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19화. 원예부에서 생긴 일(2)
로디아는 마치 자기가 당한 일마냥 화를 냈다.
“……?!”
술에 취해 저번 테스트 때처럼 또 폭주한 거 같았다.
‘소설에서도 저랬었나……?’
케이가 깜짝 놀라며 몸을 아벨 쪽으로 들이대며 묻는다.
“정말이에요?!”
원예부원들도 마찬가지로 경악스러워 했다.
“그 황궁발 찌라시들이 사실이었다니!”
“헐!”
“너어어무 불쌍해에에에―!”
아벨을 적극 대변하는 로디아 때문에 아벨은 또다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흠흠―! 헛기침을 하고는 적당히 둘러대기로 한다.
“……물론 로디아의 말이 맞긴 하지만…… 덕분에 황실무고에도 들어갈 수 있었고 이렇게 루드스에서 너희들도 만나지 않았더냐. 만약 그러한 일이 없었다면 난 너희들을 영원히 못 봤을지도 모른다.”
그 말에 로디아는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소리쳐 반박한다.
“거짓말! 성녀 다프네 님 때문에 저하를 도저히 암살할 수 없어서! 그래서 다프네 님이 없는 루드스로 보낸 거잖아요! 안 그래요?!”
그러자 원예부원들이 한목소리로.
“네에에에?!!”
머리가 아파와 관자놀이를 누른다.
원예부원들은 로디아의 말에 격한 분노를 터트렸다.
“그럼 어떡해요?! 여기서도 계속 공격받는 거 아니에요?!”
“허얼―! 그럴 수가! 진짜 나쁜 놈들! 아 년들인가? 아무튼!”
“마아알도오 안 돼에에에―!”
“제가 지켜드릴게요! 저하 제 옆에 꼭 붙어 계셔요! 저만 믿으시라구요!”
그때 지켜주겠다는 케이를 잠시 바라봤는데, 케이는 당장에라도 눈물을 흘릴 듯이 그 큰 눈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아벨은 두 눈을 감고 잠시 심호흡을 하며 당혹스러움을 가라앉힌다.
그리고는.
“……그래. 로디아. 네 말이 맞다. 그때 공격당한 이유는 내 뛰어난 재능 때문이었다. 하지만 로디아. 너도 알다시피 내가 황궁에 계속 남아있었더라면 그들의 목적대로 더는 내 재능을 꽃피울 수 없었을 것이다. 다프네 님 덕분에 결코 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는 게 과연 옳은 삶일까? 그렇게 갇혀 산다면 정말 내가 살아가고 있다 말할 수 있을까?”
목이 타 다시 한 모금 마신다.
“나는 진심으로 루드스로 오게 된 것이 신이 내게 주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억눌러야만 했었던 내 재능을 드디어 꽃피울 수 있게 된 기회. 그토록 간절히 바라고 바랐었던 바로 그 기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을 해줬음에도 여전히 조금은 의심하는 얼굴들이었다.
“황실 자제들이 사는 기숙사에 와 봤는가? 그 건물 안에는 모든 게 갖춰져 있다. 충격 흡수 벽으로 만들어진 연무실도 실내에 마련되어 있고. 다시 말해 본격적으로 검술을 수련할 수 있다는 의미다.”
“아…….”
“그래. 다프네 님과 함께 있지 못해 조금은 위험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그만큼 강해지면 되는 것이니.”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강인한 눈빛으로, 결국엔 눈물을 흘리는 케이를 바라보며 말한다.
“난 반드시 강해질 것이다. 모든 것들을 당연히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아벨의 믿음직스런 모습에 케이도 덩달아 안정을 찾는 듯했다.
눈물을 닦으며 휴지에 코도 흥―! 하고 푼다.
그 모습에 귀여워 피식― 웃으며, 케이의 눈가에 남은 눈물을 거친 손으로 훔쳤다.
