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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188화 (188/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88화

문에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분수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그리고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웅장한 신전의 자태도.

그 주위를 감싼 정원에는 한가하게 여유를 즐기는 자들이 여럿 있었다.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신들의 공간이라더니 딱히 별건 없나.’

누군가는 감격할 만큼 신성한 곳이지만 지나치게 여유로운 분위기가 마치 경로당을 연상케 한다.

그야말로 시간 죽이기 딱 좋은 장소였다.

좀 더 냉소적으로 표현하자면 그것밖에 할 일이 없는 심심한 천국에 가까울지도.

“천신이여, 이제 오는군. 부리나케 어디론가 향하더니 대체 무슨 일이었지?”

순간 햇빛이 가려지더니 그림자가 드리운다.

아는 척해 오는 신은 장신의 근육질 사내였다.

“아, 무신. 수련하겠다며 한 오백 년은 보이지 않더니만.”

“……이자는? 최근에 태어난 초급신인가?”

궁금함이 잔뜩 섞인 시선이 나를 훑는다.

온몸을 구석구석 살피는가 싶더니 일렁이는 눈동자에는 익숙한 감정이 실렸다.

당장이라도 싸워보고 싶어 미치겠다는 호승심이었다.

“호오? 이런 기분은 정말 오랜만인데. 이봐, 어차피 당분간 할 일도 없을 텐데 전투나 하는 건 어떻겠나. 가볍게 오십 년 정도면 몸도 풀리고 좋겠군.”

“안타깝게도 이 신계에서 제일 바쁜 자일걸.”

“……뭐? 그 말은 설마……도전자란 말인가?”

순식간에 손이 뻗어진다.

이제껏 겪지 못한 빠른 속도였다.

‘갑자기 이게 무슨……!’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여 피해 냈다.

졸지에 허공을 만지게 된 무신이라는 자는 잠시 당황하더니, 곧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함박 웃음을 짓는다.

“좋군, 아주 좋아! 드디어 제대로 된 도전자가 나타났어!”

“그대라면 마음에 들어 할 줄 알았다네. <초월자>까지 된 인간이니 말이야.”

“초월까지? 아, 내가 너무 붙잡아 놨군. 그래, 언젠가 다시 보게 될 날을 기다리지.”

한참을 호탕하게 웃던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 어디론가 사라진다.

혼자 떠들어대고, 훌쩍 떠나가다니. 마치 폭풍과도 같은 사내였다.

“괜찮은 자야. 그 무엇보다 힘과 싸움에만 열중하는 신이기도 하고. 아스티란에서 자네를 봤다면 분명 축복을 내려 줬을걸세.”

“……다른 건 몰라도 정신 사나운 자라는 건 알겠군.”

“뭐? 으하하! 무신을 그렇게 평가하는 자는 그대밖에 없을 거라네. 성격이…… 으음, 하여튼 보통은 말을 걸기는커녕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거든.”

천신은 애써 뒷말을 삼킨다.

하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성격이 개차반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크흠! 갑작스러운 만남은 이제 잊지. 무신의 말대로 그대를 기다리고 있는 자들이 많으니.”

그는 신전 쪽을 힐끗 쳐다보더니 천천히 그곳으로 향했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걷는 내내 한껏 들뜬 목소리로 신계에 대해 설명을 하더니, 잠시 작은 그릇 장식물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그가 손을 가볍게 가져다대자 물 한 방울 없이 메말라 있던 곳에 조그마한 물 웅덩이가 생겨났다.

“그러고보니 천왕을 살려 주었더군. 사실 무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는데 아주 의외였어.”

나를 아주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는데.

물론 평소라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왕관까지 빼앗겨 후임자도 없는 마당에, 기존의 천왕이 죽어 버린다면 큰 혼란이 닥쳐올 것은 자명하다.

특히나 마지막으로 신전에 들어간 자가 나와 아렐리아뿐이었을 때는 더더욱.

