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70화
“아, 생각보다 골고루 다지기가 힘드네요.”
그들을 흠씬 두들기던 아렐리아가 곤란한 듯 중얼거린다.
제대로 된 정보를 내뱉기도 전에 죽어 버릴까 염려하는 모양새였다.
“긴가민가하면 하반신을 공략해. 통째로 날아가도 목숨에는 지장없는 부분이니.”
이런 일에는 이골이 난 내가 결국 한마디 첨언했다.
그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듯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또 어디가 괜찮을까요?”
눈빛에는 수능을 앞둔 고3마냥 학구열이 넘친다.
미천한 인간 놈들 몸에 손도 대기 싫다며 마법을 난사하던 아렐리아에게 이런 의외의 모습이 있을 줄이야.
나는 이 열의 넘치는 학생에게 충분한 친절을 베풀어 주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 모습에 널브러져 있던 마법사들은 기겁을 한다.
“차라리 죽여라!! 너희는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할 테니까!”
그런 섭섭한 소리를.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곧 통장 비밀번호까지 줄줄 불 게 될 터였다.
그리고 나에게 이후의 일정 따위는 없었다.
그저 여유롭게 곧 등장할 서채아를 기다리는 것만 남았을 뿐이다.
“아마 곧 기절할 텐데 그럴 때는-”
한참 특별 과외가 이어졌다.
얼떨결에 함께 강의를 듣는 적들의 얼굴은 점점 허옇게 질려 간다.
“이 정도면 한 시간도 안 걸릴…… 흐음?”
슬슬 설명을 마무리할 때쯤, 근처에서 익숙한 마력이 느껴진다.
나는 아렐리아에게 그들을 맡겨놓고 바로 근처까지 다가갔다.
‘역시 서채아였군.’
드디어 집 나갔던 헌터가 등장했다.
오랜만에 보는 그녀는 여전히 냉랭한 분위기가 흐른다.
걸음걸이며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눈동자가 마치 잘 깎인 대리석 조각을 보는 기분이었다.
“고생 깨나 했나보군.”
항상 단정했던 그녀는 피와 먼지투성이로 엉망이다.
앞을 가로막는 몬스터들을 수도 없이 도륙한 흔적이었다.
“……진 헌터님? 어떻게 여기에…….”
차갑게 굳어 있던 얼굴이 나를 보자마자 동요한다.
당황과 기쁨이 뒤섞여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우연히 만났다, 정도는 안 되겠지?”
물론 어린아이도 안 믿을 소리였다.
하지만 내 농담에 그녀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안 되는데요?”
내 말이라면 모두 믿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잠시 말문이 막힌다.
동시에 이런 서채아를 감당해 내는 나비 길드의 부길드장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뭐, 됐다. 어째서 여기까지 왔는지나 이야기해.”
“그건…… 아, 잠시만요.”
그녀는 딱히 숨길 마음은 없었는지 순순히 대답하려다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당황한 얼굴로 서둘러 파괴된 마법진으로 다가간다.
심지어 정확히 중앙부에 서서 사방을 훑으며 땅까지 파헤치기 시작했다.
명백히 무언가를 찾고 있는 행동이었다.
“씨앗을 찾나?”
이유는 뻔했다.
나는 아까 처박아 두었던 씨앗을 꺼내 흔들어 보였다.
그러자 그녀는 빠르게 다가와 물건을 확인해 본다.
왜인지 모를 안도의 한숨도 함께였다.
“……다행히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았네요.”
이 대충 휘갈긴 설명의 씨앗의 정체를 아는 건가.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그녀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입을 뗀다.
“꿈에서 봤어요. 렌이 태초의 씨앗이란 걸 파괴하려고 애를 쓰더군요. 허락되지 않은 힘으로 본인의 몸이 망가지는데도 불구하고요.”
태초의 씨앗이라?
그냥 흙 묻은 말똥처럼 생긴 모양새인데.
외관에 비해 과한 명칭이다.
하지만 거짓은 아닌지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른다.
띠링-!
[정확한 정보로 인해 아이템의 이름이 수정됩니다.]
[태초의 씨앗[???급]: @$$%[email protected]#$]
“이것에 대해 잘 아나보군.”
