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2화. 우리 망할 작가님(2)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온 빛에 둘러싸인 후 이곳에 누워있었다.
‘……꿈이겠지…….’
꿈이라고 다시 한 번 생각하던 그때.
“아벨! 아벨!”
사람 같지 않은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이 울고 불며 뛰어 들어왔다.
‘……!’
첫눈에 그녀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수잔 크리스피 4 황비.
티레시아스 제국의 황제 파우스 아이테르너스의 네 번째 부인이자, 소설의 주인공 아벨 아이테르너스의 생모生母인 그녀가.
확실히 지금 자신이 『에브니아 전기』의 꿈을 꾸는 듯했다.
‘묘사한 거랑 똑같잖아……?’
은은한 밤하늘 같은 흑발에 우아한 긴 속눈썹과 고혹적인 커다란 눈망울, 서른 중반의 나이임에도 첫눈에 반할 것만 같은 사랑스러운 얼굴.
물론 지금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그런데 내가 진짜 좋아하긴 했나 보네…… 꿈을 꿔도 에브니아 전기를…….’
그것도 이렇게 리얼한 꿈을 꾸다니.
심지어 주인공 아벨이 되어서.
‘하지만 하필이면 아플 때라니…….’
아무리 이 소설이 변태 같은 소설이라 슬프고 고통스런 순간이 훨씬 더 많긴 했지만, 분명 행복한 순간들도 간간이 있긴 있었다.
정말 너무 간간이라 주원도 잘 기억 못 하는 게 문제이긴 했지만.
‘하긴 기억도 잘 안 나는데…… 그나저나 정말 리얼하네…….’
주원의 느낌대로 정말 리얼한 수잔 황비는 성녀 다프네의 손을 잡고는, 아들이 제발 더는 아프지 않길 바라는 절절한 표정으로 아벨의 상태에 관해 묻는다.
“다프네 님! 아벨이 어디 또 아픈 건가요?! 낫고 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다프네는 눈물이 범벅이 된 수잔 황비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다정스레 말한다.
“아니에요. 황비 마마. 저하께선 다 나으셨어요. 아주 깨끗하게 말이에요. 체내에 있던 독도 완전히 사라졌구요. 이젠 정말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 말에 수잔 황비는 긴장이 풀렸는지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어린 다프네는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음에도, 주저앉은 수잔 황비를 조심스럽게 안아 주며 달래주었다.
수잔 황비는 그 따뜻함에 연신 감사함을 표했다.
“감사해요……! 정말 감사해요……!”
주원은 수잔 황비와 다프네의 대화를 들으면서 생각한다.
‘독을 먹은 건가?’
이 리얼한 꿈의 모든 대화를 종합해보니, 현 상황의 아벨은 독에 중독됐었고 언제나처럼 사경을 헤맸던 것 같았다.
‘맞아. 우리 변태 작가님께서 심심하면 독을 먹였었지.’
소설 설정을 떠올렸다.
‘아벨이 너무 뛰어났기에, 적들이 어릴 때부터 죽이려 한다는 설정이었어.’
아벨은 태어날 때부터 비범하다는 수준을 넘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할 만큼의 재능충에 사기캐 먼치킨이었다.
그러다 보니 황좌를 노리는 모든 이들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심지어 아비인 파우스 황제마저 아벨을 질투한다는 설정이어서, 황궁 내에 아벨이 살길 바라는 사람이 몇 없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었다.
‘그래도 조금 봐줘서, 10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공격받는다는 설정이긴 하지만.’
어이없는 소설의 설정을 떠올리자, 다시 한 번 속에서 천불이 났다.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고, 일단 잠이나 다시 자자.’
아무리 속에서 천불이 난다 하더라도, 내일 회사 가려면 어서 다시 자야 했다.
돈은 쥐꼬리만큼 주면서 매번 조기출근을 요구하는, 그러면서 야근은 밥 먹듯이 시키는 이딴 억지 소설만큼이나 억지스러운 회사였기에 출근하다 사고 나지 않으려면 충분한 잠은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다행히 몸이 안정을 찾자 잠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금방 다시 잠이 들 것 같았다.
‘다음번엔 행복한 순간이길.’
다음번에 또 『에브니아 전기』의 꿈을 꾸게 된다면, 부디 행복한 순간이길 바라며 서서히 잠이 드는 주원이었다.
* * *
일주일을 자고 또 자도 결코 이 이상한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설마…….”
소설 속 주인공이 된다는 그 말도 안 되는 소설 같은 일이 정말 일어난 것만 같았다.
“……내가 진짜 아벨……?”
일어나 전신 거울 앞으로 갔다.
여전히 적응 안 되는 몸이다.
겨우 16살밖에 안 됐지만, 179cm의 큰 키에 몸무게 74kg의 탄탄하고 매끄러운 근육이 이상적으로 붙은 완벽한 몸이었다.
