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92화
바닥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깊이 뚫린 구멍.
어둠만이 가득한 곳으로 내 몸은 하염없이 떨어진다.
마법도, 아티팩트도 소용없었다.
마나조차 느껴지지 않는 거대한 지하 통로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팔짱을 낀 채 주위를 살피는 것뿐이었다.
‘오늘 진짜 날을 잡았구나.’
하도 황당한 일이 연달아 터지니 이제는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렇게 시간조차 느껴지지 않는 낙하의 공간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을쯤.
슬슬 지겨워져 잘 보지 않던 책이라도 꺼내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백 년 전쯤인가. 처박아 두었던 책이 몇 권 있었을 텐데…… 인벤토리.”
지지직-
“……음?”
대체 뭐지.
당연히 인벤토리가 보여야 할 허공에 작은 스파크가 튄다.
다시금 불러보았지만 여전히 시스템은 묵묵무답이었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황당함에 자연스럽게 욕지거리가 내뱉어졌다.
“제기랄…… 이건 또 무슨 신종 X랄이야.”
방금까지 잘 열리던 인벤토리다.
문제가 있다면 단 하나.
이곳에 떨어지기 직전 보였던 시스템 메시지였다.
‘시스템의 관할에서 벗어났다고 했었나.’
이제야 아티팩트조차 사용할 수 없던 이유를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허리춤에 매어 있던 성검을 꽉 잡았다.
그러자 내내 가만히 있던 검이 작게 진동을 울려왔다.
“……에우로델.”
[흐음? 무슨 일이지?]
그는 천연덕스럽게 대꾸해온다.
다행히 영혼까지는 시스템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인 듯했다.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밖의 상황이 전혀 보이지 않아. 그저 일시적인 현상인 줄 알았는데…… 대체 어디에 있는 건가?]
궁금증을 가득 담은 질문이 던져진다.
나는 간단하게 방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했다.
내가 소멸시킨 신의 이야기를 듣고 폭소하던 그는, 시스템의 관할에서 벗어났다는 메시지를 알려 주자마자 작게 침음을 흘린다.
[으음…… 설마? 아니겠지……]
“너, 뭔가 알고 있군.”
[그…… 시스템, 그러니까 <그녀>가 관할하지 못하는 곳은 몇 군데 되지 않는다네.]
“짐작 가는 장소는?”
[어디론가 계속 떨어지고 있다고 했지? 그렇다면 지하로 향하는 중일 터. 내 예상으로 도착지는……명계일걸세.]
그놈의 명계 소리를 또 들을 줄이야.
왠지 모르게 방금 전 소멸시킨 신의 말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대 더 패고 죽일걸 그랬나.”
[……아마도 그 신의 탓은 아닐걸.]
에우로델이 소심하게 반박을 한다.
명백히 다른 할 말이 있는 말투였다.
“생각보다 아는 게 많은 것 같은데.”
[이래 뵈도 드래곤 중에서도 제일 오래 산 고룡일걸. 물론 그 괴물같은 렌놈은 제외하고 말이야. 큼큼, 어쨌든간에. 운명의 수레바퀴라고 했나? 그것이라면 나도 몇 번 들은 적이 있어. 신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물건 자체가 담고 있는 의미가 워낙 대단한 탓에 <그녀>조차 함부로 관여할 수 없다고 했었지.]
그는 운명의 수레바퀴에 대해 한참을 떠들기 시작한다.
긴 이야기였지만 대충 얼마나 말도 안되는 물건인지, 담긴 힘은 신조차 제대로 제어할 수 없다는 둥의 내용들이었다.
‘대충 보상이랍시고 굴러다니는 신물 하나 던져 준 줄 알았는데.’
나름대로 신계에서 성의표시는 한 모양이었다.
그래 봤자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망가져서, 나를 이 꼴로 만들어 버린 빌어먹을 물건이 되었지만.
[하여튼 명계라는 말도 안 되는 장소로 자네를 이동시킬 만한 능력 정도는 되는 훌륭한 신물이라는 말일세. 그대에게는 득이 되었으면 되었지, 나쁠 일은 없을 거야.]
