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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190화 (190/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90화

[93층 연계 퀘스트 <성전>을 곧 시작합니다.]

“여기인가? 그런데 전투 장소 치고는 좀 이상하군.”

이동하자마자 보인 풍경은 꽤나 놀라웠다.

분명 눈으로 보이는 끝은 사방이 막힌 벽으로 이뤄져 있지만, 짠 냄새가 느껴지는 바람이며 주변을 장식하는 야자수들만 본다면 휴양지나 다름없어 보인다.

마치 무인도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느낌이었다.

“바다의 신이 만들어 낸 작품이지. 이번에 그대가 상대할 적 중 한 명이기도 하고.”

무신은 서걱거리는 모래의 감촉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바위 위로 훌쩍 뛰어오른다.

험악한 얼굴은 더욱 사납게 구긴 채였다.

“쓸데없이 힘을 쓰기는…….”

자고로 전장은 흙과 먼지가 날려야 제맛이거늘.

어차피 서로의 목숨을 먼저 차지하기 위한 장소인데, 이따위 낭만적인 풍경은 사치에 가까웠다.

“크하하!!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역시 내 친구야. 나도 신성한 전장터에 뭐하는 짓이냐고 했지만 다들 아름다운 곳이니 뭐니 칭송하기 바빴거든.”

그는 한참을 신들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얼마나 겉치레에 신경 쓰는 멍청이들인지 아냐면서.

“심지어 전에는 신전을 치장한답시고- 음? 왔나.”

“……무신. 우리는 그저 고귀한 존재답게 품위를 위해 노력하는 것뿐입니다.”

갑자기 공간이 찢어지더니 조율의 신이 나타난다.

그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내 앞으로 다가왔다.

“도전자여, 부여된 신격은 잠시나마 그대를 불멸자로 만들어 줄 것이오. 그러니 안심하고 싸우길.”

방금 마신 물약 이야기인가.

딱히 힘이 강화되는 느낌은 없다 싶었는데, 그 정도 효능은 있는 모양이었다.

조율의 신은 그 외에도 나와 싸우게 될 신들의 간단한 설명과 규칙 등을 설명해 주었다.

하나같이 뻔하고 하품이 나올 만한 내용이었다.

“그만. 그닥 중요해 보이지 않으니 시작부터 하지.”

“……흐음. 상관없겠지. 나머지는 무신도 알 테니까. 이제부터는 무신과 그대가 짝을 지은 것처럼, 이제부터 두 명씩 신들이 나타나게 될 걸세. 그러니 총 다섯 번의 전투를-”

“다섯 번이라, 너무 지루하군. 한 번에 치를 수는 없나?”

“……뭐??”

조율의 신은 눈에 띄게 당황하는 모습이다.

그가 빛으로 이루어진 팔을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잠자코 곁에 있던 무신은 결국 배를 부여잡고 폭소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으하하!!!!!! 자네 정말 물건일세!! 무려 중급 이상의 신을 열이나 상대하겠다?? 하하하!!!!”

한참을 웃던 그가 간신히 진정한다.

그리고 입꼬리를 잔뜩 씰룩이며 대검을 매만졌다.

“들었지? 나는 환영일세. 그 정도쯤은 규칙을 약간 비틀면 될 터.”

“하……당신들의 뜻이 정 그렇다면.”

조율의 신이 서서히 사라진다.

잠시 후.

하늘에서 열개의 빛줄기가 내려왔다.

그와 동시에 공기마저 짓누르는 힘이 느껴졌다.

“드디어 시작이군.”

무신은 내내 손에 들고 있던 묵직한 대검을 치켜 올린다.

나 역시 성검에 마력을 씌우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까이에 있는 건 넷. 나머지는 바다 쪽인가.’

꽤 멀리 있는걸 보니 우선 내 힘을 가늠해 보겠다는 심산이었다.

나름대로 신중하게 상대하려는 모양.

하지만 네 명의 신은 확실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보이며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온다. 둘은 자네가 맡게. 문제는 없겠지?”

“전혀.”

단호한 대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인 무신이 숲으로 뛰어들어간다.

그곳에서는 곧 커다란 굉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쾅!!! 콰아앙!!

가깝지 않은 거리지만 피부까지 저릿할 정도로 강한 힘이 느껴진다.

무신이라는 이름값은 하는 자였다.

그의 패도적인 기운에 감탄하는 가운데.

갑자기 정면으로 기다란 녹색의 무언가가 휘둘러져 온다.

피슉!!!

가볍게 뛰어올라 피했다.

그러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수백 개의 빛줄기가 뒤를 이어 날라온다.