“그대를 다시 봤어. 그간의 행보는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듯해.”

살다살다 저런 말은 처음 들어본다.

천신은 감동한듯 헛소리를 지껄이더니 어디선가 작은 물병 하나를 꺼내 샘에 고여 있던 물을 담아 주었다.

“자, 이게 말했던 보상이라네.”

……고작 이게?

약수터에서 물 퍼온 것과 뭐가 다른 거지.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 이건 신들만 마실 수 있는 것이야. 상급 신인 나조차도 천 년에 한 번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약수물보다는 조금 더 나은 효능이라는건가.

손가락만 한 물병을 받아 들자 과연 들고있는 것만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맑은 기운이 느껴진다.

[넥타르[???급]: 복용 시 신체와 영혼을 정화시켜 줍니다.]

“가능하면 쓸 일이 없길 바라지만…… 분명 유용하게 사용할 때가 올 거야. 그것이 그대를 위함이든지…… 아니면 남을 위해서든지간에.”

뭔가를 알고 있는 듯 제법 신다운 소리였다.

제일 잘 보이는 인벤토리 위 칸에 집어넣으니 그는 다시금 걸음을 옮긴다.

신전은 이제 문이 보일 정도로 가까웠다.

점점 많은 신들이 보이는 가운데.

호기심과 뒤섞인 적대적인 시선들이 느껴진다.

“저 인간이 바로 그…….”

“듣던대로 오만한 분위기군요. 정말로 저자를 믿어도 되는걸까요.”

“난 반대하겠소.”

수근거리는 말마다 귀에 거슬리기 짝이 없다.

제일 거슬려 보이는 녀석부터 하나 잡아 볼까.

그러면 신이라는 놈들이 떼거지로 달려들겠지.

“익숙해지게.”

어찌할까 고민하며 미간을 와그작 구기고 있는데, 곁에 있던 천신이 말을 건네온다.

“……저따위 놈들을?”

“오히려 무신이 특이한 거야. 신들 사이에서 그대의 소문 이미…… 크흠.”

부정적인 반응들이 대부분이라는 건가.

자세한 것은 신전에 도착하면 알게 될 거라며 천신이 걸음을 재촉한다.

끊임없이 위로하는 말도 함께.

“우선은 신들의 심기에 거슬리지 않는 편이 좋아. 그러니-”

“가만히 있으라?”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옆을 돌아보니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얼굴의 마신이 서 있었다.

“안 돼지, 안 돼. 감히 헛소리를 지껄이는 자들을 그대로 둔다고? 그럴 수는 없지. 내 마왕은 참을 필요가 없어.”

“그럼 본보기로 두어 놈만 손봐 주면 되겠군.”

“좋은 생각이야. 뒤는 내가 감당하겠네. 역시 이번 마왕은 화끈해서 좋다니까.”

“하아……이래서 내가 마중 나간다고 했던 건데 그걸 다 허사로 돌릴 셈인가?”

갑자기 둘은 옥신각신 말다툼을 시작한다.

슬슬 주먹다짐이라도 할 것처럼 과열되는 분위기에 다른 신들은 멀찌감치 물러난 지 오래였다.

“아이고, 좀 늦는다 싶더니 이럴 줄 알았지. 이 친구들아,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퍼덕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웬 비둘기 한 마리가 천신의 머리 위에 앉는다.

이번에 나타난 자는 정령신이었다.

“어서 오게, 인간 정령왕. 오는데 고생이 정말 많았어.”

그는 진심으로 반갑다며 유쾌하게 웃는다.

그리고 부리로 천신과 마신의 머리를 한번씩 쪼아대더니, 한껏 엄숙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래 봤자 비둘기의 모습이라 전혀 진지한 분위기는 생기지 않았지만.

“그만들 하게. 이미 중급 이상의 신들은 신전에 모여 있어. 그들을 얼마나 더 기다리게 할 셈인가?”

