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68화
“강한 헌터라니까 생각나네요. 붉은 달을 찾아오는 헌터가 한두명도 아니지만 좀 특이한 사람이 있긴 했습니다.”
“아, 그 미친 여자???”
누군가 외친 말에 모두들 얼굴이 와락 구겨진다.
잠깐 떠올리기만 해도 불쾌한 기억인 듯했다.
‘조직들을 들쑤시고 다녔다더니. 정말로 난리를 피운 모양이군.’
그래도 칼질은 하고 다니지 않은 건가.
붉은 달의 본거지는 SS랭크의 헌터가 난동부린 장소 치고 멀쩡했다.
아니, 멀쩡했었던건가.
쿠웅-!
지금도 내가 부숴 버린 건물의 잔해가 하염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사실상 이제는 건물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였다.
천장은 날아간 지 오래고 몇개의 기둥과 벽만 멀뚱멀뚱 서 있을 뿐이었으니.
“……본거지가.”
주변을 둘러보는 조직원들의 표정은 점점 절망으로 물들었다.
원인은 나였지만, 후환이 두려워 대놓고 원망할 수는 없는지 애꿎은 돌 부스러기만 발로 찬다.
사방에서 한숨 쉬는 소리만 들려왔다.
‘이따위 건물은 새로 지으면 될 것을.’
허구한날 왕궁만 보던 나에게는 조잡하기 그지없는 곳이었다.
차라리 주변 미관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무너지는 게 나았을지도.
나는 여전히 우울해 보이는 그들을 향해 심드렁하게 눈짓을 했다.
약간의 협박이 담긴 행동이었다.
그제서야 그들은 허겁지겁 다음 말을 이어 간다.
“크음, 큼!! 다시 말씀드리자면…… 아, 다짜고짜 금지 구역으로 안내하라더군요. 중앙부까지 간다고 하던가? 거긴 미로같이 펼쳐진 정글이라 현지인이 없으면 엄청나게 길을 헤메거든요. 물론 저희도 초입 부분까지 밖에 모르지만.”
“그래서 안내했나?”
“예?? 거기를요??? 어휴, 말도 마세요.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못 가죠. 금지 구역이 왜 금지 구역이겠습니까? 이미 그곳은 몬스터들이 부락을 이뤘다고요. 아무도 손을 못 대는 장소죠.”
아예 몬스터가 터를 잡았나보군.
물론 평범한 지역이라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곳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아시다시피 여기는 버려진 자들의 땅이니까요.”
설명하던 자가 쓰게 웃는다.
버려진 땅.
이곳이 온갖 무법자들의 천국이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최초의 게이트가 생기고, 그 게이트가 폭주한 뒤였으니까.
‘이미 정부에서도 손을 놨다고 했었나.’
처음 겪는 일에 당황한 사람들은 게이트를 처리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리고 그 주변은 튀어나온 몬스터들로 황폐화가 되었다.
몇몇 헌터들이 합심하여 몬스터를 한 구역으로 몰아냈다 하나, 완전한 토벌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
결국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경계를 나누고 몬스터와 공존하게 되었다.
“뭐, 그건 그렇고. 그 여자는 다른 조직들에게도 안내자를 구하러 갔을 겁니다. 당연히 실패했을 거고요.”
“그런 곳에 스스로 갈 놈은 한 명도 없죠.”
서류에 적힌 것과 비슷했다.
각 조직들을 다녀간 뒤, 행방불명.
분명 그녀는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정글로 들어갔을 것이다.
‘렌의 흔적이 그곳에 있겠군.’
사람들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이다.
이미 많은 세력을 잃고 궁지에 몰린 그가 선택하기에는 적절한 장소였다.
“다른 정보는 없나?”
“글쎄요. 딱히 큰 사건은 아니어서 따로 조사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다른 조직들은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가만히 의자에 앉아 다음 할 일을 정리해보았다.
조사에 의하면 그녀가 다녀간 장소 중 가장 오래 머무른 곳은 총 세 개.
모두 버려진 땅을 대표하는 조직들이다.
그중 한 개는 지금 내가 처리했고, 나머지 한 개는…….
콰아아아앙!!!!
“저기도 끝났군.”
아렐리아의 솜씨였다.
