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14화. 도발엔 도발로(2)
연인이 아닌 남녀가 이 길을 함께 걸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평생의 연인이 된다고 하여 이 길을 ‘인연의 길’이라고 불렀었다.
‘아벨도 세 여자와 의도했든, 우연이든 한 번씩은 함께 걸었었지.’
케이와는 케이가 원해서 자주 걸었었고, 사나와 아르시아와는 적과의 전투 중에 우연히 휘말려 함께 걸었었다.
옆에서 걷고 있던 케이를 바라본다.
‘너와 가장 많이 걸었건만…….’
그럼에도 결국에는 아르시아가 아벨을 차지한 것에 대해, 역시 뭐든 될놈될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었다.
‘여자니까 될년될인가? 어감이 이상하군. 아무튼’
아무튼 오늘 하루만큼은 연인보다는 적들을 아주 많이 만들게 될 것이었다.
‘과연. 다들 어떻게 행동할지.’
솔직히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으면 했다.
소설에서도 아벨은 케이를 죠슈아에게 맡긴 후 혼자 적들과 싸웠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달라진 아벨을 보여줄 겸 혼자 싸워 몸을 좀 풀고 싶다는 게 주원의 본심이었다.
‘이제 나올 때가 됐는데. 어서 해치우고 기숙사나 갔음 좋겠군.’
이제 정말 곧 이긴 했지만, 몸이 근질거려 기다리기가 쉽지 않았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10분쯤 걸으니 20M 앞에 열댓 명의 학생들이 서 있는 게 보였다.
곧장 천혜안을 썼다.
『이름 - 세르지 아이테르너스
정보 - 제2 황자. 캐서린 요한센 2 황비의 외아들. 제국 아카데미 루드스 4학년. 7 서클 마법사.』
『이름 - 밀로스 요한센
정보 - 마법 명가 요한센 백작가 소속 자제. 제국 아카데미 루드스 4학년. 6 서클 마법사.』
『이름 - 이리 멘젤
정보 - 아덴의 멘젤 백작가 소속 자제. 제국 아카데미 루드스 4학년. 6성 검사.』
『이름 - 비토리오 스베락
정보 - 아덴의 스베락 공작가 소속 자제. 제국 아카데미 루드스 3학년. 5성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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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레이첼 아이테르너스
정보 - 제4 황녀. 셀비 우니베르스 3 황비의 차녀. 제국 아카데미 루드스 2학년. 6성 검사.』
‘5성급이라.’
천혜안으로 확인해 본 결과 4학년에 6성급 무인들도 끼어있긴 했었으나, 대부분이 3학년이었고 5성급 무인들이었다.
5성급 무인이라면 2, 3학년에서도 상위권 학생들이라 할 수 있었다.
‘가면 센스 하고는.’
다들 조잡한 가면을 쓰고 있었다.
세르지와 레이첼은 그중 독수리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제국의 상징이 황금 독수리라 그런 것 같았다.
‘세르지 넌 내가 직접 찾아갈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세르지는 조만간 직접 찾아가 대화를 나눌 생각이었다.
물론 지금의 일은 작가가 만든 스토리이었기에 저들도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로디아가 그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 소리를 냈다.
“어, 어?!”
앞길을 막자 지산이 짜증을 냈다.
“뭐야 저것들은?”
카시드가 윌리엄에게 물었다.
“선배님 저건 또 뭡니까?”
윌리엄은 자기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연기한다.
“뭐, 뭐야 이거?! 나도 모르겠어!”
독수리 가면들 중 세르지가 앞으로 나서며 말한다. 당연히 음성변조가 되어 있었다.
“아벨을 두고 당장 꺼져라!”
“……?!”
다들 깜짝 놀란 얼굴로 아벨을 바라본다.
반면 아벨은 무심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세르지를 바라보았다.
가면을 써 정체를 숨긴 이상 형님 대우해줄 필요 없었다.
“내게 무슨 용무지?”
