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84화
“정말로 지금 당장 시작하려나 본데…….”
밖으로 나가자마자 많은 시선이 쏟아진다.
그 짧은 시간동안 소문이 퍼진 듯하다.
높은 창문으로도 수많은 천족들이 날아오는걸 보니, 상당히 큰 구경거리로 여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더럽고 천한 비둘기 냄새가 진동하는군요.”
당연히 이 꼴을 그냥 보고 있기가 힘든 아렐리아가 연신 투덜거린다.
지나가다 누구 하나 걸리면 당장 본때를 보여 줄 기세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녀의 험악한 기류를 읽은 천족들은 우리를 멀찍이서만 구경하고 있었다.
“정말로 성검이 마왕을 인정했을까요?”
“설마…… 초대 천왕님 성격은 문헌으로도 유명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저 당당한 태도는 마음에 조금 걸리는군요.”
사방에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대충 무시한 채 나와 아렐리아는 정면만을 바라보며 긴 복도를 걸었다.
먼저 나가버린 가브리엘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고고한 척하는 천족들 사이에서 고운 백금발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자는 흔치 않을 테니.
“역시 불안한가 보네요.”
그 모습을 본 아렐리아가 진한 미소를 띄어 보인다.
그리고는 기척도 숨긴 채 살그머니 그녀에게로 다가간다.
그래 봤자 딱히 몸을 숨기고 있는 건 아니기에 고개만 돌려도 바로 보일 테지만, 애꿎은 입술만 잘근잘근 씹어대는 가브리엘에게는 논외였다.
툭-
“흐윽!?”
아렐리아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치자, 풍선에 바람빠지는 듯한 소리가 새어 나온다.
내내 웃고 있었지만 어딘가 냉막하게 느껴졌던 얼굴도 흐리멍텅하게 변해 있었다.
“푸……푸핫!!! 마왕님, 들으셨어요??”
“크흠!!…… 마계의 공작씩이나 되는 자가 유치하기 짝이 없군요! 어서 저를 따라오기나 하세요!”
벌게진 얼굴로 가브리엘이 휙 뒤를 돈다.
나 역시 피식 웃으며 그녀를 쫓아갔다.
복도 끄트머리쯤 오니, 예술품이 가득한 커다란 홀 하나가 나온다.
이미 그곳에는 수많은 천족이 와글거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아는 체를 해 오는 천족들 사이를 지나 단상 앞으로 걸어갔다.
“바쁘신 와중에 다들 감사합니다. 모두 아시겠지만 이 의식은 마왕, 아니 도전자를 위한 시험의 일부분입니다. 또한 오늘을 기점으로 성검의 소유자가 정해지겠지요.”
물론 그 소유자가 마왕은 아니겠지만.
굳이 뒷말을 하지 않아도 그녀의 숨겨진 말뜻이 들려오는 기분이다.
“오오, 저것이 초대 천왕님의 성검이군. 신께서 축복까지 내려 주셨다던데…… 과연 섬세한 모습이야.”
“마왕의 손에 있는 게 말이 안되지만…… 곧 우리의 품으로 돌아오겠죠.”
천족들이 자신만만하게 대화를 한다.
떠들썩하다 못해 귀환한 성검을 기념하는 축제라도 열 것처럼 보인다.
“다들 조용.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도전자여, 검을 이 제단에 올려놓으세요.”
화기애애하게 말을 나누던 구경꾼들이 순식간에 고요해진다.
나는 적의와 호기심이 뒤얽힌 시선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네가 해야 할 말은 잘 알겠지.”
헛소리하면 조각내 버린다.
작게 중얼거리며 성검을 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에우로델이 절대 문제가 아니라는 듯 작게 진동을 한다.
이정도면 더 이상의 협박은 필요 없겠지.
가벼운 마음으로 검을 제단 위에 올려놓았다.
[3단계 이상의 인정을 받아야합니다. *주의: 1~2단계 인정도 상태일시 퀘스트에서 실패합니다. 단, <길잡이와의 내기>를 진행 중이므로 성검 반납 시 다음 단계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3~5단계: 임무 성공, 6~8단계: <천계를 수호하는 자>칭호와 대천사에 준하는 명예직 획득, 9단계: ??? 획득.]
임무 성공은 당연한 말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6단계 이상의 보상들이 상당히 거슬린다.
‘7명밖에 없는 대천사와 비견될 만한 명예직이라…….’
