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93화
“컹!!!!”
가운데 머리인 뽀삐가 기분 좋은 듯 우렁찬 소리를 낸다.
그러자 나머지 양 쪽의 머리는 시무룩하게 낑낑대기 시작했다.
“밍키, 해피. 물론 너희에게도 기대하고 있지.”
차례로 쓰다듬어 주자 그제서야 세 머리들이 히죽 웃는다.
그리고 무기를 꼬나 쥐고 있는 명계의 경비병들을 향해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렸다.
“……뽀삐? 밍키에 해피? 설마 지옥견에 이름을 붙인 건가……?”
“아니, 다 좋은데 이름이 왜 다…….”
우리 케르베로스의 이름이 뭐 어떻단 말인가.
예부터 붙여 오던 한국의 개 이름들이거늘.
나는 전통도 모르는 놈들을 단죄하기 위해 케르베로스의 귓가에 속삭였다.
“물어.”
컹컹컹컹!!!!!!
“아아악!!!!”
“대장님을 불러와!!”
케르베로스가 한번 쿵, 발길질을 할 때마다 경비병 서너 명이 나가떨어진다.
흙먼지가 가득한 공간에는 짐승 짖는 소리와 곡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개판이었다.
이미 진작에 케르베로스의 등 뒤에서 훌쩍 뛰어내린 탓에 그 꼴들이 더욱 잘 보였다.
‘가관이군.’
자주 하던대로 팝콘이라도 꺼내 씹으려 인벤토리를 열었다.
하지만 지직거리는 소음만 들릴 뿐, 여전히 시스템은 묵묵부답이다.
대체 언제까지 이럴 작정인지.
답도 없는 상황에 눈매를 잔뜩 좁혔다.
“이게 무슨 난리…… 아니, 살아 있는 인간!??”
또다른 손님에, 똑같은 대사인가.
방금 전 상황이 다시금 반복되려 했다.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대장을 부르짖은 효과가 있었는지 조금 더 힘이 있어 보이는 자가 등장했다는 것 정도의 차이밖에 없었다.
“크으윽!!!!”
“더 이상의 침입은 안돼!! 막아내라!!!”
케르베로스의 거친 몸부림에 조금 버티나 싶더니만 역시나 매한가지.
나는 죽지도 못하는 영혼 경비병들을 지르밟으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크킁? 컹컹!!”
슬렁슬렁 걷는 와중.
갑작스레 케르베로스가 땅바닥에 코를 처박더니 움찔거린다.
무언가 원하는걸 찾은 모양이었다.
재빨리 등에 올라타자 발길이 빨라진다.
몇개의 산을 넘자 어느새 그럴싸한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앞에는 방금보다 더 무거운 갑주를 두른 망자들도 있었다.
“……케르베로스? 입구나 지키고 있어야할 문지기가 어째서 여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도 잠깐이었다.
케르베로스는 몸을 살짝 낮추더니 그대로 문으로 뛰어들었다.
콰앙!!!!!!
“커억!!!!”
“제기랄, 비상이다!!!”
황소마냥 돌진하는 우리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느긋하게 케르베로스에 앉아 건물 안을 헤집어 놓는 모습을 구경했다.
“대체 어딜 가려고 이러는 거냐.”
“컹컹!!!!”
세개의 머리 중 가장 똑똑해 보이는 뽀삐가 내 말에 대답하듯 짖어댄다.
마치 믿고 맡기라는 듯 자신만만한 울음소리였다.
“오냐. 나도 어차피 여기가 어딘지 모르니 하고 싶은대로 마음껏 해봐.”
낮게 웃으며 더욱 깊숙한 내부로 향하는 케르베로스를 지켜보았다.
경비병들은 이미 포기했는지 그저 우리 뒤를 슬금거리며 쫓아올 뿐, 크게 제재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아니. 못한다는 표현에 가까운 건가.
“……슬슬 금지구역에 도달할 텐데. 하…… 우린 죽었다.”
“어째서 이 꼴이 되도록 상급자들은 나타나지도 않지!??”
“신계에 난리가 났다나 봐. 웬만한 분들은 거의 다 그쪽으로 가셨어.”