“일단 넌 닥치고! 다른 녀석들은 아벨을 두고 당장 꺼져!”
아벨은 함께한 일행들도 무심히 둘러봤다.
“갈 사람은 가라. 나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으니.”
윌리엄이 화색이 돌아 묻는다.
“정말? 정말 그래도 돼?”
그런 윌리엄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으니 이들을 데리고 가시지요. 저를 찾아왔으니 제가 해결해보겠습니다.”
“싫어요!”
케이였다.
“저하만 두곤 절대 안 가요!”
로디아도 케이의 말에 동조했다.
“맞아요! 정의의 신 타티스의 신관으로서 불의한 일을 절대 두고만 볼 수 없어요!”
카시드도 호기롭게 미소 짓는다.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저하 혼자 두고 떠나겠습니까?”
지산도 화통하게 웃음을 터트린다.
“하하하하―! 이거 입학 첫날부터! 역시 루드스에 입학하길 잘했어! 크하하하핫―!”
죠슈아는 지금 일어나는 이 일이 분명 윌리엄과 연관이 있다는 걸 깨닫고는 윌리엄을 무서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그는 케이가 남아있는 이상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었다.
윌리엄은 지금의 상황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는데, 다들 큰일이 날 수 있었음에도 겁도 없이 자리를 지켰던 것이었다.
아벨은 다시 세르지를 바라보며.
“그렇다는군. 그러니 그냥 너희들의 할 일을 하는 건 어떤가?”
“이 새끼가?! 근데 진짜?!”
“그것보다 이제는 내게 무슨 용무가 있어 찾아왔는지 말을 해야 하지 않겠나?”
“……?!”
아벨의 하대에 부들부들 몸을 떠는 게 여기서도 느껴졌다.
부들부들 떨면서 소리친다.
“감히 철가면을 벗고 다니다니! 누가 너더러 루드스에서 철가면을 벗으라고 했다더냐?!”
피식― 비웃으며 대답한다.
“내가 벗겠다는데 네가 뭔데 그러느냐?”
“뭐?! 이 새끼가! 진짜 죽고 싶어?!”
착―
옆에서 다른 독수리 가면이 팔을 들어 흥분한 독수리 가면을 막았다. 그리곤 대신해 말을 이어 했다.
“네놈이 감히 지엄한 황실의 명을 어겼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 죄를 지금 묻도록 하겠다.”
그 말에 윌리엄을 대단히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황실의 명을 어겼다라…… 확실히 황실의 사람이 사주한 것 같군요.”
아벨의 그 싸늘한 눈빛과 말투에 윌리엄은 흠칫 몸을 떤다. 아벨은 제 발 저는 윌리엄에게 쐐기를 박았다.
“형님. 혹시 형님이 비열하게 절 이곳으로 데려온 겁니까?”
윌리엄이 그 말에 마구 팔을 저으며 부인했다.
“아, 아니야! 난 아니야! 난 정말 몰랐어!”
윌리엄도 설마 다른 신입생이 아벨과 함께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
그리고 떠나라고 위협함에도 아벨을 떠나지 않는 것도.
다들 아벨의 말처럼 굳이 이 길로 안내한 윌리엄을 이제는 대단히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
특히 케이는 윌리엄이 일부러 유인했다고 확신하고는, 윌리엄을 매우 매우 혐오스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고.
케이의 그 혐오가 담긴 눈빛을 본 윌리엄은 경기를 일으키듯이 자지러지며 소리친다.
“아니야! 난 아니라고! 난 정말 몰라! 했다면 하베츠 형님이나, 세르지 형님이 했겠지!”
그런 윌리엄을 본 세르지가 “저 병신이!” 하고 소리친다.
여전히 그 싸늘한 눈빛과 말투로 윌리엄에게 말한다.
“부디 아니길 바라겠습니다. 형님.”
“다, 다, 당연하지! 저, 정말 난 아니라니까! 내가 왜 너에게―”
이후의 말들은 깡그리 무시한 채 그들에게 다시 묻는다.
