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71화
이제야 내 정체를 눈치챈 건가.
한껏 시건방을 떨던 녀석의 태도가 크게 바뀐다.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적의와 분노가 일렁인다.
“이제 보니 얼굴을 조잡한 마법으로 바꾼 거군.”
그러고보니 나는 아직도 외모를 변화시키는 아티팩트를 착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력 또한 여태껏 드러나지 않게 잘 감춰 놓은 상태.
아무리 드래곤이라지만 나의 본래 모습을 바로 간파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서채아는 어떻게 한눈에 날 알아본 거지?’
저 오만한 드래곤도 깜빡 속아 버릴 정도로 정밀한 변장이다.
고작 SS랭크인 헌터는 절대 눈치채지 못해야 정상이었다.
“……진 헌터님?”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서채아를 쳐다보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온다.
다른 꿍꿍이는 조금도 없어 보이는 천진난만한 눈빛도 함께였다.
하긴,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나는 다시금 심각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드래곤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래,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저런 재앙 같은 인간이 둘이나 있을 리가.”
그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나를 쏘아본다.
평소라면 눈깔라며 고함을 지르겠지만 가장 거슬리는 건 말투였다.
“멀쩡한 사람을 재앙 취급하고 X랄이야.”
미간을 잔뜩 구긴 채 꺼내 놓은 검을 힘껏 움켜쥐었다.
검신 전체에는 이미 시퍼런 검기가 폭발할 듯 일렁거린다.
긴장한 드래곤이 무언가 마법을 영창하기 직전.
나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써겅-!!!!
“큭!!!”
검 끝이 아슬아슬하게 스친다.
기습에 가까운 공격이었다.
아무리 드래곤이라지만 완전히 피하는 건 무리였을 터.
그의 목덜미에는 핏물이 스물스물 배어났다.
마나를 진득이 담은 피냄새는 온 공간을 물들일 듯 퍼져 나간다.
“건방진 인간놈이!! <헬파이어>!!!”
코 앞에서 시커먼 불덩이가 튀어나온다.
하지만 느리다.
고개를 가볍게 비틀어 꺾었다.
콰앙!!!
강력한 마법에 애먼 바위가 산산조각 난다.
뜨거운 열기는 순식간에 대지를 감싼다.
“<레인 캐스팅>!”
부랴부랴 아렐리아가 불을 진압한다.
그리고는 다시 초조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마왕님…….”
그건 옆의 서채아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전투는 주로 순수한 육탄전 이루어져 있다.
아마 내 움직임을 볼 수도 없을 터.
끼어들어 봤자 방해만 된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쥐새끼 같은 놈……!!!”
부들거리던 그가 다시금 자세를 잡는다.
대체 무슨 마법을 보여주려 하는걸까.
이번에는 느슨한 자세로 구경하듯 쳐다보았다.
당연히 녀석은 자존심이 상한 듯 눈이 벌게진다.
화륵-
이번에는 수천 개의 불화살이 하늘을 수놓는다.
빼곡한 마법은 조금의 틈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웬만한 공격은 가볍게 피할 거라 예상한 듯했다.
‘아직 느끼지 못한 건가.’
이깟 마법은 나에게 장난과도 같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마나를 끌어올렸다.
긴 횡 베기가 허공을 가른다.
동시에 산더미처럼 거대한 마력이 쏘아진다.
콰아아아앙-!!!!
단 일검.
그 이상은 필요 없었다.
가볍게 마법을 무력화시키자 녀석의 얼굴은 당혹으로 물든다.
방금 전 건방진 눈빛보다는 훨씬 보기 좋은 표정이었다.
“크으으으……!!!”
번뜩이는 눈빛과 마주한 순간.
다시금 강력한 마나가 일렁인다.
놈은 이제 무차별적으로 온갖 마법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쾅!!!
콰아앙!!!
주변은 아수라장이 되어간다.
하나하나가 고등급의 마법이기에 파괴력은 상당했다.
‘지치지도 않나.’
역시 마법을 숨쉬듯 쓸 수 있는 드래곤답다.
나는 계속 피하거나 검을 휘둘러 가볍게 공격을 막아 냈다.
