니다. 괜찮다. 그것보다 명단을 좀 보겠다.”
“네. 여기 있습니다.”
대충 훑어보고는.
“내가 하지. 정찰병.”
“……?!”
“네? 진심이십니까?”
“그래. 내가 정찰 임무도 하고 이후 측면 교란도 하면 될 것 같군.”
어차피 마물들에게 뒤덮일 게 뻔했기에 그 이후 일은 신경 쓰지 않았다.
* * *
본격적인 연합 훈련은 2박 3일로 진행됐기에 아벨의 방에 놀러 갈 시간은 오늘 밤 하루밖에 없었다.
사실 루드스나 옵타티오 두 아카데미 모두 자신의 책임을 강조했기에, 그렇게까지 감시를 엄하게 하진 않았었다.
그래서 수월하게 아벨의 방으로 모일 수 있었다.
“이거 참 진짜로 왔군.”
지산이 화통하게 웃는다.
“하하하― 지금 아니면 언제 저하의 방에 놀러 오겠습니까? 하하―”
카시드가 그런 지산에게 핀잔을 준다.
“앞으로 5년이나 더 같이 있을 텐데 무슨.”
“하긴 하하하―”
“아무튼 이리 와 앉지.”
“네. 그리고 술과 안주는 걱정 마시십시오. 저희가 다 준비해 왔으니 말입니다.”
그러면서 미리 챙겨둔 술과 고기를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내 테이블에 세팅을 한다.
“케이와 로디아는 아직 입니까?”
“그래. 이제 곧 오겠지.”
그때였다.
부스럭부스럭―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왔나 봅니다.”
문밖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들렸던 것이었다. 셋 다 무인이기에 귀가 굉장히 밝았었다.
부스럭부스럭―
근데 좀처럼 들어오지 않고 소리만 들린다.
“왜 안 들어오는 거지?”
“깜짝 놀라게 해 줄까?”
좀처럼 들어오지 않자 지산이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일어나 살금살금 조용히 문가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확―!
덜컥―!
“……?!”
마치 눈꽃처럼 반짝이는 은발의 아름다운 소녀가 깜짝 놀란 얼굴로 서 있다.
“어, 어…… 사나 공주 저하……?”
무언가를 들고 있었는데, 그 무언가가 쪽지처럼 보였다.
친분이 있던 카시드가 묻는다.
“사나. 네가 여기 웬일?”
카시드의 말대로 사나가 웬일인가 했다.
사나는 갑자기 열린 문 때문이라도 너무 놀라 말문이 막힌 것 같았다.
“공주 저하?”
“……!”
사삭―
정신을 차린 사나는 일단 쪽지부터 뒤로 숨겼다.
그런 후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편히 쉬시길.”
그러면서 가려고 했는데.
“공주 저하께서도 함께하시겠습니까?”
다급히 아벨이 물었다.
그 물음에 발걸음이 뚝! 하고 멈췄다. 고개를 돌리며 묻는다.
“……네?”
카시드도 조금은 놀란 얼굴의 사나에게 권유한다.
“그래. 사나. 이리와. 조금 있다가 여자애들도 올 거야. 이참에 루드스 최상위권 애들하고도 인맥 쌓고 좋잖아?”
지산도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적극 환영한다.
“오시지요. 모두 공주 저하와 친해지고 싶어 한답니다.”
하지만 사나는 부끄러워 망설인다.
그리고 결국엔.
“아니에요…… 전 이만…….”
그때였다. 멀리 복도에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저하! 저희 왔어요! 어?”
“사나 공주 저하?”
사나를 잡을 수 없었던 지산이 문가로 다가오는 둘에게 부탁한다.
“케이, 로디아. 공주 저하를 모셔와 줘.”
아벨도 사나를 그냥 보내긴 그랬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가가 말한다.
“함께하시지요.”
사나는 다시 고개 돌려 아벨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본다.
그 눈동자 속에서 흔들리는 자신을 보는 듯했다.
아벨은 망설이는 사나에게 다시 한번 더 권유한다.
“6년 전 공주 저하와 알게 된 이후로 꼭 한 번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답니다. 안 그래도 조만간 제가 찾아뵈려고 했었습니다.”
