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소설 속 먼치킨-1화 (1/178)

제1화

1화. 우리 망할 작가님(1)

뜨거운 무언가가 심장을 쑤셔댄다.

그 갑작스런 뜨거움에 놀람도 배가 됐다.

“……?!”

용사 아벨은 마왕 베리알의 목을 직전에 두고 일어난 일에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함께 마왕을 압박하던 권왕拳王 지산은 자신의 몸이 검에 관통됨에도 불구하고 아벨의 몸을 붙잡고 있다.

마왕의 퇴로를 막기로 한 10 서클 대마법사 쿠리엘과 정의의 신 타티스의 대신관 로디아는 아벨의 몸을 이중, 삼중으로 구속하고 있었고.

“……카시드……?!”

그라면 등을 맡길 수 있다 생각했다.

친형제라고 생각했었던 바로 그라면.

그가 아벨의 심장에 꽂은 검을 비튼다.

뚜뚝―!

살과 근육이, 심장이 끊어지는 소리다.

“커컥―!”

죽은 피를 토해내는 아벨에게 쉴 틈도 주지 않고.

푸욱―!

검은 오라를 두른 마왕 베리알의 손날이 아벨의 심장에 이어 옆구리를 관통한다.

“죽어! 이 괴물 같은 놈아!”

그 절박한 외침에 너무 어이가 없어, 고개 돌려 베리알의 핏빛 눈동자를 바라본다.

‘……뭐 괴물 같은 놈……?’

아벨의 분기에 찬 눈빛에 베리알은 흠칫 놀라며 발악하듯 다시 한 번 소릴 지른다.

“괴물 새끼야! 이젠 좀 죽으라고! 제발 좀 죽어! 제발!”

베리알의 그 간절한 외침대로 아벨은 분명 죽어가고 있었다.

성녀의 목걸이가 아벨의 찢긴 심장과 내장들을 계속해서 재생시키고 있었지만, 이때껏 수도 없이 사선을 넘어왔었지만, 이번엔 전과는 확실히 달랐었다.

도저히 살아날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왜 안 죽어! 도대체 왜 안 죽냐고!”

그럼에도 베리알은 여전히 살아있는 아벨에 두려움을 느꼈는지, 옆구리에 쑤셔 넣은 손날에 검은 오러를 주입해 폭발시킨다.

“……!”

하지만 아벨은 그 고통보다는 허망함에 고개를 푹 숙인다.

이때껏 쌓아온 모든 게 무너지고 있었다.

이리도 허무하게.

“아벨.”

그때, 중저음의 나직한 목소리가 아벨의 귓가를 울린다.

아벨은 남은 모든 힘을 쏟아부어, 어떻게든 고개 들어 자신을 부른 그를 바라본다.

지산의 거대한 몸을 사이로 두 남자의 눈빛이 교환된다.

아벨의 몸이 치욕스런 배신감에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그제야 깨닫는다.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이들을 믿어선 안 됐다는 걸.

“……어떻게 네가……?!”

마치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듯한 덤덤한 눈빛과 표정이다.

“아벨. 넌 너무 많은 걸 가졌어. 너무나도 많이.”

‘……뭐……?’

“너 같은…… 신의 장난 같은 존재는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

아벨은 카시드의 그 말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도대체 자신이 뭘 그렇게 많이 가졌다는 말인가?

도대체 자신이 뭘 그렇게 잘못해 차라리 태어나지도 말았어야 한단 말인가?

신의 장난?

내가?

내가 신의 장난 같은 존재라고?

억울했다.

그리고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정말 그에게 묻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았었다.

하지만 이젠 너무 늦은 것만 같다.

자꾸만 눈이 감겨 온다.

쿨럭― 하고 입에서 다시 한 번 죽은 피가 뿜어 나온다.

“…후후…… 설마 했었는데…….”

.

.

.

.

“…후후…… 설마 했었는데…….”

휘익―!

턱―!

스마트폰을 침대로 던졌다.

훌쩍―!

텅―!

이어 주원도 덩달아 침대로 뛰어 눕는다.

그리곤 소리친다.

“야이 새끼야! 이게 말이 돼! 이게 말이 되냐고! 으아아아악―!”

잠시 소릴 지르며 울분을 토해냈다.

그동안 참고 또 참았던 게 드디어 폭발한 것이었다.

“이게 말이 되냐고!”

곧장 주원은 던진 스마트폰을 찾아든다.

작가는 분명 조언이 필요해 보였다.

└ 야이 작가새끼야! 이게 말이 되냐?! 주인공이 죽어?! 그것도 엔딩 직전에 배신으로?! 독자가 개호구야?! 그리고 아벨은 뭐가 이렇게 병신 같아?! 맨날 처당하기만 하고!!!

그래도 분이 안 풀려 허공에다 다시 한 번 소리친다.

“이게 말이 되냐고!”

