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187화 (187/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87화

“그 말씀은 곧 죽일 거라는 건가요? 역시 천왕이 마왕님의 심기를 거스르는 짓을 했군요.”

박수까지 치며 기뻐하는 그녀에게 짧은 설명을 했다.

왕관을 빼앗겼다는 말을 할 쯤에는 간신히 분노를 누르더ㄴ, <초월자>에 대한 것을 들은 후에는 점점 말이 없어진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게 떨리는 눈동자에는 온갖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인간 <초월자>라니. 전설 속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축하드려요, 마왕님.”

아렐리아의 붉은 입꼬리에는 쓰디쓴 미소가 걸려있다.

당연히 기뻐할 줄 알았는데.

예상외의 반응이었다.

“……지구 따위는 포기하고 저희의 왕으로서 살아가셨으면 더욱 좋겠었지만요.”

이상하다 싶더니, 원하는 것은 그거였던가.

하기야 아렐리아에게 지구 생활은 잠깐의 유희나 다름없다.

오히려 내가 신경 쓸 일 덜었다며 좋아했지, 지금 당장 멸망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터였다.

“너도 내가 도망치기를 원하는군.”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말하고 싶지만, 그러시지 않으시겠죠. 마왕님은 자신의 사람을 끔찍히 아끼시니까요. 다만…….”

일그러진 눈매가 서서히 펴진다.

어느새 아렐리아는 항상 보던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언젠가는 당신의 사람에 제가 포함되기를 바랄 뿐이에요.”

형용할 수 없는 진심이 느껴진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잔뜩 헤집어 주었다.

아렐리아를 위로할 때 항상 하던 버릇처럼.

“그걸 말이라고.”

“자자, 이럴 때가 아니죠. 우리 마왕님은 모든걸 다 가져야 만족하시는 분이시잖아요? 어서 이놈을 깨우고 천계의 일을 마무리 짓죠.”

분위기를 환기시킬 생각인지 일부러 꾸며낸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는 살짝 쭈그려 앉더니 대뜸 누워 있는 천왕의 뺨을 쳤다.

짜악!! 짜아악!!!

확실히 사심이 섞여 있는 손길이다.

심지어 마기까지 사용했는지 천왕의 얼굴은 붉다 못해 퍼렇게 멍이 들어간다.

‘저 정도면 잠들었던 드래곤도 금세 깨어나겠는데.’

잠자코 지켜보자, 얼마 지나지 않아 섬세한 속눈썹이 가늘게 떨리며 푸른 눈동자가 드러난다.

“윽……??”

벌떡 몸을 일으킨 그는 척 봐도 어리둥절한 얼굴이다.

하지만 천왕의 자리는 가위바위보로 차지한 것은 아닌지 애써 침착하게 상황을 돌아보는 눈치였다.

“나는 분명…… 아, 왕관!? 왕관을-”

“그래, 대놓고 빼앗겼지. 한심한 놈.”

하다못해 붙잡는 시늉이라도 했다면 달랐을 텐데.

아무리 찰나의 시간이었다지만 내가 서채아를 막을 틈 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그랬었지. 이제야 기억나는군. 그나저나 또 다른 인간이여, 너는 누구지? 분명 그자와 알고 있는 사이 같던데.”

한 차원계를 다스리고 있는 자답게 위압감이 넘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래도 자신을 구해 준 건 알고 있는지 꽤나 부드러운 말투였다.

하지만 아렐리아에게 맞은 뺨이 잔뜩 부어오르고 있는 상태이기에, 말하는 찐빵을 마주하는 기분을 지울 수는 없었다.

“물론 알고 있지만, 이제는 차라리 모르고 싶은 사이지.”

“이상한 대답이군. 그리고…… 아까부터 생각했지만 지나치게 건방져. 혹시 저 마족을 믿고 있는 건가. 물론 남부 대공이 마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라고 하나, 여기는 천계야. 태도를 바로 하는 게 좋을 텐데.”

주제에 아직 남은 자존심이 있기는 한가.

불쾌함을 가득 담은 시선이 아렐리아와 나를 번갈아 본다.