이름은 제대로 바뀌었지만 혼잡한 설명 문구는 여전하다.
정체를 알만한 자는 서채아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젓는다.
“저도 제대로는 몰라요. 하지만 지구에서 ‘시스템에 가장 가까운 곳'에 놓인 물건인 만큼, 이걸 파괴한다면 시스템이 지구에 관여하기 힘들어진다고 렌이 말하더군요.”
“설마 갑자기 게이트들이 폭주한건…….”
“네. 맞아요. 렌이 씨앗을 통해 한 짓이죠. 망가지기 전에 진 헌터님이 구해 내셨지만.”
……그렇게 중요한 물건이 여기 덩그러니 놓여 있다고?
심지어 몬스터가 득시글거리는 밀림에?
풍수지리를 개무시한 장소 선정에 기가 찬다.
“이 정도면 지나가다 흘린 수준인데.”
시스템에 대한 기대는 이미 땅속에 처박힌 지 오래전이지만, 슬슬 이쯤 되면 면상 구경이라도 하고 싶다.
대체 무슨 정신머리로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묻고도 싶고.
“최초의 게이트가 열린 곳이니만큼, 이보다 적절한 장소는 없었을지도 모르죠.”
중얼거리는 내 말에 서채아가 살풋 웃는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자 그녀는 갑자기 벌게진 얼굴을 벅벅 문지른다.
“아, 급하게 오느냐고 지금 제 상태가…….”
서투른 손짓이 스칠 때마다 몬스터들의 피가 닦여 나온다.
얼굴 꼴이 그게 뭐냐고 타박하는걸로 보인 건가.
그러고 보니 서채아가 이곳에 그토록 급하게 씨앗을 찾으러 온 연유가 궁금했다.
물론 건드리자마자 시스템이 난리를 피울 만큼 중요한 물건이긴 하다.
하지만 평소 그녀는 사람이 죽어가던, 세상이 무너지건 신경 쓰지 않는 태도를 고수해 왔다.
아무리 렌의 꿈에서 봤다고 하나, 이 깊숙한 밀림까지 뛰어올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대체 씨앗은 왜 구해내려 한 거지? 심지어 이건 렌이 너를 노린 계획이었어.”
내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보기 좋게 함정에 빠졌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쯤 전에 하던 실험을 이어서 받고 있겠지.
“……당신이라면 이곳에 왔을 것 같아서요.”
뜬금없는 대답이 튀어나온다.
당연히 나라면 렌의 계획에 엿을 먹이기 위해서 기꺼이 왔겠지만, 서채아에게 그 정도 원한은 없을 터.
의아하게 쳐다보자 그녀는 입을 꾹 다문다.
다시금 냉막한 표정으로 돌아왔지만 왠지 쑥스러워 보이는 느낌이었다.
‘설마 날 위함이었다, 이런 건가?’
그렇다면 분명 내게 바라는 것도 있을 터.
세상에 무임금노동이란 건 없기에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어색한지 삐걱거리는 움직임으로 주변을 훑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마왕님~? 잠시 여기 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그때 서채아와 나의 사이로 아렐리아가 파고든다.
어차피 할 말은 끝났기에 그녀가 이끄는 방향으로 향했다.
“얘네 조금 있으면 죽을 것 같아요. 그런데 아직도 뭔가 말하진 않네요.”
한구석에 던져진 덩어리들을 보니 과연 몰골이 처참하다.
용케도 치명상을 피했지만 아무래도 살아남기는 힘들어 보였다.
“치료하고 다시 할까요?”
새로 시작될 구타에 아렐리아는 기대되는 표정이다.
하지만 2차전을 위해 이 녀석들에게 사용할 물약과 마나가 아깝게 느껴진다.
“일단 최대한 상처 부위는 피해서-”
“큭……크크크크크…….”
말하고 있는 와중, 어울리지 않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바위에 기대어 간신히 숨만 몰아쉬고 있는 마법사놈이었다.
‘맞는 게 제법 즐거웠던가.’
아니면 아렐리아가 머리를 잘못 때려 미쳐 버렸을지도.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가만히 그를 주시하자, 놈은 갑자기 나를 살기 어린 눈빛으로 노려본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는데.”
