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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175화 (175/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75화

확실히 갑작스럽다.

국내 길드를 한 곳으로 결집시킨 연합의 대표라니.

듣기만 해도 귀찮은 일이 잔뜩 생길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분명 나에게 이득이다.’

특히나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차라리 헌터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는 게 나았다.

더구나 자진해서 모였으니 명분도 나에게 있다.

이보다 더 유리할 수는 없었다.

“예상치 못한 사항이라 당혹스러우실 만합니다만, 길드 연합의 대표 자리를 저희 중에서 고르는 건 형평성이나 균형으로 따졌을 때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 헌터님이라면 다르죠.”

차은진이 황급히 긴 설명을 늘어놓는다.

내가 심하게 고민하는 것처럼 비춰진 듯했다.

“진 헌터님은 그 어떤 길드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통계적으로 95퍼센트, 특히나 랭커들은 전부 소속이 있다는걸 생각하면 이례적이죠. 그야말로 완벽한 중립의 위치에 서 계신 겁니다.”

말이 끝나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그중에는 절대 긍정해서는 안 되는 그림자길드가 섞여 있었다.

백 번 양보해서 아레스까지는 강준하와의 개인적인 친분이라며 우길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내 뒤를 따른다며 설립한 길드와 나의 관계가 완벽한 중립관계에 놓일 수 있는 건지.

은근슬쩍 물타기를 시도하는 이도윤의 뻔뻔한 모습에 기가 찬다.

“그리고…… 힘이 전부인 헌터계에서 콧대 높은 길드들을 모조리 휘어잡을 수 있는 헌터는 오직 한 명밖에 없겠죠.”

가장 쎈 놈이 필요하다.

결국 장황하게 설명해 봤자 제일 큰 이유는 하나였다.

하긴, 애써 콧대 높다 돌려 말했지만 헌터놈들 거친 건 나도 잘 아는 바.

그런 개차반들을 이끌려면 강력한 자가 필요했다.

그것도 아무도 이견 없이 받아들일 만한,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내가.

“물론 몇 번 얼굴만 내비치는 것 외에는 대표로 활동할 필요는 없으십니다. <검은 탑> 공략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른바 명예직이라는거군.

이만하면 더 들을 필요도 없다.

나는 그들을 쭉 훑어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까짓거 하지. 그 연합 대표라는 것.”

“정말이십니까?? 감사합니다!”

“와, 솔직히 형님이라면 당장 욕하면서 엎어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요…….”

박민호는 기쁜 와중에도 어리둥절한 기색이다.

그와중에 나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돋보였다.

“맞아요. 좀 놀랍네요. 그렇지 않나요, 아레스 길드장님?”

다른 자들도 반응은 비슷했다.

보아하니 설득만 한세월 걸릴 거라 예상한 듯하다.

함께한 시간도 꽤 되다 보니 이제는 모두 내 성격을 잘 파악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는 진 님이 어떤 선택을 하셔도 따랐을 겁니다.”

“흐음? 재미없긴.”

제일 침착한 건 역시 강준하인가.

저놈은 내가 맨손으로 드래곤 레어를 쳐들어가도 그러십시오, 할 놈이었으니까.

벌컥-

“어어? 분위기를 보니 좋게 마무리된 것 같군요?”

때마침 자유 길드의 헌터들이 들어온다.

부길드장인 김세하는 여전히 생글거리는 낯짝으로 자리에 앉는다.

그 옆에는 입술이 삐죽 튀어나온 홍현민도 함께였다.

누가 봐도 불만 가득한 모습이다.

하지만 잘 설득된 건지 끝끝내 입밖으로 헛소리를 내지르진 않았다.

“……이쒸…….”

“아이고, 길드장님. 좋은 날이잖아요? 웃으세요.”

모두가, 아니 한 명을 제외하고 들떠 있는 와중.

차은진이 박수를 치더니 좌중의 시선을 불러모은다.