과연 천계의 보상답게 쓸모없기 짝이 없다.
명예 따위가 밥 먹여 주지도 않는데, 고작 명예직이라니.
슬쩍 미간을 찌푸리고 있을쯤.
여태껏 보지 못했던 눈부신 빛이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그대로 성검을 감싸안는다.
꿀꺽, 누군가가 침삼키는 소리가 들려올 만큼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을 때였다.
[큼큼. 들리는가.]
“오오오!!! 초대 천왕님!!!”
“만 명의 마족을 베었다는 천왕님의 영혼이 아직도 검을 수호하며 남아 있다니! 역시 신의 사랑을 받는 분이야!”
역시나 오해할 수밖에 없는 건가.
하기야, 영혼에 목소리가 있지는 않다.
지금도 귀보다는 머릿속을 울리는 느낌으로 그의 의사가 전달되고 있으니, 안에 들어있는 영혼이 천왕이던 마왕이던 구분할 방도가 없을 것이다.
“천왕이시여…… 후대 천족들이 인사올립니다. 고귀한 몸을 희생하시어 간악한 마계의 술수에서 우리를 지켜내 주신 바, 항상 감사하며 언젠가 천계로 돌아올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브리엘이 감동한 목소리로 헛소리를 지껄인다.
그 뒤로도 온갖 미사여구가 섞인 장문의 말이 튀어나왔지만 역시나 지겨운 찬양에 가까웠다.
[그만, 그만!! 그래서 날 이렇게 부른 이유가 무엇이지?]
얌전히 듣던 에우로델도 못참겠는지 윽박을 질렀다.
그제서야 가브리엘은 기죽은 듯 본격적인 임무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았다.
[흐음. 성검의 소유주를 가려내기 위함이라.]
천연덕스러운 연기솜씨가 일품이다.
이미 다 알고 있지만 신중하게 고민하는 듯한 말투에 나조차 껌뻑 넘어갈 정도였다.
“예. 만약 가진 자가 탐탁치 않다 여기실 경우…….”
가브리엘의 날카로운 눈빛이 나를 향해 쏘아진다.
그래 봤자 가소로운 수준이라,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질끈 입술을 깨문 그녀가 다시 한 글자씩 힘을 담아 말을 이어한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검을 돌려받을 생각입니다. 아, 오해는 마세요. 오로지 천왕님의 의지에 달려있는 일입니다.”
[그렇단 말이지……간단하군.]
심드렁한 성검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분위기는 이미 절정에 달한 상태.
다음말을 기다리는 천족들의 긴장감이 공기에도 묻어난다.
[나는 소유주를 이미 주인으로 받아들였네.]
이게 지금 꿈인지 생시인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구경꾼들이 작은 신음조차 내뱉지 못한다.
제일 먼저 침묵을 깨트린 자는 가브리엘이었다.
“잠깐, 뭐라고 하셨습니까?? 주인으로 받아들였다니요!?”
[귓구멍, 아니 머리가 꽉 막힌 건가. 나는 성검의 소유자를 주인으로 받아들였다 말했네.]
“이자는 마왕입니다!!! 마계의 정점에 오른 사악한 자라고요!!”
[그게 뭐 어때서?]
“……진심이십니까?”
“내가 지금 뭘 듣고 있는 거야……??”
누군가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린다.
그를 시작으로 주위의 천족들은 하나같이 울분을 토하기 시작한다.
[인간이면 어떻고 마왕이면 어떻단말인가. 그대들이 겪지 못해서 그렇지, 그는 아주 훌륭한 왕이야! 특히나 강대한 힘은 어찌나 대단한지 손짓 한번에 산이 무너지고 강이 갈라지고-]
그러거나 말거나, 에우로델은 나를 옹호하는 말을 계속해서 이어 말했다.
‘더 지껄이다가는 의심할 수도 있겠는데.’
슬슬 말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내 머리를 강타했다.
[그러니 나는 평생토록 마왕의 수하, 아니 발닦개로 살아가겠네!!!!]
……미친.
오랜만에 밀려들어오는 당혹감에 내내 끼고 있던 팔짱을 나도 모르게 풀어 버렸다.
맡겨만 달라더니 이럴 작정이었나.
주위는 이제 적막이 흐르다 못해 차갑게 얼어붙어버렸다.
하지만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는 성검은 뿌듯해하며 작은 진동을 울리고 있었다.