“그리고 지금은 너희들도 있고 말이다. 어제도 괴한들을 만났을 때 너희가 나를 돕지 않았느냐? 앞으로도 너희가 나를 돕는다면 정말 괜찮을 것이다. 그러니 걱정 말아라.”
케이가 아벨에게 몸을 바짝 기울이며 소리친다.
“맞아요! 우리가 함께할게요! 흐흐흑―!”
다시 흐르는 케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동아리 부장인 리나에게 말한다.
“당분간은 기숙사에서 수련만 할 생각이니, 동아리 활동을 자제하도록 하겠다. 잘 오지 않더라도 이해해 줬으면 좋겠군.”
다들 아벨의 말을 이해했기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가야겠어.’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았다.
아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오늘은 이만 자리를 파하도록 하지. 꽤 많이 마셨으니 말이야.”
“가, 같이 가요!”
“저도요!”
케이와 로디아도 따라 일어섰다.
리나가 남은 원예부원들 대표로 말한다.
“여기는 저희에게 맡기고 어여 들어가셔요! 케이! 로디아! 아벨 저하를 잘 모시도록!”
두 소녀는 경례를 하며 힘차게 대답한다.
“넵!”
“네엡! 걱정 마십쇼! 대장님!”
“그래! 출동!”
아벨은 다시 한 번 피식― 웃으며 부실을 빠져나왔다.
두 소녀는 아벨의 앞에서 철통같이 자신들의 저하를 지키겠다는 진지한 표정으로 매의 눈을 하고 사주경계를 하며 걸어갔다.
아벨은 오히려 술 취한 두 사람이 걱정돼 조마조마하며 걸었고 말이다.
‘상점에 가야 하는데. 아직 열었을지 모르겠군’
달의 위치를 보니 8시쯤 된 거 같았다.
두 사람을 데려다주고 혹시 모르니 한 번 가보기로 했다.
‘그나저나 다행히 잘 걷고 있군.’
생각보다 똑바로 잘 걷고 있었다.
그래서 금방 여자 기숙사 앞에 도착했다.
“둘이 같은 방이라 했나?”
“네에! 우리 같은 방 써요!”
“놀러 오실래요?!”
이 대책 없는 소녀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여자들 방에 내가 들어갈 수 없지.”
케이가 따져 묻는다.
“아 왜요! 왜 안 돼요!”
“당연히 안 되지. 너희들은 내가 퇴학당하길 바라는 것이냐?”
로디아가 큰일 날 소리를 한다.
“아벨 저하는 그래도 퇴학 안 당할 걸요?”
“모르지. 아무튼 어서 올라가.”
다시 달라붙으려는 케이를 밀어내며.
“히잉―”
“어서. 어서 올라가.”
“히이잉―”
걸으면서 술이 깬 듯한 로디아에게 말한다.
“로디아. 케이를 부탁한다.”
“넵. 저하. 맡겨만 주십쇼.”
“히잉― 저하―”
마치 생이별하는 듯한 케이를 로디아가 끌고 간다.
둘이 여자 기숙사 건물로 올라가는 걸 보고 나서야 상점 쪽으로 걸었다.
상점에는 무기 상점과 마법 상점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무기 상점은 믿어선 안 될 곳이었다.
소설에서도 무기 상점에서 검을 샀다가 중요할 때 박살 나서 죽을 뻔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녔었다.
‘무기 상점은 형님들의 입김이 닿아 있으니.’
하지만 다행히도 마법 상점은 다른 이의 입김이 닿지 않아 안전했었다.
“어서 오세요.”
색기色氣가 철철 흐르는 묘한 눈빛을 가진 30대 중반의 여성이 아벨을 맞이했다.
글래머러스한 풍만한 몸매에 대단한 미인이어서 많은 남학생들이 홀린 듯이 값비싼 물품들을 미친 듯이 사갔다라고 작가가 묘사했었다.
상점 주인에게 천혜안을 썼다.