뒤를 흘깃 쳐다보니 아렐리아와 서채아는 힘겹게 버티는 상태였다.
‘충분히 위협적이지만…… 아직이다.’
내가 눈치채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지금의 공격들은 영 매가리가 없었다.
그저 나를 제압하는 정도에 불과할 뿐이다.
강력한 한 방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녀석은 아직 본래의 힘을 아끼는 중이었다.
정확히는 사용하지 못하는 것에 가까울지도.
‘아마 <세계의 율법>이 걸리나 보군.’
드래곤은 탑을 등반하는 자를 죽일 수 없다.
정말 내 목숨을 위협할 만한 공격을 했다면 몸은 천천히 <타락>했을 것이다.
뭐, 물론 그깟 마법이나 용언이 내게 닿을 수도 없겠지만.
‘슬슬 자존심이 상한단말이지.’
나를 상대하면서 목숨을 걸 각오를 하지 않다니.
안일하다 못해 건방진 생각이다.
그렇다면 내 쪽에서 먼저 경고한번 날려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나는 마력을 차곡차곡 응축시켰다.
그리고 쉴 새 없이 마법을 날려 대는 놈을 가만히 주시했다.
우우웅-
그가 다음 마법을 준비하려는 그때.
쏘아지는 불덩이 사이로 미세한 기류가 느껴진다.
빈틈이었다.
‘지금!’
쒜에엑!!!!
대지를 박차고 달려나갔다.
멀었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진다.
딱 종이 한 장 차이였다.
푹!!!
“큭……!?”
검이 정확히 복부에 박힌다.
놈을 보호하듯 감싸던 마나는 형편없이 찢어진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다.
콰직-쾅!!!!
“크아아아아악!!!!!!!!”
검 끝에 맺힌 마력 덩어리가 녀석의 몸에서 폭발한다.
보나마나 내부는 다진 고기마냥 잘게 쪼개졌을 터.
고통은 둘째 치고, 이미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였다.
“나름 드래곤이랍시고 버티는군.”
나는 바닥을 나동그라진 놈을 향해 입매를 비틀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이…… 이 하등한 인간 놈이……!!!”
그는 허우적거리는 와중에도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눈빛은 이미 나를 찢어 죽일 정도다.
느껴지는 살기에 공기마저 얼어붙는 느낌이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박혀 있던 검을 비틀었다.
“크악!!!!!”
떠나갈 듯한 비명소리가 밀림을 메운다.
얼굴은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엉망이다.
이와중에도 본래의 힘은 내지 않는 건가.
여러모로 대단한 녀석이었다.
“뭐, 나야 아무래도 좋지만.”
콱!!
검을 뽑아 놈의 손등에 박아 넣었다.
이정도 아픔은 느껴지지도 않는지 놈은 그저 움찔거리며 잇새로 작은 신음만 내뱉는다.
“이제 대화할 기분이 나나? 서채아를 끌고가서 뭘 하려는 속셈인지 말해 줬으면 하는데.”
나는 바닥에 있는 그와 눈을 맞췄다.
하지만 목전에 놓인 죽음의 공포에도 놈은 요지부동이다.
“크윽……내가 그분의 계획을 순순히 실토할 것 같으냐!?”
“당연히.”
쥐고 있던 검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손등에서는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퍼억-!!
“크악!!!!”
그는 넝마가 된 오른손을 보며 바들거린다.
동공은 점점 시커멓게 죽어간다.
“드래곤 고문이라니, 해 보지 못한 일이라 아주 흥미로워. 그러니 이정도 시간쯤은 내어 줄 용의가 충분하고.”
슬쩍 웃으며 그의 머리카락을 잡아챘다.
억지로 고개가 들어진 드래곤의 눈동자가 순간 번뜩인다.
무언가 결심한 눈빛이다.
동시에 터질 듯한 마나가 새어 나온다.
‘역시. 이정도 자존심이 상하면 폴리모프를 풀어 내는군.’
누가 봐도 원래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하려는 모습이다.
나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화아아악!!!!
