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화
39화. 츤데레 공주님(1)
에브니아 대륙의 북쪽 방어벽이라 불리는 대도시 케플라는 제국의 대도시에 결코 꿀리지 않아 보였다.
미스라임에 처음 와본 학생들은 도시를 둘러싼 그 웅장한 마력 지붕에 도저히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숙소에 도착해서도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루드스의 1학년들이었다.
그런 멍한 모습의 학생들을 귀엽게 바라보던 마고스가 단상에 서서 입을 연다.
“이곳이 연합 훈련 동안 너희들이 지내게 될 숙소이다. 저기 게시판에 너희들이 머물 방이 적혀 있을 테니 잘 찾아가 짐을 풀고 쉬고 있어라. 그리고 1시간 뒤에 강당에서 모이도록 하겠다.”
“네엡!”
우렁찬 대답과 함께 다들 게시판으로 달려가 자신의 이름을 찾아봤다.
“난 1동 103호.”
“난 205호.”
“한 방에 10명씩 지낸다고?”
“헐―”
“재밌겠는데?”
“재밌긴 개뿔. 하아― 두 명이서 자는 것도 불편해서 죽겠구만.”
“왜 좋기만 한데.”
여기저기서 10인실에 대해 여러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나만 1인실인가.’
당연히 아벨은 1인실이었다.
“음―”
근데 옆에 1인실이 하나 더 있었다.
‘사나 카르하.’
미스라임의 공주인 사나도 1인실인 것이었다. 근데 그 방 위치가 아벨의 방 바로 옆방이었다.
‘이거 참.’
그 사실에 기가 차고 있던 그때 케이와 로디아가 더 기가 찰 말들을 했다.
“저하. 밤에 놀러 가도 돼요?”
“맞아요. 원래 이럴 때 방에 놀러 가고 그러는 거라구요.”
어이없어 헛웃음을 지으며.
“누가 그러더냐?”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리나 언니가요.”
“원예부 선배님들이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너희들 그러다 시집 못 간다.”
정의의 신 신관들은 결혼이 허락되었었다.
“원래 다들 그렇게 논다던데요. 뭐 어때요.”
“맞아요. 맞아.”
발칙한 두 소녀를 지긋이 바라본다.
두 소녀도 아벨의 두 눈을 결코 피하지 않고 마주 바라본다.
그때 지산이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물어왔다.
“하하― 여자들만 가는 게 그렇다면 저희들도 껴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아벨은 두 소녀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을 하다가.
거절해도 오늘 온종일 계속해서 귀찮게 할 거 같다는 강한 예감을 받는다.
어쩔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좋다. 올 수 있으면 오거라. 문은 열어둘 테니. 대신 들키면 난 모른다.”
그래서 체념해버리는 아벨이었다.
그런 아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서로 좋다고 떠들어 댄다.
“오! 좋아요!”
“역시! 지산! 저하께서 이상하게 너한테 약하시다니까!”
“하하하―! 이게 다 스테이크로 이어진 동지라서 그렇지 않겠는가! 하하하하―!”
* * *
『이름 - 사나 카르하
정보 - 미스라임 왕국 3 공주. 대륙 3대 꽃 중 설화雪花, 5 서클 마법사.』
‘대단해. 전혀 아니라는 듯이 앉아 있어.’
현재 아벨의 옆에는 미스라임 왕실의 핏줄만 이어받는다는 은색 머리카락의, 대륙 3대 꽃 중 하나인 설화雪花 사나 카르하 공주가 앉아 있었다.
투명하기까지 한 첫눈과도 같은 하얀 피부와 크고 또렷한 눈, 세련된 콧날, 도톰하고 촉촉한 입술, 전체적으로 그 세련됨 덕분에 조금은 도도하고 차가워 보이는 듯한 외모였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몸매가 매우 육감적이라는 것이었다. 소설에서 묘사한 것보다 훨씬 더 그 굴곡이 심한 듯했다. 그리고 그녀 자신도 그 몸매를 자랑스러워 해 결코 숨기고 있지 않았고 말이다.
그런 그녀가 아벨의 바로 옆자리에서 아벨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한 무심한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소설에서도 항상 이런 모습이라 아벨이 눈치채지 못한 거였지.’
하지만 사나는 아벨의 사생팬이라 할 정도로 아벨을 집요하게 쫓아다녔었다.
앞에서 표현만 못 했을 뿐, 뒤에선 모든 동선을 파악하고 아벨과 마주칠 준비를 하곤 했던 것이었다.
사나를 좋아했었던 독자들은 제발 작가가, 단 한 번만이라도 사나가 아벨을 위해 한 모든 행위와 노력 등을 아벨이 눈치챌 수 있게 하길 바랐었다.
물론 변태 작가 ‘난좋은작가’는 당연하게도 독자의 바람을 보란 듯이 개무시했었지만.
