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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186화 (186/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86화

“……왕관을 만든다고?”

다른 자가 말했다면 개소리라며 무시했겠지만 저래 보여도 신이다.

분명 명확하고 간단한 방법을 제시해 주겠지.

특히나 한 대 더 얻어맞을 수 있는 이런 상황에서는.

[물론.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네의 허락이 필요해.]

뭔놈의 신이 인간에게 허락을 받네마네 하며 자빠져 있는 거지.

벌써부터 묘한 불안감이 생긴다.

‘뭐, 본인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놈들을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뭐지? 그 허락이란 건.”

[이건 <천신의 정수>이네. 표정을 보아하니 이미 잘 알고 있는 모양이지. 이미 이와 비슷한 것을 다섯 개나 얻지 않았나?]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나.

나는 그의 말에 인벤토리에 처박아 두었던 구슬 다섯개를 꺼냈다.

[마신의 정수[???]: 마신의 힘이 담긴 구슬. 아직 사용처를 알 수 없습니다.]

[정령신의 정수[???]: 정령신의 힘이 담긴 구슬. 아직 사용처를 알 수 없습니다.]

[요정수의 정수[???]: 요정수의 힘이 담긴 구슬. 아직 사용처를 알 수 없습니다.]

[수신의 정수[???]: 수신의 힘이 담긴 구슬. 아직 사용처를 알 수 없습니다.]

[거인신의 정수[???]: 거인신의 힘이 담긴 구슬. 아직 사용처를 알 수 없습니다.]

와르륵-

바닥에 나동그라진 각기 다른 색의 구슬들이 서로 부딪히며 맑은 소리를 낸다.

하나같이 각 신의 강력한 힘을 담고 있는 물건이다.

하지만 나사 빠진 설명도 그렇고, 내게는 여전히 정체조차 짐작할 수 없는 애물단지나 다름없었다.

[아니, 그 중요한걸 바닥에 그렇게……!]

크게 당황한 천신이 허리를 굽혀 허겁지겁 구슬들을 줍는다.

모양 빠지게 저게 뭐 하는 짓인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가만히 지켜보자 천신은 어느새 모은 구슬을 허공에 띄워 올린다.

[이건 그대가 막 굴릴 물건이 아니야! 좀 더 소중히 대하지 않고!]

“그래 봤자 쓸모도 없는 것을.”

[……신들에게 들은대로의 성격이군. 아니, 아닐세. 하아……내가 다 설명해 주겠네.]

작은 한숨과 함께 그가 손을 퉁기자 작은 의자가 나온다.

긴 이야기가 시작될 징조였다.

느슨한 자세로 걸터앉으니, 천신은 서서히 입을 뗀다.

[이건 신들이 각자의 힘을 나눠 담은 구슬이야. 그대에게 큰 힘이 되어 줄 물건이야. 자격을 갖춘 자를 신으로 만들어 줄 수도 있을 만큼 강력한 것이지.]

“……신으로 만들어 준다라.”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자연스레 그의 대화를 곱씹으며 덩달아 진지한 분위기로 임하게 되었다.

‘인간이 신이 되었다는 말은 전설로도 들어본 적 없는데.’

확실히 대단한 물건이다.

그리고 ‘아직 사용처를 알 수 없음.’따위로 설명을 때워버린 시스템이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신경 쓰지 않고 남을 주거나, 엉뚱한 장소에 처박아 두고 잊는다면 어쩌려고 그랬는지.

어이가 없어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래, 좋은 일이지. 분명 필멸자인 그대도 혹할 거라 생각했어.]

내 웃음을 오해한 천신은 싱글벙글한 낯짝으로 맞은편에 앉는다.

그리고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구슬을 내 손에 얹어 주었다.

딱 하나.

백색의 구슬을 제외한 채로.

[자, 이제 선택할 시간이야. 그러기 위해서는 하던 일을 마무리 해야겠지.]

가볍게 손가락을 퉁기자 때아닌 시스템 메시지가 울린다.

귓가를 때리는 듯한 경고음도 함께였다.

[오류! 신의 권능이 임무에 강제로 개입합니다.]

