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22화. 제대로 준비 안 해?(1)
“!!”
세르지의 말이 맞았다.
윌리엄과 레이첼의 생모였던 셀비 3 황비가 바로 카시드의 고모이지 않았던가.
그래서 아덴이 윌리엄과 레이첼의 든든한 뒷배경일 수 있었던 것이었고.
게다가 케이의 가문 아슈트반 백작가 역시 3 황자파에 속해 있었으니.
“아래 것들 관리를 도대체 어떻게 하고 있는 거야?! 그딴 거 하나 제대로 관리 못 해?! 엉?! 제대로 못 하느냐고?!”
빠드득―!
레이첼이 이를 꽉 깨물며 세르지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런 레이첼의 살기 짙은 눈을 그대로 받아치며 말한다.
“그러니까 관리 좀 잘하라고! 전체집합을 내려서라도 반드시 아벨과 가까이하는 것들을 막아! 알겠어! 그리고 다음 주에 있을 던전 수업 때 일을 벌일 거니까! 그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옆에서 돕게 만들어 놓고! 반드시! 반드시 이번 기회에 아벨을 죽일 수 있게!”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세르지는.
“명심해! 다음 주 야외 수업 때다!”
다시 한 번 경고하고는 곧장 집행부 부실을 나갔다.
남겨진 윌리엄도, 레이첼도 분을 못 이겨, 잠시 아무 말 없이 세르지가 나간 문만을 노려보았다.
“…….”
잠시 그렇게 침묵을 지키며 세르지가 사라진 문만을 노려보던 레이첼이 먼저 차올랐던 분을 삭이고 입을 열었다.
“……오빠. 오빠가 카시드 그 빌어먹을 새끼를 만나봐. 내가 케이 그년을 만나 볼 테니까.”
하지만 철없는 윌리엄의 생각은 달랐으니.
“레이첼. 네가 카시드를 만나보는 게 낫지 않겠어? 내가 케이를 만나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뭐?”
레이첼의 눈빛엔 싸늘하다 못해 한기가 깃들어 있었다.
그 눈빛에 윌리엄은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든다.
“……그게 나을 거 같은데…….”
“이 미친.”
똥오줌 분간 못 하는 자신의 오빠 때문에 레이첼은 간신히 가라앉혔던 화가 다시 끓어오르려고 했었다.
“그깟 계집년 때문에 또 욕 처먹고 싶어서 그런 거야?”
그 말에 매우 당황스러워한다.
“무, 무슨 말이야?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케이에게 잘 말할 수 있어서 그래. 그리고 죠슈아도 내 친구고.”
“죠슈아가 오빠를 좋아한다고 생각해?”
“왜왜! 당연한 거 아냐?! 우린 같은 반 친구라고!”
착각도 유분수지.
하아……
한숨을 안 내쉴 수가 없다.
“그건 당신 생각이구요.”
“뭐, 뭐?!”
“만약 케이에게 제대로 말 못 한다면 그땐 어쩌실 거예요?”
레이첼은 진심으로 화가 나 폭발할 것 같을 때만, 자신을 도저히 컨트롤하지 못할 것 같을 때만 윌리엄에게 존댓말을 썼었다.
“……?!”
그리고 그 사실을 윌리엄도 잘 알고 있었다.
“이러다 계획이 정말 어그러지면 어쩌실 거냐구요.”
“그, 그건!”
“그리고 오라버니 벌써부터 케이 그년이랑 약혼할 거라고 떠벌리고 다닌다면서요? 진짜 미쳤어요?”
“레이첼!”
“오라버니. 그렇게 설레발 쳐서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면 될 것도 안 된다고요. 아시겠어요? 그렇게 계속 병신처럼 굴면 그 어떤 여자도 오라버니 안 만나요. 결단코.”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뭐요? 케이라는 그년하고 대화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있어요? 오라버니 때문에 검사부에 안 들어갔다는 말도 있다구요. 모르나요?”
“무, 무, 무슨 소리야! 나 때, 때문이라니?!”
“아무리 스테판 백작의 무언의 동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결코 완전 합의가 된 건 아니잖아요? 제 말이 틀린가요?”
레이첼이 계속해서 팩트로 폭력을 휘두르자 도저히 참지 못한 윌리엄은 두 눈을 꼬옥 감고, 두 손도 꼬옥 쥐고―
“그렇게라도 안 하면! 진짜 그렇게라도 안 하면 다른 놈들이 케이를 노릴 것만 같은데! 당장 채갈 것만 같은데! 그럼 어떡하라는 거야! 나보고 도대체 어떡하라는 거냐구!”
순간 레이첼은 벙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젠 얼굴에 한기를 넘어 살기마저 감돈다.
정말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어휴― 이런 병신새끼.”
“……?!”
“……그런다고 다른 남자들이 케이를 안 노릴까요? 그런다고 케이가 오라버니 같은 병신하고 약혼하겠냐고요.”
답답한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리고 자꾸만 한숨을 내쉰다.
“왜 그렇게 모를까. 하아― 진심 병신 같네. 야이 씨― 하아― 오라버니. 그 누구도 안 믿을 뻥이나 치지 말고 실력이나 제대로 키워놔요. 오라버니 스스로가 황제감이 되라고요. 저딴 개 같은 세르지한테 눌리지나 말고.”