덕분에 가뜩이나 참고 있던 마족이 날 뛸 준비를 마친다.

“감히 마왕님께 그런 망발을 지껄이다니!!”

“아렐리아, 그만둬. 왕관도 잃어버린 멍청이와 말 섞을 필요는 없으니까.”

“……뭐라고? 아니, 그보다 마왕??”

경악한 천왕이 무어라 말을 하기 전.

나는 방금 얻은 힘을 이끌어 냈다.

곧바로 손 안에는 백색의 기운이 뭉쳐져 찬란한 빛을 비춘다.

“이건…… 성력? 마왕이 성력을 쓴다고???”

성검까지 보여 주면 기절하겠는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그에게 성력을 흡수시켰다.

그러자 검붉은색으로 퉁퉁 부어 있던 뺨은 천천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제서야 천왕은 작은 한숨을 쉬며 눈빛을 가라앉힌다.

그리고 그 자존심만큼이나 꼿꼿했던 허리는 가볍게 굽혀졌다.

“……이미 모든 힘을 얻어 지고한 자리에 오른 분이셨군요. 천왕 미네르, <초월자>께 인사드립니다.”

삽시간에 태도가 공손해진다.

비로소 말을 나눌 준비가 된 그에게, 나는 계속 가지고 있던 궁금증을 털어놓았다.

“멀쩡해 보이는군.”

“예??”

그의 티끌 한 점 없이 새하얀 날개는 과연 천족의 자랑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눈이 부시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었다.

그들도 요정족이나 정령족처럼 <타락>에서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종족이었으니까.

“분명 연결되어 있던 대륙은 천족의 침략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아, 그 말씀이셨군요. 부끄럽지만 사실입니다. 대천사 중 한 명이 천족을 선동해 어리석은 짓을 했지요. 가장 정의로운 자였는데 인간계에 한번 나간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루아침에 성격이 바뀌더군요. 지금 생각해도 의아합니다.”

그때 일을 떠올리는지 안색이 어두워진다.

그 안에는 정말로 원인을 모르겠다는 듯 혼란스러움도 가득했다.

‘또 렌놈의 짓이겠군.’

빌어먹을 용언의 강력한 힘은 요정왕이었던 티타니아조차 흔들어 놓을 정도다.

아무리 대천사라도 이겨 낼 수는 없었을 테지.

“그래서 그자를 어찌했지?”

“……직접 처단했습니다. 제 손으로.”

슬퍼 보이는 눈동자에는 굳건한 의지가 엿보인다.

영 미더워 보였는데 그 정도 강단은 있는 자였나.

이 정도면 믿고 맡겨 볼 만하다.

언젠가 차지하게 될 천왕의 자리.

이자라면 내가 올 때까지 허튼짓하지 않고 기다려 줄 인물이었다.

“잘 알고 있겠지만 나는 천왕을 계승할 자다.”

“……그 정도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왕관이 없으니 어찌하실 셈인지요.”

“다시 돌려받아야지. 그건 이미 나의 것과 다름없으니. 그러니 너는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임시’천왕의 자리나 지키고 있도록.”

심드렁하게 대답하자 신기하다는 듯한 시선이 나에게 꽂힌다.

“오만하군요.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네요. 이게 <초월자>라는 건가…….”

“마왕님은 이미 예전부터 완성된 분이셨다. 감히 네까짓 게 이분을 평가하려 하지 마라.”

“흐음, 그렇습니까…… 본래부터 왕에 어울리는 재목이라. 뭐,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이미 당신은 천왕이 될 자격을 얻으신 분이니. 말씀대로 천계를 유지하고 있겠습니다. 그래도 백 년이 지나기 전에는 오셨으면 좋겠군요. 제 남은 수명은 그 정도뿐이니.”

이래서 오래 사는 종족의 시간 감각이란.

그 정도라면 이미 내가 늙어 죽었겠다.

하지만 나는 <검은 탑> 따위에 그 정도까지 시간을 쓸 생각이 없었다.

“물론 저 싸움에 미쳐 버린 마족들과 평화롭게 지내는 것도 포함입니다.”

