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17화. 슬기로운 루드스 생활(3)
이제 곧 아벨의 차례였다.
케이의 걱정과는 다르게, 오히려 아벨은 어느 정도로 수준을 낮춰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마고스도 내가 대천사의 피와 드래곤 하트를 복용한 걸 들었을 테니.’
적당히 보여주면서 동시에 반장 후보도 피하려면 5성 정도면 될 듯했다.
5성이면 오러를 쓰기 직전의 단계로, 검기를 매우 뚜렷하게 형상화할 수 있었다.
‘5성 정도가 적당해. 카시드와 지산이 전력을 숨길 수도 있으니까.’
카시드가 7성 초반이었고 지산이 6성 중반이었다.
‘그래도 1등은 하려 할 것이니.’
그들도 힘을 숨겨 6성 초반 정도로 공격할 가능성이 대단히 컸었다.
‘그래. 5성이면 돼.’
우웅―
파지직―!
검기임에도 마나의 속성 때문에 황금빛을 띠었고 검에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스파크가 튀었다.
“아니 검기가 저래도 되는 거야?!”
“와! 완전 선명해! 그리고 황금빛이야!”
“4성은 그냥 넘겠는데?! 안 그래?!”
“그것보다 저건 또 뭐야?! 검기에서 스파크가 튀다니!”
“전격 속성이다!”
A반이라고 하더라도 5성 이상급의 무인은 카시드와 지산, 쿠리엘 정도밖에 없었다.
아벨은 마고스를 향해 검을 들어 올려 단순 종베기를 했다.
쉬익―
콰콰쾅―!
마고스는 가볍게 막아내면서도 눈에 이채가 돌았다.
이 정도라곤 생각 못 한 것이었다.
“……단순한 종베기군요.”
“단순한 테스트니까 말입니다.”
“마나가 아주 정순하시군요. 그리고 전격 속성이고 말입니다.”
“들으셨겠지만, 제가 대천사의 피와 골드 드래곤 하트를 다프네 님을 통해 복용했었습니다.”
역시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마고스는 다 알고 있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다행입니다. 다프네 님께 도움받으셔서.”
“네. 정말 다행입니다.”
“앞으로가 기대되는군요.”
“과찬입니다.”
다음 차례 학생이 도착했다.
마고스에게 말한다.
“그럼 전 이만.”
“네. 저하. 쉬고 계시지요.”
물러나는 아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그런데 무구로 용혈갑과 용골검을 선택했으면서 왜 골드 드래곤 하트와 반지를 택한 걸까.’
용혈갑과 용골검은 어둠 속성의 무구였다. 그 무구들과 관련된 검술도 어둠 속성의 흑풍흑검이었고.
‘골드 드래곤 하트와 반지라면, 뇌전마검밖에 없는데.’
황실무고에 들어갔다 나온 지 한 달 정도 됐었다.
그동안 방 안에만 있어서 검술은 수련하기 힘들었겠으나, 분명 마나 연공법은 해왔을 것이었다.
방금 보인 검기는 분명 뇌전마검의 영향 같았다.
‘뇌전마검인가, 아님 흑풍흡검인가.’
마고스도 뇌전마검과 흑풍흡검은 너무 난해한 검술이라, 창시자 외에는 도저히 익힐 수 없어 현재는 사장됐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설마 그 정도일까마는.’
마고스는 두 검술이 너무 난해해 사장 됐다는 말은 사실 조금은 과장된 것이라 생각했다.
그저 황실에서 옛 황제들을 우상화하기 위해 황실무고에 묵혀두고는 그런 허황한 소문을 낸 것이라고 믿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니 아벨 정도의 재능이라면 두 전설의 검술 중 하나는 반드시 익히고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앞으로 지켜보면 알겠지.’
생각을 정리한 마고스도 아벨에게서 고갤 돌리며 다음 학생에게 말한다.
“시작하라!”