윌리엄은 고갤 숙이고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뭐든 어마마마에게만 맡기지 말고 오라버니 혼자 좀 알아서 일을 진행해 봐요. 제발 한 번만이라도.”
그 말을 끝으로 레이첼도 집행부 부실을 나간다.
* * *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아벨이 조지에게 보인 실력행사 덕분인지 아벨과 케이에 대한 괴롭힘의 징조는 보이지 않았었다.
‘다행이군.’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단 한 번이라도 케이의 눈에서 눈물이 맺히는 걸 보게 됐다면 정말 가만 안 둘 생각이었다.
앞에 앉아있는 소설에서 아벨과 케이를 괴롭히던 연놈들의 뒤통수를 내려다본다.
‘앞으로도 조심해라. 결코 자비 따위 없을 테니.’
이번 케이만큼은 아벨 때문에 절대 힘들지, 슬프지 않았으면 했다.
정말 제발 좀 그렇게 됐으면 했다.
‘음…… 그나저나 오늘은 재밌는 내용 같은데.’
오늘 필기 수업 내용은 전에 책을 훑어봤을 때 그래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던 것이었다.
“카인 폐하의 삶을 이야기할 때 스승이자 일평생의 동료였던 골드 드래곤 에디린 님을 빼놓을 수 없다. 폐하께서 에디린 님께 검술과 마법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아직도 최강이라 여겨지는 뇌전마검을 두 분이 함께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폐하가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에디린 님께서 그 모든 일을 함께하셨으니.”
그래서 아주 어릴 적부터 카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자라온 아벨은 에디린과 같이 믿을 수 있는, 등을 기꺼이 맡길 수 있는 동료를 꿈꿨는지도 모른다.
“뇌전마검에 대해 잠깐 말하자면 골드 드래곤 특유의 전격계 마법이 가미된 검술이라 할 수 있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번개줄기가 뿜어져 나가는 그런 검술 말이다.”
‘번개줄기’는 전격계 4 서클 마법이었다.
‘맞아. 확실히 번개줄기와 비슷해.’
뇌전마검 비기 1식인 벽력霹靂이 바로 그러했던 것이었다.
뇌전마검에 관한 이야기는 확실히 아벨에게 흥미를 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12성 절정에 다다르면 뇌신雷神과 같은 힘을 낸다 했으니.”
천지를 뇌우로 물들고 적이 섬멸될 때까지 번개를 내리친다 했었다.
“안타깝게도 검술이 너무 난해하고 어려워 사장되고 말았지만, 그래서 더 특별한 검술이 아니겠느냐? 지금은 그 검술을 본 사람이 없을지라도, 그래서 상상 속 검술이지 않냐는 말들도 나오긴 하지만, 제국뿐만 아니라 대륙의 모든 왕국의 문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와아―!”
“마법과 같은 검술이라!”
“뇌신!”
“무적의 검술이라던데!”
여기저기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쥬디스는 그러한 감탄을 즐기고 있었다.
실감 나게,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자신이 아주 잘 강의한 덕이라 여긴 것이었다.
그리고 검술에 관해 이야기하자 그 무심하던, 빌어먹을 아벨이 반응을 보여 더욱 신이 났었고 말이다.
“그리고 카인 폐하의 뇌전마검까진 아니지만 제국엔 또 하나 위대한 검술이 있다. 바로 전쟁의 신이라 불리신 4대 황제 아서 폐하의 흑풍흡검이다.”
“와아―!”
특히 아벨을 포함한 검사들이 집중해서 쥬디스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카인 폐하의 뇌전마검과는 달리 흑풍흡검은 처음부터 아서 폐하를 대표하는 검술은 아니었었다. 선물 받은 하나의 검 때문에 40대 중반의 나이에, 조금은 뒤늦게 만드신 검술이었지.”
앞의 학생이 자기도 모르게 묻는다.
“선물 받은 검이라면……?”
“신과도 비긴다는 에이션트 드래곤 비트칸이 준 용골검이라는 검이다. 마력을 흡수하고 마법을 멸한다는 바로 그 검 말이다. 그리고 용골검은 손등에 숨겨둘 수도 있었는데, 아서 폐하께선 필요할 때마다 소환해서 쓰곤 하셨지.”
다시 한 번 곳곳에서 감탄이 터져 나온다.
“아……!”
“마력을 흡수하는 검!”
“마법을 멸하는 검!”
“근데 진짜 마력을 흡수하고 마법을 멸할 수 있을까?!”
“그럼 마법사들은 어떻게 이겨?!”
“검사들도 힘들겠는데?!”
마력을 흡수하고 마법을 멸한다는 말에 강의실이 술렁거렸다.
아벨은 반장갑을 낀 오른손을 바라봤다.
‘확실히 대단한 검이긴 해.’
기숙사에서 수련할 때 용골검으로 수련했었다.
그렇다 보니 그 검이 정말 뛰어나고 대단한 검이라는 걸 모를 수가 없던 것이었다.
