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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196화 (196/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96화

물결에는 어느새 떠오른 달이 은은하게 비춘다.

달빛을 받아 희게 빛나는 얼굴은 눈물로 뒤범벅이 되어있다.

지나치게 엉망인 모습이다.

하지만 아까보다는 생기가 넘쳐 반짝거렸다.

‘보기에는 훨씬 낫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마기는 아지랑이처럼 피어나 내 몸을 뒤덮어가고 있었다.

“……아직 해 보지 못한 것도, 가보지 못한 곳도 너무 많아요. 진 님, 저는 살고 싶어요. 저를…… 살려 주세요.”

삶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찬 대답이었다.

이제 우리의 주변은 완전히 검은 기운으로 가득하다.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서 나는 더욱 진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 너의 목숨은 내가 거두어 주지.”

화아악-

계약의 낙인이 서채아의 이마에 새겨진다.

반투명한 신체는 점점 더 흐려졌다.

잠시 후.

그녀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발 밑에는 툭, 영혼의 구슬이 떨어져 내렸다.

[역시 마족의 계약은 볼때마다 신기하군. 영혼을 그처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건 신을 제외하고는 마족밖에 없을 거야.]

“영혼을 모으는 건 마신의 악취미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뭐, 지금으로서는 이 능력이 도움이 되니 다행이군.”

잠들었는지 구슬에서는 아무런 말도 흘러나오지 않는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기에 정신적으로 피곤할 만도 했다.

‘푹 자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다시 깨어나면 원하는대로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게 해 줄 생각이니까.’

검은 구슬 안에는 금빛 기운이 살아있는 것마냥 끊임없이 일렁인다.

이지경이 되었어도 렌의 힘은 아직도 그녀의 영혼 속에 잠재되어 있었다.

“어지간히도 강하게 결속되어 있는 모양이군. 고작 몸이나 숨기고 있는 드래곤 주제에.”

[큼…… 그 괴물을 한낱 몬스터처럼 대하는 자는 세상에 그대밖에 없을걸세.]

“차라리 몬스터는 말이라도 대충 알아듣지, 그건 이미 짐승이나 다름없어.”

가볍게 혀를 차고 구슬을 들어올렸다.

묘하게 따뜻한 온도때문에 마치 사람을 만지는 기분이 든다.

영 껄끄러운 감촉에 재빨리 인벤토리를 열었다.

이미 강을 거의 건넌 상태기에 시스템은 무리 없이 내 의지에 응답해주었다.

[영혼의 구슬- 서채아[???급]: 인간족 서채아의 영혼이 담겨 있는 구슬입니다. 단, 현재 조각난 상태이므로 다른 영혼의 조각과 합쳐져야 합니다. *주의: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구슬을 인벤토리의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넣어 두려는 그때.

갑자기 손 끝에서 금색의 기운이 꿈틀거리며 빠져나온다.

명계의 입구를 열어줬던 것과 똑같은 현상이었다.

다만 그때와는 다르게 눈 앞에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비틀린 운명의 수레바퀴가 당신을 다른 운명으로 인도하려 합니다. 승낙하시겠습니까?]

[경고! 해당 선택지를 고를 경우 정해진 길을 벗어나게 됩니다.]

[<검은 탑> 95층으로 이동하려면 취소를 누르세요.]

이제껏 보지 못했던 친절한 시스템 설명이 낯설다.

그만큼 절실하다는 거겠지.

맹렬하게 울려대는 경고음에서 제발 좀 엉뚱한 곳으로 가지 말라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원래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의 본능 아니던가.

나는 한치의 고민도 없이 바로 승낙한다는 버튼을 눌렀다.

[비틀린 운명이 플레이어를 이끕니다.]

“원래 정해진 길은 재미가 없는 법이지.”

자, 다음은 무엇을 보여 줄 거냐.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손을 내려다 보았다.

튀어나온 수레바퀴의 힘은 서서히 내가 들고 있던 서채아의 영혼을 덮어 가기 시작한다.

