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91화
“……이대로는 못 보내.”
음산하게 중얼거리는 말에는 집착이 뚝뚝 묻어난다.
못 보내기는 X발.
인상을 와락 구긴 채 물건을 빼앗기 위해 힘을 주었지만, 대체 어디서 나온 기력인지 꿈쩍도 않는다.
심지어 그의 주위에는 서서히 신력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잠깐, 자네…… 그 힘은……!?”
“제기랄!!! 저 미친 자식!!!”
크게 경악하는 소리들이 고막을 울린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었다.
재빨리 수레바퀴에서 손을 떼려는 순간.
스산한 안광이 금빛 기운이 어른거리더니 와그작, 소리가 난다.
주변의 공간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오류! 알 수 없는 힘이 <검은 탑>에 개입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다급하게 떠오른다.
동시에 내 몸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화아악-!!
새하얀 빛이 앞을 가로막는다.
차원을 이동할 때 흔히 보던 현상이었다.
‘……어쩐지 좀 순탄하게 흘러가나 싶었다.’
오히려 이쯤 되니 지극히 이성이 되찾아진다.
항상 일이 잘 풀린다 싶으면 뜬금없이 개같은 일이 생기기 마련이었으니까.
특히나 이런 사건의 원흉은 항상 한 놈이었다.
‘마지막에 본 금빛 마력. 분명 렌 놈이 준 것이겠지.’
미지의 적은 위협적이지만, 이미 아는 상대는 그렇지 않다.
그게 남의 힘을 빌릴 정도로 궁지에 몰린 신이라면 더욱 안심할 수준이었고.
다만 궁금한 건 대체 꿍꿍이가 뭐냐는 것.
나는 온갖 생각을 하며 잠자코 감각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떨그럭-
손에 쥐고 있던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청각을 시작으로 서서히 흐렸던 눈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뭐 얼마나 대단한 곳으로 데려가나 했더니만.”
세상이 회색빛으로 가득하다.
온 대지에서 죽음과 멸망의 냄새가 물씬 맡아진다.
폐허라는 말도 이 장소에게는 칭찬이리라.
“……쿨럭. 네놈 따위가 함부로 지껄일 곳이 아니야.”
흙먼지가 잔뜩 묻은 채 바닥을 나뒹굴던 놈이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그와 함께 연신 오류라는 글씨를 띄워대던 시스템 메시지가 지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바뀌었다.
[오류! 탑의 플레이어가 비정상적인 장소에 도착하였습니다.]
[다음 층인 <영원한 낙원(효과:운명의 수레바퀴)>에 도달하지 못했으므로, 해당 차원인 <실패한 세계>가 94층으로 교체됩니다.]
시스템도 예상치 못한 일이라 이건가.
그 와중에 94층으로 바뀐걸 보니 아직은 <검은 탑>에 있는걸로 쳐 주는 모양이었다.
아마도 억지로 만들어 낸 결과이겠지만.
“실패한 세계라…… 꽤나 어울리는 명칭이군.”
“……뭐? 그걸 네가 어떻게…….”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내게 다가오던 녀석이 멈칫한다.
그러나 당황하는 모습도 잠깐이었다.
“큭…… 크크크. <그녀>가 알려 준 건가. 그래, 너는 아직 시스템의 가호를 받는 인간이라 이거지…….”
그는 실실 웃으며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마치 실성한 듯하다.
놈은 광기의 신도 무릎을 꿇을 만큼 훌륭한 자태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가여운 내 아이들은 무슨 죄가 있다고…….”
내가 미친놈을 얕봤구나.
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리며 성검을 뽑았다.
“X발, 혼잣말하려고 날 이곳까지 데려온 거-”
“왜!!!!!!!!”
쩌렁쩌렁한 고함이 회색빛 공간에 울려 퍼진다.
순간 주춤할 정도로 온갖 감정이 묻어나는 절규였다.
“왜 하필 너희지!!!!!???”
“X발, 무슨 개소리야.”
“왜 너희 세계에서 구원자가 나온 거지!??? 지켜보는 신조차 없는 하찮은 차원에서, 어떻게 너같은 초월자가 나올 수 있는 거냐고!!!! 대체 내가 부족했던 건…… 아니, 우리가 부족했던 건 무엇이기에…….”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던 그가 휙 팔을 뻗는다.