수군대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타이밍을 잘 맞춰온 모양이다.
하기야, 들이닥친 내가 할 말은 아니라지만 생각보다 너무 허술한 경계이긴 했다.
“컹컹!!!”
한참을 킁킁거리며 달리던 케르베로스가 어느 한 지점에서 멈춰 선다.
통로 양 옆에 나열해 있는 문들이야 다 비슷하게 생겼다지만, 유난히 낡고 초라해 보이는 철문이었다.
심지어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작은 통로에 있기에 목적 없이 지나치다가는 신경 쓰지도 않을 만한 구석에 존재했다.
하지만 손때가 묻어 잔뜩 닳아 있는 손잡이는 누군가 매일같이 드나드는 중요한 장소임을 짐작케 한다
쿵!!쿵!!!!
“크르르르…….”
당장이라도 들어가고 싶어 죽겠다는 듯 케르베로스가 철문을 연신 두드린다.
하지만 이제껏 단단한 문들을 종잇장마냥 격파하던 몸통 박치기도 소용없었다.
의아한 마음에 가까이 다가갔다.
손을 대고 살펴보니 그저 녹슬어 보였던 철문의 재질이 제법 익숙하다.
‘고작 문 따위를 아만다티움으로 만들었다고?’
그 와중에 은은하게 느껴지는 묘한 기운.
질리도록 맛보았던 신력이었다.
흔해 빠진 마법도 아니고, 뜬금없이 등장한 신력 결계에 진한 미소가 지어진다.
여기는 진짜였다.
“침입자가 왜 저곳에서 머뭇거리지?”
“별로 중요해 보이는 곳도 아닌 것 같은데…… 그나마 금지 구역이 코앞인데 바로 멈춰서 다행인 건가?”
멀찍이 떨어진 채 우리를 감시하는 건지, 구경하는 건지도 모를 경비병들의 중얼거림이 들려온다.
잔뜩 의심스러워하는 말에는 한치의 경계심도 담겨있지 않았다.
무리에 섞여 있는 대장격으로 보이는 자도 마찬가지.
그들의 대화에 점점 확신이 생겨온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겨라, 맞는 말이지.‘
나는 연신 철문을 할퀴는 케르베로스를 옆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성검을 꺼내 상당량의 마력을 둘러내었다.
그제서야 경비병들은 흠칫 놀라며 무기를 재빨리 꼬나 쥔다.
늦어도 한참은 늦은 처사였다.
콰아앙!!!!!!
길게 잘려진 아만다티움 조각 사이로 푸르스름한 빛이 드리운다.
그와 동시에 뭐 마려운 개마냥 끙끙대던 케르베로스가 제일 먼저 뛰쳐 들어갔다.
“컹컹컹컹!!! 으르르르……!!!!”
재빨리 뒤를 쫓아 안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넓은 내부에 감탄하기도 전.
거침없이 질주하던 케르베로스는 대뜸 어느 한 군데에서 멈춰 버린다.
몸까지 잔뜩 낮추고 경계하는 모양새였다.
심지어 여섯 쌍의 눈알은 분노와 살기로 일그러져 있었다.
“……밖이 좀 소란스럽다 싶더니만. 달갑지 않은 손님이 납셨군요. 아니, 정확히는 손님들인가.”
무언가 들어 있는 듯한 거대한 유리관들이 잔뜩 펼쳐진 가운데.
그 안에서 푸른 머리카락의 남자가 표정을 구기며 등장한다.
우아한 걸음걸이와 귀족적인 외모가 돋보이는 자였다.
“헉!!!! 루이덴님!!!??”
“영혼의 회랑을 지키는 경비대장입니까. 고작 이런 일 하나 막지 못하다니…….”
쏟아지는 질책에 경비대장이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푹 숙인다.
잇따라 들어온 가뜩이나 죽은 자 답게 창백했던 얼굴은 더더욱 희게 질려간다.
말없이 그들과 우리를 번갈아 쳐다보던 그는 결국 긴 한숨을 내뱉었다.