‘내가 너희들의 바람을 이뤄주지.’
아벨은 그녀의 도움들에 한껏 고마움을 표현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잘 설명해야겠지…….’
사나 역시 동생과도 같은 여자였다.
그녀가 본 세계로 돌아갈 자신은 잊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길 바랐다.
‘그래. 케이에게 하는 것처럼 적정선을 그으면, 언젠가는 분명 내 마음을 알아줄 거야.’
충분히 알아챌 뛰어난 여자들이었으니.
아벨은 고개 돌려, 아벨의 시선을 느끼고는 마주 바라보고 싶어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사나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그녀의 미래가 부디 소설과는 다르길 속으로 기도했다.
* * *
루드스 학생들을 위한 간단한 환영 파티가 있었다.
뷔페식으로 음식을 가져다가 먹으면서 간단한 음료와 함께 자유롭게 만남을 가질 수 있게 해놨었다.
당연히 화제의 중심은 아벨과 케이, 그리고 사나였다.
소설에선 아벨 대신 카시드였지만, 지금은 가면을 벗은 아벨에게로 그 관심이 옮겨져 있었다.
아벨은 케이와 로디아와 함께 있었는데, 셋에게 옵타티오의 학생들이 끊이지 않고 몰려들었었다.
“저하께선 마법도 쓰신다면서요?”
“검술도 대단하시고!”
“철가면 벗길 기도했던 1인이었습니다! 예전 황실 무도회 때 뵀었거든요! 하하―”
“이번 훈련 너무 기대돼요!”
“사나 공주 저하와 같은 팀이실 텐데!”
“우리 사나 공주 저하랑도 친하시죠?”
“케이 영애 역시 우리 공주 저하와 막상막하라더니!”
“케이 영애의 검술 성취가 마법사로 따지면 4 서클이라던데!”
“엄청나시네요!”
“이번 연합 훈련 정말 기대됩니다!”
아벨이 대답을 안 했음에도, 끝도 없이 질문들을 해댔었다.
‘휴…… 괜한 짓 하는군.’
그들이 아벨이 대답을 안 했음에도 그렇게 끝도 없이 질문을 해댈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아벨에 관한 질문을 케이와 로디아가 마치 대변인마냥 대답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맞아요. 저하께선 마법도 잘 쓰셔요.”
“그렇다니까요! 검술도 대단하시다니까요! 전설의 흑풍흡검 아시나요?!”
“저두요. 철가면이 이 아름다운 얼굴을 가려선 안 되죠.”
“사나 공주 저하요?! 음― 그건 잘 모르겠는데…… 저하 친하신가요?!”
케이는 본인의 질문에는 대답도 안 하면서 아벨의 질문엔 잘도 대답했다.
‘이게 무슨 짓이람…….’
몰려든 이들을 그냥 대충 물리쳤으면 했다.
이들 때문에 미스라임에서만 나온다는 그 흑우黑牛로 만든 스테이크를 못 즐기던 것이었다.
지산에게로 가 함께 그 맛을 음미하며, 그 특유의 맛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때 학생들 사이를 비집고 누군가가 찾아왔다.
“저하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훈훈하게 생긴 30대 중반의 남자였다.
천혜안을 써 정보를 확인했다.
『이름 - 빌하츠 애커만
정보 - 미스라임 왕국 자작. 마령대 소속 제3대대 9중대장. 옵타티오 1학년 필기 교수. 8 서클 마법사.』
‘빌하츠?’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다.
‘사나의 명으로 아벨을 돕던 자인 거 같은데.’
고개를 돌려 사나를 찾는다.
어디에 갔는지 연회장 내에는 보이지 않았다.
‘사나가 부른 건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나가 보자.’
지금의 상황이 괴롭기도 하고 사나가 보고 싶기도 해서 그를 따라가기로 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를 따라오시길.”
케이와 로디아에게 말한다.
“갔다 오겠다. 재밌게 놀고 있도록.”
“네에! 다녀오셔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렇게 빌하츠를 따라갔는데, 빌하츠는 아예 강당 밖으로 나갔었다. 밖으로 나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아벨에게 말한다.
“좀 답답하실 거 같아 말씀드린 겁니다.”
주변을 둘러본다.
사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나는 없나 보군. 하긴 그 츤데레 공주님께서 직접 이렇게 부를 리 없지.’
피식―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묻는다.
“공주 저하가 시키셨습니까?”
“네?”
“왠지 공주 저하께서 저를 도우려고 교수님께 부탁드린 거 같아 말입니다.”
그는 미스라임에서 주력으로 키우던 천재 마법사들 중 한 명으로써, 얀 국왕이 사나를 보필하라고 마령대에서 일부러 옵타티오로 임시로 보낸 교수이기도 했다.
그는 아기 때부터 봐온 사나를 사랑스런 조카로 생각했기에, 그 명을 기쁘게 받아들였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소설에서는 아벨이 철가면을 쓰고 있었기에 아벨에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었다.
