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12화. 신입생 환영회(2)
‘케이!’
아벨의 세 연인 중 한 명인, 주원의 최애캐 케이가 정말 온 것이었다.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었지만, 솔직히 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활자로만 봤었던 그녀를, 상상으로만 머릿속에 그려보았었던 그녀를 진짜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보게 되니 가슴이 미칠 듯이 뛰기 시작했다.
정말 케이의 모습을 수도 없이 상상했었다.
‘……정말 신기하군…….’
여러 감정이 뒤섞인 굉장히 복잡 미묘하고 신기한 감정이었다.
그 감정들 중 마치 좋아하던 아이돌을 실제로 만나는 듯한 설레는 기분도 있었다.
시선을 느꼈는지 케이가 고갤 돌려 아벨을 바라보았다.
“……?!”
눈을 마주친 케이는 화끈! 하고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푹― 하고 숙였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재학생이 안내해주는 자리로 가 앉는다.
‘음.’
너무 빤히 바라본 것 같았다.
케이가 자리에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회를 맡은 2학년 플로리안 요한센이 단상에 올랐다.
“그럼 다 모인 것 같으니, 본격적으로 신입생 환영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순서로는 1부 자기소개와 2부 교내 탐방, 3부 신입생 & 재학생 파티가 있겠습니다! 특히 3부 신입생 & 재학생 파티는 신입생 여러분 서로서로가, 그리고 여러분들의 루드스 생활을 올바르게 이끌어 줄 멋지고 예쁜 재학생 선배님들과도 가까워질 수 있는 아주 좋은 자리이니만큼 꼭! 꼭! 필히 참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자 그럼 박수!”
휘이익―!
휘파람 소리를 시작으로 박수 소리와 환호 소리가 동시에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짝짝짝짝짝―!
와아아아아―!
“빨리 시작하자!”
“기다리다 목 빠지겠다!”
사회자는 재학생들의 열혈한 지지를 받으며 이어 말했다.
“화제의 인물이시죠! ‘지워진 황자’라고 알려진 아벨 아이테르너스 황자 저하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아벨 저하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사회자의 부름에 몇몇 여학생들이 자지러지게 비명을 질러대며 아벨을 환영했다.
“꺄아아악―! 잘 생겼다―!”
“사랑해요―! 아벨 저하―!”
“남신이다―! 남신―! 루드스의 남신이 나타나셨다―!”
“나 죽어―! 죽는다고―!”
하지만 이내 곧 눈치 빠른 몇몇이 환호하는 여학생들을 말리기 시작했다.
“야야. 그만 쉿―”
“그래. 적당히 좀 해.”
세르지 2 황자가 눈에 불을 켜고 노려보고 있던 것이었다.
“어? 아…….”
“에이…… 이건 좀…….”
“맞아…… 벌써부터…….”
불평불만을 터트리면서도, 하지만 세르지의 그 눈빛이 너무 무서워 이내 모두 입을 다물었었다.
덕분에 분위기는 완전 핵망했다고 해도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아벨은 별 신경 안 쓴다는 듯이 무심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으로 걸어나갔다.
플로리안은 민망한 얼굴을 감추며 아벨에게 자리를 내줬다.
단상에 선 아벨은 세르지부터 시작해 윌리엄, 레이첼을 번갈아 바라봤다.
‘하베츠도 한번 보고 싶었는데.’
황태자 하베츠는 졸업 학년인 5학년이라 현재 루드스 내에 없었었다.
5학년 때는 자율학습이 대부분이라, 하베츠는 실전을 수련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던 것이었다.
아벨이 싸늘하지만 아름다운 그 얼굴로 입을 연다.
“반갑다. 아벨 아이테르너스라고 한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짧게 말하고는 단상을 내려갔다.
플로리안은 흠흠! 헛기침을 두 번 하더니 박수를 유도했다.
“아벨 황자 저하셨습니다! 자 박수!”
유도했음에도 단 두 사람만이 박수를 쳤고 환호를 보냈다.