굉음이 들린 장소로 고개를 돌렸다.
탁 트여진 건물때문에 밖의 풍경이 깨끗하게 보인다.
이미 큰 건물은 활활 불타며 비명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저긴 적대 조직인 새벽이 있는 쪽인데…….”
멍한 얼굴로 조직원들이 중얼거린다.
그나마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전대 보스였다.
그는 무언가 퍼뜩 생각난 듯 나를 돌아본다.
“저, 보스? 혹시 그 여자를 찾아 정글로 갈 셈이십니까?”
“아마도.”
“역시…….”
잠시 침음을 흘린 그가 주섬주섬 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목걸이 형태로 만들어진 열쇠였다.
“이건 붉은 달의 보스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물건입니다. 저희는 그저 상징같이 쓰고 있었는데…… 사실 이게 사용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몰랐습니다. 분명 가시는 길에 도움이 될 겁니다. “
이 타이밍에 열쇠라니? 뜬금없는 증정식이다.
공손하게 내민 열쇠를 건네받았다.
거무튀튀한 물건은 별 다른 특징이 없어 보였다.
‘……응?’
양 옆에 파인 홈, 그리고 무언가 조립했던 흔적.
자세히 보니 열쇠는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설명을 요구하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이건 금지 구역의 중앙으로 갈 수 있는 통로를 여는 열쇠입니다. 보시다시피 총 세 개의 열쇠가 합쳐져야 쓸 수 있는 물건이고요.”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제법 흥미가 돋는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목적지에 손쉽게 도달할 수 있다.
어쩌면 서채아보다도 더 빨리.
“버려진 땅에 있던 몬스터를 몰아낸 자들이 있다는 건 알고 계시죠? 그중 대표격인 자가 세 명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설립한 것이 삼대 조직입니다. 원래는 이 장소를 서로 나눠 보호하기 위함이었다더군요. 지금은 서로 양립하는 입장이지만…….”
“형님, 설마 경계의 문에 대해 말씀하시는 겁니까?”
옆에서 가만히 듣던 조직원이 아는 체를 한다.
이미 다른 자들은 새벽이 있는 곳으로 구경을 떠난 뒤였다.
“경계의 문이라. 그곳에 열쇠 세 개를 찾아 넣으면 정글 중앙으로 갈 수 있겠군.”
“말이 쉽지, 사실상 열쇠는 보스에게만 내려오는 것. 조직을 통합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입가를 길게 가로지른 칼자국이 씰룩거린다.
아마도 미소를 띄우려는 것 같은데, 세상 풍파를 혼자 겪은 듯한 얼굴이라 영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내 앞에서 다시한번 웃으면 죽을 줄 알아라.”
“……넵. 하여튼 삼대 조직의 보스가 되려는 형님께는 가능하겠죠. 처음 있는 일이라 솔직히 설렌다고 말씀드리려고 했던 건데…….”
그는 시무룩한 얼굴로 입을 다문다.
그래도 빈말은 아니었는지,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기대감이 서려 있다.
‘겸사겸사 잘됐군.’
어차피 내부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세 조직의 보스 자리를 차지 했어야 했다.
그 와중에 정글 중앙으로 가는 통로를 열 수 있는 열쇠라?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다.
“마…… 아니, 주인님~ 저 돌아왔어요!”
멀리서 아렐리아의 마력이 가까워진다 싶더니, 그녀가 사뿐히 내 앞에 선다.
동시에 대화를 나누던 두명의 입이 헤 하고 벌어진다.
아렐리아의 외모 하나만큼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아름답기에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거기서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응? 주인님도 이미 열쇠를 들고 계시네요!”
그녀는 싱글거리며 열쇠 하나를 꺼내 건네준다.
형태는 내가 가지고 있던 것과 비슷했지만 진득한 피로 흠뻑 젖어 있다.
“히익…… 새벽의 열쇠???설마 저분이 다음 보스…….”
뚫어져라 아렐리아를 쳐다보던 조직원들이 기겁한다.
시선은 누군가의 피로 새빨갛게 물든 가녀린 손을 향해 있었다.
“보, 보스? 그럼 저희는 재건도 해야 되고……할 일이 많아서…….”
그들은 주춤거리며 물러선다.