[성검의 발닦개 선언!]
[9단계: 주인을 넘어 숨어있던 10단계 인정 효과가 발동됩니다.]
[10단계: 노예의 맹세를 받아냈습니다. 9단계 효과인 <천계의 영웅>과 함께 다음 천왕 자리를 계승받을 수 있는 자격이 생깁니다.]
[<천왕의 시험>퀘스트는 이제부터 <천왕의 왕좌를 이어받을 자>로 변경됩니다.]
당황과는 별개로 만족스러운 시스템 메시지가 줄줄이 이어진다.
씨익 웃으며 여전히 열변을 토하고 있는 성검을 다시 회수했다.
“천왕…… 초대 천왕의 영혼이 어떻게…… 억!!”
“미카엘 님!! 정신차리세요!!”
천족 몇은 결국 거품을 물고 쓰러진다.
버티고 있는 자들도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지탱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 천계를 침략하면 딱 좋았을 텐데요. 그야말로 빈집털이나 다름없을 테니까요.”
아렐리아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신다.
성검도 같은 의견인지 계속 불만을 중얼거린다.
[왜 벌써 그만두나? 아직 온 세상을 지배할 자라던지 다른 말은 꺼내지도 못했는데.]
“이만하면 충분해. 더 했다가는 천계에서 단체로 장례식 치르게 될지도 모르겠고.”
나는 주저앉아 버린 가브리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는 성검의 폭탄발언에서 전혀 헤어나오지 못한 상태였다.
“친구나 주인도 아니고…… 발…… 닦개……?”
“이봐, 혼잣말은 오늘 저녁에 일기장에나 쓰도록 하고, 길잡이로서 해야 할 일이 남지 않았나.”
가볍게 손을 튕겨 소리를 내자 가브리엘이 천천히 나를 올려다본다.
그새 울먹였는지 얼굴에는 말라붙은 눈물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해야 할 일……이라면?”
“그래. 나는 이제 천왕의 자리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으니, 그에게 안내해.”
“……하아.”
그녀는 죽고 싶다는 얼굴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은 우리를 뒷문으로 안내했다.
이 상황에서도 나름 길잡이의 역할은 충실하다고 생각하는데, 한참을 걷던 가브리엘이 갑자기 고개를 휙 돌린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죠? 아무리 당신이 마족이 아닌 인간이라지만, 천왕께서 그토록 싫어하시던 마왕을 인정할 리가 없어요!”
“글쎄. 뭐, 나와 같이 지낸 동안 느끼는 바가 있었을지도 모르지.”
“……마왕을 따르게 될 정도로의 무언가라.”
잠시 뭔가를 골똘히 고민하던 그녀가 다시 뒤를 돌아 가던 길을 마저 향한다.
이윽고 눈 앞에는 그녀가 말한대로 천왕이 있다던 신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토록 강한 성력이라니…… 죄송해요, 마왕님. 아무래도 저는 여기까지는 못 들어갈 것 같아요.”
걷는 내내 낯빛이 좋지 않던 아렐리아가 결국 포기를 선언한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가브리엘은 그 모습조차 생각 많은 얼굴로 바라보더니 신전의 문을 열었다.
“저는 여기까지예요. 안에는 천왕님이 기도를 드리고 있을 거예요.”
열린 문으로 몸을 움직이려는 그때였다.
갑자기 뒤에 있던 가브리엘이 나를 향해 조금 다가온다.
“잠깐!! 마왕이여, 그대는 탑에 오르는 자이니 이곳을 떠나면 돌아오지 않겠죠?”
“아마도.”
“……혹시, 여유가 된다면 다시 천계에 방문해 주세요.”
이게 무슨 헛소리지.
목적을 알아차릴 수 없는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저 싸움밖에 모르던 아렐리아와 천왕이 따르는 당신이 궁금해졌을 뿐이에요. 그럼 전 이만.”
이상한 말을 끝으로 가브리엘이 어디론가 뛰어간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별걸 다 궁금해하는군.’
어이없는 마음을 뒤로 한 채 백색의 신전 내부로 향했다.
보기보다는 안이 좁은지 얼마 가지 않아 커다란 신상 앞에 꿇어 앉아 있는 천족 하나가 보인다.
하지만 분명 혼자 있다고 들었던 것과는 다르게, 그 옆에는 다른 자도 함께였다.
그것도 익히 얼굴을 아는 자.
“……서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