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72화
“……마왕님, 이건 분명…….”
아렐리아는 입술을 깨물며 드래곤을 노려본다.
녀석은 섬뜩한 기세로 주변의 마나를 끌어모으고 있었다.
그의 곁에서 맹렬하게 검을 휘두르던 서채아도 어느새 우리 주변으로 합류한다.
“더이상 시간을 주면 안 돼요. 지금 당장 공격해야 해요!”
그녀는 조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드래곤의 행동은 누가 봐도 뭘 할지 뻔했다.
“브레스를 준비하려나보군.”
“이건 저조차도 쉽게 막기 힘들어요. 어떻게 할까요 마왕님?”
어떻게 하긴.
지금은 도망조차 칠 수 없다.
이미 주변은 놈이 용언으로 만들어 놓은 결계가 붉게 빛나고 있었다.
‘텔레포트는커녕…….’
[<요정계의 문>[L]: 요정왕의 권한으로 요정계로 향하는 차원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현재 사용불가]
내가 가진 차원문들도 지금은 사용이 불가능하다.
과연 용언의 힘은 대단했다.
하지만 이미 몇 차례 그 말도 안되는 능력을 목격했기에 감탄이 나오진 않는다.
그야말로 없는 것도 만들어 내는 권능이라 조금 탐이 날 뿐.
나는 입맛을 다시며 방금까지 떠올린 계획을 정리했다.
“일단은 가만히 두지.”
“……우선 보호 마법부터 시전할게요.”
나를 가만히 살피던 아렐리아가 마법 몇 개를 사용한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궁금해 물어볼 법도 하건만, 그녀는 딱히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눈빛에는 신뢰가 넘쳐난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다 믿는다는 느낌이었다.
‘이러다 드래곤의 입 속에 같이 뛰어들자 해도 순순히 받아들이겠군.’
물론 함께하진 않고 나만 뛰어들 거지만.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눌러 삼킨 채, 나는 마무리를 향해 가는 놈의 모습을 주시했다.
[스킬: 강렬한 직감이 발동합니다.-드래곤의 브레스(매우 위협적)-]
시스템 메시지의 경고음이 들려온다.
하지만 스킬이 아니어도 이미 느껴지는 기세가 상당했다.
아직 닫혀 있는 주둥이에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의 마나가 휘몰아친다.
‘이게 드래곤의 브레스인가.’
오싹하다.
온몸의 솜털까지 곤두서는 기분이다.
동시에 입꼬리에는 찢어질 듯한 웃음이 걸린다.
오랜만에 끓어오르는 투지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애써 흥분을 참으며 터져 나오기 직전인 브레스를 주시했다.
확실히 드래곤이 가진 능력 중 가장 강력하다 일컬어질 만한 힘이다.
웬만한 생명체라면 당장 무릎을 꿇고 닥쳐올 죽음을 순순히 기다릴 정도였다.
우우웅-
브레스를 피할 수 있는 사각지대 따윈 없다.
스치는 것조차 버틸 수 없을 테니까.
아렐리아는 온 마력으로 할 수 있는 최강의 보호 마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미스릴도 녹이는 브레스를 몇 초나 버틸 수 있을까.
그녀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맴돈다.
“저도 보조할게요.”
서채아는 그녀의 곁에 서서 순수한 마나로 이루어진 보호막을 함께 생성한다.
내내 서채아를 탐탁치 않아 하던 아렐리아는 함께 전투하면서 조금 정이 들었는지, 의외로 순순히 도움을 받아들였다.
[그 하찮은 방어 마법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느냐??]
드래곤은 한껏 기고만장한 태도로 서서히 아가리를 벌린다.
안에는 이미 붉다 못해 검디검은 화염 덩어리가 튀어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놈이 힘껏 숨을 들이쉬는 순간.
나는 재빨리 드래곤의 코앞으로 뛰어들었다.
파앗-
“마왕님!!! 위험해요!!! <다크 배리어>!!”
“진 헌터님!!!”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양쪽에서 들린다.
아렐리아는 그 와중에도 허겁지겁 내게 보호 마법을 걸었다.
하지만 그 어떤 고위 마법도 드래곤의 힘 앞에서는 무용지물일터.
그녀 역시 그걸 잘 아는지, 순간 마주친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절망이 엿보였다.
[멍청한 녀석……!!!!]
‘누가 누구 보고 멍청하다는 건지.’