“자자, 기쁜 건 알겠지만 이제 마무리 짓고 각자 길드로 돌아가시죠. 하루라도 빨리 세상에 <대한>의 등장을 알리려면,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일해야 하니까요.”

“……그렇죠. 당분간은 밤샘 야근하게 생겼네요.”

그들은 한숨을 푹푹 쉬며 하나둘 자리를 뜰 준비를 한다.

하지만 아직 내가 전할 말은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다들 앉아. 간단하게나마 나도 할 말이 있으니.”

“……예? 아, 네!!”

헌터들이 엉거주춤 자리에 앉는다.

내가 보통 이런 식으로 각 잡고 말한 적은 없었기에, 모두들 바짝 긴장한 기색이었다.

‘이게 뭐라고 쫄아 붙기는.’

마치 혼나기 직전인 유치원생 같다.

밖에서는 떵떵거리고 다니는 헌터들의 지금 꼴이 퍽 우습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배어 나온다.

그러자 그들은 더욱 놀라 굼벵이마냥 움츠러들었다.

“헌터들을 위협하는 세력이 점점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는 건 다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니 이렇게 연합의 형태로 뭉쳐서 대항하려는 거겠고.”

순간 잔뜩 기 죽어 있던 헌터들의 눈빛이 바뀐다.

당장이라도 누구 하나 찢어 죽일 듯한 기세였다.

그간 길드들이 된통 당한 게 얼마나 많은지 나도 잘 안다.

이들은 아직 갚아야 할 빚을 청산하지 못한 상태였다.

“물론 복수도 염두해 두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너희는 그들의 주인에게 절대 이길 수 없어.”

나조차도 렌은 승패를 확신할 수 없는 적이다.

랭커들이 떼거지로 덤벼 봤자 소용없다.

헌터들을 없애고 싶어 안달난 그에게는 호박이 넝쿨째 굴러왔다며 기뻐할 일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예상했던 말이 튀어나온다.

당연히 죽음정도는 각오했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갑자기 나는 헌터계에 우스갯소리로 떠도는 말을 떠올렸다.

‘랭크와 자존심은 비례한다.’

이쯤 되면 농담이 아니라 과학으로 검증된 논문에 나오는 문장 같은 기분이다.

“뭐, 맞는 말이야.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필요까지는 없지.”

“예? 그 말씀은…….”

“복수는 내가 직접 한다. 너희는 내가 떠난 뒤의 지구를 맡아라.”

확실히 전보다는 렌이 대형 사고를 치는 빈도수는 줄었다.

그렇다고 지구는 평화롭겠거니, 하면서 안심할 수는 없는 일.

내가 탑을 등반하는 사이에 물밑으로 활약해줄 ‘내 사람’이 필요했다.

‘강준하와 박민호, 이도윤만으로는 고생 꽤나 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 타이밍에 길드 연합이라니.

변한 상황이 너무나도 달갑다.

하지만 헌터들은 내 말이 끝나자마자 작게 침음을 흘린다.

“……하지만 진 헌터님께만 오롯이 맡기기에는 너무 죄송해서…….”

“별 잡생각들을 다 하는군.”

이제 와서 양심 챙기는 척하기는.

그리고 어디까지나 이건 ‘거래’다.

나는 <검은 탑>을, 헌터들은 <지구>를.

각자의 영역에서 최대한 집중하기 위한 효율적인 분업이었다.

“그나저나 떠난다니요?”

“그자가 <검은 탑> 어딘가의 층에 있는 듯하더군.”

서채아 이야기까지는 굳이 꺼내지 않았다.

이미 침울해 보이는 나비 길드의 부길드장을 걱정하기보다는, 이후에 과열될 상황을 막기 위함이었다.

다만 문제는 어느 정도 정보를 알고 있는 차은진인데…….

“그렇군요. 말씀하시는걸 보니 혼자 가실 생각이신가요?”