“뭐?? 이 건방진 닭둘기가……!!”

“……닭둘기? 그건 뭡니까? 생소한 표현인데 묘하게 기분이 더럽군요.”

다시금 맞붙을 기세인 녀석들을 떼어놓았다.

그러자 천왕은 잔뜩 지친 얼굴로 먼저 백기를 든다.

“죽다 살아나니 이 정도 말싸움도 힘드네요. 저는 나가서 천족들에게 가보려 합니다.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도전자로 온 당신을 보고 놀랄 일이 한두 개가 아니었을 테니까요.”

“눈치 하나는 빠르군.”

“오래 산 자의 연륜이라고 해 두죠. 그럼 방해자는 이만 사라지겠습니다.”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천왕이 밖을 향했다.

이제 신전에 남은 건 아렐리아와 나뿐이었다.

“우리도 이만 가 볼까.”

이미 6차원계의 층은 모두 공략했다.

예상조차 할 수 없는 남은 장소들을 생각하고 있을쯤, 아렐리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뗀다.

“저…… 마왕님. 저는 여기까지일 것 같아요.”

“그게 무슨 소리지?”

“아마 이 이후는 제게 허락된 층들이 아닐 테니까요. 아무리 제가 복종의 맹세를 한 상태여도요.”

92층부터는 자격이 있는 도전자만 오를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녀는 아공간을 열어 검은 물체를 꺼낸다.

죽은 듯 잠들어 있는 헤츨링의 몸이었다.

“긴 작별 인사는 하지 않겠어요. 머지않아 곧 만날 테니까. 하지만 작별 선물은 드릴 수 있겠죠.”

죽기보다 싫다는 얼굴로 그런 말을 해 봤자 믿기지는 않는데.

피식 웃으며 작은 몸뚱이를 받았다.

“그래. 금방 돌아오지.”

“……반드시 무사하셔야 돼요.”

그 뒤로 들려오는 말은 없었다.

연신 입술을 달싹이던 그녀는 결국 고개를 푹 숙여 버린다.

나는 익숙하게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시야에서 치워 버렸던 시스템 메시지를 찾아 열었다.

[<검은 탑>92층에 도전하시겠습니까?]

“도전하겠다.”

[10초 뒤 이동합니다.]

익숙한 기운이 서서히 나를 감싼다.

남은 시간이 채 1초가 남지 않았을 때.

갑자기 아렐리아가 나를 향해 다시금 소리친다.

“다시 돌아오시면, 그때는-”

왜인지 모르게 절박한 얼굴이 서서히 흐려진다.

이어지지 않은 뒷말과 함께.

[<검은 탑>92층 신들의 정원에 도착하였습니다.]

애타게 쳐다보던 보랏빛 눈동자는 완전히 사라졌다.

주위를 둘러보자 온통 흰색이었던 장소는 온갖 꽃이 피어 있는 야외로 변해 있었다.

“드디어 왔군.”

바스락, 풀을 밟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긴 백색의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천신이 작게 미소 지으며 나를 주시한다.

“……여기는?”

은은하게 풍겨오는 향기들과 잔잔한 바람.

그리고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까지.

격렬한 전투가 펼쳐질 거라 생각한 92층은 예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이곳은 온 차원의 신들이 모여 지내는 곳이라네. 아무런 위험도 없는 아름다운 장소지.”

“난 뭘 하면 되는 거지?”

“마음은 알겠다만, 우선 진정하게. 그건 저곳에 가면 이제부터 알게 되겠지. 하지만 큰일은 없을 거야. 그저 여기까지 올라온 도전자, 아니 예비 신을 맞이하는 층이나 다름없으니까.”

휴식 공간이라는 건가.

나는 허리춤에 매두었던 성검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천신은 더욱 밝은 미소를 띄운 채 어디론가로 나를 안내했다.

뜬금없이 여러 개의 문이 놓여있는 장소였다.

그는 그중에 제일 화려하고 큰 문을 손수 열더니 가벼운 발걸음으로 들어간다.

“환영하네, 신들의 휴식처에 온 것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