철컥―
쓰고 있던 철가면을 벗었다.
그 철가면 안에는 신마저 질투할만한, 말로 형용할 수 없을 그런 아름다운 얼굴이 숨겨져 있었다.
‘얼굴 또한 완벽해.’
어머니 수잔 황비와 같은 흑발에 똑 닮은 이목구비였다.
하지만 아벨도 성녀 다프네처럼 슬퍼 보였다.
‘슬퍼 보이는 게 흠이라면 흠이군.’
굳이 이 완벽한 얼굴에서 단점을 찾자면 크고 또렷한, 그 아름다운 눈이 갖은 고난과 역경 때문에 조금은 슬퍼 보인다는 점이었다.
일부러 웃지 않는 이상 우수에 빠진 듯한 멍한 느낌도 들었었다.
물론 그럼에도 인간 같지 않은, 너무나도 아름다워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 얼굴과 육체임은 확실했다.
‘이거 전부 사실인 거겠지……?’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댄다.
두근― 두근― 두근―
분명 심장은 뛰고 있었다.
그건 절대 거짓이 아니었었다.
그 활발한 움직임이 분명 손끝으로 전해지고 있던 것이었다.
‘……내가 진짜 아벨이 된 건가…….’
일주일 내내 생각했었다.
내가 진짜 아벨이 된 건 아닌가 하고.
주원은 더없이 선명하게 뛰고 있는 아벨의 심장까지 느끼고 나서야, 자신이 소설 『에브니아 전기』의 주인공 아벨 아이테르너스가 됐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독자 최주원 님께서 주인공 아벨 아이테르너스가 된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작가 ‘난좋은작가’께서 입장하셨습니다.]
“어?”
허공에 푸른 글씨가 써 내려져 간다.
[어떠십니까? 최주원 님? 자신이 직접 소설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 그때 차라리 내가 쓰는 게 낫겠다고 하셨죠? 본인께서 아벨이 된다면 ‘마족 멸살’의 사명도 충분히 가능하다면서 말입니다.]
허공을 수놓는 작가의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정신이 아찔했다.
“……뭐……?”
[그래서 제가 최주원 님께 직접 용사 아벨 아이테르너스가 되어 소설을 다시 쓸 기회를 드린 겁니다.]
“……소설을 다시 써……?”
[물론 최주원 님께서 지극히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인간이었다는 것을 저는 너무나도 아주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 마시지요. 제가 그렇게 무책임하진 않으니까 말입니다.]
“……?!”
[아벨 아이테르너스의 능력을 개화開化시킵니다.]
[천혜안天慧眼을 개화합니다.]
[천고千古의 검재劍才를 개화합니다.]
“……어……?”
[너무 빨리 죽으면 안 되니 ‘천혜안’을, 뭐라도 해야 할 테니 ‘천고의 검재’를 드립니다. 주원 님을 향한 저의 어버이와 같은 마음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충고해드리자면, 이곳이 소설 속이라고 막 사시면 절대 안 되십니다. 막사시다가 죽으면 진짜 골로 가실 거거든요. 주원 님께선 이제 에브니아 세계 안에서 영원히 살아야 할 이곳 사람이시니 말입니다. 그러니 조심해서, 또 신중하게 사셔야만 합니다.]
“……뭐, 뭐라고……?!”
[그리고 ‘마족 멸살’ 사명을 이룰 수 있다고 하셨으니 하는 말인데, 무조건 꼭, 꼭 이루셨으면 좋겠습니다. 무울론∼ 안 해도 되지만 재밌는 스토리를 위해서라면 말이죠. ‘마족 멸살’이야 말로 용사 아벨의 삶의 진짜 목적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주원 님을 위해 동기부여 하나 해드리자면, 위대하고 거룩하기 그지없는 ‘마족 멸살’의 사명을 완수하신다면 제가 주원 님께 소원 한 가지 들어드리겠습니다.]
“……소원……?”
[예를 들어 끝도 없을 부귀영화를 드린다든지, 아니라면 원하시는 여자와 한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드린다든지, 그것도 아니라면 이 에브니아 세계에서 신도 어쩌질 못할 무적의 힘과 영원한 생명을 드린다든지, 정말정말 그것도 아니라면 주원 님께서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 어머니 이선형 씨를 원래 세계에 되살려 드린다든지. 후훗― 보시다시피 제가 그렇게 능력 없진 않거든요.]
“……?!”
[잘 아시겠죠? 그럼 마지막으로 이 말만 하고 사라지겠습니다. 저 정말 주원 님의 폭언 때문에 너어무 억울해서 잠 한숨 못 잤으니 말입니다.]
폭언?
“……뭔 소리야……!”
[그때 그 부분은 소설의 끝이 아니라 단지 1부 마지막 지점이었단 말입니다. 다시 말해 아직 끝이 아니었단 말입니다. 하아― 이제야 본격적으로 칠X 사이다 같은 아벨의 복수극으로 2부를 쓰나 했었는데.]