지레 겁먹은 모양이었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도망치는 놈들의 뒷모습을 보며, 아렐리아는 콧방귀를 뀐다.
“제대로 된 작별인사도 하지 않다니…… 하여간 하찮은 인간들이란 예의도 없네요. 시간만 괜찮았다면 바로 교육을 시켜 줬을 텐데.”
언제부터 마족이 예의범절을 따지는 종족이었지?
새침하게 중얼거리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유교의 나라에서 한창 지내다 보니 어느새 물들어 버린 모양이었다.
그동안 미친듯이 찾아본 사극 드라마들의 영향도 상당할 테고.
“저놈이야 얼굴을 기억해 놓았으니 다음에 처리하죠. 그 건그렇고. 남은 건 찬란한 별 뿐인가요?”
“다른 조직까지 싸그리 정리할 생각이긴 한데…… 흐음, 직접 손쓸 필요는 없나.”
사실 이곳에 온 이유가 서채아밖에 없는 건 아니다.
아직 어떤 길드도 손을 대지 못한, 무법지대 자체가 목적이었다.
“여기를 모두 장악하고 블랙 마켓과 연계하신다고 하셨던가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곳이니 이보다 괜찮은 장소는 없지.”
더불어 저 밖에 널려 있는 몬스터 군락도 매력적이고.
나는 이곳을 나만의 왕국으로 만들 작정이었다.
‘주변 정리야 다른 조직놈들을 시키면 될 터. 나머지는 마침 크레아시론이 맡고 있는 마법사의 탑 길드도 순항 중이니,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라 해야겠군.’
내가 생각해도 크레아시론의 일복 하나만은 끝내줬다.
이쯤 되면 쉴 새 없이 노동하려고 리치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이, 너.”
때마침 여기서 빠져나가려는 놈이 있기에 불러다 세웠다.
그는 엉거주춤한 폼으로 내 앞에 선다.
이미 나에게 얻어터지고 간신히 정신 차린 뒤라, 태도는 말할 것도 없이 공손했다.
“나가서 네 전대 보스에게 전해. 일주일의 시간을 줄 테니 버려진 땅의 모든 조직을 흡수하라고.”
“저, 보스. 새벽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아직 찬란한 별이 남아 있는뎁쇼…….”
그거야 쉽지.
나는 슬쩍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두어 시간만 기다려라.”
“예?? 설마 지금 가시려는…….”
“아렐리아, 가지.”
“네. 위치는 제가 따로 알아봐 뒀어요.”
벙찐 조직원을 뒤로한 채, 우리는 다 무너져가는 건물 밖으로 나왔다.
“마침 찬란한 별 본거지는 여기와 가깝대요.”
오랜만의 동반 외출에 들뜬 아렐리아가 신나게 종알거린다.
거리의 행인조차 사라져 버린 살벌한 길거리의 분위기와는 정 반대였다.
이웃집 방문하는 듯한 그녀와 함께 오 분쯤 거리를 걸었다.
이윽고 도착한 거대한 건물 앞에는 이미 수많은 손님이 나와있다.
손에는 환영선물인지, 번뜩이는 연장을 챙긴 상태였다.
“손님 맞이 치고는 좀 과한데.”
피식 웃으며 손을 풀었다.
동시에 찬란한 별 소속의 헌터들이 몰려들었다.
“무조건 달려들어!!!”
행동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명령한다.
제일 먼저 얻어터질 놈의 위치를 살피며, 아렐리아에게 단단히 일러 두었다.
“이미 알겠지만 가능한 죽이지는 마.”
내 수발을 들어줄 소중한 노예들인데, 허무하게 보내 버릴 수는 없지.
물론 팔 하나쯤은 쓰지 못하게 되도 상관은 없었다.
“제압하는 게 더 귀찮지만 어쩔 수 없죠.”
그녀는 장난 섞인 미소로 화답한 후 몸을 날렸다.
그리고 한시간쯤 뒤.
“보스 자리를 넘길 테냐, 아니면 죽을 테냐.”
“당연히 드려야죠!! 어서 앉으십쇼. 의자는 제가 따듯하게 데워 놨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놈들 가구마냥 널브러져 있다.
전대 보스는 그들을 흘깃 보며, 떨리는 발걸음으로 나를 본인 전용 자리로 안내했다.