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200화
지금 내 심장에는 총 일곱개의 마력이 모여 있다.
각 차원계의 힘, 그리고 원래 가지고 있던 나의 마력.
보통은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꺼내 쓰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후우.
길게 심호흡을 했다.
처음 시도하는 일이기에 여유는 많을수록 좋다.
단단히 잡고 있는 검에는 느리게 마력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자격을 얻으며 모든 힘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고는 하나 그건 충돌하지 않을 경우의 문제.
하나같이 지랄맞게 날뛰는 기운들을 어르고 달래며 조금씩 뭉쳐 넣었다.
‘특히나 이 마기…… 누가 다루는 힘 아니랄까 봐 제일 협조가 안 되는군.’
얼굴에는 식은땀이 흐른다.
하지만 그만큼 노력은 결실을 맺어가고 있었다.
검에 맺힌 마력은 천장을 뚫을 기세로 커져간다.
“설마 했는데……당신, 탑을 무너뜨리려는 건가요!??”
옆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전대 관리자가 경악한다.
그러나 손발이 점점 흐려지고 있는 탓에 그저 앉아 있는 자리에서 나불거릴 뿐이다.
“제정신이 아니군요!!!!! 그걸 없앤다면 다시는 관리자가 태어나지 못해요!!!!”
그나마 저 꼴이라 다행이었다.
온 힘을 다해 집중하고 있는 지금, 누군가가 툭 건들기만 해도 나는 물론 이 공간 자체가 찢어질지도 모르니.
‘슬슬 시작해도 되겠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마력이 드디어 정점에 이르렀다.
나는 물끄러미 응축된 힘을 바라보다 검은 탑 앞에 우뚝 섰다.
이 이상은 애쓸 필요도 없었다.
단 일 검.
그것이면 충분했다.
콰아아앙!!!!!!!!!!!
정확히 가운데를 베어 올렸다.
길게 이어진 검로를 따라 탑이 길게 쪼개진다.
쿠웅!! 쿵!!!
탑은 완전히 두 동강이 나 버린다.
거대한 규모에 비한다면 어색할 정도로 깔끔한 마무리였다.
“아…… 아아…… 탑이…….”
관리자의 몸은 이제 곧 사라질 듯 희미하게 보인다.
아마 오 분 남짓의 시간도 남지 않았으리라.
나는 그녀의 발치로 다가가 눈을 마주했다.
“이제야 깨달았지. 너는 이 세계를 조절할 수 있는 자가 없다면 당장 혼란에 빠질 거라 생각했더군.”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래서 그토록 노력하며 애썼는데……!!! 내 육체와 영혼을, 그리고 나의 아이 곁을 매정하게 떠나면서까지!!!”
그녀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으로 물들어 간다.
잔뜩 찡그린 얼굴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하다.
“제일 좋은 세상을 안겨 주고 싶었는데…… 정작 그 아이는 망가져 가고…… 결국 내가 지켜내려던 세상마저…….”
“아니. 지켰던 게 아니지.”
“……뭐라고요?”
“너는 그저 모두를 제어해 왔을 뿐이다. 처음부터 틀렸어.”
나는 탑이 있던 장소를 힐끔 쳐다보았다.
이미 모든 것이 산산조각나 폐허나 다름없다.
하지만 시스템은 아직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
탑도, 관리자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모두 쓸데없는 짓이었나요…….”
그녀는 쓰게 웃는다.
허탈한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렇게까지 표현할건 없다만, 관리자의 존재가 없어도 되는 건 사실이지.”
관리자는 심판 같은 존재였다.
누군가 반칙을 한다면 경고를 주고 추방시키며 게임을 제대로 굴러가게 만드는 자.
하지만 남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는 관리자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다.
나는 앞으로 그저 말로 경고를 주는 자가 아닌, 직접 선수의 멱살을 잡고 끌어내는 심판이 될 작정이었다.
“날 믿어라. 이제부터는 꽤 재밌는 세상이 될 거야.”
주먹은 그 어떤 것보다 가까이에 있으니.
나는 입꼬리를 들어 웃었다.