[주원 님께 기회를 드리느라 절필하게 돼서 조금 아쉽게 됐지만. 뭐. 주원 님의 아벨을 보는 것도 재밌을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럼 공언하신 대로 어얼마나∼∼ 소설을 잘 쓰실지 두고 보겠습니다. 주원 님. 그럼 화이팅입니다. ^^]
[작가 ‘난좋은작가’께서 퇴장하셨습니다.]
“……뭐야 이게……? 악―!”
그때였다.
지잉―!
이명과 함께 머리에 엄청난 고통이 가해진 것이었다.
마치 송곳으로 뇌를 마구 찌르는 느낌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머리를 부여잡고 마구 소리 지르며 뒹군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덜컥―!
중년 여성이 문을 열고 다급히 들어왔다.
“저하! 무슨 일이십니까?!”
“악―! 악―! 으아아아아아악―!”
“제니! 어서 다프네 님을!”
“알겠어!”
뒤이어 중년 남성도 들어온다.
“무슨 일인가?”
대답 대신 중년 여성은 뒤늦게 들어온 중년 남성을 살기 짙은 눈빛으로 노려보는데, 참 이상한 광경이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악―!”
둘의 기묘한 대치 속에서도, 아벨은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며 머리를 부여잡고 계속해서 소릴 지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송곳으로 마구 뇌를 뚫어, 그 구멍들을 통해 막대한 양의 무언가를 계속해서 흘려 넣는 느낌이다.
그 흘러들어오는 것들이 마치 아벨의 예전 기억 같았는데, 대부분이 슬프고 아픈 기억들이라 이젠 속까지 울렁거렸다.
“우에에에엑―!”
결국 참지 못하고 구토하고 마는 주원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이 돼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여전히 머리가 아팠고 어지러웠지만 다행히 아주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었다.
차가운 철가면을 부여잡으며 몸을 일으킨다.
머릿속에 아벨의 16년 삶에 대한 모든 기억이 하나도 빠짐없이 새겨져 있었다.
“……진짜 아벨이 됐구나…….”
아벨의 16년 삶의 기억마저 온전히 얻게 되자, 주원은 자신이 진짜 아벨이 되었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소원을 들어 준다고?’
작가가 주원에게 한 그 달콤한 말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제가 주원 님을 위해 동기부여 하나 해드리자면, 위대하고 거룩하기 그지없는 ‘마족 멸살’의 사명을 완수하신다면 제가 주원 님께 소원 한 가지 들어드리겠습니다.]
[예를 들어 끝도 없을 부귀영화를 드린다든지, 아니라면 원하시는 여자와 한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드린다든지, 그것도 아니라면 이 에브니아 세계에서 신도 어쩌질 못할 무적의 힘과 영원한 생명을 드린다든지, 정말정말 그것도 아니라면 주원 님께서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 어머니 이선형 씨를 원래 세계에 되살려 드린다든지. 후훗― 보시다시피 제가 그렇게 능력 없진 않거든요.]
‘……어머니…….’
바람나 도망간 아버지를 대신해 주원만을 위해 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올랐다.
‘……소원이라…….’
다른 소원들은 다 필요 없었다.
부귀영화도, 원하는 여자도, 무적의 힘과 영원한 삶도.
불행하게 살다 돌아가신 어머니만 다시 살릴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필요 없었다.
‘……신인 걸까……?’
자신을 소설 속 아벨로 만든 작가가 정말 신과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신이라면, 신이 아니더라도 나를 아벨로 만들 만큼의 대단한 존재라면…… 어쩌면…… 어쩌면…… 정말로 어머니를 되살려 줄 수 있을지도…….’
확실히 그의 말은 최고의 동기부여가 되고 있었다.
‘……어머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
소원의 전제조건은 다름 아닌 아벨의 사명이었던 ‘마족 멸살’이었다.
‘……안 그래도 그 재수 없는 것들을 싹 다 죽이려고 했었는데……!’
소설을 읽으며 항상 그 거지 같은 것들을 좀 더 확실하게 못 죽이나 하고 아벨에게 불만이 많았었다.
정말 잘 됐다고 생각했다.
‘좋다. 해주지. 그 마족 멸살이라는 것을.’
주원이 보기에 어마무시한 재능과 능력을 가진, 압도적인 사기캐이자 먼치킨인 주인공 아벨이라면, 자신이 가진 소설의 정보를 이용해 ‘마족 멸살’쯤은 어렵지 않게 이룰 것 같았다.
‘충분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만 되살릴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며, 매 순간 후회하며 살아왔었던 주원이었다.
작가가 천사인지 악마인지는 모르겠지만, 기회를 준 작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고맙기는 한데.’
“아니! 그게 1부 끝이었다고?! 이제 시작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