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69화
“며칠전에 찾아온 여자에 대해 다 말해 봐.”
푹신한 의자에 앉자마자 본론부터 꺼냈다.
간단한 인적사항을 불러주자 그는 묻지 않은 말까지 나불거리기 시작한다.
서채아가 금지 구역으로 들어간 날짜, 그리고 어떤 말들을 했는지까지도.
특히나 제일 재밌는 건 마법을 파훼하는 디스펠링 스크롤을 잔뜩 구매해 갔다는 점이었다.
“제가 아는 건 이 정도가 다입니다. 아!! 또, 상당히 초조해 보였습니다. 시간이 별로 없다고도 했던가? 안내자를 구하지 못할 거라 하니 직접 길을 찾겠다 하던데요? 그리고-”
혹시나 말이 끊기면 맞을까 걱정했는지, 끊임없는 설명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만하면 얻을 만한 정보는 다 얻은 상태.
나는 그에게 좀 닥치라는 시선을 보냈다.
“헙…….”
두손으로 입을 가린 전대 보스가 슬그머니 눈알을 굴린다.
그리고 본인이 더이상 쓸모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밖으로 줄행랑을 쳤다.
“슬슬 출발할까요?”
잠자코 옆에서 듣고 있던 아렐리아가 내 곁에 선다.
발 밑에는 이미 준비한 텔레포트 마법진이 떠오르는 중이었다.
“바로 가지.”
“네~ 여기서 동쪽 방향이었죠. 제일 가까운 데로 모실게요.”
아렐리아의 마법이 우리를 감싼다.
곧 눈 앞에는 인간과 몬스터들의 구역을 나누는 거대한 성벽이 보인다.
정보를 얻은 바에 의하면 멀지 않은 곳에 누가 봐도 이상한 문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주변을 샅샅이 훑으며 성벽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잠시 후.
저 멀리부터 엄청난 위용을 뽐내는 문이 나타났다.
“……확실히 생김새가 난해하군.”
“대체 이 미적감각은 뭘까요.”
이건 모른 척 지나갈 수도 없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재질과 문양들을 한데 어우른 듯한 이상한 생김새였으니까.
이곳을 통과하면 금지 지역이 아니라 우주나 어디 머나먼 차원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나는 잠시 정신이 나갈 것만 같은 문에서 시선을 돌리고, 각 조직들에게서 얻어낸 물건을 꺼냈다.
열쇠에는 각각 알 수 없는 홈들이 복잡하게 파여 있다.
대충 끼워 맞추자 금세 하나의 모양을 갖췄다.
철컹-
자물쇠에 열쇠를 끼워 넣었다.
동시에 안쪽에서 복잡한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린다.
그리고 잠시 후.
문은 모든 준비를 끝냈다는 듯이 자동으로 열린다.
우리는 주저없이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쿵!
들어오자마자 문이 닫힌다.
앞에는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깊은 지하 계단이 놓여있었다.
“흐음, 마법과 기계의 조합이라.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꽤 실력이 좋은 자였네요.”
아렐리아는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훑어본다.
목소리에는 약간의 감탄도 서려 있었다.
“열쇠가 없었다면 문으로 들어왔어도 제대로 된 길을 만들어 주지 않았을 거예요. 침입자는 이곳을 영원히 헤매게 될 테고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벽면을 쓸어내린다.
먼지가 걷힌 곳에는 울퉁불퉁한 자국이 있다.
돌 벽에 새겨진 일종의 편지였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괴물을 쏟아 내는 게이트란 것을 파괴해 주리라 믿으며 이 통로를 만든다. 그리고 이 지역에 다시금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주길.]
“평화와 안정이라…… 개소리군.”
버려진 땅은 이미 범죄자의 낙원이다.
몬스터를 제거한다고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멀쩡하게 돌아올 리가 없다.
뭐, 이걸 만든 자는 지금의 상황을 예상하지는 못했겠지만.
이미 쓰레기통에 처박힌 누군가의 염원을 무시한 채, 우리는 한 방향으로 이어진 길로 향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 흘렀을까.
쉬지도 않고 빠른 속도로 주파하니, 슬슬 무한정 이어질 것 같은 통로에도 끝이 보인다.
정면에는 바깥으로 연결되는 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휴, 지겨워 죽는 줄 알았네요.”
툴툴거리며 아렐리아가 문을 직접 열었다.
순간, 더운 열기가 훅하고 밀려온다.
끼에엑-
하늘조차 보이지 않는 빽빽한 밀림에서 몬스터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가까이에 있는 기운만 해도 몇백에 달하는 숫자였다.
‘아주 자리를 잡았군. 그런데 대체 이 마나는…….’
수많은 생명체 사이로 수상한 마력이 미약하게 느껴진다.
애써 감추려 노력한 듯했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힘이었다.
“너무 이질적인데요.”
불쾌한 기운에 아렐리아 역시 인상을 찡그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이 알 수 없는 마력의 근원을 향했다.
그렇게 가로막는 덩굴 따위를 헤치며 몇 분쯤 걸었을까.
눈 앞에는 인위적으로 만든 공터가 보인다.
그곳에 새겨진 거대한 마법진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다.
누구라도 헛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광경이었다.
“재밌군.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던 정글 한복판에 마법진이라?”
그것도 모양새를 보아하니 최근에 완성된 것이 틀림없다.
분명 마법에 조예가 없는 서채아의 짓은 아니었다.
‘찜찜한데.’
척 봐도 X같은 냄새가 난다.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멀찍이서 마법진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저건 대체 뭐지?’
