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화
25화. 미안한데 마족이 나타날 예정이야(1)
“이곳이 바로 루드스가 자랑하는 인공 던전 인수텔이다. 인수텔 외에도 에브니아 전 대륙의 던전들을 본떠 여러 유형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너희들이 루드스에 있는 동안 수많은 경험들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마고스의 자부심 넘치는 말에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를 짜겠다. 상위 7인 앞으로.”
1등부터 7등까지 나와서 한 명씩 돌아가면서 뽑는 방식이었다.
1등이 카시드였고, 2등이 로디아, 3등이 지산, 5등이 케이였다.
아벨은 시작 전 모두의 앞에서 로디아에게 자신을 뽑아달라고 부탁했었다.
이유는 7등부터 조원을 뽑았기 때문이었다. 5등인 케이가 2등인 로디아보다 먼저 뽑았었기에, 미리 케이에게 뽑지 말라고 눈치를 준 것이었다.
그런 후 로디아에게만 귓속말로 누구를 조원으로 뽑아야 할지도 알려주었다.
“전방에 토마스를, 후방에는 발레리아와 나딤을 뽑아라.”
3성 후반의 검사와 3성 중반의 궁수, 3 서클 초반의 마법사.
밸런스가 맞는 조합이었다.
로디아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케이가 아닌 자신에게 부탁하는 아벨에게 감격해 하는 얼굴이었다.
반면 케이는 아벨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그랬다는 걸 알았기에 서운해하기보다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역시…… 오늘 뭔가가 일어날 것만 같아…….’
케이는 어젯밤 윌리엄이 다짜고짜 찾아와 어쩔 수 없이 잠시 시간을 냈어야 했었는데, 윌리엄은 자신에게 제발 아벨과 같은 조를 하지 말아 달라며 무릎 꿇고 간절히 빌며 부탁했었다.
‘분명 뭔가가 있을 거야…… 교수님께 말씀드려야겠어…….’
행동을 결정한 케이는 곧바로 마고스를 찾아갔다.
케이가 아벨을 위해 마고스를 찾아가던 그때, 아벨은 로디아와 함께 자신이 뽑으라 한 그 조원들과 모임 중이었다.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다. 아니 자기소개라기보다는 황자인 아벨에게 인사를 올렸다.
‘물론 다 아는 연놈들이지만.’
소설에서 조지와 함께 아벨과 케이를 괴롭혔던 연놈들인 것이었다.
물론 이들 말고도 몇 명 더 있었지만 오늘은 조 밸런스를 위해 이들로 정한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하. 저는 토마스 셀브레드라 하옵니다.”
“저는 발레리아 콤슨이라고 해요. 궁수예요.”
“나딤 베르케트라 하옵니다. 마법사입니다.”
그래. 다 알고 있다.
“반갑다.”
인사가 끝나자, 조장인 로디아가 대표로 말했다.
“그럼 저하와 토마스가 앞에서 마물들을 막아주시고, 후방에선 발레리아와 나딤이 지원 공격을, 그리고 저는 모두에게 버프 마법을 걸어드릴게요.”
그러면서 아벨을 바라보며 싱긋 미소 짓는데.
“저는 검도 쓸 수 있으니, 위급시에는 저도 전방에서 도울게요.”
그 말에 조원들은 돌아가면서 로디아를 칭찬했다.
“역시 믿음직스럽네!”
“맞아. 로디아는 정말 언제 봐도 믿음직스러워.”
“로디아한테 뽑혀 얼마나 다행인지!”
아벨은 그들의 싹싹한 모습에 역겨움을 느끼며.
“로디아. 잠시 나 좀 보자.”
“네?”
의아하게 바라보는 로디아를 제쳐놓고 나머지 조원들에게 말한다.
“잠시만 기다려 주겠나? 둘이서만 할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다.”
다들 조원들도 로디아처럼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별일 아닐 것으로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로디아를 이끌고 멀리 떨어져서는.