아벨은 무리에서 일부러 멀찍이 떨어져 섰었다. 그러자 아벨에게로 케이와 로디아가 다가왔다.
케이가 정말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호들갑을 떨며 말한다.
“역시 대단하셔요! 최고였어요!”
아벨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젓는다.
“폐하의 은혜로 대천사의 피와 드래곤 하트를 복용한 덕분이다.”
그 말에 케이는 깜짝 놀랐다.
“대천사의 피와 드래곤 하트를 복용하셨어요?!”
그때 황궁 안 정의의 신전에서 기거했었던 로디아가 속상하다는 듯이 말한다.
“저하를 암살하려는 자들이 워낙 많았거든. 그래서 대천사의 피와 드래곤 하트를 드신 거야. 암살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시기 위해서.”
“……?”
순간 아벨은 로디아의 말에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
그리고 케이의 얼굴이 금세 울상이 되길래, 아벨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케이. 난 정말 괜찮다. 그건 다 예전 일이니까. 아무튼 이제 너희들 차례가 아닌가?”
때마침 케이 앞이었던 학생이 끝났었다.
마고스가 다음 차례를 찾고 있었다.
“다음 어딨나?”
“아―! 다녀올게요!”
“그래.”
총총걸음으로 마고스에게 가는 케이였다.
케이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로디아에게 말한다.
“다음부턴 황궁에서의 일은 말하지 말도록.”
아벨의 얼굴이 차가워서였을까?
기가 죽은 얼굴이다.
“아…… 네…… 저도 모르게 그만…… 그때 그 일이 너무나 속상해서…….”
그 기죽은 얼굴에 마음이 약해진다.
“……고맙다. 하지만 앞으로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
“네…….”
“괴로웠던 과거를 들추고 싶지 않아.”
어깨가 축 처지고선.
“네에…… 이젠 정말 안 그럴게요…….”
“그래. 내 생각해줘서 정말 고맙다. 로디아. 그리고. 이제 네 차례인 거 같다.”
어느새 끝낸 케이가 마고스에게 칭찬을 듣는 게 보였다.
“네…… 그럼 저도 다녀올게요…….”
그러면서 마고스를 향해 터덜터덜 힘없이 걸어간다.
그 아담한 체구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도대체 왜 배신한 거지? 심성은 착한 거 같은데…….’
로디아는 소설 전반적으로 아벨에게 항상 호의적이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은 몰라도 로디아의 배신만큼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었다.
‘화신체였다면 이해하겠는데, 로디아는 화신체도 아니었잖아?’
신의 눈과 귀이던 대신관이었긴 했지만, 화신체가 아니었기에 신에게 직접적인 관여는 받지 않았었다.
‘로디아가 왜 배신했는지 정말 모르겠어. 카시드와 지산의 경우는 알겠는데.’
카시드가 아벨을 배신한 이유는 다른 게 없었다.
모든 면에서 아벨에게 압도적으로 뒤처졌기 때문이었다.
‘카시드는 여자 문제도 있었어.’
그리고 또한 카시드는 아벨의 연인이었던 아르시아를 모든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갈망했었고 말이다.
‘지산은 무투술 때문이었지.’
지산은 카시드와는 조금 그 성격이 달랐었는데, 다름 아닌 아벨이 자신보다 무투술로도 앞섰기 때문이었다.
다른 분야라면 아벨이 용사로 태어났으니 그러려니 하겠지만, 검술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단순한 무투술로도 자신을 압도해 버리니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것이었다.
‘지산에겐 무투술로 나대지만 않으면 돼. ……로디아는 앞으로 지켜보면 알게 되겠지.’
카시드는 불가능하겠지만, 지산과 로디아는 잘만 하면 회유해 마족 멸살을 진심으로 돕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마침 로디아가 마고스를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쎄에엑―!
콰콰쾅―!
케이와 비슷한 세기인 것 같았다.
마고스도 로디아의 검격에 감탄하며 말한다.
