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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199화 (199/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99화

천천히 흐려지는 몸, 끈적하게 감싸오는 공기.

<검은 탑>에서 다음 층을 향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이 짓도 이제 마지막이군.’

심장이 두근거린다.

전투 외의 것에 흥분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서서히 시야는 검게 물든다.

이윽고 주변이 완전한 어둠으로 가득해졌을 쯤.

시스템은 드디어 내가 원하는 말을 띄워 올렸다.

[<검은 탑>99층에 도달하였습니다.]

[감히 넘볼 수 없는 위대한 업적! <최초로 탑을 정복한 자> 칭호를 얻습니다.]

이제 모든 여정은 끝이 났다.

지나간 삼백여 년의 기억들이 드문드문 떠오른다.

처음으로 아스티란에 발을 내딛었던 그 당시 역시도.

“추억을 회상하고 있군요.”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 검은 허공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리니 누군가가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사락, 땅에 끌릴 만큼 긴 금발이 반짝인다.

나를 올곧게 바라보는 눈동자 역시 찬란한 금빛이었다.

‘드디어 저 잘난 얼굴을 구경해 보는군.’

확실히 렌과 비슷한 분위기다.

그러나 감정 하나 내비치지 않는 무표정의 얼굴은 지나치게 차갑다.

마치 말하는 기계를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글쎄. 추억이라는 말로 포장하기에는 개같은 기억들이 너무 많아서.”

모두가 <그녀>라고 부르는 존재, 렌의 어머니.

그리고 시스템의 관리자.

지칭하는 말은 많았지만 나에게는 그저 고생의 서막을 열어준 장본인일 뿐이었다.

당연히 내뱉어지는 말은 곱지 않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런가요. 필멸자들의 생각을 헤아리기란 여전히 어렵군요. 어차피 다 지나면 헛된 일이거늘…….”

“그건 렌도 포함인가.”

무감정한 눈동자가 순간 움찔한다.

역시나 모든 것에 초월한 자도 거슬리는 기억은 하나쯤 있을 법했다.

“……제 첫번째 아이는 편안히 보내 주었나요.”

먼지처럼 흩어지던 렌의 마지막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명하다.

억지로 수명을 연장해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살아온 존재 치고는 지나치게 허무했다.

“그토록 한번 보려고 했던 어머니는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원하는 바는 이뤘으니 나름대로 괜찮았을지도.”

나는 심드렁하게 인벤토리를 열었다.

툭, 발치에는 시꺼먼 헤츨링이 떨어진다.

모든 일을 마친 관리자의 영혼이 들어가게 될 몸이었다.

‘고작 이것 따위를 위해 평생을 바치다니.’

남을 위한 희생.

내가 하는 것도, 받는다는 상상을 하는 것도 끔찍한 일이었다.

나로서는 죽을 때까지도 이해하지 못할 감정이겠지.

“이것이 그…….”

그녀는 조심스럽게 헤츨링을 주워 든다.

쓰다듬는 손길은 약간씩 떨리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이걸 찾았으니 렌은 아무런 미련없이 죽었겠군요. 제 영혼이야 소멸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지만……이토록 애쓴 제 아이를 봐서라도 새로운 삶을 살아 봐야겠어요.”

작게 숨을 들이쉰 그녀가 눈을 질끈 감는다.

다시 눈꺼풀을 들어올렸을 때에는 완벽한 관리자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제 할 일 해야겠네요.”

가벼운 손짓에 여섯 개의 물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인벤토리에 넣어두었던 왕관들이었다.

그 중 티끌 하나 없이 희게 빛나는 왕관 하나가 내 눈 바로 앞까지 다가온다.

“아직 완전히 이어받지 않았더군요.”

천왕의 자리에 대한 말이었다.

이미 서채아가 소유권을 넘겨준 상태였지만,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난장판이었는지라 한가롭게 확인해 볼 여유는 없었다.

‘천신이 왕관을 모두 얻으면 신이 되기 위한 자격이 생긴다고 했던가.’

신이 된 인간이라.

얼핏 들으면 꽤나 그럴싸한 일이다.

하지만 이미 위엄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신들을 잔뜩 봐왔기에 그다지 감흥은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그저 해 왔던 일을 끝내는 것에 불과했다.

“그래. 이제는 마무리할 때지.”

