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화
38화. 기대되는 연합 훈련(2)
중간고사는 예정대로 중위권 성적이 나올 정도로만 일부러 대충 봤다.
‘15등 정도가 적당해.’
실기는 이때까지 해온 게 있어 어쩔 수 없이 최상위권이겠지만 필기는 정답을 거의 안 썼기에 분명 점수를 많이 깎아 먹었을 것이었다.
“다들 시험 잘 봤겠지?”
마고스의 물음에 시원하게 대답하는 이 하나 없었다.
“쯧쯧― 그러니까 평소에 공부해뒀어야지. 너희들도 알다시피 학년이 넘어갈 때는 등수로 인해 반이 바뀔 수 있으니, 뒷반으로 가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노력하도록.”
전교 등수를 적용해 1년마다 반을 계속해서 변경시켰다. A반에서 졸업하려면 다시 말해 5년 내내 전체 35등 안에 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다음 주에 미스라임에서 일주일간 야외수업이 있을 것이다.”
그 말에 강의실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미스라임?!”
“오! 옵타티오 학생들하고 연합 훈련인가요?!”
미스라임의 왕국 아카데미는 ‘옵타티오’였다. 옵타티오는 루드스와는 달리 마법 강국의 성격에 맞게 마법을 중점으로 가르치는 아카데미였다.
“옵타티오에 그렇게 예쁜 애들이 많다던데!”
“내 말이! 미스라임이 예로부터 미인들이 많은 왕국이니까 말야!”
“야! 피에르! 너 미스라임 출신이잖아! 진짜야?! 옵타티오에는 미인들만 있어?!”
“혹시 사나 공주 저하도 만날 수 있는 건가?!”
“설마!”
“공주 저하도 1학년이셔?!”
“17살이라고 그랬는데!”
사나도 케이만큼이나 아름다웠고 유명했었기에 남학생들이 기대할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그리고 한 녀석의 말처럼 예로부터 미스라임엔 미인들이 많기로 유명했었으니, 저렇게 신나 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반면 여학생들은 여기도 당연하게도 그러한 남학생들의 한심한 모습에 반감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남자 놈들은 저래서 안 돼요. 훈련하러 가는 거지 여자 보러 가는 거냐고.”
“맞아. 걔네들이 뭐가 예쁘다고.”
“우린 케이가 있다고. 제국의 고고한 장미.”
“사나 공주 저하보다 우리 케이가 훨씬 예쁠걸?”
“당연하지. 어딜 케이에 비비려고 하나?”
케이는 여학우들의 쏟아지는 칭찬에 쑥스러워 고개를 푹 숙이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만연한 게 딱히 싫은 건 아닌 듯했다.
그러면서 고개만 돌려 아벨을 바라본다.
자기 어떠냐는 듯이.
그래서 모르는 척 마고스를 바라본다.
“그래. 네놈들 생각대로 옵타티오와 첫 연합 훈련을 할 것이다. 그러니 내일부턴 연합 훈련을 대비해 연습을 좀 하겠다.”
연합 훈련은 다름 아닌 마물들을 상대로 함께 싸우는 연합 전투를 말했었다.
대륙 중앙에 위치한 제국과는 달리 외각에 위치한 왕국들은 마물들의 거주지인 ‘세계의 끝’과 맞닿아 있었기에 언제든지 마물들을 이용해 훈련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루드스는 학생들에게 최대한 많은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서 다른 왕국의 아카데미들에 요청해 대대로 연합 훈련을 해왔던 것이었다.
다른 왕국들의 입장에서도 학생들에게 제국의 엘리트들과 교류를 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왕국을 위협하는 마물들도 처리할 수 있었으니, 그들 입장에서도 일석이조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훈련이라 하겠다.
다들 연합 훈련이라는 말에, 그리고 해외로 나갈 수 있다는 말에, 새로운 인연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엄청나게 기대하는 눈치였다.
아벨도 다른 학생들과 다를 바 없이 정말 기대하고 있었다.
‘원 없이 싸우다 오겠군.’