한참을 그렇게 꼼지락거리던 금색의 기운은 몸집을 불리더니 갑자기 손톱만한 작은 구슬을 하나 뱉어 냈다.

그리고는 내게 바치는 선물인 것마냥 눈앞까지 물체를 들이민다.

[지나간 기억의 구슬(드래곤 렌)[???급]: 사용시 상대방의 과거 기억 중 일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과거 시점은 고정되어 있으며 특정 인물(렌)의 기억밖에 볼 수 없습니다.]

아티팩트의 설명이 낯익다.

마계 북부공작인 마르바스의 과거를 엿보는데 쓰였던 것과 같은 물건이었다.

다만 내용은 조금 차이가 있다.

상대를 가리지 않던 마신의 유물과는 다르게 오직 렌의 과거만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고 보니 방금 전에 서채아가 렌의 과거를 꿈에서 봤다는 말을 했었던가.’

아마 그녀의 말과 무관하지 않은 물건일 것이다.

나는 작은 구슬을 손에서 굴리며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남의 과거사 따위는 별로 궁금하지 않은데.’

그리고 그것이 렌에 관련된 거라면 더더욱 그랬다.

어차피 죽여야 할 놈인데, 과거 좀 본다고 결과가 달라지진 않을 테니까.

[대체 아까부터 그걸 쥐고 뭘 그렇게 고민하는 건가?]

내 행동이 궁금한지 에우로델이 슬그머니 말을 걸어온다.

심드렁하게 대충 구슬에 대해 설명하자, 그는 갑자기 입을 꾹 다문다.

무언가 대충은 알고 있는 눈치였다.

[으으음…… 렌의 과거라……]

나직한 침음에는 미묘한 안타까움이 실려 있다.

항상 렌 이야기만 나오면 분노하던 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에우로델이 렌을 불쌍하게 여긴다고?’

상상도 해 보지 못한 일이다.

점점 어처구니가 없어져 성검을 강하게 부여잡고 흔들었다.

“왜 그런 반응이지? 방금 전에 죽음의 강에서 물 몇 방울 튀더니, 그걸 흡수하고 미치기라도 한 건가.”

[아니, 명계의 강에 그런 이상한 효능이 있을 리가 없지 않나. 그러면 죽음의 강이 아니라 미치광이의 강 따위로 불렸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그 이상한 태도는 설명이 안되는데.”

[크흠, 큼!!! 미안하네. 잠시 옛날에 전해들은 말을 떠올리다 보니……]

멋쩍은 듯 에우로델은 계속 헛기침을 흘린다.

그리고 온갖 감정을 떨쳐내려는 듯 긴 한숨을 내뱉었다.

[설명보다는 직접 보는게 빠를걸세. 나도 겪지 못했던 아주 먼 과거의 이야기니 말이야.]

아우로델은 노망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오래 살아온 드래곤이다.

그런 고룡이 겪어 보지도 못한 과거의 일이라니.

이제야 어느 정도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좋다. 내가 직접 보고 오지.”

기억의 구슬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단단한 물체는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서서히 내 몸은 물에 젖은 것마냥 무거워졌다.

[드래곤 렌의 과거 기억으로 이동합니다.]

자연스레 눈이 감긴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몸은 전처럼 반투명하게 변한 상태였다.

‘생각보다 평화로운 곳이군.’

그림으로 그린 듯한 초원은 보기만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놈의 평소 행실을 보건데 당연히 피와 죽음이 가득한 과거가 펼쳐질 거라 예상했던 건만.

그 괴물같은 드래곤에게도 행복한 때는 있었던 모양이다.

“하실 부탁이 있으시다고요?”

근처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분명히 렌이었다.

하지만 항상 사용하던 고루한 말투가 아니기에 단숨에 그를 떠올리기는 힘들었다.

“대체 어떤 말이기에 주저하세요? 무엇을 요구하던지 당연히 승낙할 텐데요.”

살랑이는 잔디위를 지나 앞으로 나아갔다.