“……새로운 시작일지도 모르죠.”

뜬구름 잡는 대답이 들려온다.

묘한 말투가 의아하기 짝이 없었지만, 일단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물건을 덥썩 잡아들었다.

[천왕의 왕관[???]: 천족의 왕이 된 자가 가질 수 있는 왕관. 천신이 마계와의 오랜 전쟁을 끝낸 초대 천왕의 공을 치하하기 위해 친히 만들어 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6개의 종족들이 가진 모든 왕관을 모은다면 신에 필적할 만한 힘을 얻게 된다고 한다. <보유한 왕관:6/6 요정왕의 왕관, 마왕의 왕관, 정령왕의 왕관, 수왕의 왕관, 거인왕의 왕관, 천왕의 왕관> ]

[위대한 업적! 인간의 몸으로 천왕이 되는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칭호 <천왕>을 얻습니다.]

[<천왕>: 고귀한 천족들의 지배자입니다. 그들은 존경해 마지않는 왕에게 기꺼이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천족 지배력+100% 마나+300%]

[<퀘스트:왕의 길>이 갱신됩니다.]

[<왕의 길>-(6)

-요정계의 왕:달성

-마계의 왕:달성

-천족의 왕:달성

-수인계의 왕:달성

-거인계의 왕:달성

-정령계의 왕:달성

]

왕관에서 눈부신 흰 빛이 터져 나온다.

주변을 가득 메운 성력은 순식간에 남김없이 내 몸으로 흡수되었다.

‘이것이 그 자격이라는 건가.’

확실히 초월자가 되면서 날뛰던 힘들이 안정되어가고 있었다.

마음까지 차분하게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왕의 길>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이어서 <신이 되려는 자>로 연계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신명 검색 중……]

“드디어 모든 게 정리되었군요.”

“이제 나는 전에 보았던 신들의 낙원으로 가게 되는 건가?”

“보통의 경우에는 그렇게 됩니다. 그동안의 행동을 토대로 신으로서 활동할 이름이 정해지죠. 당신의 경우에는……아마 전쟁의 신 정도로 되겠군요.”

전쟁터라면 지겨울 정도인 나에게 어울릴 만한 호칭이었다.

잠시 기다리자, 정말로 그녀의 말과 똑같은 내용이 올라왔다.

[적합한 신명 검색 완료.]

[<파괴와 전쟁의 신>: 당신이 지나간 자리에는 풀 한포기조차 남지 않습니다. 적들조차 감히 머리를 들지 못하며 경외감에 몸서리칠 것입니다.]

[<파괴와 전쟁의 신>을 부여받겠습니까? 허락/거절 *주의: 거절한다면 영원히 신의 반열에 올라설 수 없습니다. 단, 가진 힘은 거둬지지 않습니다.]

시스템 메시지는 난생 처음 보는 찬란한 무지개 빛이다.

그만큼 심사숙고할 만한 중요한 시점이라는 것일 터.

하지만 선택은 너무나 간단하다.

‘신따위 개나 주라지.’

나는 조금도 지금의 생활을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물론 신이랍시고 떵떵대지만, 막상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는 그들의 실상도 꽤나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당연히 거절 쪽에 손을 올리려는 찰나.

방금 전 그녀가 말했던 ‘보통의 경우’라는 단어가 이상하게도 거슬리기 시작한다.

‘보통은? 나처럼 신격을 거부한 자가 있었다는걸 표현한 건가.’

대충 넘기기엔 묘하게 꺼림칙하다.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이 앞에는 분명 무언가가 더 있다고.

의심을 가득 담은 눈초리를 던졌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작게 박수를 친다.

“축하합니다. 인간이 신이 될 자격을 얻은 경우는 처음이군요.”

“보통이 아닌 경우에는 달리 뭐가 있지?”

대뜸 던져지는 말에 그녀는 하던 행동을 멈춘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바닥을 향해 눈을 내리깐다.

다분히 곤란한 질문을 회피하려는 느낌이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죠.”

“대체 무슨 개소리를-”

“인간이여, 그대는 이 세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하얀 손이 자연스럽게 올라온다.

아직까지 떠있는 <신이 되려는 자> 퀘스트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손길이 닿자마자 빛나던 시스템 메시지는 지직거리는 소음을 내며 미친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스템 관리자의 권한으로 해당 퀘스트를 삭제합니다.]