아직 성검 유게네스를 써보지 못했기에 두 검을 비교할 순 없었으나, 그래도 유게네스를 제외한 그 어떤 검보다는 용골검이 훨씬 뛰어나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탁! 탁!
강의실이 시끄러워져 교탁을 내리치면서도 쥬디스는 흐뭇한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흑풍흡검은 방금 말한 용골검의 마력 흡수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든 검술이다. 너희들이 믿기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너희만 할 때 그랬으니 말이다. 하지만 용골검과 흑풍흡검 같은 경우도 대륙 전 지역에서 문헌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이것 또한 사실이라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 손을 들고 묻는다.
“그럼 검술은 아무도 못 익혀서 못 본다고 쳐도 용골검은 볼 수 있나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용골검은 현재 제국의 황실무고에 있다.”
“황실무고요?”
“그래. 제국의 황제만이 출입할 수 있다던 그곳 말이다.”
“어? 아벨 저하께서도 최근에 황실무고에 다녀오셨는데요? 그래서 대천사의 피와 드래곤 하트를 복용하셨다고.”
“뭐라고?!”
깜짝 놀라는 쥬디스를 보니 아벨이 황실무고에 다녀왔다는 걸 모르는 듯했다.
‘아벨에 대한 자료를 받았겠으나 안 본 거겠지.’
그는 대단한 괴짜라서 아벨에 대한 자료를 받았더라도 대충 어디에다가 치워뒀을 것이다.
그럴 가능성이 매우 컸었다.
쥬디스는 갑자기 흥분해 소리쳤다.
“사실입니까아?!”
아벨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입니다. 다녀왔었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웅성대기 시작했다.
“용골검을 본 거 아냐?”
“진짜 용골검이 있겠어?”
“왜 없겠어. 방금 말씀하셨잖아. 황실무고에 있다고.”
“아니. 진짜 있는 검이겠냐고.”
“여기저기 기록되어 있는데, 당연히 있겠지.”
학생들은 아벨이 실제로 용골검을 봤을지 대단히 궁금해했었다.
물론 쥬디스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말을 떨기까지 했다.
“……요, 용골검을 보셨습니까……?”
피식―
“네. 보았습니다. 용골검뿐만 아니라 용혈갑까지.”
“오오오오―!! 역시 존재했었어!!”
쥬디스는 굉음을 지르며, 두 눈 똥그랗게 뜨고 아벨을 바라보았다.
“그럼! 그럼 뇌전마검의 검술서와 흑풍흡검의 검술서도 보셨습니까?!”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보았습니다. 대단히 흥미로운 검술이었습니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학생들보다 훨씬 더 흥분하는 쥬디스였다.
“마법서들도!! 드래곤들의 마법서들도 보셨습니까아?!!”
쥬디스는 뇌전마검이나, 흑풍흡검, 용골검의 존재 여부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사실 그것보다 드래곤들의 마법서들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다이나 황후도 쥬디스에게 아벨을 망가트려만 준다면 황실무고에서 그 드래곤들의 마법서들을 구해주겠다고 약속한 것이고.
“당연히 보았습니다.”
“혹시! 혹시 기억하고 계십니까?!”
쥬디스에겐 대단히 중요한 질문이었는데, 아벨의 대답에 따라 다이나 황후의 도움 없이도, 꺼림칙한 황후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아도, 무엇보다 기다릴 필요 없이 당장에 알 수 있게 되던 것이었다.
물론 아벨은 황실무고에서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최대한의 마법서를 읽고 외워 나왔었다.
그리고 쥬디스가 원하는 그 마법서들도 당연히 알고 있었고.
‘벌써부터 알려줄 순 없지.’
쥬디스는 아벨을 망치기 위해 들어오긴 했으나, 마고스의 설득으로 3학년이 될 때까지는 아벨을 내버려 둘 것이었다.
그리고 너무 쉽게 알려주면 고마움을 모르는 법이다.
‘그가 필요할 때가 있어.’
당장 이번 여름 방학 때 그가 필요했다.
그때 하나 정도 알려주기로 한다.
훗―
“어떻게 다 외우겠습니까? 그저 뭐가 있나 봤을 뿐입니다.”
“아…….”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랄까?
별안간 땅이 꺼지라 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아주 예전에 마고스에게 듣기로는 아벨만큼 대단한 천재를 본 적이 없다고 들은 것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큰 기대를 해버렸었다.
“……그렇군요…….”
실망이 큰 쥬디스는 마치 영혼이 반쯤 빠져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것보다 지금 뇌전마검과 흑풍흡검, 용골검에 대해 말하던 중 아니었습니까?”
아벨은 처음으로 필기 수업을 계속 듣고 싶다 생각했었는데, 뇌전마검과 흑풍흡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렇지요…….”
하지만 이미 강의할 의지를 잃어버린 듯했다.
아직 끝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음에도 말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다…….”
“네에?”
돌발적인 선언에 다들 깜짝 놀랐다.
“……그리고 숙제가 하나 있다…… 다들 에디린 님에 대해 조사해 오도록…… 도서관에 관련 서적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축 처진 어깨를 한 채 강의실을 나가던 쥬디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