탁한 마력이 일렁이는 마법진의 정 중앙부분.
그곳에는 주먹 만한 씨앗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뜬금없는 조합에 잠시 말문이 막힐쯤
아렐리아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마왕님, 이건…… 이중 마법진이에요. 겉으로는 저 씨앗이 무언가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상은 접근한 자의 마나를 봉인하는 마법이 숨겨져 있어요.”
“저걸 꺼내려는 자를 위한 함정이겠군.”
당연히 목적은 여기까지 찾아올 서채아겠고.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
그녀가 어째서 저 하등 쓸모없어 보이는 씨앗을 얻으려는 지는 모른다.
하지만 갑자기 식물학자로 전향하려는 계획이 있지는 않을 테니, 중요한 물건임에는 틀림없다.
결국 이 시점에서 내가 취해야 할 행동은 단 하나였다.
“마법진을 파괴해야겠어.”
“역시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마나를 봉인하는 마법진은 그렇다 치더라도, 저 씨앗에 가해지는 마법은 저조차 가늠이 안가요.”
아렐리아는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자존심이 적잖이 상한 모양이었다.
“분석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예요.”
불가능하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다만 지금은 서채아도, 저걸 만들어낸 놈들을 빨리 잡아와야 하는 때이다.
해야 할 일이지만 고작 저 따위 것에 많은 시간을 쏟긴 어려웠다.
‘어쩔 수 없나.’
나는 직접 움직이기 위해 마법진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아렐리아는 기겁하며 나를 뜯어말린다.
“잠깐만요!! 마왕님. 분명 렌이 직접적으로 손을 썼을 거예요. 파괴한 자에게 악영향이 가게끔 만들었을 거라고요. 마법진의 약점을 파악할 때까지만이라도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소리였다.
나는 그녀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그래. 확실히 송두리째 무너트릴 필요는 없지. 편한 길이 있다면…….’
순간 머리속에 ‘약점’이라는 단어가 퍼뜩 지나간다.
마침 적절한 방법이 떠올랐다.
‘분명 강화시킨 <강렬한 직감>이 무생물의 약점조차 파악할 수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어.’
나는 바로 마법진을 주시하며 스킬을 사용했다.
예상대로 스킬은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띄우지 않는다.
[스킬:강렬한 직감-약점을 사용합니다]
[???의 마법진의 중심점을 찾아냅니다.]
순간 눈 앞에는 붉은 빛의 기둥이 몇 개 떠오른다.
그 밑에는 눈치채지 못할 만큼 평범한 마석 조각들이 박혀 있었다.
“찾았군.”
씨익 웃으며 그곳으로 성큼 걸어갔다.
아렐리아는 안절부절못하며 나를 뒤따라온다.
“마왕님?? 조금만 더 생각해 보시면-”
콰직!!
주저하지 않고 무기를 휘둘렀다.
검 끝에 닿은 마석은 버티지 못하고 산산조각난다.
“으앗!!!!”
아렐리아는 재빨리 배리어 마법을 사용했다.
곧 있을 폭발이나 다른 상황에 대비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마법진은 잠잠하다.
그저 조용히 기운을 잃어갈 뿐.
“……설마 마법진의 중심점을 파괴한 건가요?”
“아직 조금 남았지만.”
나는 바로 다른 마석들을 향해 움직였다.
수천개의 마석들 중 딱 다섯개를 파괴하자 마법진에 맴돌던 마나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완벽한 파훼였다.
“어떻게 파악하신 거죠?? 역시 마왕님!”
그녀는 존경심이 가득 담긴 눈동자를 나를 쳐다본다.
입으로는 연신 호들갑을 떨어대고 있었다.
우스운 반응에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나는 완전히 빛을 잃은 마법진의 중앙으로 다가갔다.
[[email protected]$%의 씨앗[???급]: @$$%[email protected]#$]
씨앗을 줍자 도통 알아볼 수도 없는 문구가 떠오른다.
시스템 정신나간 거야 한두 번도 아니라지만, 오랜만에 보는 성의 없는 설명에 잠깐 정신이 아득해진다.
‘차라리 이정도면 안 보는 게 나을 뻔했군.’
어쨌든 중요한 물건임은 틀림없으니 챙기긴 해야겠지.
씨앗을 인벤토리에 한구석에 던져 넣는데, 가까이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느껴진다.
서채아 특유의 마력이 느껴지지 않으니, 마법진을 관리했던 자들인 듯했다.
‘알아서 제 발로 왔군.’
가만히 그들을 기다릴 요량으로 부서진 마석 위에 올라섰다.
옆을 보니 아렐리아는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제길, 오지에서 이게 무슨 고생이야. 그 화영인가 뭔가 하는 놈만 제대로 잡아왔으면 좋았을 텐데.”
“애초에 그런 중요한 일에는 우리 같은 고위급 간부가 직접 움직여야 했어. 하, 빨리 끝나고 좀 쉬고 싶군. 그 여자는 어디쯤에 있지?”
“추적기에는 거의 다 온 걸로 표시되는데. 이 짓도 거의 마무리군. 이제 실험체를 봉인하기만 하면…….”
저 멀리 공터에 도착한 자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곧 파괴된 마법진을 발견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돼!! 그분이 직접 손을 쓰신 마법진이 망가졌다고!??”
“여기서 거의 한 달을 보냈는데……!!!!!”
역시 남의 개고생을 무너트리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
경악에 찬 표정들이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들었다.
“아렐리아, 잡아 와.”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렐리아가 빙긋 웃으며 몸을 날린다.
곧 울창한 밀림에 사람패는 소리가 가득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