정말 원 없이 싸우다 올 것이다.
다른 학생들과 조금 다른 이유이긴 했으나, 그래도 아벨도 어서 빨리 그날이 왔으면 하고 있었다.
* * *
한 주 전체를 미스라임에서 있을 연합 훈련을 대비해 지형지물을 이용한 공격과 방어 연습을 했었다.
‘재밌겠어.’
이번엔 1학년 전체가 다 갔었는데, A, B반이 백팀이 되었고 C, D, E반이 청팀을 이루어 옵타티오 학생들과 연합을 이루어 진행됐었다.
훈련 방식은 두 팀 중 누가 먼저 준비된 마물들을 뚫고 정해진 고지를 점령하느냐였다.
소설에선 아벨이 가장 강하다는 명분으로 마물들의 정찰을 다른 두 녀석과 함께 맡겼었는데, 그때 함께 간 녀석들의 배신으로 아벨은 위험에 빠지게 됐었다.
그것이 이번 적들의 계획의 핵심이었다.
‘과연 그놈이 잘할 수 있을지.’
백팀의 전술을 담당했던 학생은 다름 아닌 필기 1등 쿠리엘이었다. 그 녀석이 아벨에게 정찰 임무를 주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 그간 컸던 쿠리엘이 아벨의 그림자만 봐도 뒤돌아 도망갈 정도로 겁에 질려 있다는 점이었다.
‘누군가 나를 꼭 죽여야만 한다고 강하게 말해줬으면 좋겠군.’
제발 쿠리엘이 꼭 좀 정찰병을 시켜줬으면 했다.
그래야 마물들을 상대로 맘껏 수련할 수 있을 테니.
‘그래도 시켜 주겠지. 그 녀석도 지엄한 황실의 명을 감히 어길 수 없을 테니.’
현재 루드스의 1학년 전체는 미스라임으로 가기 위해 수도 에스토시아 정중앙에 있던 ‘워프’로 걸어가던 중이었다.
교수들은 각 반의 담임 교수들만 참여했었는데, 각 반의 담임 교수들이 선두에 서서 자신의 반을 인솔하고 있었다.
현재 아벨의 머릿속엔 어서 빨리 연합 훈련을 시작해 마물들과 싸울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멀리 보이는 푸른 물결 같은 이동 워프가 눈에 들어오니 더욱 그러했다.
“저하. 정말 기대되지 않나요?”
그때 케이가 옆에 바짝 붙어 푸른 바다 빛 반짝이는 눈동자로 아벨을 올려다보며 물었었다.
그 푸른 바다 빛 눈동자가 정말 예쁘다고 생각하며 대답한다.
“그래. 정말 기대되는군.”
확실히 아벨은 기대를 넘어 설레하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 대답과 아벨의 설레하는 모습에 만족한 케이는 해맑게 미소 짓는다.
“그쵸? 역시 그러실 줄 알았다니까요.”
아벨은 케이의 그 해맑은 미소에 화답하듯 상냥히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고개 돌려 다시 한번 멀리 보이는 이동 워프를 바라보았다.
멀리서도 거대한 푸른 물결이 일렁이는 그 둥근 원을 볼 수 있었다. 저 푸른 물결 덕분에 나라 간 이동이 대단히 빠르고 편리했던 것이었다. 눈 깜빡할 사이에 몇백, 몇천, 몇만 킬로미터의 거리도 이동케 했었으니 말이다.
현 마도 공학의 정수精髓라고 할 수 있었다.
워프를 볼 때마다 아벨은 그 웅장하고 두려움까지 전해주던 그 푸른 물결에 기묘한 감각을 느낀다.
‘역시 여긴 판타지 세계인가······.’
다시 고개를 돌려 여전히 자신을 올려다보는 케이를 바라본다.
판타지 여주인공답게 티브이에서 본 어느 연예인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고귀한 외모이다.
아벨도 아름다웠었지만, 케이 역시 대륙 3대 꽃 중 하나인 만큼 절세미녀絶世美女라 할 수 있었다.