“네놈들은 내가 제국의 황자라는 걸 알면서도 이런 일을 꾸민 건가?”
“흥! 네놈이 황자든 말든 상관없다! 우리 뒤에는 훨씬 더 높은 분이 계신다!”
“그래?”
아벨은 이럴 줄 알고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부터 미리 검을 허리에 찬 상태였었다.
스릉―
소름 돋는 날붙이의 마찰음이 고요한 인연의 길가를 울렸다.
“덤벼라. 황실 위협 죄로 즉결 심판해 줄 테니.”
“……?!”
아벨이 ‘황실 위협 죄’를 들먹이며 일을 키우려는 듯하자, 윌리엄은 매우 당혹스러워했다.
그래서 아벨을 조심스럽게 말린다.
“……아벨…… 내 생각엔 저들은 그냥 신입생들한테 장난 한번 쳐보는 것 같은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
공범인 윌리엄을 무시한 채 다른 이들에게 말한다.
“너희들이 내 증인이 되어 줬으면 좋겠군.”
케이가 가장 먼저 대답한다.
“네. 저하. 그리고 저 역시 도와드릴게요.”
스릉―
케이도 어느새 아공간 주머니에서 검을 꺼냈는지, 자신의 검을 발검했다.
스릉―
그러자 카시드도 검을 빼낸다.
“감히 제국 내에서 제국의 황자 저하를 위협하다니. 이거 참.”
꽈악―
지산도 너클을 끼며 싸울 준비를 했고.
“하하― 확실히 내 스타일이군. 하하하―”
우우우웅―
로디아도 스태프를 꺼내 준비를 마친다.
“제가 버프 마법 걸어드릴게요!”
벌써 마력을 주입했는지 즉각 스태프에서 노란빛 아우라가 흘러나온다.
그때였다.
“다들 그만 좀 해! 입학 첫날부터 이게 도대체 무슨 싸움질이야!”
일이 더없이 커질 것 같자 윌리엄이 아벨의 앞을 가로막으며 소리친 것이었다. 아벨은 다쳐도 되지만 나머지 신입생들은 결코 아니었었다.
그러면서 또 몸을 돌려서는.
“그리고 너희들은 또 뭐야?! 너희들 나 몰라?! 내가 바로 제국의 3 황자 윌리엄 아이테르너스란 말야!”
확실히 윌리엄처럼 세르지 쪽의 재학생들도 아벨이 아닌 다른 신입생들까지 싸우려고 하자 대단히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수군거린다.
“이거 정말 해도 괜찮은 거야?”
“카시드 왕자 저하시잖아……?”
“난 못 하겠어. 우리 왕자 저하시라고.”
“맞아. 이건 이젠 해선 안 돼.”
아덴의 학생들은 빠지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제국의 학생들도 빠지려고 했었고.
“저기엔 죠슈아도 있어…… 그리고 저 여자애는 죠슈아 친동생으로 스테판 각하께서 애지중지한다는 그 딸이고…….”
“옆에 여자애는 어떻고, 정의의 신전에서 키우는 애잖아.”
“저 지산이라는 애도 바일의 푸뉴스 가문의 차기 가주라는 소문이 자자해.”
“일이 너무 커지는데?”
“하면 안 될 거 같아…….”
“포기하자. 대장.”
케이는 물론, 확실히 배신자들 모두가 일찍이 싹을 보였기에 매우 귀하게 자라왔던 것이었다.
세르지는 분을 못 이겨 전방에 5초간 함성을 지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벨은 오히려 저들이 포기하려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또한 배신자들이 아벨을 적극 도우려는 것 같아 신기해 보이기도 했었고.
‘확실히 아직은 아니군.’
배신자들도 황실의 인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었는데, 아벨과 가까워져 가면 갈수록 아벨의 압도적인 재능과 능력에 시기와 질투 그리고 좌절감에 물들어 결국 배신하게 된 것이었다.
그들도 처음부터 배신할 마음을 먹진 않았었다.