방금 굴러갔던 황금빛의 수레바퀴가 있는 위치였다.
“허튼 짓 하지 말고 내놔라.”
감히 내 물건에 손을 대다니.
으르렁거리며 검에 마력을 주입하려는 그때였다.
푸욱-
“컥!!!!”
이건 또 무슨 자해쇼일까.
황당한 모습에 끌어올렸던 마나가 저절로 흐트러진다.
아무리 온갖 광경을 다 보았지만, 수레바퀴를 스스로 가슴팍에 꽂아 넣는 장면은 처음이었다.
‘정확히는 몸 안에 흡수시킨 건가…….’
피한방울 흐르지 않는 가슴팍에는 무언가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
마치 자신자신을 인벤토리로 사용하는 느낌이었다.
“크큭…… 박탈당했지만 나 역시 운명을 주관하던 신. 이건 본디 내가 가지고 있던 성물이다. 다음 대 운명의 신에게 넘겨주긴 했지만…… 이 힘을 받아들일 능력까지 잃은 건 아니라는 소리지.”
‘저 성질머리면 박탈당한 이유도 알만 하군.’
입은 살아 있는걸 보니 보기보다 아프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반만 남은 수레바퀴를 덜렁거리며 달고 있는 형태가 썩 보기 좋지 않았다.
있는 힘껏 인상을 찡그리는 와중.
천천히 다가온 놈의 입술이 미소를 그린다.
자신이 이겼다는 듯, 자신만만한 웃음이었다.
“이제 이 힘은 나와 함께한다. 그러니 나를 소멸시킨다면 운명의 수레바퀴도 함께 사라져 버려. 자, 그러니 이제부터 거래를 하자.”
“……고작 거래 따위를 위해 날 여기까지 끌고 왔다고?”
“물론 그 건방진 도마뱀이 요구한 건 너를 방해하는 것이었어. 하지만…… 감히 신에게 그 따위 태도를 보이는 놈과의 약속을 지킬 필요는 없지.”
의리 따위는 개나 주라는 당당한 그의 발언에 말문이 막혀온다.
미친놈이 양심까지 없다니.
저따위 X발놈을 믿고 힘을 빌려준 렌이 불쌍해질 지경이었다.
“내 목적은 아주 간단해. 아직 명계에 있을 이곳 세계의 영혼들을 데려와라. 내 불쌍한 아이들을 되살려 낼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운명의 수레바퀴쯤이야 바로 되돌려주겠다.”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명계는 죽은 영혼만 갈 수 있는 곳.
뒤지라는 말을 이렇게 신박하게 하는 자는 처음이다.
심각한 얼굴로 놈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그는 내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진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신은 나는 갈 수 없지만 초월자인 네 힘과 방법을 찾는다면야 충분히 가능할 터. 그러니-”
“흐음, 그래. 결정했다.”
“역시. 너라면 그 고리타분한 신들과 다르게 말이 통할 거라 생각했지.”
“네가 가져라.”
잠시 정적이 흐른다.
그는 꿈을 꾸는 듯한 얼굴로 눈을 꿈뻑거린다.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 거…….”
“그깟 수레바퀴, 가지라고. 남의 몸에 들어갔다 나온 물건 챙길만큼 비위가 좋지는 않아서.”
“뭐, 뭐!?잠깐!!! 네가 이 신물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몰라서 그러는 것이야!! 내가 설명해 주지! 이건 네 운명을 제대로 굴러가게 해 주는-”
“X이발. 운명? 그딴 거 꼬인 지 오래야. 이제 와서 바뀐다고 해 봤자 별 기대도 없다.”
한평생 지하에 있던 사람에게 밖은 해가 내리쬐는 장소라고 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겪어 보지도 못한 행복은 이제 남의 일이었다.
“아니, 이게 그렇게 간단하게 넘어갈 만한 물건이 아니라니까!? 한번만 믿어 봐!!!”
“믿음이라……내가 믿는 건 딱 하나밖에 없지.”
피식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는 갑자기 추위라도 타는지 몸을 잘게 떤다.
운명의 신이었다더니, 그래도 스스로에게 닥쳐올 운명정도는 대강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그게 뭐지?”
“힘.”
퍼어어억-!!!!!!!!!