그저 케이와 함께 있는 것에 기분 나쁜 수군거림을 들었을 뿐.
그때 아벨은 케이와 함께 구석에서 쭈그려 있었었다.
‘그래서 돕지 않았었지.’
그래서 사나도 아벨이 케이와 함께 있는 것에 질투만 했었지 딱히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었다.
“그냥 감이 그랬습니다. 어릴 때 공주 저하와 대화한 기억이 있어서 말입니다. 상냥하신 분이라 곤란한 저를 그냥 보고만 있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하하…….”
그러자 빌하츠가 조금은 허탈한 듯이 웃었다.
“그 말 공주 저하께 직접 말씀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하께서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공주 저하께서는 굉장한 부끄럼쟁이라서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휴― 말도 마십시오. 지금도 본인이 직접 갔으면 단둘이 오랜만에 재회도 하고 얼마나 좋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하긴 저 역시 오랜만에 공주 저하와 대화를 나누고 싶군요.”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어휴― 답답이.”
“언젠가 기회가 오겠지요.”
“그나저나 저하께선 케이 영애와 무슨 사이이십니까?”
아 그리고 지금 생각났는데, 빌하츠는 드라마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아줌마 같은 성격이 있었다.
‘마치 드라마 시청자마냥 아벨과 사나 사이를 가슴 졸이며 응원했었지.’
“좋은 친구 관계입니다. 제가 공주 저하와 좋은 친구 관계이듯이.”
“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아벨의 말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어, 음― 알겠습니다.”
“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절대 넘어선 안 될 것입니다.”
이상한 말을 남긴 아벨은 빌하츠가 뭐라 하기 전에 이어 말한다.
“그럼 교수님의 의도대로 전 좀 걷다가 들어가겠습니다.”
그러면서 돌아서 걸어가던 아벨이었다.
* * *
만취한 카시드 때문에 아벨의 방 방문은 다음으로 미뤄졌었다.
카시드는 얼굴을 붉힌 채 뒤통수를 긁적이며 굉장히 민망해했었다.
“미안하다…… 미스라임의 적포도주가 생각보다 세군…….”
변명하는 카시드를 바라보며 지산은 괜찮다며 어깨를 툭툭 친다.
“하하― 괜찮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원래 다 그런 거다. 걱정 말아라.”
케이와 로디아는 불만이 굉장했었지만 카시드의 저런 모습은 또 처음이었기에 사과를 받아 주기로 한다.
“맞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오늘은 너무 먹지 마.”
다들 괜찮다고 함에도 카시드는 여전히 얼굴을 붉힌 채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런데 사실 그럴 만도 했었다.
‘개망나니였군.’
곱게 취했다면 모르겠으나, 취해서 난동을 부리려다, 소란을 듣고 내려온 마고스에 의해 방으로 끌려갔다고 들었다.
‘사춘기인 게 확실해.’
살면서 자신이 최고라고 믿고 살아왔을 것이다.
한편으론 불쌍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느냐. 아벨이 주인공인 것을.’
다행히 포션 덕분에 숙취는 없어 보였다.
“주목.”
그때 마고스가 빌하츠와 함께 단상으로 올라왔다.
“다들 자신이 어디 팀에 속해 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 내 기준으로 우편으로 백팀, 좌편으로 청팀. 이동해라.”
우두두두두―
루드스에서 온 백팀의 인원만 하더라도 70명이었다. 이에 옵타티오에서 더해진 학생이 100명이었고.
모두 이동한 듯하자 마고스가 이어 말한다.
“백팀의 대표는 카시드와 사나가 맡는다. 그리고 청팀의 대표는 밀로스와 온드레가 맡고. 그럼 각 팀 대표들은 배운 대로 고지전에 관련된 전술을 짜라. 오늘 하루 동안은 전술을 짜는 시간만을 가질 테니, 역량껏 인원들을 잘 배치해보도록.”
그리고 빌하츠가 덧붙여 말한다.
“그래도 혹시나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찾아오도록 하십시오. 기다리고 있을 테니.”
학생들보다는 사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넵―!”
우렁찬 대답과 함께 카시드가 사나를 부른다.
“사나. 오랜만이군.”
제국의 황실뿐만 아니라 각 왕국 왕실의 인원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던 모임이 있었기에, 둘은 친하진 않았지만 안면이 있는 사이였었다.
사나가 냉기를 풀풀 풍기며 대답한다.
“그래요. 오랜만이네요.”
“더 예뻐진 거 같군.”
“그런가요? 아무튼 딴소리 말고 전술이나 어서 짜죠.”
“훗― 여전히 까탈스럽기는. 그래. 너희 애들은 수준이 어떻게 되지?”
둘은 서로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실질적으로 전술을 짤 학생 한 명씩을 각자의 아카데미에서 데려오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