아벨의 말에 감동한 듯도 했다. 하지만 역시 부끄러움 때문에 망설이고 있었다.
“같이 해요. 공주 저하.”
“맞아요. 괜찮아요. 남자들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케이와 로디아가 교묘히 사나의 길목을 차단하고 아벨의 방 쪽으로 밀고 갔다.
“네, 네?”
사나는 주춤주춤하면서 아벨의 방 문가에까지 밀려들어 갔다. 하지만 그 이상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결국 또 돌아서며 말한다.
“저는 피곤해서. 이만 돌아―”
덥석.
“……?!”
아벨이 돌아가려는 사나의 새하얀 손을 잡고 상냥히 묻는다.
“꼭 함께하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아…….”
“오늘이 아니라면 저희가 언제 또 이런 자리를 갖겠습니까?”
확실히 2학기에 루드스로 전학 간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사적인 자리는 없을 것만 같았다.
“…….”
사나는 자신을 지긋이, 더없이 다정하게 바라보는 아벨의 그 눈빛이 반칙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이제는 더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애써 기쁨을 숨기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네. 그럼 뭐.”
그렇게 예상치 못한 모임이 결성되는 순간이었다.
* * *
“공주 저하께서 루드스로 전학 가실 수도 있습니다. 2학기에 바로.”
빌하츠의 말에 마고스는 미간을 심히 찌푸렸다. 쉽사리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정말인가? 국왕 전하께서 좋아하지 않으실 것 같다만.”
“하하― 뭐 그렇긴 합니다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실 이번에 전하께서 공주 저하와 내기를 하나 하셨답니다.”
“내기?”
“네. 이번에 아벨 저하께서 눈에 띄는 활약을 한다면, 소문대로 7성 검사라면 공주 저하를 루드스로 보내는 것뿐만 아니라, 아벨 저하와의 약혼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다고 말입니다.”
“……?!”
“전하께서도 16살에 7성 검사인 아벨 저하의 성장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공주 저하께서 무려 6년 전부터 짝사랑해오셨지 않겠습니까? 물론 본인께선 부끄러워 숨기려고 하시지만 그게 너무 티가 나서 어찌나 사랑스러우신지. 하하하―”
“제국의 황실에서 허락하겠나?”
“저하께서 데릴사위로 미스라임에 오신다면 황좌에 대한 경쟁자도 줄고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음…… 미스라임을 등에 업고 황좌를 노린다고 생각할지도.”
“그것에 대해선 맹세의 마법을 쓰면 되지요.”
“저하께서 황좌에 욕심이 없겠는가?”
“저하께서 황좌에 관심이 없으시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관심이 있으셔도 제 생각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아벨 저하께서는 힘이 되어줄 배경이 없으시니 말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그렇긴 하지.”
“아무튼 제 생각엔 공주 저하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루드스로 전학 갈 듯하니, 그러니 그때 공주 저하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교수님.”
“허허…….”
“공주 저하도 카르하 왕가의 피를 이어받으셨기에, 마법사로서 엄청난 재능을 갖고 계시답니다. 공주 저하께서도 17살의 나이에 5 서클 마법사이니 말입니다. 천재 검사와 천재 마법사 커플. 정말 이상적이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 말에 젊었을 적 다이나 황후와 함께 모험을 했던 때가 떠올랐다.
물론 다이나 황후는 검술 명가 드로즈도프 공작가 출신이어서 검사였었지만.
‘네가 황제와 결혼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었지.’
아련한 옛 기억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었다.
“그런데 저하를 좋아하는 여학생들이 많은 것 같던데.”
그것에 관련해 빌하츠도 미간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물어보았었는데, 다행히 친구 사이라고 선을 딱 긋더군요.”
사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한 말은 굳이 말하지 않는다.
아무튼 빌하츠의 말에 마고스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한 얼굴이다.
“역시…… 이건 내 추측인데, 저하께선 자신의 안위보다는, 수잔 황비 마마의 안위에 신경을 많이 쓰시는 것 같다. 워낙 효자이니 말이야. 그러니 황궁에서 그분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이상 결혼을 해 어디로 이동한다는 생각은 절대 안 할 것이야.”
그 생각을 듣자 빌하츠는 그제야 아벨의 발언이 이해가 간다는, 막힌 혈이 뚫렸다는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