“로디아. 내가 오늘 너에게 나를 뽑아 달라 부탁한 이유는 던전에서 마족이 나타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들은 로디아가 깜짝 놀라 소리친다.
“네에?! 읍―!”
손으로 재빨리 로디아의 입을 막는다.
“쉿― 걱정 말아라. 하위 마족이라 별문제 없을 것이니.”
“읍읍읍―!”
“나는 오늘 그 마족을 죽일 생각인데, 그래서 너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읍읍읍―!”
“너의 신성 마법은 우리가 마족을 죽이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읍읍읍―!”
잠시 로디아의 아연실색한 눈을 바라보다가.
“……그러니 나를 도와주겠느냐?”
그런데 대답 대신 뜨끈한 물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읍읍읍읍읍―!!”
“……?”
아―
입을 막고 있던 손을 신속히 내려놓는다.
“콜록콜록―!”
토닥토닥―
이제야 자신이 너무 오래 입을 막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괘, 괜찮으냐?”
홱―!
“죽을 뻔했다고요!”
매섭게 노려보던 로디아였다.
“물론! 당연히 도와드릴 거예요! 그럴 줄 알고 저에게 부탁하시는 거잖아요!”
물론 기꺼이 도와줄 거라는 걸 알긴 했었다.
‘반응이 좀 격하군.’
“고맙다. 로디아.”
“아무튼!”
이제 숨이 좀 돌아왔는지 몸을 꼿꼿이 세웠다. 그리고는 아벨의 귀에다가 속삭인다.
“마족이라구요? 음― 저와 저하가 함께라면 괜찮겠죠?”
“그래. 너와 나라면 충분히 죽일 수 있다.”
“알겠어요. 그런데 쟤네들은 왜 뽑아 달라는 거였어요?”
“조지와 친하게 지내거든.”
“……?”
“걱정 마라.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테니. 그저 나와 엮이면 좋지 않다 라는 것만 알려줄 생각이다.”
물론 죽어도 상관은 없었다.
그 정도로 악독한 놈들이었으니.
하지만 이번엔 살려 둘 생각이었는데, 그들이 살아야 루드스 내에 마족이 나타났다고 소문을 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아벨을 공격한 황실은 당분간 구설에 올라 타격을 좀 받을 것이었다.
‘살아서 가치 있는 일도 좀 해야지.’
로디아는 아벨을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요. 그럼 가요. 마족 잡으러. 애들 기다리네요.”
“그래.”
원망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기뻐 보였다.
‘마족을 안 만나봐서 그런가.’
아무튼 나쁘지 않은 반응이었다.
조원들에게로 갔다.
발레리아가 묻는다.
“이야기 잘했어?”
“응. 별 이야기는 아냐. 그럼 이제 출발할까?”
던전의 입구는 총 10개였다. 이번에도 7등부터 입구를 정했었다. 앞의 조들은 이미 다 들어간 후였다.
“우리 저기로 들어가요.”
로디아가 정한 입구로 들어갔다. 입구로 들어가면서 오늘 나타날 마족을 떠올린다.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거의 끝, 후순위 마족이었어. 70위 아니면 71위야.’
대륙에 제거해야 할 마족의 수가 72마리였다. 그것들 중 오늘 만나게 될 마족은 70위나 71위 정도의 최약체 마족일 것이었다.
‘8성급의 강함을 보였었지.’
마족치고는 약했었는데, 문제는 그 녀석이 인간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굉장히 성가실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전력을 다할 수 없으니.’
약한 마족이었지만 그래도 애들 앞에서 전력을 다할 수 없었기에, 아벨은 출발 전에 마고스에게 자신을 쫓아와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었다.
‘역시 케이는 착해.’
하지만 케이가 한 발 먼저 마고스에게 찾아가 아벨이 위험할 것 같다고 말하고 있었다.
떠올려보니 소설에서도 케이가 미리 마고스에게 말한 덕분에, 결국에 그의 도움으로 살 수 있었다.
‘확실히 뒤쫓아 오고 있군.’