내 동료조차 저 모양이니, 드래곤 놈의 반응은 말할 필요도 없다.
희번뜩한 붉은 눈을 보아하니 이미 다 이긴 싸움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아무런 의심도 가지지 않다니.
제 앞날도 모르고 희희낙락하는 놈을 보니 자업자득이라는 소리밖에 튀어나오지 않는다.
콰아아아아아-!!!!!
놈을 마음속으로 한껏 비웃는 와중.
드래곤의 브레스가 힘껏 뿜어져 나온다.
거친 화염은 세상을 멸망시킬 듯 휘몰아친다.
그리고 불꽃이 바로 지척에 도달했을 때.
나는 진득한 미소와 함께 스킬 하나를 시전했다.
“<요정수의 가호>!”
<요정수의 가호[L]: 일주일에 한번, 요정수의 위대한 가호를 부여받을 수 있습니다. 1시간동안 공격력 +100% 방어력 +100% 상승,
발동 즉시 1회에 한해 최초로 받는 공격을 상대방에게 돌려줍니다.>
콰아앙!!!!!!!!!!
[크아아악!!!!!!!!!!!!!!!!!!]
이제껏 듣지 못한 굉음이 들린다.
그러나 놈이 고통에 울부짖는 소리는 폭발음을 뒤덮을 만큼 컸다.
화르륵-
검은 화염은 끝도 없이 타 들어간다.
그야말로 지옥불과도 비슷한 형상이었다.
그걸 그대로 뒤집어쓴 녀석의 주둥이는 이미 잔뜩 뭉개진 상태.
고열에 녹은 살점은 마치 액체처럼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아!!”
아렐리아는 크게 당황하다 무언가 깨달은 표정으로 나를 돌아본다.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나는 주둥이를 부여잡고 있는 드래곤에게 훌쩍 뛰어갔다.
“역시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입 안쪽까지 단단하지는 않은 건가.”
[크으으윽, 큭!!!!!!]
비아냥거리는 나를 향해 놈은 분노 어린 시선을 던진다.
하지만 미친듯이 몰려오는 고통에 삼켜져, 천천히 다가오는 나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순순히 정보를 불지는 않겠군.”
혀를 깨물고 죽었으면 죽었지, 나에게 이득이 되는 일은 하지 않을 터.
남은 건 놈을 골수까지 빼먹는 일이었다.
‘비늘과 피는 장비로 만들고, 뼈는…… 크레아시론에게 던져 줘야겠군. 본드래곤이라, 괜찮은 물건 하나 나오겠군.’
나조차도 살아있는 드래곤을 잡는 건 처음이다.
어디 역사서에 보면 개나 소나 드래곤 슬레이어던데, 내가 있는 아스티란에서도 드래곤은커녕 그 흔적조차 찾기 힘들었다.
[미천한 인…… 간놈…… 내가 이리 쉽게 죽을 것 같으…… 크억……]
녀석은 온몸을 비틀면서도 끊임없이 나에 대한 저주를 퍼붓는다.
그 와중에 입을 놀릴 만한 혀는 멀쩡한 듯했다.
“곧 죽을 놈이 시끄럽긴.”
나는 심장 부분의 비늘을 떼어 내기 위해 검을 들었다.
원래라면 가장 단단한 부분이니 꽤나 귀찮은 일이었겠지만, 지금처럼 무방비한 상태에서는 그저 시간만 들인다면 해결될 문제였다.
“<극의의 일격>!!”
까앙-!!
비늘과 맞닿은 검이 튕겨져 나온다.
저릿한 손바닥 탓에 나는 미간을 잔뜩 구겼다.
‘과연 드래곤.’
다른 건 몰라도 내구성만은 대단하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역시 스킬 한두 번으로는 어림도 없을 터.
적어도 십 분은 끊임없이 이 짓거리를 반복해야 할 듯했다.
[……이렇게 된 이상.]
갑자기 놈은 극도로 차분한 목소리가 들린다.
누워있던 드래곤의 커다란 눈이 데굴거리며 굴러간다.
나를 향한 시선에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끊임없이 본인을 좀먹던 고통마저 잊은 듯한 느낌이었다.
‘설마 뭔가 하려 하는 건가?’
데굴, 다시 한번 눈알이 굴러간다.
동시에 알 수 없는 기운이 서서히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간다.
마나보다는 좀 더 강력한 힘.
무려 용언이었다.