빛에 휘감긴 거대한 덩치가 모습을 천천히 드러낸다.
번쩍이는 붉은 비늘, 성인 남자만 한 이빨과 발톱.
최강의 생명체라는 드래곤의 위용은 보기만 해도 대단했다.
“마왕님, 이제부터는 저도 합류할게요.”
“……저도요.”
아렐리아와 서채아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내 곁에 선다.
아까라면 모를까, 덩치가 커진 지금은 협공하기도 수월했다.
[그 건방도 이제 끝이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잠깐 비틀거리던 그가 자세를 다잡는다.
“<마신의 가호>.”
<마신의 가호[L]:일주일에 한 번, 마신의 가호를 부여받습니다.스킬 발동 시 버서커 상태가 되며, 모든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2배로 향상됩니다.>
이런 상황이 올 줄 알았다.
오랜만에 아껴 둔 스킬을 발동했다.
끓어 넘치는 힘이 온몸의 세포를 깨울 듯이 전신을 감싼다.
[……이 힘은 마신의 것이군. 하지만 그래 봤자 고작 인간. 너는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그는 으르렁거리듯 말을 내뱉는다.
그리곤 방금처럼 온갖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본래의 힘을 내는지라 훨씬 위협적이다.
하지만 점차 붉었던 몸뚱이는 군데군데 <타락>으로 검게 물들어간다.
“<다크 스피어>!!!”
“<파워 크래셔>!”
아렐리아와 서채아의 공격이 이어진다.
나는 그녀들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며 드래곤에게 접근했다.
콱!!!
‘역시 드래곤의 비늘은 이정도로 상처 낼 순 없는 건가.’
마나를 잔뜩 머금은 검이 튕겨져 나온다.
약간의 생채기는 났지만, 이래서야 제대로 된 상처를 입히려면 한세월이 걸릴 터.
나는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스킬을 오랜만에 꺼냈다.
“<극의의 일격>!!”
카앙!!카앙!!!
몇 차례 두드리듯 한점을 파고들었다.
비늘에는 점점 거미줄처럼 큰 균열이 생긴다.
콰직-!!
내 몸뚱이만 한 비늘이 잘게 조각났다.
그 안에는 드래곤의 살점이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나는 주저없이 그 안으로 검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푹!!!
[크으……]
거대한 몸이 움찔거린다.
하지만 이정도로는 두꺼운 가죽을 조금 뚫은 것뿐.
치명상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나하나 깨부수며 노가다를 해야 하나.’
시간이 지나면 드래곤은 분명 쓰러질 것이다.
그러나 이놈 하나 잡자고 며칠 내내 전투를 진행할 수는 없다.
나는 멀찍이 떨어진 일행을 흘깃 쳐다보았다.
그녀들 역시 분투하고 있지만, 역시나 드래곤 특유의 방어력때문에 고전하고 있었다.
‘분명 쉬운 방법이 있을 텐데.’
드래곤의 약점은 명확하다.
바로 이름도 유명한 드래곤 하트와 비늘 안쪽의 여린 살들이었다.
하지만 대뜸 심장을 노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결국은 살점을 공격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나는 드래곤을 이리저리 뜯어보며 고민에 잠겼다.
그리고 날카로운 이빨로 서채아를 공격하려는 그때.
도저히 놈이 피할 수 없는 약점이 퍼뜩 떠오른다.
‘그래, 그게 있었지.’
콰직!!
가만히 팔짱을 끼고 있는 와중에도 동료들의 공격은 거셌다.
그들은 나처럼 하나둘씩 비늘을 부수고 있었다.
[크으으윽!!!]
마법과 검은 정확히 드러난 살점을 파고든다.
물론 지금은 티끌만큼 작은 부위였다.
하지만 무시한다면 온 몸은 피투성이가 될 게 뻔하다.
아무리 강한 드래곤도 슬슬 위협으로 느낄 타이밍이었다.
‘이제 X랄발광을 하겠군.’
누가 봐도 놈은 날뛰기 직전이다.
나는 우선 한창 마법을 쏟아 내는 아렐리아에게 합류했다.
그녀 역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었는지 얼굴색이 창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