마고스는 짐작도 못 하겠지만 아벨은 그의 움직임을 느끼고 있었다.
“저하!”
으키킥―!
벽에서 갑자기 나타난 고블린 한 마리가 창으로 머리를 찍어왔다.
휘익―
촤아악―!
하지만 아벨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정확히 검을 휘둘러, 고블린의 머리와 몸을 분리한다.
그리고 언제 씌웠는지 검에 황금빛 검기가 둘러 있었다.
“걱정 말아라. 다 보면서 가고 있으니.”
선망의 눈빛으로 아벨을 바라보는 로디아였다.
“네. 저하.”
그 이후로도 10분 정도는 고블린밖에 안 나왔었다.
꽤나 많은 수의 고블린들이 몰려온 적도 있었으나, 아벨이 강해도 너무 강했다.
휙― 휙― 휙― 휙―
촤아악―! 촤아악―! 촤아아악―! 촤아아아아악―!!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두세 마리의 고블린의 머리통이 우후죽순으로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나머지 조원들은 그저 꿀 빨면서 지켜만 봐도 됐었다.
조원들 모두 아벨이 이렇게나 강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는 표정이다. 루드스에서 연습할 때와는 또 달라 보였었다.
아벨은 경험을 얻고자 했었던 연습 때와는 또 달리 최대한 신속하고 압도적으로 끝내려고 했었다.
이들에게 앞으로 허튼짓하지 말라고 경고도 할 겸, 마물들을 죽이는 것도 어떻게 보자면 경험이었기에, 그 경험을 굳이 나눌 필요 없이 다 가질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체력이야 아그네스의 목걸이로, 그리고 포션을 마셔 채우면 되는 것이니, 맛있은 음식을 탐닉하듯 고블린들을 해치워 나간다.
토마스는 아벨이 적이라는 걸 떠나 검사로서 진심으로 감탄하는 얼굴이었다.
“저번에 저하께서 조지를 이기셨을 때부터 알아봤었지만…… 정말 대단하십니다…… 제국기본검술만 쓰시는 듯한데…….”
“제국기본검술도 검술이다. 잘 활용하면 그 어떤 검술보다 간결하고 실용적으로 쓸 수 있지.”
“그런 것 같군요…….”
로디아가 끼어들었다.
“정말 대단하셔요. 저도 검을 잡지만 저하의 검을 보면 감탄밖에 안 나와요.”
“너야말로 대단하지. 신성 마법에 검까지 잡고 있으니. 성기사가 된다면 굉장히 어울리겠어.”
해맑은 미소가 입가에 만연하다.
“정말 감사해요.”
“그럼 다시 출발할까?”
“네에!”
조금 더 가니 골렘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기본적인 골렘이라 가슴에 드러나 있는 핵만 부순다면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혼자 다 해치울까 했었는데.
“저희도 도와드릴게요!”
로디아의 경험을 위해서라도 조금은 양보를 해야 함을 깨닫는다.
“내가 오른쪽을 맡으면 로디아 네가 아이들을 이끌고 왼쪽을 막아라.”
“넵!”
로디아가 남은 조원들에게 지시했다.
“다들 들었지! 저하께서 오른쪽을 막아주신다니까! 어렵지 않을 거야! 그럼 토마스! 앞에서 골렘을 막아주고!”
“알겠어!”
“발레리아! 토마스가 막을 때 지원 사격해줘!”
“응! 대장!”
“나딤! 토마스에게 마력장벽을!”
“오케이!”
그러면서 본인은 버프 마법을 시전 한다.
“……정의의 신 타티스에게 고하노니 정의를 수호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당신의 힘과 속도를―”
힘과 속도를 동시에 올려주는 이중 버프 마법이었다.
로디아에게서 새하얀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역시 대단해.’
아벨을 배신했던 그때에도 로디아는 성녀 다프네를 제외한 에브니아 최고의 대신관이었다. 그러니 대단한 게 당연한 거라 할 수 있었다.
조원 모두가 그 버프 마법에 영향을 받아 수월하게 골렘들을 처리해 나갔다.
