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15화. 슬기로운 루드스 생활(1)
밤사이 아벨은 카인의 마나 연공법을 먼저 4시간 동안 하고 잠깐 잠을 잤다가, 4시간 동안 더 검을 휘두르고 나서야 학교에 갈 준비를 했었다.
잠은 한두 시간만 자도 성녀 다프네가 준 아그네스의 목걸이 덕분에 컨디션엔 별문제 없었다.
[뇌전마검雷電魔劍 1성 - 12%]
[흑풍흡검黑風吸劍 1성 - 4%]
[카인의 마나 연공법 3성 - 21%]
카인의 마나 연공법 같은 경우에는 황궁에서부터 해왔었지만, 뇌전마검과 흑풍흡검 같은 경우 루드스에 와서야 본격적으로 수련할 수 있었다.
최종적으론 뇌전마검과 흑풍흡검을 혼합할 생각이었기에, 뇌전마검에 좀 더 치중하겠지만 흑풍흡검도 비슷한 수준을 맞춰가며 수련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당분간은 흑풍흡검을 써야 하니.’
뇌전마검은 비밀무기로 최대한 아껴둘 생각이었다.
‘아무튼 둘 다 대단한 검술이야.’
대단히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옷을 벗고 욕실에 들어간다.
샤워를 마친 후 냉장 상자에서 딸기우유와 호밀빵을 꺼내 함께 먹었다.
‘아직은 없군.’
감시구가 기숙사 내부에는 없는 듯했다.
‘3학년 때나 본격적으로 감시하려 들겠지.’
현재 그들도 충분히 아벨을 없앨 수 있다 자신하고 있었기에 그렇게까지 경계를 하고 있진 않았었다.
‘오늘 바로 마법들을 몸에 새기자.’
몸에 룬어를 새겨 마법을 영창 없이 시전하는 방법은 황실무고에서 외워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몸에 마법을 새길 때 몇 가지 마법 물품들이 필요했었는데, 수업 끝나고 마법 상점에서 사면 될 듯했다.
무리 없이 오늘 안에 마법을 새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무영창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마법을 시전할 수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새기게 됐군.’
솔직히 말해 황실무고에서 나오자마자 새기고 싶었었다.
그럼에도 이때까지 못 한 이유는 필요한 마법 물품들을 황후와 황비들의 검열 때문에 도저히 구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기회의 땅인 루드스에서는 그 마법 물품들을 언제든지 원하는 만큼 구할 수 있었다.
‘뭐 지금이라도 새기는 게 어디야.’
드래곤의 마법 ‘순간이동’과 영혼까지 태워 없앤다는 ‘지옥 불꽃’, 두 마법을 새길 생각이었다.
황실무고에서부터 생각해둔 마법이었다.
‘최고의 마법들이지.’
순간이동이야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드래곤들을 무적처럼 보이게 한 마법인데.
그리고 주원이 생각하기에 그 어떤 마법보다 아벨을 무적으로 만들어 줄 마법이었고.
‘확실히 드래곤들이 강한 이유가 있어.’
물론 드래곤들도 에이션트 드래곤이 아니라면 드래곤 본체인 채로는 순간이동을 쓰지 못하긴 했었다.
‘그래야 밸런스가 맞지.’
그리고 다음으로 ‘지옥 불꽃’을 새기려는 이유는 다름 아닌 작가가 설정한 에브니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마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마법은 마력광선처럼 한 점으로 힘을 모아 쏠 수도 있었으며 광역廣域 마법처럼 엄청나게 넓은 범위로도 적들을 공격할 수 있었다.
‘그러니 두 마법 정도만 있어도 지금으로는 충분해.’
방어 마법을 하나 더 새기고 싶었지만, 현재로썬 두 마법 정도로도 충분할 듯했다.
마법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면서 오늘 만날 담임 교수에 대해서도 떠올렸다.
‘마고스가 오겠군.’
A반 담임 교수로는 마고스 블레이디 백작이 올 것이었다. 그는 11성 검사로 제국제일검帝國第一劍이란 이명을 갖고 있었다.
그는 아벨이 10살 때, 아주 잠깐이었지만 아벨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하베츠를 가르치다가 우연히 만났었지.’
당시 황궁에서 당대 최고의 재능이라 불린 하베츠를 가르치던 마고스는 우연히 본 아벨의 그 엄청나던, 하베츠를 압도하는 재능을 즉각 알아보고는 다이나 황후에게 하베츠와 함께 자신이 가르치면 안 되겠냐고 간절히 부탁을 하였었다.
‘덕분에 철가면을 쓰게 됐고 별관에 갇히게 됐어.’
문제는 그 부탁 덕분에 결과적으로 아벨은 철가면을 쓰게 되었고 동쪽 별관에 갇히게 된 것이었다.
그전까진 아벨의 유일한 스승이었던 현자 다니엘 브륄에 의해 아벨이 재능이 있긴 하지만 황태자나 다른 황자들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고 거짓으로 보고해 크게 견제받지 않고 있었었다.
그런데 마고스의 그 경솔한 행동으로 모든 것들이 다 드러나고 말았으니.