“하지만 저 자식이-!!”

“으하하!! 고아하신 천신의 입에서 저 자식이라니? 천족들이 보면 뒤집어지겠어.”

비웃는 말에 천신은 비로소 이성을 찾아간다.

그는 퉁명스럽게 마신을 쳐다보더니 먼저 앞장서 나아갔다.

“역시 천신은 놀리는 맛이 있어.”

마신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쫓아간다.

한편의 희극 같은 상황이 지나가니 나는 자연스레 기분이 점점 찝찝해졌다.

‘과연 이놈들을 신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게 맞는 건가.’

마계와 천계의 앞날이 상당히 어두워 보인다.

복잡한 고민을 하고 있으니 어느새 신전에 도착했다.

쾅-

내가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문이 닫힌다.

안은 마신과 천신이 떠들어 대는 소리뿐이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어둠속에서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쯤.

곧 빛들이 떠오르며 주변을 밝히기 시작했다.

‘신이 이렇게도 많았나…….’

밤하늘에 떠 있는 무수히 많은 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들은 원형의 공간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었다.

자신들이 가진 크고 작은 신력을 찬란하게 밝힌 채로.

“많이 늦었군.”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두 명과 한 마리의 신은 뜨끔한 얼굴이다.

그들은 나에게 눈인사를 하더니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어느새 넓고 텅 빈 공간에 있는 자는 나뿐.

수많은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어 쏟아진다.

나는 여유롭게 눈빛들을 받아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도전자이자 초월자여. 우선 신들의 전당에 들어온걸 환영하네. 나는 조율의 신, 페덴. 오늘 신들의 목소리를 대신할 자이지.”

희끄무레한 빛 덩어리인 줄 알았는데 신이었나.

형체를 알 수 없는 그는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그대가 맞설 운명은 너무나 무거워. 실패시에는…… 우리 모두를 뒤흔들어 놓을 정도로.”

‘겁이 나는가.’

나는 이제서야 받아왔던 눈빛들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신들의 미래가 내 손에 달려있다.

그것도 한낱 필멸자라며 무시했던 인간에게.

점점 상황이 재밌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대가 시도조차 않는다면 이 불안한 평화는 유지되겠지. 다음 도전자를 기다릴 시간도 있을 거야. 그러니 우리로서는 그대를 시험해 볼 수밖에 없네.”

그는 허공에 손짓을 하더니 두 개의 상자를 내게 내민다.

각각 파란색과 붉은색으로 장식 하나 없이 간결한 모양새였다.

‘선택지인가.’

뜬금없이 방문 선물을 줄 리는 없을 터.

물끄러미 그것들을 바라보자 조율의 신은 내가 예상한대로 말을 꺼냈다.

“푸른색 상자를 선택하면 여기서 한달간 머무르며 신들의 믿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게 되네. 하지만 붉은색의 경우…….”

달칵-

손댄 사람도 없는데 붉은 상자가 열린다.

그곳에는 손가락만 한 작은 물약병이 놓여 있었다.

“신들을 힘으로 굴복시킬 기회를 가지게 되지. 이건 잠시나마 그대에게 신격을 부여해 줄 물건이고.”

뭘 주절주절 길게 설명하는걸까.

어차피 내가 선택할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동료도 없는 그대가 홀로 10명의 신을 처치할 수는-잠깐!!”

덥석 물약병을 잡아들고 입가에 가져다대었다.

안에 있던 검붉은 액체는 쓰디쓴 맛과 함께 목구멍으로 들어왔다.

와장창!!

병을 바닥에 내던지자 산산조각이 난다.

가뜩이나 조용했던 신전은 숨소리 하나 느껴지지 않는다.

“맛이 없군.”

고요한 와중에 날카로운 시선들이 달라붙는다.

하나같이 자존심상한 기색이 역력하다.

입매를 비틀어 웃으며 하나씩 마주하는 그때.

뜬금없이 호쾌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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