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94화
“……방금 전 봤던 나비인가.”
“예? 명계에 무슨 나비가…….”
내 중얼거림에 그는 당황하며 사방을 훑는다.
하지만 나에게만 보이는지 코 앞에 있는 나비를 찾지는 못했다.
나비는 하늘거리는 움직임으로 어디론가 향한다.
나도 모르게 루이덴을 내버려 두고 뒤를 쫓았다.
“대체 어떤 속셈입니까. 더 이상은 명계의 일에 방해하지 말고 돌아달라고 했을 텐데요. 이미 산 자가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명계를 지탱하는 힘이 옅어진단 말입니다.”
그는 종잇장마냥 얼굴을 구기며 엄중하게 경고한다.
하지만 저깟 놈의 말을 들을 나였다면, 이미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터.
코웃음을 치고 미로 같은 장소로 들어섰다.
그렇게 정신없이 몇 걸음 정도 걸었을까.
나비는 나란히 정렬되어 있던 유리관 중 하나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우우우우웅-
불투명한 유리관이 깨질듯 진동한다.
그리고 발끝부터 투명하게 변하며 안에 들어 있던 것을 비추기 시작했다.
“……사람?”
분명 사람의 형태다.
하지만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그 영혼이었다.
‘이 수많은 유리관 안에 영혼들이 들어 있는 건가. 이자는 이것들을 관리하는 역할이겠고.’
죽은 자들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만큼이나 많은 명계.
그런 곳에서 엄중히 숨겨 놓고 따로 모아 둔 영혼들이 있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잠자코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사람을 천천히 지켜보았다.
이윽고 이목구비까지 확인이 가능할 만큼 유리관이 투명하게 변할 때쯤.
나는 그 안에서 오랫동안 그려왔던 그녀를 발견해 내고 말았다.
쿠우웅-
제어할 수 없는 마력이 소용돌이쳤다.
온몸이 불에 타들어갈듯 뜨겁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고통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눈앞이 흐려진다.
모든 것이 스러져 가는 환상처럼 아득한 가운데.
아이러니하게도 내내 맡아 왔던 꽃향기만 코끝에 맴돌았다.
“아리아…….”
착각이 아니었다.
전에 렌이 만들어 냈던 하찮은 환상도 아니었다.
투명한 유리 밖으로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 비춰진다.
그 속의 잠자듯 평온한 아리아와는 정 반대였다.
“제길, 어째서 조각난 영혼이 깨어나려는 거지? 왕의 길을 걷는 자여,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이건 명백히 명계의 규율을 어기는 행동입니다!!”
다급하게 다가온 루이덴이 정적을 깨뜨린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꿈틀대는 마력에 그는 크게 움찔거렸다.
“이 여자는 내가 아는 자다. 하지만 오래전에 죽었어. 그런데…… 분명 윤회에 들었어도 진작 들었어야 할 아리아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다시 만나는 것 따위는 포기했었다.
이미 죽은 자에 대해 미련을 가지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잘 알기에, 아리아 역시 수많은 죽음과 같이 취급했었다.
그러니 나와 그녀는 절대 만나서는 안 되었다.
특히나 이런 식의 개같은 재회 따위는 더더욱.
“우선 진정하시죠. 신력으로 제작된 관이지만 당신의 힘이라면 부술 수도 있단 말입니다! 특히나 과거의 연이 닿은 자의 손길이라면 더욱 쉬운 일일 테고요!!”
“대답부터.”
“……빌어먹을!! 소문대로 정말 고집불통이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졌습니다. 여기는 조각난 영혼들이 나머지 조각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곳입니다.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로 윤회에 들었다간, 운명조차 부여받지 못하니까. 그리고…… 당신의 말 중에는 큰 어폐가 있습니다.”
녀석은 내가 손을 딛고 있는 유리관 쪽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밑에 작게 쓰여 있는 명패를 가리켰다.
나는 그의 쭉 뻗은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서채아.
1999년생.
“이 영혼은 오래전에 죽은 자의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살아 있죠.”
눈을 크게 뜨고 보아도 각인된 글씨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다시금 고개를 올려 쳐다보았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찬란했던 백금발은 칠흑처럼 어둡게 변해 있었다.
마치 원래부터 서채아였다는 것처럼.
“……분명 아리아였는데.”
지독한 악몽을 꾼 기분이다.
환상 마법의 종류였을까.
하지만 아직도 풍겨 나오는 영혼의 냄새는 확실히 아리아의 것이었다.
콰직-
요동치는 혼란 때문에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손바닥이 닿아 있던 유리벽은 이겨내지 못하고 균열을 만들어 간다.
그걸 보고 있던 루이덴은 파리해진 낯빛으로 머리를 짚었다.
“아아…… 제발 좀 조심해 달라 그토록 말씀드렸는데…….”
와장창!!!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천천히 안에 들어있던 신체가 바닥으로 쓰러진다.
뜯어보듯 그녀를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생기 없는 단정한 얼굴은 내가 익히 알고 서채아의 모습 그대로이다.
복잡미묘해 보이는 표정을 읽은 루이덴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흐음. 이자에게서 다른 얼굴을 비춰 보았습니까?”
“맞다. 하지만 순식간에 사라졌지.”
“윤회를 겪으면서 살아 왔던 인생 중 하나였겠군요. 명계에서는 가끔 있는 일입니다. 인연이 깊었던 자들이 서로 알아보는 일쯤은.”
그는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뭐가 이상하냐는 듯, 평이한 말투에 주체할 수 없던 감정들이 침착하게 가라앉는다.