[경고! 해당 관리자에게 ???급 퀘스트를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역시 내 자격으로는 안 되는 건가…….”

“지금 뭐 하자는 수작이지?”

어차피 거부할 퀘스트라지만 그게 남에 의해 결정된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불쾌함을 숨기지 않으며 손을 잡아 올렸다.

그러나 그녀는 잡힌 손을 빼지도 않고 오히려 꽉 쥔다.

“이게 무슨……!”

“어쩔 수 없죠. 그래도 당신이 머뭇거린 덕분에 강제로나마 힘을 넘길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자, 이제……운명을 받아들이세요.”

맞잡은 손을 통해 알 수 없는 기운이 물밀듯 들어온다.

거부하려 했지만 몸은 옴싹달싹 할 수 없다.

동시에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큭, 빌어먹을……!’

“세계의 율법, 즉 그대들이 부르는 시스템에는 항상 그것을 관리할 관리자가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는 어리석은 자들밖에 없기에 당연히 필요한 존재죠. 그러나 나는 억지로 떠맡았지만 진정한 자격은 없었어요. 그건…… 태초에 제일 먼저 탄생한 생명체인 인간이 차지해야 할 자리였으니까요.”

우우웅-

검은 공간이 작게 진동한다.

두통을 참아가며 간신히 눈을 뜨자 아무것도 없었던 곳에는 서서히 거대한 탑이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X…… 발…… 설마 <검은 탑>?”

“맞습니다. 세계 곳곳에 뿌려져 있는 탑의 원본이죠. 그리고 앞으로는 당신이 관리자로서 관리할 세계의 율법이고요. 더할 나위 없이 영광된 일입니다. 이 자리를 물려줄 수 있어 기쁘군요.”

그녀는 시원할 정도로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하지만 졸지에 관리자의 후임이 될 나에게는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나는 온 몸을 뒤흔드는 힘들과 밀려들어오는 세계의 기억을 떨쳐 내려 애썼다.

‘제기랄…….’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미친듯이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평정심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치고 그때.

시스템의 힘에 대항하듯 슬그머니 다른 기운이 머리를 내민다.

‘이건……비틀린 운명의 수레바퀴?’

아직은 미약한 기운이다.

그러나 계속 내게 흡수되고 있는 관리자의 지식이 이것에 힘을 불어넣어 줄 방법을 찾아 주었다.

나는 바로 이를 악물고 마력을 모조리 끌어냈다.

“……잠깐, 어떻게……!?”

그녀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금빛 기운을 쳐다본다.

하지만 지금은 나처럼 그녀도 손끝 하나 움직이기 힘든 상태였다.

“후우우…….”

흘러 들어오는 힘은 내 마력과 수레바퀴의 기운에 집어삼켜진다.

지독히 길게 느껴지던 시간은 서서히 끝을 보이고 있었다.

핏-

결국 연결이 끊어진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흐으으윽……!! 안……돼! 이 고귀하고 숭고한 자리를, 어째서 거부하는 거죠!??”

퉷.

바닥에 침을 뱉자 검붉은 핏기가 섞여 나온다.

나는 어깨를 주무르며 몸을 풀었다.

“X발, 그렇게 좋은 자리면 영원히 네가 하지 그래.”

“……이미 늦었…… 어요.”

그녀는 서서히 투명하게 변하는 몸을 지켜본다.

관리자의 역할을 넘기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이미 그 쓸모는 다했기에 육체가 사라지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할 셈이죠……? 관리자는 반드시 있어야……세계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데…….”

“멍청하긴.”

지금 나는 시스템의 힘은 받지 못했지만 기억을 거의 넘겨받은 상태다.

아마 이건 그녀조차 모를 것들이었다.

오직 적합한 영혼, 인간인 나만 온전히 얻을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몇만 년, 아니 그 이상 지나온 것들이 머리를 터질 듯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세상을 관리한다? 그 오만한 생각은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모르겠군.”

모두 헛짓거리였다.

애초에 그건 이 세계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검은 탑, 아니 세계의 율법이여.”

내 말에 대답하듯 탑이 크게 진동한다.

나는 검을 꺼내 들어 단단히 쥐었다.

“지금 그 답답한 곳에서 꺼내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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