태도를 보니 그녀에 대해서는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덕분에 귀찮은 일은 덜었다 싶어, 나는 순순히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그래. <검은 탑>은 나와 내 권속들만 함께할 생각이다.”

“……예!? 물론 형님이 강하신 건 알지만, 어떤 위험이 도사릴지도 모르는 공간인데……!!!”

“말도 안 됩니다!!!”

역시나 반응이 뜨겁다.

모두들 부정적인 말을 하며 나를 뜯어말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까짓 만류에 흔들릴 내가 아니었다.

바로 입을 다물고 날카롭게 주위를 쳐다보았다.

그제서야 헌터들은 허튼소리가 아니었음을 깨닫고, 하나같이 멍청한 얼굴로 서로를 돌아본다.

“……저희가 미덥지 않으신겁니까?”

의외로 제일 먼저 반응한 건 강준하였다.

잔뜩 동요한 그의 눈동자가 쉴 새 없이 잘게 떨린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도는 뻔했다.

“믿을 수 없으면 나의 빈자리를 맡기지도 않았겠지.”

“……그렇습니까.”

말없이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제서야 강준하의 울 것 같은 얼굴이 펴졌다.

“자자, 어차피 형님이 하고자 하는 건 절대 못 막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진행하죠.”

재빨리 박민호가 흐트러진 분위기를 다잡는다.

그의 쾌활한 말투에 다른 자들도 퍼뜩 정신을 차리고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표라던가 행사는 최소한으로 진행하죠. 우선 내실을 다지는 것부터.”

“그런 허례허식까지 챙기다간…….”

길드장들은 한뜻을 모으고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곧 간단한 작별 인사가 이어지고 모두가 자리를 떠난 뒤.

마지막으로 남은 박신우가 갓 죽은 고등어의 눈깔로 나를 쳐다본다.

“……혹시 <검은 탑>은 당장 간다 하실 셈이십니까.”

“당연히.”

후우.

또다시 온갖 뒤처리를 해야 하는 박신우의 한숨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이틀 뒤.

그동안 나는 수많은 이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지구로 귀환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이만한 인연을 쌓았던건지.

중간쯤부터는 살짝 지칠 정도였다.

“슬슬 출발해야겠군.”

최대한 빠른 준비 덕분에 나는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치고 <검은 탑> 앞에 설 수 있었다.

평소라면 온갖 언론매체들로 인산인해여야 정상이지만 주변은 한산하다.

협회와 길드들이 작정하고 정보를 통제한 탓이었다.

“……부디 건강히 다녀오십시오, 용병왕……아니, 연합 대표님.”

별별 왕의 자리는 다했어도 대표자리는 처음인데.

익숙하지 않은 호칭이 낯간지럽다.

그 뒤에도 각 길드에서 온 자들이 순서대로 인사를 한다.

심드렁하게 대충 대꾸해 주니 남은 건 오랜 시간 같이 지내왔던 동료들이었다.

“형니임…… 부디 무사히 돌아오세요…….”

“저도 민호와 함께 할 테니 걱정 마세요. 특히나 크레아시론 님께 맡기신 ‘그 구역’은 제가 직접 처리할 생각입니다.”

“……저도 돕겠습니다. 진 님, 무리하지 마시고 언제든지 돌아오십시오.”

목적을 이룰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터.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동료들의 표정이 어둡다.

벌써부터 분위기는 초상집과 비슷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가야할 때.

탑에서 얼마나 발이 묶일지도 모르니 더이상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 죽지 마라.”

긴 말은 필요도, 소용도 없었다.

나는 그 무엇보다 진심을 담긴 말 한마디를 내뱉고 등을 돌렸다.

끼익-

드디어 <검은 탑>의 문이 열린다.

눈 앞은 여전히 시커먼 무저갱이 나를 반긴다.

나는 주저없이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검은 탑> 71층에 입장하셨습니다.]

[71층부터 80층까지 연계 퀘스트 <위험에 빠진 거인족>이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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