그녀는 영문모를 표정을 하더니 점점 나를 따라 조금씩 미소 짓기 시작한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희생 같은 건 필요 없는 세상이겠군요.”
“절대로.”
그 따위 것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단호한 대답에 그녀는 만족한듯 웃음을 띄워 올린다.
“……고맙습니다.”
마지막 목소리는 공중에 흩어진다.
완전히 사라진 몸에서는 금빛의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곧 그 영혼이 곁에 있던 헤츨링의 몸으로 들어간다.
아마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모든 기억을 잃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리라.
나는 그녀의 영혼 탓에 검은 비늘이 얼룩덜룩하게 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몸뚱이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자, 이제 끝내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 말을 던졌다.
그러자 시스템은 기다렸다는 듯이 메시지를 띄워 올린다.
내가 서 있던 주변은 알 수 없는 기운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검은 탑>99층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누구도 이룰 수 없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칭호 <구원자>를 획득하였습니다.]
온통 검은색이던 공간에 조금씩 빛이 들어온다.
자세히 보니 유리가 쪼개지는 것처럼 벽 전체에 실금이 생겨 있었다.
쩌적-
뒤에서 무언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다.
바로 앞에서는 눈부신 빛이 들어섰다.
[……이 굴레를 끊어 줘서 고맙네. 앞으로의 일들도 기대하지, 구원자여.]
나직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나는 대답없이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정말 진 헌터님이 곧 나오실까요?”
여의도의 <검은 탑>.
최근 도전자는 없었기에 아무도 얼씬하지도 않던 장소에 얼굴 보기도 힘든 헌터들이 수두룩하게 모여 있다.
국내 랭커는 물론이고 한자리 차지한다는 자들은 한 명도 빠지지 않은 상태였다.
모두 갑자기 나타난 서채아의 발언 때문이었다.
“금방 탑을 공략하고 돌아오실 겁니다.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말씀하셔도 <검은 탑>이 무슨 동네 뒷산도 아니고…….”
누군가의 의심스러워하는 발언에 시선이 모아진다.
당연히 눈빛은 곱지 않았다.
손톱을 잘근잘근 씹어대고 있는 마족은 특히나 거센 반응을 보였다.
“미천한 인간주제에…… 감히 마왕님을 의심해???”
“아니, 의심한 게 아니라…… 아닙니다. 정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렇다면 흔쾌히 죽여-”
“잠깐. 진 님을 맞이하는 자리에 피를 뿌리는 건 좋지 않을 텐데.”
아레스 길드 간부들과 함께 있던 강준하가 아렐리아를 날카롭게 비난한다.
그에 박민호와 이도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천박한 인간놈들…… 흥.”
그녀는 그들을 째려보더니 마기를 거둔다.
명계로 향할 뻔한 헌터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중에 다른 곳에서 처리해. 여기는 보는 눈도 많으니.”
“헉!!!”
결국 망발을 내뱉었던 헌터는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난다.
그러자 곁에 있던 차은진이 슬그머니 강준하의 귓가에 속삭였다.
“저자의 이름, 나이, 주소를 포함한 모든 것이 담긴 정보는 나중에 아레스 길드에 보내 드리죠.”
어느 길드 소속인지는 모르겠지만, 길드 전체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겠군.
구경하던 모두가 동시에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다.
쿠우우우-
긴장했던 분위기가 풀려가는 사이, 갑자기 탑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알 수 없는 현상에 헌터들은 재빨리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꿀꺽, 누군가가 침삼키는 소리만 들려오는 가운데.
요동치던 검은 탑은 언제 그랬냐는 듯 움직임을 멈춘다.
그리고 잠시 후.
영원히 굳게 닫혀 있을 것 같던 탑의 문은 소리 없이 열린다.
그 안에서는 기다리던 자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마왕님!!”
제일 먼저 그에게 뛰어든 건 아렐리아였다.
그녀는 차갑던 표정을 빠르게 지워 내고 환하게 웃는다.
진은 피식 웃으며 익숙하게 검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시아-대한민국 채널이 <검은 탑>99층을 정복하였습니다!]
[최초로 탑을 공략한 대한민국 채널에 전체 보상이 주어집니다.]
모두의 눈앞에는 같은 메시지가 떠오른다.