짝짝짝짝짝―!
“자알생겼다―!”
“머, 멋있어요―!”
바로 케이와 로디아였다.
“저것들이!”
세르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아벨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 박수를 멈추지 않는 두 소녀였다.
짝짝짝짝짝짝짝짝―!
케이는 아벨이 따돌림당하던 철가면일 때에도,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직접적으로 아벨에게 다가가 유일하게 친구가 되어준 여자였었다.
‘그래. 그리고 로디아도 뒤에서 몰래 잘 해주긴 했었어.’
그리고 배신자 로디아도 아벨의 적인 정의의 신의 신관이었지만, 그럼에도 몰래몰래 아벨에게 선의를 베풀긴 했었고.
‘왜 배신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러니 둘의 박수와 환호는 그래도 이해가 가는 행동이었다.
물론 로디아가 눈치 보지 않고, 대놓고 저러는 게 조금 의아하긴 했었지만.
무심한 얼굴을 유지한 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던 아벨을 바라보며 세르지가 한마디 한다.
“진짜 저 새끼 재수 없는 건 여전하네.”
레이첼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오랜만에 단단히 혼을 좀 내줘야겠어요.”
둘의 살벌한 말에 윌리엄은 실실 웃으며 사람 좋은 말을 한다.
“에이― 형님, 레이첼 그래도 오랜만에 봤는데 너무 그러지들 마요.”
“뭐?”
세르지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한 번만 더 개소리하면 가만 안 두겠다는 듯한 매서운 눈빛으로 윌리엄을 노려본다.
“넌 그냥 닥치고 이따 저 새끼나 제대로 데려와.”
세르지의 그 위압적인 말에 윌리엄은 즉시 주눅이 들고 말았다.
“……네. 형님.”
그때였다.
윌리엄은 붕어 대가리마냥 언제 주눅 들었냐는 듯이 소리쳤다.
“오! 저 애예요! 제가 말한!”
케이의 차례였던 것이었다.
아벨의 뒤부터는 사회자 마음대로 시키는 듯했다.
세르지가 자리에서 일어서는 케이를 보고는 윌리엄을 한심하게 바라봤다.
“야. 쟤가 너 따위와 만나겠냐?”
“제가 왜요?! 뭐 어떤데요?!”
피곤한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됐다. 말을 말자.”
윌리엄은 매우 자신 있다는 듯이 상기된 얼굴로.
“두고 보라고요! 제가 반드시 케이 영애를 차지할 테니까!”
하베츠와 세르지는 모두 약혼자가 있었다.
윌리엄과 미운 오리 새끼였던 아벨만이 없었었다.
“형님! 근데 지인짜 예쁘지 않나요?! 휘이익―! 여신이다―! 아름답다―! 휘이이익―!”
케이를 향해 마구 휘파람을 불고, 환호하며 소리치는 윌리엄을 레이첼은 끔찍한 생물 보듯 바라본다.
“오빠! 제발 좀 가만히!”
“헤헤― 뭘! 원래 이렇게 맞아 주는 거라구― 휘이이익―!”
“하아― 쪽팔려.”
세르지는 고개를 돌리며 체념하는 레이첼과는 달리 도저히 참지 못하겠는지 윌리엄의 귀에 입을 바로 대고 큰 소리로 윽박질렀다.
“야! 제발 좀 닥치고 가만히 있어! 쪽팔리잖아!”
“……?!”
윌리엄은 동그랗게 두 눈을 뜨고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악귀 같은 얼굴의 세르지를 바라본다.
잠시 가만히 바라보다 귀에 묻은 침을 닦으며,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네. 형님.”
아벨은 윌리엄의 반응을 이해 못 하는 게 아니었다.
케이는 훗날 대륙 3대 꽃이 될 여자였었으니.
지금도 사람들에게서 ‘제국의 고고한 장미’로 불리고 있었고 말이다.
아벨도 최애캐 케이를 바라보며 정말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상상했던 거랑 똑같아…….’