“잘했다. 역시 차세대 성기사단장이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구나.”
그 칭찬에 매우 쑥스러워했다.
“과찬이세요. 교수님.”
“그래. 앞으로도 정진하도록.”
“네. 열심히 할게요.”
“그럼 다음.”
다음은 지산이었다.
‘잘 다듬은 육체로군.’
지산의 거대한 몸은 그저 거대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셔츠의 소매를 걷었었는데, 전완근이 마치 무쇠와 같이 단단해 보였다.
지산이 은빛 너클을 만지작거리며 마고스 앞에 섰다.
‘솜씨 한 번 볼까?’
마고스에게 정중히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춘 그는, 앞의 케이와 로디아와는 달리 가문의 비기를 쓸 준비를 했다. 그리고 예상외로 힘을 전혀 숨길 생각이 없는 듯했다.
어지간히 반장이 되고 싶은 듯했다.
“그럼 가겠습니다!”
호기롭게 소리치며 마력을 끌어올린다.
주먹에 흐릿하지만 분명 검기가 아닌 오러가 둘렸다.
“오러다!”
“뿌옇지만 저건 분명 오러가 맞아!”
“1학년인데 벌써 오러를!”
“우리랑 같은 신입생 맞아?!”
다른 학우들이 놀라던 가운데.
구오오오오―
적절한 효과음과 함께 푸뉴스 가의 무투술이 펼쳐졌다.
푸뉴스 가家 무투술武闘術
제1식
파암권破岩拳
어떠한 바위라도 산산조각낼만한 거력巨力이 실린 주먹이었다.
부우웅―!
콰콰쾅―!
“……?!”
하지만 역시 이번에도 너무 손쉽게 막아버린다.
마고스에게는 다 똑같은 어린애 수준이었던 것이었다.
조금은 허망해 하는 지산에게 마고스가 말한다.
“차석이 될 만하군. 훌륭하다.”
민망하여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한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럼 다음.”
드디어 그 소문난 검술 강국 아덴의 카시드 왕자 차례였다.
훗날 검왕劍王이란 이명을 가지게 될 에브니아 세계관 아벨 다음의 검사.
지금도 신입생들 사이에선 눈에 띄게 찬란해 보인다.
우우우우웅―!
카시드는 호승심 때문인지, 그 역시 반장이 꼭 되고 싶어선지, 지산처럼 전력을 결코 숨기려 하지 않았다.
카시드도 자신이 가진 7성 초반 최대치의 마력을 끌어올린다.
‘아직 어리군.’
전력을 다해 경쟁자들의 기를 꺾을 생각인 듯했다.
“우와와악―! 이번에도 오러야!”
“지산보다 훨씬 짙은 거 같아?!”
“이번엔 교수님도 타격을 입으시겠지?”
“가능할지도!”
확실히 카시드의 검에는 어느 정도 선명한 오러가 휩싸여 있었다.
카시드는 마고스를 향해 비기를 쓸 자세를 취한다.
사아아아아아―
검이 오러에 공명共鳴하며 죽은 자들의 노랫소리처럼 스산한 소리를 냈다.
이어 살기 짙은 오러가 마고스를 양분할 듯이 훑고 지나친다.
사자신검死者神劍
제1식
죽은 자들의 원망怨望
사아악―!
콰콰콰쾅―!
마고스는 물론 예의 다를 바 없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막아냈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재밌다는 얼굴이었다.
‘확실히 재능은 재능이군.’
신입생들 중에 꽤나 괜찮은 재능들이 많다고는 들었었다.
‘근래 들어 정말 뛰어난 재능들이 많이 태어났어.’
자신도 이 나이 때에 이 정도까진 아니었었다.
‘기대가 되는군.’
“확실히 가능성은 보이는군. 좋다. 우리 반 반장은 카시드가 맡기로 한다.”
