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95화
* * *
루이덴이 알려 준 출구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빠르게 질주하는 케르베로스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니 앞에는 거대한 강이 흐르고 있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땅을 가르는 저승의 강이었다.
“컹컹!!”
케르베로스는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자를 향해 다가간다.
등 위에서 내려오자, 장신의 남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꾸벅 인사를 한다.
“미리 이야기 들었습니다. 이 배를 이용해 건너가시면 됩니다.”
가래 끓는 목소리와 함께 비쩍 마른 손가락이 바로 옆을 가리킨다.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그곳에는 간신히 두 명이 올라갈 만큼 작은 나룻배가 보인다.
얼마나 낡았는지 발을 딛는 순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저걸? 영 부실해 보이는데.”
거대한 함선까지 바란건 아니라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수준이었다.
배에 가까이 다가가자 그 형편없는 외관이 더욱 잘 보인다.
나는 작게 혀를 차며 걸쳐져 있는 노를 들어 올렸다.
물길을 헤쳐나가기에는 너무나 비루해 보이는 몰골에 미간을 좁혔다.
“진작 땔감으로 써도 이상하지 않을 고물을 현역으로 사용하다니, 명계 사정도 많이 어려운가 보군.”
“……명계가 생기면서부터 함께했던 전통을 고…… 물…… 이라.”
으득, 거칠게 이빨 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욱하는 마음을 눌러 참는지 고개를 푹 숙이다 결국 긴 한숨을 내뱉는다.
“왜 영혼관리자께서 당신이 내뱉는 말들을 단단히 대비하고 있으라 일러주신 이유를 알겠군요…….”
그는 더 이상 이 자리에 머무르고 싶지 않은지 똥 씹은 얼굴로 휙 등을 돌린다.
터덜거리는 걸음은 점점 멀어져 주위에는 내 일행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검은 수면을 가까이에서 구경하고 있는 서채아에게 다가갔다.
찰랑거리는 소리가 더욱 잘 들려올 때쯤.
갑자기 눈앞에는 지지직, 소음과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복구 완료. 진 플레이어 위치를 찾아냅니다. 현재:<명계>]
[시스템이 관여할 수 없는 공간입니다. 시스템 메시지 외에 기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집 나갔던 시스템이 돌아왔다.
아직 명계에 있긴 해도 저승의 강 근처라면 외곽과 다름없으니 어느 정도 신호는 잡히는 모양이었다.
“서채아, 가지. 배에 올라타.”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정말 감사합니다. 꼼짝없이 육체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여기에 갇혀 있을 줄 알았어요.”
꾸벅 고개를 숙인 그녀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삐걱거리는 배에 탄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대충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스치듯 지나간 그녀의 얼굴에서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잠깐, 너 눈동자가…….”
재빨리 앉아 있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바짝 얼굴을 들이밀었다.
가까이에서 본 눈은 여전히 검은색이다.
하지만 그건 한쪽 눈동자의 사정일 뿐.
다른 오른쪽 눈에는 렌 특유의 금빛 기운이 사정없이 요동친다.
항상 잠깐씩 지나가던 것과는 다르게, 이제 완전히 눈을 뒤덮을 만큼 강했다.
“예?? 눈이요?”
본인이야 본인의 눈을 볼 수 없으니 그녀는 영문 모를 소리를 한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내 심각한 표정에 곧 수면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본다.
“……왜 이쪽 눈동자가 금색으로 변했죠?? 시력은 멀쩡한데…….”
“그걸 나에게 물어봤자 대답해 줄 수 있을 리가. 다만 네가 렌의 힘을 쓸 때면 가끔씩 그렇게 된다는 건 확실한데…….”
하지만 지금 영혼 상태인 그녀가 힘을 쓸 수 있을 리가.
눈을 찌푸리며 뜬금없이 생긴 현상에 고민하고 있는데, 더듬거리며 자신의 눈가를 매만지던 그녀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진다.
마치 누가 뒤통수를 망치로 가격하기라도 한 듯한 표정이었다.