확실히 케이는 그 어떤 남자라도 목숨을 걸고서라도 얻고 싶어 할 미인이었다.
‘윌리엄이 이해도 가는군.’
“어서 정학 기간 동안 수련한 것들을 써먹고 싶군.”
조금은 호들갑을 떨며.
“오오! 흑풍흡검! 멋있어요!”
그 깜찍한 모습에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하하― 넌 그때 딱 한 번 보고 못 봤잖느냐.”
“그때 본 게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거든요!”
“그래. 흑풍흡검이 인상에 남는 검술이긴 하지. 그건 그렇고 너는 요즘 가문의 검술을 잘 수련하고 있느냐?”
제국 3대 검술 명가 중 하나인 아슈트반 가문의 검술은 청연검법晴煙劍法이었다.
맑은 하늘에 낀 안개와 같은 검술로 어느새 죽어있는 상대를 볼 수 있다던 신비롭고 홀연한 검술이었다.
아벨의 말에 어깨가 축 늘어진다.
“큰일 났어요······ 너무 놀았나 봐요······.”
“1학년 때는 원래 노는 거라고 하지 않았나?”
“히잉······ 그래도요······.”
투정부리는 케이를 사랑스런 막내 여동생 보듯 다정스레 바라본다.
“죠슈아에게 부탁해보는 건 어떤가? 죠슈아는 천재 검사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싫어요오······ 오라버니는 무섭다구요오오······ 그냥 저하께서 좀 알려주시면 안 돼요······? 네······? 조금만요······.”
더없이 간절해 보이는 얼굴에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단둘은 안 돼.’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로디아에게 묻는다.
“로디아. 너도 케이와 노느라 수련을 게을리 한 건 아니겠지?”
둘 다 거의 매일 원예부실에 가서 논다고 들었다.
“저도 뭐······.”
“그럼 둘이 함께 오거라. 한 번 봐주지.”
검술을 알려준다기보다는 지도 대련을 할 생각이었다.
“정말요?!”
“네? 아 네에······.”
로디아는 의외라는 듯이 깜짝 놀랐고 케이는 아벨의 결정에 적잖이 실망한 눈치였다.
“그래. 일단 미스라임에서 돌아온 이후 한번 시간을 보자꾸나.”
“넵! 알겠습니다!”
“네에에······.”
그렇게 2시간 정도 더 걸어서야 드디어 워프에 도착했다.
마고스가 전체 대표로 서서 말한다.
“다들 학생증을 꺼내 놔라. 바로 케플라로 이동하겠다.”
케플라는 미스라임의 북쪽 지방의 대도시로써 ‘세계의 끝’과 바로 맞닿은 인간의 방어선과 같은 느낌의 도시였다.
‘사나를 볼 수 있겠군.’
사나를 좋아했던 독자들도 굉장히 많았었다.
그녀는 전형적인 츤데레 성격의 공주님이었는데, 그 츤데레 성격 덕분에 아벨을 뒤에서만 몰래 도왔던 여자였다.
그래서 아벨은 사나를 그저 마족 멸살의 필요성을 이해해 자신을 도와주는 정의로운 여자 정도로만 여겼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녀 역시 아벨 하나만을 바라봤던 지고지순한 순정파였으니.
‘덕분에 국왕에게 쫓겨나기까지 했지.’
국왕 얀 카르하의 명을 거역하면서까지 계속해서 아벨의 곁을 맴돌며 돕다 보니, 약혼자에게 파혼당함과 동시에 모든 걸 빼앗긴 채 왕궁에서 쫓겨나기까지 한다.
물론 그녀는 아벨이 아닌 남자와 결혼하느니 차라리 잘 됐다며 좋아했었지만 말이다.
‘첩으로라도 들어가려고 했었어.’
그랬다.
그녀는 아벨의 옆에 케이와 아르시아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벨만을 바라봤던 ‘사랑의 바보’였던 것이었다.
그 정도로 아벨을 사랑했었다.
‘쫓겨나서도 마멸단을 뒤에서 서포트 해줬으니.’