비단 한국의 헌터뿐 아니라, 전 세계의 사람이 보고 있을 시스템 창이었다.
퍼엉-
하늘에는 탑이 터트린 화려한 빛의 가루들이 휘날린다.
다들 넋을 잃고 시스템이 축복하고 있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X발, 시끄럽네.”
진이 조용하게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시스템은 눈치라도 보는것마냥 뚝, 행동을 멈춘다.
‘뭐지? 설마 시스템을 조절하는 능력이라도 얻은 건가?’
박신우는 잠시 어이없는 상상을 하다 헛웃음을 삼켰다.
그럴 리가 없지.
그는 간신히 평정심을 되찾고 협회 대표로서 진에게 다가섰다.
“탑 공략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지구로 무사히 돌아오신걸 환영합니다.”
진은 말없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 * *
집에 돌아왔다.
나는 그간 밀린 수면을 한번에 해치우는 것처럼 내내 잠을 잤다.
처음으로 가지는 꿀 같은 휴식이었다.
그러나 딱 한 달뿐이었다.
“큼큼, 천왕이시여. 저 빌어먹을 마족들 좀 말려 보소서. 자꾸 천계의 꽃밭을 케르베로스를 타고 질주합니다.”
“요정왕님, 요정들이 또 사라졌어요!”
“형님!! 영국에 S급 게이트가!!”
새로 생긴 <대한> 연합의 건물.
꼭대기층에 있는 내 사무실에는 오늘도 이종족과 헌터들로 아우성이다.
검은 탑이 공략된 직후.
모든 차원계는 지구와 연결되어 버렸다.
마계와 천계는 물론이고 아스티란을 포함한 대륙들까지도.
덕분에 헌터와 타차원계의 존재들은 온 사방을 쏘다니며 여행에 열중이었다.
‘그러면서 생기는 문제들은 덤이고.’
여기가 무슨 고충상담소도 아니고, 허구한날 찾아오는 자들 때문에 조용할 날이 없다.
곁에서 마계 관련 안건을 해치우던 아렐리아는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지고 있었다.
사실 그녀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수인족의 왕자 파렌, 요정계의 티타니아를 포함한 몇 명도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고 있었으니.
“……마왕님, 마르바스가 아스티란에서 인간들에게 계약하자며 꼬드기고 있나 본데요.”
“뭐?? 또 그 단순한 한스 개자식이랑 대륙정복 놀이라도 하는 건가?”
“이번에는 용병단을 만들었다네요. 아직은 조용한데…… 월드 랭커 몇도 넘어가서 참여하고 있는지라 좀…….”
“……제주도에 있는 헤르멘 보내. 이번에도 사고치면 모조리 리카 대륙 재건현장에 노동력으로 써 버린다고 하고.”
“으으…….”
아렐리아는 결국 머리를 부여잡는다.
한창 시끄러운 와중, 얼룩덜룩한 헤츨링 한 마리가 서채아와 함께 나타난다.
뒤에는 꼬리처럼 5대 길드의 헌터들을 달고 있는 상태였다.
“진 님, 아스티란 대륙에 마계 공작 이야기 들으셨나요?”
서채아는 자신을 졸졸 쫓아다니는 드래곤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을 건네온다.
마르바스 그 자식은 대체 뭘 하고 다니기에 소문이 파다한 거지.
손아귀에 힘을 주자 쥐고 있던 펜은 산산조각 나 버렸다.
“……아렐리아, 짐 챙겨.”
“예? 갑자기 무슨…….”
“온 차원을 한바퀴 돌면서 한바탕 뒤집어 놔야겠어. 우선 아스티란에 가서 마르바스부터.”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 있는 서채아를 자리에 앉혔다.
“진 님???”
“이제부터는 네가 <대한>연합의 임시 대표다.”
“……네에????”
나는 경악하는 그녀를 뒤로한 채 공간을 찢었다.
안쪽에는 아스티란의 황궁이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아렐리아. 좀 긴 여정이 될 것 같은데.”
“평생도 가능해요!!!”
환하게 웃는 그녀의 손을 단단히 맞잡았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걸음을 옮겼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