손 하나 까딱할 힘도 없는 놈이 주둥이 놀리는 솜씨는 일품이다.
대체 뭘 하려고 분위기를 잡나 궁금해질쯤.
그는 갑자기 울컥하고 검은 피를 뱉어낸다.
“분명 마왕님이 말씀한 대로 복부는 피해서 때렸어요!”
아렐리아는 다급하게 변명 아닌 변명을 외친다.
본인의 탓이라 생각할까 봐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잠깐. 멈춰 봐.”
나는 호들갑 떠는 아렐리아를 조용히 시켰다.
그리고 완전히 눈을 까뒤집고 있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각혈한 피는 이미 사람의 몸 안에서 나왔다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주변을 흥건하게 적신다.
그 와중에도 놈의 질긴 목숨은 아직도 붙어 있었다.
‘……원래 저런 문양이 있었나?’
그의 손등 부분에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희미한 문양이 눈에 띄인다.
심지어 문양은 점점 선명해짐과 동시에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느낌에 그 녀석의 몸을 살펴보려는 그때.
갑자기 놈의 몸이 풍선처럼 부푸는 느낌이 든다.
나는 재빨리 아렐리아의 손목을 움켜쥐고 뒤로 물러났다.
퍼엉!!!!!!!!!
순식간이었다.
주변은 마치 폭탄이 터진 듯 난장판이 되었다.
다행히 머리로 이게 대체 뭔지 생각하기 전 본능적으로 움직인 덕에 피해는 전혀 없었다.
“……X발…….”
터져버린 마법사놈.
그리고 그에게서 나온 온갖 잔해들.
앞에는 보기만 해도 찝찝한 광경이 펼쳐진다.
“마왕님, 괜찮으신가요??”
이제서야 정신을 차린 아렐리아가 다급히 나를 돌아본다.
멀리서는 서채아가 빠르게 뛰어오고 있었다.
“진 헌터님!??? 이게 무슨 일이죠??”
대꾸할 여유는 없었다.
온통 붉게 물들어 버린 공간에서 한 인영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으므로.
심지어 그에게서 풍겨지는 마력은 처음 느끼는 와중에도 매우 익숙했다.
“드래곤인가.”
“흐음? 나를 알아보다니 인간 주제에 제법이군. 그나저나 내 맹약자는 죽어 버렸나. 하긴, 나를 불러낼 만큼 강한 힘을 고작 인간 따위가 버틸 수는 없지.”
긴 적발을 휘날리는 미청년이 입매를 뒤틀며 다가온다.
가장 위대하다는 생명체답게 건방지기 짝이 없는 태도였다.
“네가 그 실험체군.”
그 녀석은 서채아를 정확히 쳐다본다.
누가 봐도 그녀가 목적임이 분명한 눈빛이었다.
“우선…… 모두 꿇어라. 나는 인간이 나와 눈을 마주치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
너무나 고압적인 말투가 튀어나온다.
결국 나는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드래곤의 고운 미간은 순식간에 구겨진다.
“감히 미천한 인간 따위가…….”
그래, 원래 드래곤은 저따위 생물이었지.
최근에 인간 애호가 드래곤만 마주치다 보니 그들의 성격에 대해 깜빡 잊고 있었다.
“하. 멍청한 인간과 대화라는 걸 나누려고 한 내가 잘못이지.”
아무도 맞장구쳐 주지 않자 그는 갑자기 자아성찰을 시작한다.
한창 혼자 중얼거리던 드래곤은 결국 고민을 끝냈는지 우리를 차갑게 노려본다.
“……내 직접 여기까지 왔으니 곱게 죽지는 못하리라.”
누가 할 소리를.
슬슬 무언가 준비를 하는듯한 그를 향해 다가갔다.
“렌의 측근인가?”
“감히 그분의 이름을 입에 담다니!!”
“맞군. 마침 잘됐어.”
아는 정보가 많아 보이는 그의 등장이 눈물 나게 반갑다.
그렇다면 환영 파티가 빠질 수 없겠지.
나는 드래곤의 격에 어울릴 만한 마력을 아낌없이 끌어올렸다.
“인간이 이 정도 마력을……!??잠깐, 너 설마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