그 이후 아벨의 삶은 급변했다 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지옥과도 같은 삶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마고스는 아벨에게 큰 죄책감을 품고 있었고, 그리고 아직도 미련이 남아 기회만 된다면 아벨을 다시 제자로 삼으려 했었다.
현재 마고스는 루드스에서 교수 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하베츠를 가르치고 있었다.
물론 지금 하베츠는 개인 수련을 위해 외부에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마고스가 1학년 반을 맡을 수 있던 거였어.’
분명 하베츠와 다이나 황후는 마고스에게 아벨을 철저하게 짓밟아 놓으라고 지시했을 것이다.
‘마고스 성격상 말도 안 되지.’
마고스는 제국을 넘어 대륙 최강자로써, 명예로운 제국 아카데미 루드스의 교수로서의 자신의 위상을 지킬 줄 아는 남자였다.
‘그의 제자가 될 필요성이 있어. 그의 월광참검보다는, 마족 멸살을 위해 그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 테니까 말야.’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마고스가 아벨을 제자로 삼으면서 엄청나게 큰 희생을 치른다는 것이었다.
‘가문을 멸문시켰었지.’
다시 말하지만 작가는 소설의 착하고 좋은 캐릭터들이라면 모두 불행하게 만들었었다.
마고스는 아벨을 가르치는 대가로, 훗날 황제가 된 하베츠에 의해 자신의 가문인 블레이디 백작가가 멸문을 당하는 것을 지켜만 봐야 했었다.
‘그래서 마고스는 하베츠를 죽이기 위해, 피의 복수를 위한 삶을 살아갔었어.’
다행히 목표가 같았다.
이번 아벨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베츠를 죽일 생각이었으니.
‘케이를 구하려면 그 돼지 새끼보다는 하베츠를 죽여야 해.’
문제는 하베츠가 마고스의 가문을 황제가 되었을 때 멸문시켰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아벨은 하베츠가 황제가 되기 전에 죽일 생각이었다. 황제가 된 후에는 죽이기가 너무 까다롭고 어려웠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래야 아무 죄 없는 블레이디 가문 사람들을 살릴 수 있을 것이고 말이다.
‘하베츠가 자신을 증오하고 있다는 것만 입증한다면, 그렇다면 분명 내 말을 믿어 줄 거야.’
하베츠가 앞으로 10년 뒤에 세르지에게 힘을 실어주려던 파우스 황제를 암살하고 황좌皇座를 찬탈했기에 그 전에 마고스에게 그 증오를 입증하고 죽이면 될 듯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사형師兄를 죽였다는 이유로, 자신의 제자를 죽였다는 이유로 적으로 돌아설 수도 있었다.
‘내가 그를 위해 하베츠를 죽여준다는 걸 깨닫는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그는 분명 나를 도와 함께 할 거야.’
황태자 하베츠는 이 소설에서 아벨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주인공을 망치는 주범이었기에 그 녀석만큼은 반드시 죽여야 했다.
‘하베츠만 죽여도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어.’
물론 무엇보다 하베츠는 그 누구보다 아벨을 죽이고 싶어 했기에, 아벨이 살기 위해서라도 하베츠를 죽이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빵을 다 먹고 학교의 제복을 입고 반장갑을 꼈다.
그리고 거울로 가 마지막으로 옷차림을 점검한다.
검은색 제복을 입은 완벽한 미남자가 서 있었다.
흠이라면 1학년을 나타내는 노란색 견장이 어깨에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이건 뭐 이등병도 아니고.’
1학년은 노란색, 2학년은 녹색, 3학년은 청색, 4학년은 검은색, 5학년은 백색 견장을 착용했었다.
노란색 견장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역시 그것을 제외한 모든 것은 완벽해 보였다.
‘재밌겠어.’
황실의 자제들을 제외한 모든 학생은, 이곳 제국 아카데미 루드스 내에서만큼은 계급의 특혜를 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같은 학년에서는 나이와 출신을 따지지 않는 게 학칙이었고 말이다.
출신과 나이를 따지지 말아야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게 루드스의 설명이었다.
물론 진짜 이유는 제국의 황실 자제들이 항상 너희보다 높이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려는 의도였었고.
‘가볼까?’
아벨은 기숙사에서 나와 곧장 강의실로 향했다.
일부러 조금 일찍 나왔었다.
그 구석 자리를 뺏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좋은 기분.’
3월의 아침 공기는 꽤나 쌀쌀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상쾌하기도 했었다.
‘진짜 학교 가는 느낌이네.’
주원이었을 때 솔직히 어머니가 좋아하시니 억지로 한 것이었지 공부를 그리 좋아하진 않았었다.
‘그때부터였지. 판타지 소설을 읽게 된 건.’
웹소설을 조금씩이나마 읽게 시작한 건 바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었던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너무나 고통스런 일상을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서.
“앗 저하!”
누군가 불러 뒤를 돌아보니 케이가 달려오고 있었다.
아벨의 앞에 멈춰서는 하아― 하아―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그런 케이를 바라보며 잔잔히 미소 짓는다.