‘피할까. 아니면……’

한번 시험해 볼까.

순식간에 마력을 폭발적으로 끌어냈다.

검을 감싸던 마나는 넓게 퍼져 나간다.

콰콰콰쾅!!!

부딪힌 빛줄기들은 지축을 흔드는 소리와 함께 사라진다.

이것이 <초월자>의 힘인가.

상당한 마력을 사용했지만 전혀 지치지 않는다.

‘만족스럽군.’

나는 검에 더욱 힘을 강하게 불어넣었다.

쾅!!!!!

검기는 공격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터져 나간다.

정면에 있던 빽빽한 열대 우림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긴 길이 뚫려버렸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공터.

그 한가운데에는 금발의 신이 너덜거리는 몸을 애써 추스리고 있었다.

“크으윽……!!”

대지를 박차고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에 놈은 낭패감을 담은 시선으로 나를 노려본다.

“몸을 숨긴 건 좋지만, 공격해오는 방향이 너무 뻔해서 말이야.”

일단 한 놈 잡았나.

슬쩍 웃으며 움직이지 못하는 적에게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적을 처치하였습니다. 남은 신:9명]

치명상을 입은 상대의 모습이 천천히 흐려진다.

흙이 잔뜩 묻은 성검을 거두려는 그때.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의 공격이 날아온다.

쾅!!!

두어 걸음 뒤로 움직였다.

방금까지 있던 바닥은 움푹 패여 버린다.

‘……덩굴??’

찰나의 시간.

뻗어진 녹색 줄기가 묘하게 식물과 닮아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는 잠깐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길게 늘어져 나에게 튀어 오른다.

재빨리 검을 가로로 세워 막아 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오판이었다.

챙!! 휘리릭!!

[헉!!! 도전자여!]

잠자코 있던 에우로델이 크게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애타는 목소리는 점점 멀어져갔다.

곧 성검은 거대한 식물의 줄기에 단단히 붙잡혀버렸다.

“천신이 만들어 낸 검이군요. 이건 압수하죠. 상급 신의 신력이 담긴 만큼 너무나 위협적인 물건이니.”

빙긋 웃으며 나타난 신의 몸 주변에는 수많은 덩굴이 꿈틀거린다.

하나하나가 의지를 가진 듯 기묘한 움직임이었다.

‘식물의 신쯤 되는 건가.’

“아무리 초월자라도 무기를 빼앗기면 어쩔 수 없겠죠? 자, 이제 순순히 항복하세요.”

상당히 자신만만한 말투였다.

그녀의 말대로 <성전>퀘스트 중에는 인벤토리를 사용할 수 없다는 규칙이 있었다.

나는 맨손이 되어 버린 손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개소리 그만 지껄이고 하던 공격이나 마저하지.”

“이 건방진……!!!!”

분노에 이기지 못한 신이 다시금 공격을 날린다.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속도였다.

하지만 나는 제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곧 내게 닿은 굵은 덩굴들은 몸을 단단히 옥죄이기 시작했다.

“하! 그저 말뿐인 허세였나??”

안심하고 종알거릴 때는 아닐 텐데.

아무래도 저 신은 입으로 싸우는 모양이었다.

나는 슬쩍 여유로운 웃음을 지어 보이고 두 손으로 덩굴을 잡아들었다.

으드드득-

“헉!???”

팔뚝만 한 두께의 덩굴이 간단히 찢겨 나간다.

순식간에 넝마가 된 것들이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끄흑-!!”

식물과 연결되어 있는지 그녀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린다.

나는 적당한 길이로 잘라낸 식물을 손에 쥐고 바닥을 향해 한번 휙 휘둘러보았다.

촤악-!!!!!

“검을 빼앗으면 된다고?”

그깟 무기 따위, 아무거나 사용하면 그만이다.

나는 모든 무기의 주인이었으니까.

[웨폰 마스터(L)(패시브)스킬이 발동합니다. -무기 형태: 채찍-]

오랜만에 사용하는 채찍이지만 마치 한평생 사용한듯 손에 익었다.

덩굴 전체에는 검에나 씌울 법한 오러가 넘실거린다.

가볍게 손목을 비틀었다.

채찍은 마치 뱀처럼 그녀를 향해 휘둘러졌다.

쒜에에엑!!!콰콰쾅!!!!!!!!

“아아악!!!!!”

애써 주변의 덩굴을 들어올려 막아 내는 것도 무용지물이었다.

길게 뻗은 마력은 그것마저 무시한 채 나아간다.

검술보다도 변화무쌍한 공격은 눈이 쫓아가지 못할 정도.