[<천왕의 왕좌를 이어받을 자>퀘스트를 더이상 진행할 수 없으므로 완료처리 됩니다.]

[<검은 탑>81층~90층 연계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다음 층으로 향하시겠습니까?]

반투명한 시스템 메시지 너머로 천신을 쳐다보았다.

꽤나 큰 권능을 사용했는지 금세 십 년은 늙어 버린 듯한 얼굴이었다.

[이제 탑 91층에 도전하겠군? 정말 놀라워. 여태껏 이만한 성취를 보인 자는 없었네.]

의미심장한 말이다.

분명 지구의 헌터들을 지칭하는 표현은 아니었다.

“설마 과거에도 이런 빌어먹을 탑이 있었다고?”

다그치듯 던진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러나 난감한 표정을 보니 말실수라도 한 모양.

그는 재빨리 눈앞에 내가 아직 갖지 못한 백색의 구슬을 들이민다.

[……그보다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이것이지. 원래라면 천계층을 통과한 즉시 그대에게 줘야 하지만, 아직 약간의 편법을 사용할 기회는 남아 있다네.]

화제를 돌리려는 셈인가.

하지만 그의 말대로 당장 중요한 일은 따로 있었다.

“그래서 내 허락을 구한다는 표현을 쓴 것이겠군.”

[맞아. 고를 기회를 주지. 이것으로 왕관을 제작하겠는가? 다만 천왕의 왕좌를 선택한다면 구슬은 영영 사라져 버려. 언젠가 다시 이걸 만들어 낼 만한 신력이 생기겠지만, 기약할 수 없을 만큼 긴 시간이 걸리겠지.]

나에게는 <왕의 길>퀘스트를 마무리하기위한 왕관은 필요하다.

당연히 고개를 끄덕이려는 그때.

그가 말한 ‘선택’이라는 단어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왕관을 택하지 않고 이 구슬들을 다 모은다면?”

[앞서 말한대로 ‘자격’을 부여받지 못해 신이 될 수는 없겠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른다.

항상 푸른색이었던 메시지창은 이제껏 보지 못한 강렬한 붉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해당 플레이어에게 두가지 선택권을 부여합니다.]

[1.<왕의 길>퀘스트를 마치고 전 차원계를 다스리는 왕이 될 수 있습니다. 해당 선택지를 고른 경우 자동적으로 전 지구의 <검은 탑> 퀘스트는 파괴됩니다. 단, 플레이어는 영원히 지구 차원에서 추방됩니다.]

[2.자격을 부여받지 못한 채 <초월자>로 <검은 탑>퀘스트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강렬한 색감만큼이나 그 내용의 무게도 무겁다.

99층까지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시스템 메시지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이었으니까.

1번의 선택지를 고르면 나는 6차원계에서 왕으로서 편안한 생활을 하게 될 터.

남은 지구의 운명쯤이야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이었다.

여태껏 하던 일을 모두 포기하고 도망치라.

시스템 메시지가 나를 유혹하듯 일렁인다.

‘도망? 이제 와서?’

왕관들은 자격, 구슬은 그에 합당하는 힘.

길었지만 간단명료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내가 선택할 것은 더더욱 간단했다.

“개소리 말라고 해.”

구슬을 덥썩 집어들었다.

손 안에는 성력이 넘실거린다.

천신은 텅 비어 버린 손바닥을 쳐다보며 얼떨떨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왜지? 전 차원을 아우르는 왕의 자리야. 신들조차 그대의 눈치를 볼 거야.]

그딴 놈들 눈치 보든 말든 아무런 상관없다.

그리고 지구에 두고 온 동료들을 버릴 만큼 미친놈도 아니었다.

[2번 선택 완료.]

[플레이어의 <초월자> 각성을 진행합니다.]

모여진 구슬들이 찬란한 빛을 낸다.

그것들은 하나씩 내 몸으로 흡수되기 시작한다.

“큭-!!!”

온몸이 타 들어가는 고통이 느껴진다.

여태껏 느껴보지도 못했던 강렬한 통증에 나도 모르게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입 안에는 피비린내가 가득했다.

‘이건…… 좀 힘든데.’

역시 가볍게 넘어갈 수는 없나.