또한 처음부터 10인회의 일원이었던 것도 아니었었고.
‘셋 중 카시드가 유난히 아벨의 재능과 능력을 질투했었어. 그리고 마지막 배신도 주도했었고.’
소설 속 아벨만 몰랐지 다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래서 주원은 배신자들 중 카시드만큼은 하베츠 다음으로 반드시 없앨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이대로 끝내려나.’
분위기상 이대로 끝내고 돌아갈 것 같았다.
“제기이라알!! 좋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 주지!! 운이 좋아!! 아벨!!”
아벨도 돌아가려는 세르지와 재학생들을 오늘은 그냥 보내주기로 한다.
‘세르지 곧 만나자고.’
물러가는 그들을 보며 납검한다.
그릉―
다른 이들도 납검한다.
윌리엄이 다행이라는 듯이 연기한다.
“정말 다행이야! 감히 내가 있는데 저딴 장난을 치다니! 안 그래?! 아벨 다행이지?! 나랑 같이 있어서?! 그치?!”
피식―
너무 웃겨 돌아버릴 것만 같다.
“그렇습니까?”
심지어 이제는 자기가 다 막은 것마냥 자부심마저 보이고 있다.
“당연하지! 감히 내가 있는데! 어딜!”
다들 윌리엄이 아벨을 의도적으로 유인했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또 아닌 것도 같았다.
그래서 진짜 그런가 어리둥절해 했다.
‘네놈 좋은 일 시킬 순 없지.’
입가에 비웃음을 잔뜩 머금은 채 윌리엄에게 말한다.
“형님. 그런데 말은 제대로 하셔야겠습니다.”
“응? 뭐?”
“저들이 물러간 게 형님 때문이겠습니까? 형님이 공범인데 말입니다.”
그러자 윌리엄은 당황하여 말을 더듬으며 소리친다.
“아, 아, 아벨! 그게 무, 무슨 말이야! 내가 고, 공범이라니!!”
“왜 오전부터 찾아와, 신입생 환영회에 꼭 참석해야 한다며 떠들어 댄다 했었는데. 이것 때문이었습니까? 저 조잡한 가면으로 자신들의 정체를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도발을 했으면 도발로 맞아줘야 한다.
일부러 강하게 말을 한다.
케이가 더 없이 실망할 수 있게.
네놈이 케이의 그 실망하는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도록.
“형님들이나 누님께선 어떻게든 제 루드스 생활을 시작부터 망치고 싶었을 텐데. 그리고 가능하면 팔 하나 잘라 병신으로도 만들고 싶었을 거고 말입니다. 이거 참 아쉽게 됐습니다. 형님.”
“그, 그게 무, 무, 무슨 소리야!”
뒤돌아 케이 및 다른 이들에게도 말한다.
“너희들도 앞으로는 다신 나와 함께 다니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나와 함께 한다면 이러한 위협은 일상이 되어야 하는 거니까.”
“……?!”
다들 경악스런 얼굴이었다.
특히 죠슈아는 아벨에 대해, 다른 이들에 비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었다. 그가 알고 있는 아벨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던 것이었다.
모두가 아벨의 시리도록 차가운 모습과 그 말에 경악하고 있었을 때, 케이는 아벨의 의도대로 윌리엄을 더 없이 경멸하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케이의 일그러진 표정을 본 윌리엄은 깜짝 놀라 아니라며 어쭙잖은 부인을 다시 한 번 해댄다.
“아니에요! 저, 전 절대 아니에요! 제가 아니라구요! 하, 하베츠 형님이나 세르지 혀, 형님일 거라구요!”
하지만 이젠 그 누구도 윌리엄을 믿는 분위기가 아니었었다.
“정말이라구요! 전 아무것도 몰라요!”
아벨은 울먹이며 계속해서 부인을 해대는 윌리엄을 살기 짙은 눈빛으로 바라본다.
“아무튼 형님 저는 이만 기숙사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도저히 형님과 함께 파티에 갈 기분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기숙사를 향해 걸어가던 아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