『이름 - 나스타샤 요한센
정보 - 마법 명가 요한센 백작가 사람. 제국 아카데미 루드스 마법 상점주인. 8 서클 마법사.』
그녀는 아벨을 보고는 대단히 이채로운 눈빛을 띠었다.
“오호 소문의 황자 저하신가 보군요. 호호―”
“그래. 내가 바로 그 지워진 황자이지. 필요한 게 있어 왔다.”
생글생글 눈웃음을 치며 말한다.
“말씀하시지요.”
“유실수有實樹 가지로 만든, 마법으로 정제된 나무칼과 몸에 새겨진 마법을 침착시킬 마법수魔法水가 필요하다.”
“몸에 마법이라도 새길 생각이신가요?”
“그래. 마력장벽魔力障壁이라도 새겨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혼자서 가능하실까요?”
“그거 하나 새기는 것이니. 혼자서도 가능하지 않겠나?”
보통 등에다가 새겼었다.
상점 주인은 팔꿈치를 카운터에 대고 그 풍만한 몸을 아벨 쪽으로 기울며 말한다.
“정 필요하시면 제가 도와드릴 수도 있는데 말이죠.”
“간단한 마법이라 이번엔 괜찮을 듯하군. 만약 정 필요하면 내 꼭 자네에게 부탁하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래. 얼마인가?”
“10골드만 주세요.”
10골드를 꺼내 주었다.
돈을 받고는, 배꼽 아래에 두 손을 가지런히 가져다 놓고 공손히 허리 숙이며 말한다.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뵐 수 있길 고대하고 있을게요.”
“그래. 곧 다시 오지.”
드디어 마법을 몸에 새길 물품들을 구했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던 아벨이었다.
* * *
그녀는 루드스 내에서 아벨이 도움을 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만약 그녀가 아닌 다른 이가 주인이었다면 이곳에서조차 마법 물품들을 살 생각을 못 했을 것이었다.
‘보고가 되는 건 상관없다만 이상한 물건을 줄 것이기에.’
그녀가 아벨을 돕는 대는 별 이유가 없었다.
단순히 가문에서 버림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도 눈치 볼 사람이 없었던 것이었다.
‘금지된 연구를 하다 버림받았었지.’
제국 유일 마법 명가 요한센 백작가에서 대단히 아끼던 여자였지만 금지된 연구를 한 까닭에 반성하라는 의미에서 이곳에 보낸 것이었다.
다시 말해 유배 보낸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도 그 연구에 대단히 관심이 많았기에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신들의 진짜 얼굴을 보고 싶어 했어.’
10인회만이 알고 있던 신들의 진짜 모습을 알고 싶어 했었다.
또한 에브니아 세상의 인과율因果律에 대해서도.
‘에브니아 대륙의 존재 이유에 대해 궁금해했었지.’
그것들이라면 이번 아벨이 도와줄 수 있었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모든 걸 알려줄 순 없어도.’
판타지 웹소설 작가 ‘난좋은작가’가 만든 세상이라고 말하면 과연 그녀가 믿을 수 있겠는가?
욕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
아무튼 그녀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에서 적당히 말해줄 생각이었다.
‘훗날 도움도 받고.’
훗날 그녀의 도움을 받을 때가 분명 있었다.
그래서 이 대륙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하위 신들에 대해서만 조금씩, 조금씩 알려주기로 한다.
그 추악한 일면들을.
기숙사로 돌아온 아벨은 샤워를 한 후 곧장 몸에 룬어를 새길 준비를 했다.
아까 산 유실수로 정제된 나무칼과 마법수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그토록 원하던 마법을 새길 수 있다 생각하니 심장이 마구 뛰었다.
‘드디어. 드디어 갖게 됐어.’
옷을 입었을 때 보이지 않는 곳에 새기기로 했다. 꽤나 많은 공간이 필요했기에 팔과 다리는 드러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가슴에다가 ‘순간이동’을, 복근에다가는 ‘지옥 불꽃’을 새기기로 했다.
나무칼을 잡고 우선 가슴부터 룬어로 치환해 새기기 시작했다. 가슴이 강철같이 단단해 쓰기 편했다.