주먹을 그대로 내질렀다.
묵직한 손맛과 함께 놈은 날 듯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눈으로 보이지도 않을 만큼 먼 거리였다.
나는 재빨리 대지를 박차고 바닥을 구르는 놈에게 다가갔다.
“잠, 잠깐…….”
멱살을 쥐어 들자 허둥대는 몸짓이 느껴진다.
하지만 쓸데없는 짓이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오랜만의 주먹질에 혼신을 다했다.
퍼억-퍼어억!!!!!
오직 둘만 남은 세계에 얻어 터지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렇게 한참을 후드려 패니 더이상 때릴 곳이 없을 지경이다.
이제 놈은 잘 말린 오징어마냥 흐느적거린다.
“인정하지. 대체 무슨 헛소리를 지껄일까 싶어 가만 두었지만, 이만큼 나를 당황시킨 사람은 없었어. 아, 물론 신도 포함해서.”
나는 곧 소멸할 듯한 놈의 옆에 걸터앉았다.
숨돌릴 겸 고개를 잠시 위로 들어올리자, 옅은 빛만 내리쬐는 무채색의 하늘이 눈에 보인다.
‘지구도 멸망한다면 이런 꼴이 되는 건가.’
이종족들이 들쑤시고 난 대륙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황폐화된 땅.
예상보다 더 처참한 몰골이다.
망가져가는 세상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놈의 마음이 약간은 이해가 갈 정도였다.
“그렇다고 이딴 개짓거리를 한 것이 용서가 되는 건 아니지만.”
심드렁하게 검을 역수로 쥐어들었다.
놈의 심장 부근을 강하게 내려 찌르자, 미동도 없던 놈이 움찔거린다.
하지만 다른 반응은 없었다.
그저 천천히 가루가 되어 사라질 뿐.
[94층 <실패한 세계>의 주인을 처치하였습니다. 잠시 후 95층으로 이동합니다.]
신을 죽이는게 이번 층의 조건이었는지 공략에 성공했다는 메시지가 떠오른다.
자리에서 일어나 곧 이동할 다음 층을 대비하려는 그때.
이제는 놈의 형체도 없어진 흙더미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게 보인다.
혹시나 하는 그 물건을 주워들었다.
[비틀린 운명의 수레바퀴[???급]: 알 수 없는 힘으로 비틀려버려 정해진 효능을 내지 못하는 운명의 수레바퀴입니다. *주의: [email protected]#의 지배를 받지 않는 물건입니다.]
사라진다는 게 수레바퀴 자체가 아니라 그 힘이었나.
이름처럼 모양도 잔뜩 망가져 버린 신물은 이상한 기운이 감돈다.
‘뭐지? 마력도, 신력도 아닌 처음 느껴보는 힘인데.’
어쨌든 설명에 의하면 쓸모가 없어진 물건이었다.
당장 버리려는 그때.
시뻘건 시스템 메시지가 요란하게 떠올랐다.
[경고! 플레이어의 운명에 개입하는 물건입니다. 당장 제거하십시오. 해당 신물을 흡수할 경우[email protected]$$%-]
흡수하게 될 경우, 뭐?
제대로 된 말도 없이 다짜고짜 제거하라는 경고에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대충 해 먹는 시스템이어도 이건 좀…….”
한두번도 아니지만 여전히 어처구니가 없다.
하지만 알림음이 꽤나 매서운 탓에 우선 순순히 내려놓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당장 바닥을 나뒹굴어야 할 수레바퀴가 이상했다.
‘잠깐, 이거 왜…….’
이상할 정도로 끈적거리는 느낌이 든다.
재빨리 손을 들어올렸다.
“……빌어먹을.”
수레바퀴는 어느새 액체가 되어 내 손을 집어삼킬 듯 꿈틀거린다.
방금 전 신의 가슴팍에 박혔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었다.
[비틀린 운명이 플레이어를 이끕니다.]
[<검은 탑> 95층 이동 실패! #@#*^%%-]
‘이동이……실패했다고? 그게 가능한, 큭??’
갑자기 내가 서있던 바닥이 거짓말처럼 뚫린다.
그리고 그곳으로 떨어지기 직전.
깜빡거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신기루마냥 흩어졌다.
[시스템의 관할에서 벗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