“……되었습니다. 이만 물러가세요. 주변에는 아무도 올 수 없게 경계하시고요. 고작 침입자 둘을 막아 내지는 못해도, 이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날카로운 축객령에 경비대장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하지만 이어진 말에 다시금 그는 면목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문책은 나중에 정식으로 하겠습니다.”
“……예. 당연한 말씀입니다.”
외관만큼이나 철두철미한 성격인가.
우르르 빠져나가는 경비병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으르르르…….”
여전히 송곳니를 드러내며 잔뜩 열 받은 상태인 케르베로스에게 다가갔다.
조금 진정하라고 손으로 살살 쓸어주자 푸릉, 콧김을 한번 내뿜더니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래도 당장 눈 앞의 존재를 물어뜯고 싶다는 눈빛은 여전했다.
“아서라. 네가 상대할 적은 아니니까.”
루이덴이라는 자는 굳이 느끼려 하지 않아도 온몸에서 위압감이 넘쳐흐른다.
자신의 힘에서 나오는 여유였다.
“끼잉…….”
케르베로스는 본능적으로 알긴 알아도, 치밀어오는 화는 어쩔 수 없는듯 씨근덕거린다.
세 머리는 결국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케르베로스가 남의 말을 듣다니 신기하군요. 저조차도 다루지 못해 입구나 지키라며 묶어놓은 지 벌써 몇천 년이나 되었거늘.”
제대로 말을 안 듣는다고 그토록 오랜 시간을 내버려둔다?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아무래도 명계에는 동물 보호법 따위는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감정하나 실리지 않는 무감한 눈빛을 바라보며, 한껏 입매를 비틀었다.
“한낱 말 못하는 짐승이어도 진정한 주인은 알아보는 법이 아니겠나. 특히나 산책 한번 시키지 않고 내팽개친 자라면 말할 것도 없고.”
“하……? 지옥에서 올라왔다던 말투에, 강대한 힘이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문인데.”
뜬금없이 그는 매끄러운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곧 작게 탄식했다.
“지금까지 혹시나 했는데…… 그대는 왕의 길을 걷는 자군요? 그렇다면 케르베로스가 이토록 따르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애초에 저것은 마신이 억지로 떠넘겼던 마계의 마수였으니까요. 정확히는 마신수에 가깝지만요.”
케르베로스의 출신이 마계였다니.
험상궂은 외관이 이상하게 시골 똥개마냥 구수하게 느껴진다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여기서 또 마신의 이름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점점 어이가 없어진다.
그놈의 마신은 할 일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건가.
대체 헛짓거리를 얼마나 하고 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건지.
온갖 차원계를 다닐 때마다 들려오는 이야기 중에 좋은 소리는 못 들어본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데 당신이 죽었다는 소리는 들은 적 없습니다. 하지만……살아있는 자가 명계에 도달할 수 있을 리가…….”
푸른 눈동자가 혼란으로 크게 흔들린다.
명계의 권력자 중 하나로서 자존심이 상한 기색도 역력하다.
“그래서 날 죽여 어울리는 존재로 만들기라도 하겠다 이건가.”
“원래라면 규칙상 그리하였어야 맞습니다만…….”
높게 치켜 올라간 눈이 번뜩인다.
그의 주변에 감돌던 힘은 서서히 일렁이기 시작했다.
무언가 사단이 날 기세였다.
나 역시 성검을 굳게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는 곧 온 세상이 떠나갈 듯 긴 한숨을 쉬어대며 고개를 작게 흔들었다.
“……저는 그 정도로 멍청한 자가 아닙니다. 명계를 난장판으로 만든 것에 대해서도……묻지 않겠습니다.”
텅 빈 동공이 날아가 버린 문짝과 부서진 조각들이 가득한 복도로 향한다.
당장이라도 또르르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러니……더이상 사고 치지 말고 돌아가 주십시오.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루이덴은 꼿꼿한 허리까지 굽혀 가며 말했다.
나야 어쩌다 휘말리게 된 신세다보니, 출구만 알려 준다면 흔쾌히 나가 줄 의사는 충분했다.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고 알겠다 대답하려는 찰나였다.
어디선가 또다시 그리운 향기가 은은하게 퍼져 나온다.
자연스레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무언가 팔랑거리는 물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