신의 정수라고 불릴 만큼 강대한 기운이다.

하나만해도 태산을 앞에 둔 듯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여섯 개를 한꺼번에 받아들이려니 압도될 정도.

간신히 신음을 억누르며 핏줄을 타고 오르는

신력을 받아들였다.

곧 심장 부근에서 만난 기운들은 치열하게 부딪히며 더더욱 거센 고통을 선물한다.

마치 절대 섞이지 않겠다며 소리를 지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우웅-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순간도 서서히 끝날 기미가 보인다.

기름과 물처럼 뒤엉키던 각각의 힘이 섞이고 있었다.

‘이 짓도 두 번은 못하겠군.’

고통이 잦아드니 여유가 생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눈에 희뿌옇게 천신의

모습이 드러날 때였다.

우우웅-

갑자기 마치 물 속에 들어온 것 같이 온 주위가 먹먹해진다.

몸은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어느새 아주 깊숙한 심연의 바닥.

빛 한 점 없어 내 신체조차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디선가 희미하게 나를 부른다.

[……진.]

‘……이 목소리는……’

딱 한 번 들어봤던, 시스템과 비슷한 목소리.

워낙 강렬한 기억이기에 도저히 잊을 수는 없었다.

바로 귀환 후 랭커보드에 이름을 올리자마자 들었던 것이었다.

[……여기까지 왔군요. 그대라면 다른 인간들과 다를 줄 알았어요.]

노래를 하듯 중얼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괴로움과 슬픔이 가득 담긴 느낌이었다.

[<검은 탑>을 부탁해요…… 그리고 나의 가여운 아이도…… 부디 포기하지 말고 탑의 끝으로 와 줘요. 나는 계속 그곳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무언가 대답하려 했지만 꽉 닫힌 입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한껏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사이.

주변을 가득 메우던 검은 연기가 순식간에 흐려졌다.

[……도전자여?]

눈을 감았다 뜨니 천신의 당황스러운 얼굴이 나를 맞이한다.

조금의 시간도 흐르지 않은 듯 주변은 고요했다.

입가에 흐르고 있던 핏물을 거칠게 닦아 내니 그제서야 그는 안심한듯 작은 숨을 몰아쉰다.

[계속 말이 없어 걱정했다네. 뭘 그렇게 멍하니 생각하고 있던 건가? 분명 <초월자>가 되는 각성은 성공한듯 보였는데.]

“……웬 여자가 나를 부르더군. 그리고 나에게 탑의 끝으로 와 달라는 말을 했어.”

툭 던져진 말에 천신은 침묵한다.

웃는걸까, 우는걸까.

묘한 표정을 짓던 그가 가라앉은 눈으로 중얼거린다.

[……그래. <그녀>를 만난거군. 분명 힘들 텐데도 그대를 찾아올 만큼 절실한 상태겠고. 그렇다면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지.]

하얀 손이 휘적휘적 허공을 흐트린다.

그러자 천신의 기운으로 가득 찼던 공간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다음 층으로 바로 이동할 생각인가?]

“당연히.”

[그렇군. 아, 나가면 천왕은 좀 살려 주게나. 내게서 얻은 성력을 조금만 나눠 주면 될 거야. 그럼 잠시 뒤에 보세. 보상은 그때 하지.]

……잠시 뒤라고?

천신의 헛소리에 반박하려는 순간, 공간이 뒤틀린다.

어느새 나는 방금처럼 다 죽어 가는 천왕 앞에 서 있었다.

“……으으윽-”

어쩔 수 없나.

연신 괴로움에 몸을 떠는 그를 일으켜세웠다.

천신의 조언대로 약간의 성력을 불어넣자 상처는 순식간에 아문다.

그와 동시에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다고 생각한 아렐리아가 뛰어들어왔다.

“마왕님!!괜찮으세요?? 갑자기 마왕님의 기운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는데!!”

얼마나 급하게 왔는지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다.

밀려들어오는 성력에 인상을 와락 구긴 그녀가 나에게 다가온다.

그리고는 의아한 눈빛으로 나와 천왕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마왕님이 죽이신 거예요?”

“……아직 살아 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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