* * *
첫날이라 수업보다는 수업의 방향과 내용, 언제 야외 수업을 하고, 언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보는지 등등 대략적인 것들만 설명했다.
“나보다 너희들이 더 잘 알 거다. 내일부터는 필기 수업도 시작되니, 모두 잘 준비해오도록. 그럼 오늘은 이만 끝내기로 한다. 해산.”
마고스가 강의실을 나가자 케이가 아벨에게 묻는다.
“저하. 이제 동아리 알아보러 가요.”
너무 일찍 끝나 아직 점심시간도 아니었다.
“그래. 함께 가자.”
로디아가 놓칠세라 끼어든다.
“저도요.”
카시드도 참여했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카시드가 가니 지산도 따라간다.
“흐흐― 사실 들어갈 곳이 정해져 있긴 한데 같이 가시죠.”
그래서 다섯이서 함께 동아리 건물로 갔다.
걸어가면서도 주목을 안 받으려야 안 받을 수가 없었다.
6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지워진 황자’ 아벨과 신입생 종합 성적 1등, 2등, 3등, 5등이 함께 다녔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아벨의 인간 같지 않은 아름다움과 ‘제국의 고고한 장미’라 불리는 케이의 아름다움이 화제가 되고 있었다.
아벨과 케이가 지나갈 때마다.
“와― 저게 사람이야? 신이야?”
“남신과 여신 모두 우리 루드스에 강림하셨네.”
“아벨 저하와 케이 영애가 함께 걸으니…… 이거 진짜 명화의 한 장면 같네…….”
“억울하다. 억울해. 난 왜 이 모양으로 태어난 거야.”
“부, 럽, 다.”
카시드도, 지산도, 로디아도 어느 정도 훈남, 훈녀들이었지만 두 사람에 비하면 역시 외모로는 많이 부족해 보였다.
카시드는 자신들의 성적이나 강함보다 아벨과 케이의 외모 때문에 주목받자 심통이 난 얼굴이다.
“시끄럽군.”
“하하―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아벨 저하와 케이가 함께 있으니. 하하하―”
“맞아. 어쩔 수 없어.”
“쳇!”
그리고 카시드는 그뿐만 아니라 케이가 아벨에게 딱 달라붙어 다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은 듯했다.
앞서 걷고 있던 두 사람의 등을 마치 당장에라도 꿰뚫을 것만 같은 날붙이와 같은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서 눈치 빠른 지산은 토라진 카시드를 바라보며 화제를 돌리기 위해 물었다.
“그나저나 카시드 너는 검사부에 들 건가?”
카시드는 역시 빈정 상한 목소리로 말한다.
“뭐 그렇게 되겠지. 검사부엔 아덴에서 온 귀족들도 많고, 형님과 누님들도 계시니까. 너는? 역시 무투부에 들 건가?”
“그래. 나 역시 가문의 형제들이 그곳에 있거든.”
그러면서 로디아를 바라본다.
“로디아. 너는 정한 곳이 있나? 검사부나 신학부는 안 간다 했었으니 말이다.”
“아니. 아직 못 정했어.”
그러자 지산이 조금 안타까운 투로 말한다.
“네가 검사부로만 간다면 다양한 검사들과의 대련을 통해 실력을 더욱 빠르게 향상할 수 있을 텐데 말이지.”
“몰라. 난 사실 대련을 좋아하지 않아서 말이야.”
“그렇군.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안타까운 건 역시 어쩔 수 없군. 너처럼 재능 있는 검사도 몇 없으니 말이다.”
로디아가 지산에게 생긋 웃으며 말한다.
“과찬이야.”
카시드가 로디아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벨 저하를 받아줄 동아리는 있는가?”
제국 귀족들이 아벨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다는 걸 알고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카시드도 사실 고모 셀비 3 황비를 통해 아벨을 따돌리라는 명을 받았었고 말이다.
로디아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마도 없을 것 같아. 사실 제국의 귀족들은 아벨 저하를 가까이해선 안 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