밤하늘을 도려낸 것만 같은 부드러운 흑발에 아기 고양이 같이 크고 초롱초롱한 눈, 한없이 맑고 푸른 눈동자, 작고 도톰한 입술, 새하얗다 못해 투명한 피부와 그 모든 것들을 조화롭게 만드는 예쁜 턱선.
그 예쁜 모습이 뇌리에 단단히 새겨진다.
‘……그래도 안 돼 여자는. 어차피 난 여길 떠나야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케이의 뇌쇄적인 외모에도 어느 정도 무감각해질 수 있었다.
케이는 단상에 올라 조심스럽게 아벨을 바라보았었다.
또다시 눈이 마주치자 이번에도 푹― 하고 고개를 숙인다.
“…….”
확실히 주원이 살면서 본 그 어떤 여자보다 예쁘긴 했었다.
‘……옛날 생각나네…….’
당시 독자들 사이에서 아주 잠깐이었지만 케이 코인, 아르시아 코인, 사나 코인 등등, 많은 코인들이 활개 쳤던 게 떠올랐다.
작가가 빠르게 경쟁자들을 탈락시켰기에, 그리 오래가진 않았지만 말이다.
물론 이번 아벨은 그 어떤 코인도 탈 생각이 없었기에, 애초에 어떠한 희망도 주지 않을 것이었다.
‘다 널 위해서다.’
그렇게 생각하며 씁쓸함을 달래는 중 케이의 그 작고 촉촉한 입술이 열린다.
“저는 아슈트반 가문의 영애 케이 아슈트반이라고 해요. 검을 주 무기로 하고 있고 여러분들과 졸업할 때까지 쭈욱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휘이이이이이익―
“예쁘다―!”
“사랑스럽다―!”
“저와 결혼해 주십시오―!”
“아닙니다! 저와 해주십시오―!”
“나거든!”
“이 새끼가 너 뭔데?!”
“나?! 난 제국 3 황자다! 왜! 어쩔 건데?!”
케이는 남학생들의 기운찬 목소리들 때문에 귀밑까지 붉어져 얼른 자리로 돌아갔다.
“다음은 아덴의 떠오르는 신성 카시드 왕자입니다! 자 박수!”
짝짝짝짝짝―!
와아아아아―!
아벨과 케이 때와 같은 격한 반응은 나오지 않았었다.
물론 카시드는 그러한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카시드는 선이 굵은 매와 같은 눈을 가진 미남이었다.
“나는 아덴에서 온 카시드 우니베르스라고 한다. 검술 강국에서 태어났으니 당연히 검을 사용하겠지? 앞으로 너희들과 함께 좋은 추억도 만들고 졸업 후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건실한 관계도 형성했으면 한다.”
그리고 다음은 거대한 바위 같아 보이는 지산.
“바일의 지산 푸뉴스라고 한다. 하하― 잘 지내보자고.”
다음은 등이 굽어 조금은 음침해 보이는 쿠리엘.
“크큭― 나는 앞으로 10 서클 대마법사가 될 쿠리엘 테젤이다. 다들 지금부터 나에게 잘 보이는 게 니들 미래에 좋을 것이다. 크크큭―”
이어서 아벨을 바라보며 얼굴을 붉히는, 조신한 척하는 로디아.
“정의의 신 신관 로디아예요. 잘 부탁드려요. 그리고 전 신성 마법도 가능하지만 검도 잘 쓰니. 검사이신 분과도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당연하지만 이후에도 지루한 자기소개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짝짝짝짝짝짝―
짝짝짝짝―
짝짝―
짝―
“…….”
15번째부터는 어떤 박수와 환호도 나오지 않았었다.
다들 어서 빨리 끝내고 다음 순서로 넘어가길 바라는 눈치였다.
‘이것도 지치는군.’
하지만 역시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그 지루한 시간 끝에, 드디어 마지막 학생이 단상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발랄한 외모의 여학생이었다.