마력을 담은 나무칼이 찌익찌익 살갗을 가볍게 찢었다. 찢어진 살갗에서 실 같은 피들이 흘러나와 뚝뚝 하고 바닥에 떨어져 내린다.
한참을 정성껏 한 자, 한 자 새긴다.
뚝― 뚝― 뚝―
두 마법이 다 새겨졌을 때는 바닥이 아벨의 피로 흥건했었다.
고통을 못 느끼는 듯한, 무심한 얼굴로 주룩주룩 피가 흘러내리는 가슴과 복근을 마법수로 닦아낸다.
그런 후 마법을 새기는 주문을 영창한다.
입에서 흘러나오는 언어와 그로 인한 숨결, 진동하는 주변 공기.
그 마법적인 3박자가 어우러지더니, 내적인 공명과 어울려 아벨의 가슴과 복근에 새겨진 주문이 별안간 빛을 내기 시작했다.
수아아아―
이제 의지와 함께 마력만 불어넣는다면 언제든지 영창 없이 마법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시험해볼까?’
시험 삼아 ‘지옥 불꽃’을 써 본다.
복근에 마력의 움직임이 느껴지더니 아벨의 손바닥 위로 활활 타오르는 섬뜩한 핏빛 불꽃이 솟아오른다.
그 상태로 가슴에 마력을 주입한다.
수왁―!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아벨이 서 있었다.
완벽히 자신이 원하는 곳이었다.
‘완벽해.’
모든 게 완벽했다.
두 마법만 있어도 루드스 내 생활에서 죽을 위기는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마법들은 훗날 100% 믿을 수 있는 마법사가 생겼을 때, 그때 등에다가 새기기로 한다.
‘기대되는군.’
정말 앞으로가 기대됐다.
‘몇 시지?’
시계를 보니 11시였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밤새 검을 휘두르기로 한다.
* * *
아벨은 매번 말하지만 한두 시간만 자도 아그네스의 목걸이 덕분에 수업 시간에도 졸지 않을 수 있었다.
심지어 필기 수업인데도.
‘정말 지루하군.’
물론 지루하긴 했지만.
당연하게도 필기 수업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아벨의 기억 속에 있는 것들이다 보니.’
나눠준 교과서들을 대충 훑어보니 대부분이 아벨의 기억 속에 있던 것들이었다.
‘3살 때부터 공부를 했었지.’
워낙 총명한 모습을 보였기에 수잔 황비가 3살 때부터 선생을 붙여 공부를 하게 했었다.
당시 선생이었던 현자賢者 다니엘 브륄은 아벨의 압도적인 재능을 바로 알아보고는, 황후나 2, 3 황비들에게 아벨의 재능이 노출되는 것을 막아주었었다.
‘마고스 때문에 들켜버리고 말지만.’
그렇게 마고스를 통해 아벨의 재능이 알려지기 전에는, 그래도 아벨은 다니엘의 보호 하에 기초적인 검술과 마법, 그리고 각종 학문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심지어 그에게 제왕학帝王學마저 배웠었는데, 당연히 온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 못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벨로 살면 살수록 아벨의 엄청난 능력에 소름이 돋을 때가 많았다.
지금도 수업의 내용을 듣자마자 그것과 관련된 내용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었다.
“카인 폐하의 20살 이전의 삶에 대해선 그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부모는 누구이며, 어디서 태어나셨고,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등 말이다. 폐하와 일생을 함께하셨던, 폐하의 스승 골드 드래곤 에디린 님마저 전혀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으니, 누구도 알 수 없었던 것이지.”
건국 황제 카인의 이야기는 제국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반드시 알아야 하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필기 수업은 제국을 건국한 건국 황제이자 용사 ‘카인 아이테르너스’부터 가르쳤었다.
카인의 삶과 업적, 주요 사건, 사상, 주변 인물들 등등.
1학기 동안은 카인에 대해서만 배운다고 생각하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