“……죽지도 않았는데 명계로 보내는 물건이어도?”
[크흠, 큼!! 그래, 망가져서 비틀린 운명의 수레바퀴로 변했다고 했나.]
멋쩍은 듯 그는 한참을 헛기침을 한다.
그러더니 곧 진중하게 다시금 말을 내뱉었다.
[비틀렸어도 운명은 운명이야. 분명 자네가 가야하는 곳이니 안내하는 것일 터. 그대는 그저 편안히 따라가기만 하면 되네.]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하기야, 능력을 잃었다면 ‘비틀린 운명의 수레바퀴’가 아니라 ‘망가진 고물덩어리‘로 표기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겠지.
설명에는 고물상에 판다면 꽤 좋은 값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정도의 표기도 되어 있을 테고.
아무리 막 나가는 시스템이어도 결코 그 내용에 거짓은 없었기에 믿을 만했다.
“우선 따라는 가겠다만, 편할지는 모르겠군. 이미 내 운명은 단단히 꼬일대로 꼬여 버린 듯해서.”
쓰게 웃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시선은 저 끝에 희미하게 보이는 점을 향한 채였다.
“저쪽이 출구인가.”
손톱만큼 작았던 점은 점점 크기를 키우며 다가온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추락하던 속도도 무슨 연유인지 아주 조금이나마 느려졌다.
잠자코 기다리니 도착지에 가까워졌는지, 밑에 깔린 돌바닥의 무늬까지 선명히 보인다.
나는 허공에서 조금씩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는 성검을 그대로 벽에 꽂아 넣었다.
곧 소름 끼치는 굉음과 함께 바위가 두부 자르듯이 잘려 나갔다.
콰카카카카칵!!!!!!!
[큭!! 전부터 생각했는데, 튼튼한 검이랍시고 너무 막 쓰는 거 아닌가??]
“더 막 쓰이기 싫으면 이제 좀 닥쳐는 게 좋을걸.”
자연스레 떨어지는 속력이 줄어든다.
나는 투덜거리는 에우로델을 가볍게 무시한 채 바닥으로 착지했다.
타앗-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칙칙한 분위기가 물씬 감도는 가운데, 사방은 막힌 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뚫려 있으리라 짐작되는 곳은 단 한군데였다.
‘……예상이 맞았나.’
한눈에도 담기 힘들만큼 거대한 문.
누가 봐도 나는 명계의 입구요, 외치는듯 망자를 조각한 장식들이 주변에 즐비하다.
하나같이 끔찍하고 잔혹한 모양새였다.
쿠쿠쿵-
가까이 다가가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더 강하게 당겨 보았지만, 여전히 소용없었다.
‘아무리 무거울지라도 산도 들어올리는 힘으로 이깟 문 따위 열지 못할 리가 없는데.‘
마치 내 방문을 거부하는 느낌이다.
미간을 팍 찡그린 채 문만 부여잡고 있는데, 갑자기 손 끝에서 노란색의 액체같은 것이 꿀렁이며 튀어나온다.
분명 운명의 수레바퀴를 흡수할 때 보았던 기운이었다.
잠시 주위를 두드리듯 맴돌던 그것은 닫힌 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끼이익-
온 힘을 주어도 열리지 않던 문이 거짓말처럼 스르르 열린다.
동시에 내 몸을 빠져나갔던 금빛 힘도 돌아왔다.
“……운명이 나를 안내한다라.”
방금 전 에우로델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잠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통로를 쳐다보았다.
순간, 안에서 스산한 바람이 훅하고 몰아친다.
그제서야 나는 멈췄던 걸음을 다시금 옮겼다.
쾅!!
들어서자마자 등 뒤의 문이 거칠게 닫힌다.
이제 나갈 생각 따위는 하지 말라는건가.
피식 웃으며 점점 앞으로 나아갔다.
그럴수록 죽음의 냄새가 더욱 짙게 맡아졌지만, 이상하게도 그 안에는 익숙한 향기 또한 느껴진다.
‘이건 아리아의…….’
잊고 있던 옛 기억이 떠오른다.