“……설마…….”
“무언가 짐작가는 게 있나?”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확실하게 생각이 정리되면 알려 드릴게요.”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꾹 다문다.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무거웠다.
‘뭔가 있긴 있나 보군.’
조급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으니 잠시 그녀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마지막 남은 일행을 쳐다보았다.
“그나저나……너는 못 데려가겠는데.”
케르베로스의 한쪽 발만 한 작은 조각배에 구겨 넣을 수도 없는 노릇.
아쉬운 마음에 입맛만 다시고 있는데, 케르베로스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내 팔을 툭 친다.
“컹!!! 컹컹!!”
“그렇게 맹렬히 짖어 봤자 내게 개소리를 해석하는 능력은-”
[새로운 펫을 획득하셨습니다!]
[뽀삐, 밍키, 해피(마신수): 명계의 문지기였던 머리가 세 개 달린 지옥견. 케르베로스라는 이름보다 새로 얻은 이름들을 마음에 들어하는 듯하다.]
“……응?”
오랜만에 보는 펫 획득 메시지였다.
함께 보이는 설명을 보고 헛웃음을 삼키는데,
세 개의 머리가 대뜸 달려든다.
나를 침 범벅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섞인 행동이었다.
재빨리 뒷걸음을 치고 콧잔등을 한 번씩 때려주었다.
“이놈들 훈련시키려면 좀 걸리겠군.”
“헥헥헥!!!”
마냥 좋다는 듯 꼬리를 맹렬히 흔들던 케르베로스의 몸이 천천히 흐려진다.
펫들이 들어갈 수 있는 아공간으로 향하는 듯했다.
딱 한 번 가 본 아렐리아가 아무것도 없어 지루하다며 학을 떼던 그곳이었다.
“눈치는 빨라서 좋군. 명계를 벗어나자마자 꺼내 주마.”
“컹!!”
마지막 개 짖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케르베로스가 사라졌다.
이제는 정말 떠나야 할 때였다.
바로 서채아가 기다리고 있는 배에 올라타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노를 들어 휘젓기 시작했다.
삐걱-
낡은 배는 서서히 강을 향해 나아간다.
그 와중에 삐걱거리는 소음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가다가 부서지지는 않겠지 이 망할 조각배.”
[죽음의 강을 지나가는 배가 가라앉았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으니 걱정 말게.]
그동안 입 다물고 있던 에우로델이 말을 건네온다.
그리고는 방금 전 보았던 일에 대해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서채아는…… 생각이 많아 보이는군.’
대충 흘려들으며 옆을 흘깃 쳐다보았다.
잔뜩 수심에 잠긴 얼굴은 아직도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기에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하여튼, 아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네. 영혼관리자의 깐깐한 성격은 신들도 학을 뗄 정도일 텐데, 그렇게 순순히 자네의 요구를 들어주다니. 역시 따라오기를 잘했어.]
“구경을 즐기는건 좋다만, 원래의 목적을 잊고 있는 건 아니겠지?”
[당연하지. 렌 놈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내 영혼은 당장 소멸해도 좋아. 아, 그나저나 렌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저 여자 말이야. 그때 천왕을 죽이려 달려들었던 자의 영혼인 거지?]
“그렇다. 반토막 난 영혼이지만.”
[흐음…… 골치 아프게 되었어. 렌의 조종을 받고 있는 건 알았지만, 영혼의 외형까지 변할 정도면 상당한 힘을 받아들였다는 건데. 참 안타깝군.]
렌의 기운을 가진 게 왜 안타까운 일이란 말인가.
서채아는 미완성된 실험으로도 국내 랭킹 2위에 달할 정도의 실력자였다.
더욱 강해진 지금은 지구에 돌아간다면 최상위 월드랭킹도 넘볼 수 있을 터.
하지만 의아한 내 반응에도 에우로델은 정말로 불쌍하다는 듯 말을 이어 갔다.
[이미 렌과 상당 부분의 마력을 공유하니 그를 처치하게 되면 분명 죽어-]
“잠깐, 같이 죽는다고?”