주원이 이렇게까지 격하게 반응하며 조언하고 있는 이 웹소설은 용사 아벨의 일대기를 그린 『에브니아 전기』였다.

무려 약 50권, 1,257화의 그 방대한 양과 더불어.

‘살면서 이런 고구마 소설은 처음이다.’

‘보다 체할 것만 같다.’

‘이딴 소설 누가 보냐.’

‘아벨 개병신 호구.’

‘여기 주인공은 왜 맨날 당해요?’

‘작가 혹시 마조?’

라는 각종 오명을 들으면서도 꿋꿋이, 정말 꿋꿋이 쓰인 정통 판타지 소설이었다.

“넌 권선징악도 몰라?! 모르냐고!”

주원 역시 볼 때마다 ‘이딴 소설 다신 안 봐!’ 하면서도 계속 봐왔던 이유는, 볼 게 없어서라기보단 매번 죽을 뻔하며 배신당해 고통스러워하는 주인공 아벨이 너무나 불쌍해서였다.

‘그래! 그래도 마지막엔 행복하게 끝나겠지!’ 하면서 행복하게 끝날 아벨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참고 또 참으며 끝까지 봐왔던 것이었다.

“변태 새끼야! 네가 그러고도 작가야?!”

진짜 작가가 변태인 게, 소설에서 고난과 역경은 적당히 나와야 하는데, 이건 무슨 고난과 역경이 끝이 없었다.

볼 때마다 아벨이 사경을 헤맨다고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오! 이 변태 새끼!”

게다가 아벨만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작가가 소설 속 착한 캐릭터라는 캐릭터들은 전부 다 고통스럽게 만든 것이었다.

물론 그중 남주인공 아벨이 가장 고통스러웠지만 말이다.

“이 구제불능 작가!”

도저히 화가 풀리지 않아 계속해서 댓글난에다가.

└ 야! 내가 써도 너보단 잘 쓰겠다! 계속 이딴 식으로 쓸 거면 작가 때려쳐!

띠딩―

“뭐야?!”

└ 그래?

댓글에 댓글이 달렸다.

“어?”

‘난좋은작가?’

아이디가 작가 필명이랑 똑같다.

‘어디 한번 잘 걸렸다!’

“그래! 내가 너보단 훨씬 잘 쓰겠다! 이딴 게 소설이야?! 그러니 거지 같은 소설 매번 욕만 처먹지!”

└ 뭐……? 거지 같은 소설……?

“그래! 거지 같은 소설! 아니 무슨 주인공이 매번 속냐고! 왜 매번 죽을 뻔하냐고!”

└ 그건…… 용사의 사명인 ‘마족 멸살’ 때문에 그런 건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벨이 얼마나 강한 먼치킨인데?! 네가 아벨을 그런 먼치킨으로 만들었으면 당연히 뭐든 사이다스럽게 이겨야 하는 거 아냐?! 그게 맞는 거 아니냐고?! 무슨 판타지 소설이 뭐가 이렇게 고구마야?! 야! 넌 요즘 트렌드도 몰라?! 모르냐고!”

한참을 작가의 다음 소설을 위해 조언을 해주었다.

다신 그딴 식으로 쓰지 말라고.

“좀 생각이라는 걸 갖고 쓰라고!”

.

.

.

.

더 이상 댓글이 안 달렸다.

작가가 충격을 크게 먹은 것 같았다.

“그럼 첨부터 잘 쓰든가!”

작가가 충격받았다고 생각하던 찰나.

띠딩―

└……좋아. 그럼 두고 보자고.

하핫―!

뭐?!

“두고 보긴 뭘 두고 봐!”

우우우웅―!

그때였다.

별안간 스마트폰에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솨아아아아―!

뭔가 주원이 알고 있는 그런 빛이 아닌 기묘한 느낌의 이상야릇한 빛이었다.

“어, 어?”

그 빛이 주원을 감싸고돌다가.

번쩍―!

순간 엄청난 양의 빛이 터져 나오더니, 그대로 주원을 삼켜버린다.

* * *

번쩍―!

“……?!”

“깨, 깨어나셨습니다! 황자 저하께서 깨어나셨습니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천장의 화려한 성화들과 마치 당장에라도 떨어질 것만 같은 거대한 크리스탈 샹들리에였다.

“커컥―!”

그리고 동시에 몸속에서부터 불길이 치솟아 온몸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은 그런 고통을 느낀다.

“대신관! 대신관! 어서! 아벨 저하를 어서! 그리고 제니! 당장 성녀님께 가서 아벨 저하께서 깨어나셨다고 말씀드려!”

“알겠어! 언니!”

“아벨 저하! 아벨 저하! 괜찮으신 겁니까?!”

“어서! 빨리! 어서!”

여러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너무 고통스러워 비명을 지른다.

“크으아아아아악―!”

대신관이라 불린 장년의 남자가 울부짖는 주원에게 뛰어가 뭐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따뜻한 빛이 새어 나와 주원의 전신을 뒤덮는다.