찬란한 백금발과 일렁이는 촛불을 닮은 주홍빛 눈동자도.
설마 명계에 아직 그녀의 영혼이 있을까.
환생하지 않았다면 만날 수도 있을 터.
나도 모르게 그 향기를 쫓아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곧 선택에 기로에 도달하고 말았다.
‘세 갈래 길인가.’
앞으로 향하는 입구는 총 세 개.
그간 쌓아 온 개고생 데이터로 보건데, 제대로 된 길로 향하지 않는다면 귀찮은 일이 생길 게 빤한 느낌이 든다.
이런 건 딱 질색인데.
잠시 고민하는 찰나.
갑자기 희미하게 반짝이는 빛이 어디선가 나타난다.
자세히 보니 이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나비?”
그것은 마치 나를 기다렸던 것마냥 서서히 앞으로 향한다.
따라오라는 뜻이었다.
어차피 다른 방도도 없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나비를 쫓았다.
그렇게 한참을 걸으니 정면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크르르…….”
벽을 돌자마자 마지막 관문을 지키는 집채만 한 덩치의 수호자가 나를 보고 경계한다.
나름대로 제대로 된 길을 찾은 모양이었다.
두꺼운 사슬에 묶여 있는 존재는 모를 수가 없을 만큼 유명했으니.
바로 삼두견, 케르베로스.
명계의 입구를 지키는 지옥의 개였다.
“크엉!!!!”
가까이 다가서자마자 입가에서는 침이 줄줄 흐른다.
핏발선 눈에서는 누구라도 물어뜯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느껴졌다.
심약한 자는 보는 즉시 기절할 정도로 흉악한 인상이었다.
하지만 온몸이 근육으로 꿈틀거리는 케르베로스도 내 눈에는 시골 똥개나 다름없었다.
“일단 미친개는…… 좀 맞아야겠지?”
성검을 휘휘 돌리며 성큼 걸음을 옮겼다.
격렬하게 짖어대던 세개의 머리는 더욱 이빨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의 몸부림에 불과했다.
움찔-
설마 겁을 먹은 건가.
손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워지니 케르베로스가 뒷걸음질친다.
그러더니 몸을 낮추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낑낑거린다.
명백히 내 눈치를 보고 있는 행동이었다.
“끄응…… 끼잉…….”
역시 동물의 감각이란 놀라운 법이다.
제법 기특한 마음에 다가가 콧잔등에 손을 얹었다.
케르베로스는 벌러덩 배까지 까뒤집으며 완벽한 항복의 의사를 보내온다.
그 모습에 몇 대씩 얻어터져도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살아가는 박민호가 떠오른다.
‘……그 개만도 못한 놈. 사고 치고 있진 않으려나.’
급하게 떠나온 감이 없잖아 있는지라, 내심 찜찜함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마지막에 본 눈빛은 나름대로 믿을 만했다.
정 엇나간다 싶으면 잡아 줄 이도윤과 강준하도 있었고.
할짝.
지구에 대해 생각하는 와중, 팔에 끈적한 침이 느껴진다.
작게 고개를 흔들고 다시금 케르베로스를 한 차례 쓰다듬었다.
“그래, 다시 돌아가려면 빨리 할 일을 마쳐야겠지.”
그렇다면 우선 명계의 일부터.
나는 케르베로스의 등 뒤에 훌쩍 올라타고 안으로 들어섰다.
단단하게 묶여 있던 사슬과 목줄은 바닥에 내팽겨채진 상태였다.
* * *
도착한 명계는 생각보다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곳이었다.
어두침침하고 고요한 느낌도 나름대로 그 맛이 있다고 느낄 정도.
다만, 지금 와서는 그 침착한 분위기도 깨져버렸지만.
“컹!!!”
“케, 케르베로스!??? 입구를 지킬 지옥견이 왜 여기에!!!”
“잠깐, 그 위에는 사람!? 비상이다!!! 살아 있는 인간이야!!!”
오냐, 산 사람이다.
나는 슬쩍 웃으며 미쳐 날뛰는 케르베로스의 목덜미를 두드렸다.
“워워. 착하지, 뽀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