우거진 풀숲을 뚫고 지나가자, 곧 바위에 앉아있는 금발의 소년을 찾을 수 있었다.

나긋한 목소리만큼이나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고 있는 그는 마치 천사의 모습같았다.

“……너에게 큰 짐을 맡겨야 할 것 같구나.”

허공에서 나직한 소리가 들린다.

옆을 보자 눈부신 금빛 벽이 보인다.

의아한 마음에 서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잠깐, 이거 벽이 아니라…… 드래곤?’

거대한 금빛 드래곤이 나른하게 몸을 일으킨다.

렌에게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온 몸에 저릿한 위압감이 느껴진다.

상급 신, 아니 그 이상일까.

난생 처음 느껴 본 강력한 힘에 심장이 두근거린다.

“짐이라니요?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그는 어린아이마냥 뚱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항상 세상만사 귀찮다는 듯 무심한 얼굴을 하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슬슬 이게 렌이 맞긴 한 건가 의심이 갈 정도였다.

“나의 첫번째 아들아, 최근 관리자께서 소멸한 건 알고 있겠지.”

……아들?

순간 내 귀를 의심할 단어가 지나간다.

뒤에 창조신을 들먹이는 말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분명 드래곤들에게 부모나 자식 관계는 존재하지 않을 텐데.’

공간의 틈에서 태어나는 생물체에게 굳이 부모를 찾자면 세상의 근원인 마나가 아닐까.

하지만 에우로델이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과거라고 했으니, 그때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나는 애써 복잡한 생각을 잊으려 애쓰며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예. 그래서 <세계의 율법>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도요. 그 자리를 메우려 신들이 애쓰는 것 같던데, 잘되어 가고 있나요?”

“너무나 어려운 일이야. 그건 태초부터 신으로 태어난 자들의 몫이 아니니. 하지만 그 자리를 어느정도 떠맡을 수 있는 존재가 있지.”

“예? 그런 존재가……잠깐, 설마…….”

렌의 목소리가 잔뜩 떨린다.

크게 뜬 금빛 눈에는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

“적합한 자가 아니라면 영혼이 영원히 그 자리에 묶여 버린다는걸 알고 계시잖아요!!! 어째서, 어째서 그런 일을 감내하시려는 건가요!? 가지 마세요!! 굳이 어머니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대신할 자가 생길 거예요!!”

참을 수 없는 절망에 잠식된 렌이 악을 지른다.

분노, 슬픔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에게까지 절절히 느껴진다.

‘이래서 에우로델이 그런 반응을 보인 건가.‘

이야기만 전해 들었다던 그가 연민을 내비칠 정도였다.

그만큼 렌과 어머니라는 자의 사이가 보통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나는 쓰게 웃으며 그들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아니, 지금은 오직 나만 할 수 있는 일이야. 그러니 내가 가진 드래곤 로드의 자리를 네게 물려줄 때가 온 것 같구나. 부디 계속 태어날 아이들을 잘 보살펴 주렴.”

“다른 아이같은 말 따윈-자, 잠깐…… 어머니?”

금빛 드래곤의 꼬리 끝이 툭, 소리와 함께 조각난다.

태산 같던 위압감은 흐려지고 몸은 점점 먼지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내게 허락된 시간은 많지 않구나……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야, 너무 슬퍼하지 마렴. 아마 우리는 다시 볼 날이 있을 거야. 그럼 그때까지 잘 지내고 있길.”

갑자기 찾아온 이별은 지나치게 짧았다.

넋이 나간 듯 렌은 멍한 얼굴로 허공만 바라본다.

미동조차 없는 모습은 망가진 인형과도 비슷했다.

그렇게 한참을 주저앉아 있던 그가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벌떡 일어선다.

“……이렇게 있을 수는 없어.“

그가 어디론가 가는 모습과 함께 시간이 정지한다.

이제 볼 건 다 봤다는 뜻인 듯했다.

나는 이제서야 방금까지의 내용을 곱씹었다.

‘<그녀>의 정체가 렌의 어머니라……수레바퀴가 보여 주려 했던 건 이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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