곧 그녀의 온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쓰러졌다.

‘저쪽도 이제 슬슬 끝나가나.’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무신이 있는 방향을 흘깃 쳐다보았다.

끊임없이 들려오던 폭발음은 이제 멎어 가는 상태.

나 역시 마무리를 위해 덩굴 속에 박혀 있던 성검을 끄집어냈다.

[왜 이제 오나? 갑갑해 죽는 줄-]

“정신 사나우니 평소에는 말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크흠!! 알았네. 거참, 까다롭기는.]

투덜거리는 에우로델의 입을 막고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정확히 목을 베인 식물의 신은 방금처럼 몸이 흐려진다.

[적을 처치하였습니다. 남은 신:6명]

“나머지는 여섯인데…… 아직도 숨어 있나.”

대체 이게 전투인지, 숨바꼭질인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트리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신이 나타났다.

“호오? 상처하나 없이 끝냈나. 과연 내가 인정한 사내야.”

“그쪽도 멀쩡해 보이는군.”

“이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지. 그나저나 남은 놈들은 계속 우리를 주시할 생각인가 본데…… 귀찮게 되었어.”

그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난처한듯 웃는다.

“우선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내 말이 의아한듯 무신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하지만 굳이 되물어보지는 않았다.

곧바로 내 몸은 그와 함께 하늘로 둥실 떠올랐다.

“뭔가 재밌는 일을 하려는 모양이군?”

“기대할 만할 거야.”

우우웅-

오랜만에 마력을 최대한 끌어내었다.

심장을 쥐어짜내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다.

이를 악물고 거대한 기운을 하나로 뭉쳐 내었다.

“……<정령신의 가호>. 지진으로.”

<정령신의 가호[L]:일주일에 한 번, 자연의 분노를 끌어다 쓸 수 있습니다. 불어넣은 마나의 양에 따라 파괴력이 달라집니다. (지진/홍수/폭풍/용암 중 효과를 고를 수 있습니다.)>

순간 잘게 불어오던 바람이 멈춘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고요.

흥미진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무신조차 주춤거렸다.

콰콰콰쾅!!!!!!!!!!!!

대지가 뒤집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늘을 투명하게 비추고 있던 수면은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눈깜짝할 새.

검푸른 바다 한가운데에 떠있던 섬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섬이 있던 자리에는 마치 심연으로 향할 듯 거대하고 깊은 구멍이 생겨 있었다.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던 바닷물들은 그 안으로 미친듯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콰르르르르륵-!!!!!

“허어??”

무신은 입을 떡 벌린 채 재앙을 지켜본다.

하지만 구경은 길지 않았다.

어느덧 밑에는 물기조차 메말라 버린 텅 빈 구멍만 남아 버렸다.

[적을 처치하였습니다. 남은 신:5명]

.

.

.

[적을 처치하였습니다. 남은 신:1명]

바닥조차 보이지 않는 무저갱.

미처 대비하지 못한 힘에 빨려 들어갔는지 남은 신은 오직 한 명이었다.

그나마도 엉망진창인 모습으로 한뼘 남짓한 땅에 매달리듯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도울 필요도 없었겠군. 이건 정령신의 힘인가? 하지만 그라도 이만한 결과를 만들어 내진 못했을 거야.”

무신은 감탄한듯 고개를 끄덕인다.

입가에는 쓴 미소가 걸려있었다.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은 채 흐트러진 검은 머리를 가진 신에게 훌쩍 뛰어갔다.

“크으윽…… 미친…… 인간 주제에 어떻게 이런 힘을…….”

머리카락과 같은 검은 눈에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원한이 가득하다.

분명 초면인 신인데 이상한 반응이었다.

대충 무시하고 마지막 일격을 위해 검을 휘두르려는 찰나.

바로 앞에 희뿌연 빛덩어리가 툭 하고 튀어나왔다.

조율의 신이었다.

“잠깐!! 이대로라면 강제 귀환이 아니라 소멸하게 돼!! 자네가 이겼으니 그만하게!!”

“생각보다 싱거운데.”

그는 진절머리를 치며 대뜸 아까 보았던 금색 수레바퀴를 내민다.

빨리 가지고 다음 층으로 향하라는 마음이 물씬 느껴졌다.

만족스럽게 그 물건 잡으려는데, 갑자기 검은 물체가 휙 하고 튀어나온다.

“……이건 또 뭐 하는 개수작일까.”

방금 전까지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던 신이 나와 동시에 수레바퀴를 잡아챘다.

마주 본 그의 눈에는 미친놈마냥 광기가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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