“이자식이…….”
푹!!!!
[크아아악!!!!]
재수없게 나를 꼬나보던 눈알을 찌르자, 놈은 처절한 비명소리를 지른다.
그제서야 느껴지던 기운은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우우웅-
갑자기 붉은 빛줄기가 갈라져 나온다.
마치 생명이 있는것마냥 꿈틀거리는 게, 보기만 해도 기분 잡치기 딱 좋았다.
나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힘을 가볍게 몸을 뒤틀어 피했다.
“고작 이런 짓을 하려고…….”
위협적이지만, 느리다.
나름대로 회심의 일격이라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던가.
아직도 박혀 있는 검을 뽑으려는데, 놈의 상처입은 눈알이 끈질기게도 다시 움직인다.
하지만 이번 시선의 방향은 내가 아니었다.
“꺄아아악!!!!!!!!”
갑자기 어디선가 익숙한 비명소리가 들린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아렐리아가 붉은 빛줄기에 휘감긴 채, 그보다 더 시뻘건 피에 흠뻑 젖어 있었다.
“젠장, 아렐리아!!”
[큭…… 크크크크크……]
그녀를 향해 재빨리 뛰어갔다.
급한대로 맨손에 마력을 휘감아 아렐리아를 구속하는 기운을 후려쳤다.
하지만 용언으로 만들어진 힘은 약간의 상처만 생길 뿐,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는다.
분명 이걸 찢어 내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 힘……아렐리아의 피를 끊임없이 흡수하고 있는 건가.’
이정도 속도라면 빠른 시간내에 아렐리아는 미라처럼 말라붙을 터.
시간이 없다.
더욱 강한 마나를 끌어올려 빛줄기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순간 머릿속에 퍼뜩 지나가는 생각 하나.
‘잠깐, 내가 분명 여기에 발목 잡힐걸 알았다는 것은…….’
함정이다.
녀석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퍼억-!
순간, 무언가를 후려치는 소리가 들린다.
자세히 보자 허물어지는 인영은 서채아였다.
힘없이 늘어진걸 보니 단숨에 기절한 상태로 보인다.
[크억!!!]
연달아 사용해서는 안될 힘을 쓴 탓에, 놈의 붉은 비늘은 <타락>으로 검게 물든다.
이제는 얼핏 보면 블랙 드래곤이라 생각될 정도.
그 와중에도 놈은 천천히 허공을 찢어낸다.
곧 그곳에는 작은 차원의 틈이 생겨났다.
서채아를 챙겨 도망가려는 계획인 것이다.
당장 쫓아가 놈의 머리통을 잡아채려는 그때.
“끄흑…….”
“……X발.”
굳게 닫힌 잇새로 눌러 삼킨 비명이 튀어나온다.
이미 아렐리아의 얼굴은 눈물 범벅이었다.
덜덜 흔들리는 라벤더색 눈동자가 나를 쳐다본다.
가라고, 당장 가서 서채아를 구해 내라고.
말하지 않아도 그녀의 생각이 읽힌다.
나는 피가 나올 정도로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원래라면 렌이 저토록 손에 넣으려는 서채아를 우선시했겠지만.’
긴 생각은 필요치 않았다.
버리지 않을 것이다.
과거처럼 목표에 미쳐 동료를 죽이는 짓 따위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의 희생은 이제 지긋지긋했다.
“끅…… 안…… 돼요, 마왕……님…….”
절망적인 시선이 내리박힌다.
손등에는 투명한 눈물 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눈을 마주치자, 그녀는 갑자기 입가를 파들파들 떨더니 웃는 시늉을 한다.
이와중에도 괜찮은 척을 하는걸까.
잠이라도 자고 있으라고 말해 주려는데, 아렐리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콱!!
“아렐리아!!!!!”
그녀의 입가에 시뻘건 핏줄기가 뚝뚝 떨어진다.
억지로 입을 열어보자마자 나는 아렐리아가 혀를 깨물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늦지는 않은 상황.
인벤토리에서 다급히 최상급 포션 몇 개를 꺼냈다.
‘이러면 너를 포기하고 갈 거라 생각했나.’
나는 쓰게 웃으며 천천히 닫혀 가는 차원문을 돌아보았다.
얼핏 보인 공간의 내부는 찬란한 별로 가득하다.
애써 그곳에서 고개를 돌린 채, 나는 묵묵히 하던 일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