[몰랐단 말인가? 그처럼 강력한 힘을 한순간에 얻었는데 부작용 같은 게 없을 리가. 그건 너무 돼지 같은 심보야.]
세상의 이치를 따지자면 맞는 말이지만, 죽음은 부작용치고는 많이 과했다.
심지어 서채아는 원해서 된 것도 아니었다.
불편해서 풀어헤쳐 놨던 성검을 다급히 붙잡았다.
기우뚱, 작은 나룻배가 기울어지기 직전쯤 되어서야 자세를 바로 했다.
이 난리통에도 서채아는 여전히 침착한 시선으로 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 역시 네 힘을 가져갔지만 그렇다고 네가 죽을때 같이 죽지는 않았다. 무언가 조건 같은 게 있는건가.”
나는 성검을 바짝 들이대고 속삭였다.
[으음. 그것까지 떠올리다니 꽤 꼼꼼하군. 그와 나는 <타락>한 상태였다는 건 비슷하지만, 다른 점이 딱 하나 있다네.]
“다른 점?”
[드래곤 하트지. 렌의 심장은 옛날 옛적에 썩어 문드러졌을 테니. 물론 그 타락한 영혼도.]
“……뭐? 드래곤의 힘의 원천은 심장이 아니던가. 정말로 심장이 망가졌다면 그토록 강할 리가…….”
[그 말도 맞다네. 하지만 나도 이유는 몰라. 거의 영원의 생을 살아온 드래곤이니 심장이 없어도 되는 방법쯤은 진작에 찾았을지도.]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의 번뜩이는 금빛 눈알이 떠오른다.
그건 이미 괴물의 눈이었다.
“확실히 그놈이라면 무슨 수를 썼다해도 이상하지 않아. 그렇다면 그 빌어먹을 드래곤하트를 원복시켜야 된다는 소린데…….”
대체 무슨 수로 썩어 가는 심장을 멀쩡하게 만들 수 있을까.
고위급 대마법사도, 성직자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보는 그때.
옆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조용히 말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자와 함께 죽어야한다는건 저도 잘 알고있는 사실이니.”
순간 말문이 막힐 정도로 지나치게 침착한 말투다.
태연자약한 태도에 내 미간이 잔뜩 찡그려졌다.
“……알고 있었다고?”
“이제서야 안 것에 가깝죠.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어요.”
그녀는 휘젓던 노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양손을 들어올려 내게 보여준다.
손바닥은 투명하게 변해 파리한 낯색까지 그대로 비쳐 보이고 있었다.
“보이시죠? 아마 저는 아마 명계 밖을 나가지는 못 하나 봐요. 그래도 그 답답한 곳에서 죽기만 기다리는 것보단 낫죠.”
쓴웃음이 입가에 맴돈다.
이제 보니 그 알 수 없는 담담함은 체념에서 나온 것이었다.
“마지막이 되기 전에 알려 드릴 게 있어요. 그간 제가 잠들어 있을 때 긴 꿈을 꿨는데, 그곳에서 렌의 과거를-”
“죽기는 누가 죽는단 말이냐.”
“……예??”
‘진작 털어놓았다면 좋았을 것을.’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영혼이 명계를 떠나지 못하게 걸려 있는 주술쯤은 얼마든지 회피할 방법이 있었으니.
다만 스킬이나 아티팩트를 사용할 수 없으니 조금은 편법이 필요했다.
우우웅-
몸 안의 마력을 모조리 마기로 변화시켰다.
주변에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천천히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나는 마왕 진. 계약자여, 나와 계약을 하지. 내 조건은 너의 영혼을 가지는 것.”
마족의 계약에서 영혼을 거는 건 흔해 빠진 일이다.
그리고 마족이 그걸 어떻게 사용할지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이었고.
“그러니, 너는 그저 살고 싶다고만 말하면 돼.”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무거운 침묵 속에는 그저 흐느끼는 울음소리만 섞여 있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