‘그래, 서채아가 과거 아리아였다는 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이성이 냉철해진다.
오히려 이제와서 깨닫게 되는 점이 있었다.
이미 나는 아리아와의 인연을 잊어가는 중이라는 것을.
‘역시 영원한 건 없나.’
몇백 년쯤 지나고 알게 된 사실 치고는 답이 간단했다.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미동도 없던 서채아의 손끝이 움찔거린다.
가늘게 떨리던 속눈썹은 서서히 치켜 올라가고, 이윽고 드러난 투명한 눈동자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 조각난 영혼이 눈을 뜨다니……? 당신들, 생각보다 질긴 인연의 고리로 묶여 있었나 보군요.”
“질겼지, 삼백여 년 동안 떠올릴 정도로.”
피식 웃으며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그녀를 지켜보았다.
곧 영원히 닫혀 있을 것 같았던 입이 조그맣게 열리기 시작했다.
“……진 님?”
“나를 알아볼 수는 있나 보군.”
“예……? 그나저나 여기는 어디……으윽-”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그녀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낸다.
창백한 얼굴로 한참을 수그리고 있던 서채아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절대, 절대로 진 님을 적대하려 하지 않았어요!! 이상하게도 몸이 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더니 천왕을-!!”
“다 안다. 렌 그 녀석이 조종한 거겠지.”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녀는 척 봐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신나게 서채아를 데려가더니, 기어코 불안정했던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던 모양이었다.
“아마도 실험은 네 영혼의 일부분이 여기에 있는 것과 연관되어 있겠고.”
“……왕관에 손댈 수 있는 건 그 종족이나 인간밖에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인간의 몸이 필요했다고 하더군요.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는 제 영혼을 반으로 갈라냈어요.”
감정이 있는 쪽은 쓸모가 없으니 도려낸 것에 가깝겠군.
지금쯤 서채아는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차가운 모습으로 변했을 것이다.
그리고 렌이 내리는 명령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인형이 되었을 테고.
“저…… 진 님.”
“뭐지?”
서채아는 나를 불러놓고 한참을 우물쭈물거린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결국 입술을 질끈 깨물며 쥐어 짜내는 목소리로 작게 웅얼거린다.
“……저를 도와주세요. 원래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요. 물론 이런 부탁 싫어하시는 것도, 무시하시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도 알지만-”
“그러지.”
“분명 제가 도움이…… 예??”
원하는 것을 얻어 냈지만 서채아는 멍한 얼굴이다.
딱 봐도 본인이 잘못 들은 건가, 하는 표정이었다.
“너를 돕겠다고.”
피식 웃으며 재차 대답해 주었다.
그제서야 고장난 듯 멈춰 있던 그녀가 움찔거린다.
“……고맙습니다…….”
아직도 얼떨떨한 목소리였다.
긴장이 풀린 몸은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는다.
“솔직히 설득해도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작게 중얼거리는 그녀를 보니 추스리는데 시간이 조금 걸릴 듯했다.
나는 시선을 우리를 지켜보던 루이덴에게 돌렸다.
그는 잠자코 있던 게 신기해 보일 정도로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뾰로통한 표정이었다.
“영혼을 함부로 명계에서 데려가면 안 된다라고 해도 듣지 않으시겠죠.”
“잘 아는군.”
“……하아…….”
세상이 무너질 듯한 한숨이 쏟아진다.
그는 결국 느릿한 손짓으로 품 안에서 긴 종이뭉치를 꺼낸다.
무언가 빼곡히 적혀 있는 명단으로 보였다.
“서채아라, 서채아…… 여기 있군요.”
그는 대뜸 종이를 거세게 문지른다.
그러자 방금 전 서채아가 있던 유리관에 적힌 명패가 스르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 뭔가 속박되었던 게 풀리는 느낌이…….”
휴식을 취하던 그녀가 눈을 크게 뜨며 손을 쥐락펴락한다.
루이덴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를 다시 집어넣었다.
“데려가십시오. 이번 한 번만 봐드리겠습니다. 원래는 명계의 법칙상 불가능하다는 것, 잘 아시겠죠?”
확실히 명계에서 영혼을 구해냈다는 이야기는 전설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생각보다 협조가 잘 되는데.”
“……원하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명계를 뒤집어 엎어 놓으실 게 뻔하니까요. 수백 년은 꼼짝없이 매달려야 할 혼란보다는 낫습니다.”
정확한 판단이었다.
그는 명계에서 빠져나가는 방법과 출구로 향하는 비밀 통로도 일러주었다.
더 이상은 사고 치지 말고 제발 좀 나가달라는 뜻이었다.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 서채아를 일으켜 세웠다.
“이제 출발…… 음?”
팔 쪽에서 뜨끈한 체온이 느껴진다.
어느새 다가온 케르베로스였다.
세 개의 머리에 달린 눈들이 나를 절실하게 쳐다본다.
“그것도 데려가십시오. 이미 당신을 주인을 받아들인 듯하니.”
말하기도 전에 루이덴이 질린다는 듯 손사래를 친다.
나는 작게 웃으며 서채아와 함께 케르베로스 등에 올라탔다.
‘마계 태생이라고 했으니 마계에 데려다 놓으면 좋겠군.’
감히 마왕성을 털 자는 없다지만 자주 들리지도 않는지라, 집 지키는 개가 하나쯤 필요하다 생각하던 차였다.
마왕성과 그곳의 문지기 지옥견이라.
생각보다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하며 비밀 통로로 향하는 입구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