다들 굉장히 지루해하고 있었지만 그녀만큼은 굉장히 설레하고 있었다.
“안녕. 나는 하이케라고 해. 화염계 마법사구. 나도 오늘 너희들을 만나 너무너무 기뻐. 요새 난 루드스 생활이 너무너무 기대돼서 잠도 잘 못 잤었어. 그래. 조금 지루하긴 하지? 그럼 이만 마칠게. 잘 지내보자구. 히히―”
마지막이라 그런지 박수 정도는 쳐 주었다.
짝짝짝짝짝짝―
그녀가 내려가자 사회자 플로리안이 졸린 눈을 비비며 앞으로 나왔다.
“드디어 다 끝났네요. 이제 다음 순서는 교내 탐방입니다.”
자유롭게 다섯 명씩 조를 만들어, 아카데미 곳곳을 재학생들에게 소개받는 교내 탐방 시간이었다.
지금은 철가면을 벗어 그 아름다운 외모로 대단한 주목을 받고 있었지만, 소설에선 철가면 덕분에 아주 쉽게, 철저하게 무시당했었던 아벨이었다.
‘혼자라고 생각했었어.’
그렇게 홀로 남겨지는가 했었는데, 그때 착한 케이가 유일하게 아벨에게 손을 내밀었던 것이었다.
‘아벨을 처음 본 그 순간부터 좋아했다 했었지.’
아벨이 동쪽 별관에 갇히기 직전의 황궁 무도회에서 처음 봤다 했었다.
그때부터 좋아하던 감정이 아벨이 철가면을 썼음에도 유지됐던 거였다.
그래서 당시 유일하게 손을 내민 케이와 케이의 친오빠인 죠슈아와 아벨을 함정으로 이끌 윌리엄이 한 조가 되어 교내 탐방을 하게 되었었다.
“그럼 다섯 명씩 한 조를 만들어 주세요. 재학생들은 일단 기다려 주시구요.”
사회자 플로리안의 말과 함께 신입생들은 각자 마음에 드는 친구에게 다가가 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역시나군.’
역시나 아벨에게는 그 누구도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전의 아벨이었다면 지금의 상황에 당황해하고 슬퍼했겠지만 지금의 아벨은 달랐다.
무심한 듯한, 냉소적인 얼굴로 그저 뒤로 한 발 빠져있었다.
다들 왁자지껄 떠들며, 설레는 마음으로 자신들의 조를 만들어 나갔다.
‘이번에도 케이가 다가올까?’
당연히 다가올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벨의 너무나 아름다운 외모 덕분에 오히려 부담스럽고 쑥스러워서 다가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냥 케이도 안 왔으면 좋겠군. 어서 빨리 들어가서 수련이나 하게.’
그냥 아무도 다가오지 않길 바라던 그때.
“케, 케이 영애! 아벨은 안 돼!”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케이가 다가오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녀가 수줍은 표정으로 아벨에게 다가와 묻는다.
“……혹시 아직 조를 못 만드셨다면, 저와 함께하시는 건 어떠신가요?”
물끄러미 케이를 바라보았다.
주원이 다른 여주인공들보다 케이를 더욱 좋아한 이유는, 아까도 말했었지만 다른 여주인공들과는 달리 케이는 철가면 때부터, 누가 뭐라 해도 아벨과 함께 다녔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따돌림과 갖은 괴롭힘을 아벨과 함께 받음에도,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아벨과 함께하려 했었고 말이다.
주원에게 케이는 마치 루드스라는 전쟁터를 함께 헤쳐나가던 전우戰友와 같은 느낌이었다.
‘다른 여주인공들도 만만치 않았지만.’
물론 다른 여주인공들도 각자만의 방식으로 끔찍이 아벨을 사랑했었다.
그렇지만 역시 주원에겐 최애캐 케이의 사랑 방식이 가장 와 닿았었다.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함께하자.”
그 대답에 보석 같은 두 눈동자를 더없이 반짝이는 케이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