부웅―!
골렘의 돌주먹을 가볍게 피한 아벨은 검을 가슴 정중앙 골렘의 핵이 있는 곳으로 찔러 넣는다.
콰쾅―!
부웅―!
검을 빼냄과 동시에 또 다른 주먹을 피하고.
휘익―
콰쾅―!
검을 휘둘러 가슴에 핵이 드러나게 한다.
그리고 그 드러난 핵에 주먹을 질러 깬다.
쾅―!
곧바로 휘릭― 돌며 팔꿈치로 다른 골렘의 가슴을 후려친다.
콰콰쾅―!
후두두두―
무너져 내리는 돌들 사이로 보이는 골렘의 가슴을 벤다.
휘익―
콰콰콰―!
아벨이 하나하나 차근히 골렘들을 없애갈 동안, 로디아도 이제는 직접 검을 들고 조원들을 함께 골렘들을 하나하나 없애가고 있었다.
부웅―!
콰쾅―!
골렘이 내리치는 주먹을 로디아가 일차적으로 막아내면, 토마스가 골렘을 후려치고 이어 휘청거리는 골렘을 향해 발레리아가 활을 쐈다.
피슝―!
나딤 역시 토마스가 위험할 때마다 마력장벽으로 보호해 주거나, 2 서클 전류탄으로 골렘들을 공격했다.
파직―!
콰콰쾅―!
그렇게 매우 안정적이고 별문제 없이 무난하게 나아가고 있었다.
궁수인 발레리아가 자신이 붙었는지 우쭐해 하며 말한다.
“아직까지는 약한 것들밖에 안 나오는데?”
수업 때 연습한 대로 초반엔 고블린, 중반부터는 골렘, 마지막엔 흡혈박쥐들이 나올 것이었다.
흡혈박쥐들이 골렘들보다는 약했으나, 던전의 좁은 공간에서 재빠르고 양도 많아 처치하기가 쉽지 않았었다.
발레리아의 말에 나딤과 토마스가 동조한다.
“그러게 말이야. 좀 강력한 게 나왔으면 하는데.”
“지루해. 지루해.”
그렇게 조금 지루하다 느끼고 있던 찰나.
‘역시 있군.’
멀리서 어마어마하게 사악한 기운이 느껴진 것이었다.
현재 아벨의 몸은 대천사의 피와 드래곤 하트로 인한 변화된 몸이었는데, 그런 몸이기에 10성 검사와 같은 민감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벨과 달리 다른 조원들은 사기邪氣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다.
‘마고스는 느꼈겠지?’
마고스는 대륙 최정상의 검사였다.
느끼지 못하는 게 이상한 거였다.
* * *
‘혹시나 했더니…….’
아벨을 짝사랑하던 여학생이 자신에게 다가와 아벨에게 위험한 일이 있을 거라고 했을 때, 좋아하는 사람이 괜히 걱정되는 그런 가벼운 마음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도 아벨을 괴롭히는 황실의 그 역겨운 짓거리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혹시나 해서 따라갔던 것이었다.
‘……감히 루드스 내에서 이런 짓거리를…….’
그는 루드스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고 아끼고 있어, 루드스 내에서만큼은 교육을 위한 장소가 되어야지, 누군가를 해하는 그런 불순한 장소가 돼선 안 된다고 믿고 있었다.
‘이 정도 사기면 마족이 확실해.’
하지만 고위 마족은 아닌듯했다.
‘그래도 마족을 불러드리다니…… 정도를 넘어서는군…….’
아무리 하위 마족이라 하더라도 마족은 마족인 것이었다.
일반적인, 상식적인 위협이 결코 아니었었다.
‘그렇다면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르겠어.’
성녀 다프네가 아벨과 함께 있어 아무리 죽이려고 해도 죽일 수 없어 이곳으로 보냈다는 그 소문.
그때였다.
콰콰쾅―!
‘시작됐나 보군. 그렇다면.’
탓―!
대지를 박차고 본격적으로 쫓던 마고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