“준! 너도 도와라!”

“네! 제시 님!”

준이라 불린 여자도 대신관 옆에서 뭐라고 중얼거렸는데, 그녀의 손에서도 따뜻한 빛이 새어 나와 주원의 고통을 경감시켜준다.

덜컥―!

그때 누군가 다급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깨어나셨나요?!”

목소리가 매우 앳되게 들렸다.

“네! 다프네 님! 깨어나셨습니다!”

다가와 주원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더니, 주원의 손을 잡고 저들과 비슷한 말들을 한다.

우우우웅―

소녀에게서도 따뜻한 빛이 흘러나오더니, 그 빛이 주원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는 더없이 고통을 경감시켜주며 편안한 몸 상태로 만들어 주었다.

우우우웅―

한참을 그렇게 세 사람에게서 치료를 받는다.

후우― 후우― 후우―

이제는 어느 정도 고통이 가라앉아 있었기에, 소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신들의 주인 되시는 주신 아그네스시여! 당신의 소중한 아들의 아픔과 고통을 잠재우실 그 힘을 제게―”

‘……기도……?’

신에게 비는 기도 같았다.

주원 본인을 치료해달라고 비는 기도.

이들이 기도를 할 때마다 따뜻한 빛이 흘러나왔었고, 그 따뜻한 빛 덕분에 고통이 사라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누구지……?’

놀랍게도 가장 늦게 온 소녀가 그들 중 가장 높은 직위에 있는 것 같았다. 그 높은 직위만큼이나 기도의 능력이 월등했었다.

훨씬 더 많은 빛으로, 순식간에 주원의 고통을 없애주고 있었다.

‘……이제 좀 살 것 같네…….’

확실히 소녀의 기도는 대단했었다.

오래지 않아 온몸이 타들어 가는 듯했던 그 고통은 전부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탈력감에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들다.

안정을 되찾은 주원에게 소녀가 말한다.

“……이번에도 잘 견뎌주셔서 감사해요…… 아벨 저하…… 정말 잘 이겨내셨어요…….”

‘아벨 저하?’

자신에게 하는 말일까?

이상하게도 분명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하지만 왜 자신에게 ‘아벨 저하’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힘겹게 눈을 뜬다.

주원에게 아벨 저하라고 말한 초록빛 눈동자의 아름다운 소녀를 바라본다.

새하얀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단아하면서도 이목구비가 뚜렷한 외모, 성스럽다는 표현은 소녀를 위한 표현 같았다.

‘하지만 슬퍼 보여…….’

누군지 모를 소녀는 확실히 슬퍼 보였고 몹시도 주원을 걱정하고 있었다.

소녀는 주변을 둘러보며 함께한 이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한다.

“다들 고생하셨어요. 덕분에 저하께서 이번에도 독을 이겨내셨어요.”

소녀와 함께 주원을 치료했던 장년 남자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훔치며 말한다.

“정말 큰일 나는 줄 알았습니다. 다프네 님께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또 함께했었던 다른 여자는 이젠 초록빛 눈동자의 소녀가 더 걱정된다는 얼굴이었다.

“저희보다 다프네 님께서 고생하셨죠…… 몇 날 며칠을 쉬지도, 주무시지도 못하고 치료만 하셨는데요…… 아까도 기도하러 가신 거잖아요…….”

그 말에 다프네라 불린 소녀는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그렸다.

“이제 쉬면 되죠. 전 괜찮아요. 고마워요. 걱정해주셔서.”

그러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주원에게도 미소 지어 준다.

‘……다프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다.

‘……에브니아 전기……?’

다프네는 다름 아닌 『에브니아 전기』 속 등장인물 중 한 명이었던 것이었다.

‘성녀 다프네?’

분명 다프네란 이름은 성녀 다프네 하나밖에 없었다.

‘꿈인가?’

꿈인 게 확실해 보였다.

꿈이 아니라면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눈을 돌려 주변을 바라본다.

역시 주원이 살고 있었던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던 그 단칸방이 아니었었다.

각종 보석과 화려한 장식품들, 명화들로 덕지덕지 꾸며진 대단히 화려한 방이었다.

또한 사람들이 마치 중세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영화에서나 볼 법한 헤어스타일과 옷들을 입고 있었다.

심지어 언어도 한국어가 아니었었는데, 그럼에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철가면은…….’

아까부터 얼굴에서 느껴졌었던 그 차가운 이물질에 대해 떠올린다.

‘……아벨이 어린 시절 철가면을 쓰고 다녔었어…….’

아벨은 너무나 아름다운 외모 덕분에 적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입가만 드러나는 철가면을 성인이 되기 전까지 쓰고 다녔던 것이었다.

마치 족쇄처럼.

‘……뭐 이건 꿈이니까…….’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분명 작가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한 뒤 스마트폰에서 별안간 엄청난 빛이 흘러나왔었다.

그 빛에 휩싸인 것이 기억의 마지막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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