“저하. 이제 곧 저하 차례에요.”
케이 덕분에 상념에서 깰 수 있었다.
아벨을 보고는 워프 관리 직원이 정중히 예를 갖춘다.
“저하를 뵙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학생증을 건넨다. 직원은 고개를 저으며 그냥 지나가라고 안내한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정중히 허리 숙이며 말한다.
“부디 좋은 수련되시길.”
받지 않는 학생증을 거둬들이며 대답한다.
“그래. 수고해라.”
마고스는 워프 앞에서 올라오는 학생들 하나, 하나 워프로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있었다.
“들어가시지요.”
“네. 교수님.”
일렁이는 푸른 물결 속으로 몸을 맡긴다.
수아아아―
한 걸음 내디뎠을 뿐인데 이미 주위 환경이 바뀌어 있었다.
미스라임의 워프 관리자가 아벨에게 예를 갖춘다.
“케플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아벨 저하.”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들어간 학생들이 있던 곳으로 갔다. 곧이어 케이도 워프에서 나와 아벨을 뒤따랐다.
“와아― 정말 대단하네요.”
워프에서 나오자마자 미스라임이 왜 마법 강국인지 잘 알 수 있던 것이었다.
어마어마한 돔 형식의 마력 지붕과 방벽으로 도시 전체를 눈 폭풍으로부터 막아주고 있었다. 도시 밖은 무시무시한 눈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는데, 도시 안은 훈훈한 온기로 가득 차 있다.
케이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한다.
지산도 감탄하며 말한다.
“괜히 마법 강국이 아니로군.”
로디아도 동의한다.
“맞아. 나도 미스라임에는 처음 왔는데 정말 대단하네.”
반면 카시드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한다.
“미스라임은 마법 말고는 전혀 쓸모가 없는 나라이니, 이 정도라도 해줘야지.”
검술 강국인 아덴과 라이벌 국가라 더 그러는 것 같았다.
그 독설에 다른 이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다들 카시드가 속이 좀 좁다는 걸 함께 지내면서 확실히 깨달은 것이었다. 그래서 별말 안 하고 넘어간다.
지산이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화제를 돌린다.
“내가 듣기로는 미스라임의 귀족들은 옵타티오에 엄청난 자부심이 있어서, 그래서 루드스에 잘 안 오는 거라고 하더군.”
로디아가 덧붙여 말한다.
“루드스와는 달리 직접 마법을 가르치고 양성하니까 말야.”
케이가 얼굴을 살짝 상기시키며 말한다.
“나 진짜 너무너무 기대돼. 설원에서 저하와 함께 마물들을 해치우다니.”
로디아가 케이를 ‘너도 참 한편으론 정말 대단하다.’라는 정말 진심으로 존경한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피식― 웃으며 묻는다.
“케이 그런데 넌 추위 많이 타?”
“나? 그럭저럭? 넌?”
“난 좀 많이 타거든. 그래서 큰일 났어.”
지산이 로디아에게 조언한다.
“로디아. 그렇다면 얇은 옷들을 많이 껴입고 가거라. 확실히 그게 도움이 될 것이다.”
확실히 얇은 옷들을 많이 껴입는 게 두꺼운 옷 하나 입는 것보다 방한 대책으로 훨씬 더 좋았었다.
“응응. 그래야겠어. 고마워. 지산.”
“뭘 그런 걸 가지고. 아무튼 미스라임은 최소 영하 40도이니 조심해야 해.”
그렇다. 1년 내내 눈이 내리는 미스라임은 낮에도 영하 40도를 유지할 만큼 극한의 나라였던 것이었다.
그때였다.
“조용조용.”
모두가 마고스를 주목했다.
“다 나온 것 같으니 그럼 이동하도록 하겠다. 잘 따라오도록.”
마고스의 명에 따라 모두가 개미 떼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벨은 그 개미 떼처럼 움직이는 모두를 보며 이제 정말 곧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정말 곧 그토록 고대하던 옵타티오와의 첫 연합 훈련이 시작되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