“어젠 잘 들어갔는가?”
케이는 숨을 천천히 고르고는 대답한다.
“네에. 저하는요?”
“나야 덕분에 기숙사에서 푹 쉴 수 있었다. 형님들이 도움이 될 때도 있군.”
아벨의 만족스런 말투에도 케이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사이가 많이 안 좋으세요?”
“그런 편이지. 근데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보통의 귀족 가문의 형제들이 그런 것처럼 황실도 똑같을 뿐이니까.”
귀족 가문에선 가주의 자리를 놓고 다툰다고 한다면 황실에선 황제의 자리를 놓고 다툰다고 할 수 있었다.
“아…….”
“그러니 더는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
고개를 크게 끄덕이는 케이는 괜히 우울해질 것 같아 화제를 바꾸기로 한다.
“네…… 아 맞다. 그런데 저하께선 동아리 어디로 들어가실 거예요?”
“어제도 말했다시피 날 받아주는 곳이 있을지 모르겠군. 난 솔직히 날 받아주기만 하면 된다. 어차피 잘 나갈 생각도 없으니.”
“그래도 루드스에 들어오셨는데…… 재밌게 지내시려면 동아리 생활에도 적극 참여를…….”
우물쭈물하며 말하는 케이를 다정스레 바라본다.
“내가 가능할지 모르겠어.”
케이는 그 다정스런 모습에 당황해 얼굴을 붉히며 소리친다.
“꼭 가능하실 거예요! 제가 꼭 그렇게 만들 거니까요! 아무튼! 우리 이따 수업 끝나고 같이 동아리 찾으러 가요!”
끝나고 몸에 마법을 새길 예정이었지만, 최애캐였던 케이를 위해 조금 미루기로 한다.
‘어차피 일찍 끝날 테니.’
오늘은 오리엔테이션 시간이라 금방 끝나긴 할 것이었다.
“그러지.”
“정말이에요! 약속한 거예요!”
“그래. 알았다.”
소설에서도 케이가 아벨을 데리고 함께 들어갈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었다. 그리고 함께 원예부에 들어갔었고.
그렇게 두 사람은 어떤 동아리가 좋을까 서로 얘기하며 강의실까지 걸어갔었다.
드륵―
강의실엔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은 듯했다.
아벨은 당연하다는 듯이 맨 뒤 구석에 가 앉았다.
케이도 쫓아와 옆에 앉는다.
“매일 이렇게 일찍 오실 거예요?”
“당분간은. 이 자리를 뺏기기 싫어서 말이지.”
“저도요. 저도 이 자리 뺏기고 싶지 않아요. 그럼 우리 매일 이 시간에 같이 갈까요?”
대단히 대담하고 깜찍한 말을 하는 케이였다.
“그래. 그렇게 하자.”
“네에! 정말 좋아요!”
그 해맑은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스테판 백작은 잘 있으신가?”
“네! 아주 잘 계셔요! 맨날 저만 보면 검을 들고나오라고 성화시라니까요! 정말 이러다가 팔에 근육이라도 더 생기면 어쩌시려고! 어휴―!”
“검사인데 팔에 근육 좀 붙을 수도 있지.”
“싫어요! 더는! 저는 좋은 검사보다는 좋은 현모양처가 되고 싶거든요!”
입술을 삐쭉 내민 케이가 굉장히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하하― 그래그래. 알겠다.”
“아셨죠?! 절대 잊지 마시라구요! 절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리고 어제 함께한 죠슈아가 친오빠였지?”
“네! 맞아요! 지금 3학년이에요!”
“그 역시 대단한 검사라던데.”
두 손을 저으며 말한다.
“에이― 아니에요. 그 정도는. 물론 제가 봤을 때는 쪼오금은 세긴 센 거 같긴 한데. 저하가 더 세실 걸요?”
죠슈아는 현재 7성 중반의 검사였다.
“아니다. 내가 어떻게 3학년인 죠슈아를 이기겠느냐.”
그러자 케이가 아벨 쪽으로 얼굴을 쑥 내밀며 묻는다.
“한 번 만나보실래요? 제가 소개해드릴게요. 오라버니도 예전부터 저하를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어 했거든요.”
“나를?”
“네. 저희가 예전 황궁 무도회에서 저하를 뵀었거든요. 물론 멀리서 보기만 했었지만.”
확실히 아벨의 기억에 훈훈했던 죠슈아와 아주 예쁜 인형 같았던 케이에 대한 기억이 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호기심이 잔뜩 깃든 눈동자로 외톨이였던 아벨을 쫓고 있었다.
“알고 있다. 너는 그때 푸른빛 물결과도 같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지.”
깜짝 놀라며 소리친다.
“어?! 저하께서도 저를 보셨어요?! 아니! 그것보다 저를 기억하시네요?!”
“생각보다 기억력이 좋아서 말이야.”
“진짜요?! 진짜죠?! 와! 최고예요! 진짜! 진짜로요!”
그때였다.
드륵―
“케이 무슨 일인가? 밖에서 네 목소리밖에 안 들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